171. 금감원 특별보험수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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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금감원 특별보험수사팀
2022.05.20.
―오늘 리안그룹의 최진태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습니다. 금융감독원 이진석 부원장의 실종 사건에 관한 경찰 조사에도 적극 협조한다는 입장입니다.
강준이 촬영한 폐차장에서의 영상은 파장이 컸다. 영상은 대한뉴스의 단독 보도로 발표됐다. 이유린의 단독 취재로 말이었다.
“장 국장, 우리 회사에 저렇게 대단한 인물이 있었는지 몰랐네.”
대한뉴스 조용호 대표는 장선우 보도국장에게 칭찬인지 비꼼인지 모를 말을 던졌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지난번에 민혜주 관련해서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수습 차원에서 추가 취재를 시킨 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유린의 단독 보도에 속으로는 쾌재를 부른 장 국장이었지만, 이런 때일수록 고개를 팍 숙이는 게 살길이라는 걸 장 국장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냐, 아냐 잘했어. 결과적으로 우리도 손절할 건 손절하고 가야 하니까 말이야. 근데…… 문제는 박 위원 쪽이 문제지. 저걸 어떻게 받아들이겠어? 우리 대한뉴스가 통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부드럽게 말했지만, 자신을 엿 먹였다는 걸 꾸짖는 거였다.
“이유린 기자…… 내보낼까요……?”
“에이, 그러면 쓰나! 부당해고는 안 되지. 그보다는 말이야…… 내 생각엔 이유린을 한 번쯤은 써먹을 데가 있지 않을까?”
“아! 그…… 그렇죠.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장 국장은 조 대표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일단 수긍부터 했다.
“우리는 어쨌든 하던 대로 하는 거야. 그러려면 일단 박상도 의원 쪽 하고 최진태를 떨어뜨려 놔야겠지?”
“네, 그렇죠……!”
“그럼 우리가 제일 앞장서서 공격하자고, 이왕 공격하는 거 선봉에 서야 모양새가 나잖아?”
그제야 장 국장은 조용호 대표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원래 변절자가 제일 극렬한 법이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니까.
조 대표는 대한뉴스가 사람들에게 그런 결백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희가 최진태 회장 관련해서는 전담팀을 만들어서 취재해 보겠습니다. 솔직히 파보면 구린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닐 겁니다.”
“그렇지. 장 국장이 찰떡같이 알아듣는 구석이 있단 말이야……. 좌우간 한국보험은 한동안 어려워질 거야.”
“네? 그럼 밍싱그룹에 매각이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들쑤셔 놨는데 정상적인 인수가 가능하겠어?”
“그럼 혹시 한국보험이 부도라도 나는 겁니까?”
보험사의 부도는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일 게 뻔했다. 수많은 보험계약자가 걸려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금융위기 때 리만 브라더스는 파산했는데 AIG는 정부자금으로 구제받았지? 왜 그랬는지 아나?”
“그야…… 보험사가 파산하면 여론이 안 좋아지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경제도 휘청일 거고요.”
“맞아. 한국보험도 마찬가지야. 부도가 나긴 왜 부도가 나? 나랏돈으로 알아서 구제해 줄 거라고.”
“국회에서 구제 자금 예산을 집행 안 해 준다면요…?”
조용호 대표는 그 말에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슬슬 여론이 들끓어 오르면 박상도 의원이 주도할 거야. 일단 서민들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냐고 여론몰이를 하면? 그럼 오히려 자연스럽게 박 의원 지지도도 올라가겠지?”
“그럼 밍싱그룹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하! 일단 금감원 통과만 되면 그다음에 사람들이 눈치챈다고 해도 자기네들이 어쩔 거야? 서민들 살리겠다는데?”
“그건 그렇죠.”
“지금 안 그래도 대한당 물어뜯으려는 놈들 천지잖아?”
“이상한 놈들 천지죠.”
“차라리 이번 기회에 최진태 회장을 민한당이랑 연결해 버리는 거 어때?”
장 국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검찰 라인을 가지고 있는 최진태였다. 그런 최 회장에게 공작을 펼친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검찰이 뒤에 있는데 괜찮을까요? 괜히 우리 대한뉴스 쪽만 역으로 다치는 거 아닙니까?”
“에이…… 그건 서로 합의하고 해야겠지. 어차피 최 회장이야 당분간 경영복귀는 힘든 거 아니야?”
“그…… 그렇죠. 그럼, 혹시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간단하잖아, 이진석 부원장이 민한당에서 뇌물 먹다가 걸릴 거 같으니 자살한 거로 가야지.”
“……박강준이 공개한 영상이 있는데 그걸 국민들이 믿을까요?”
“그게 증거야? 법치주의 국가에서 누구 하나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그게 사실이 되는 거야?”
대화 중 처음으로 목에 핏대를 세우는 조용호 대표였다.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언론재벌의 2세 경영인. 조용호가 생각하는 법치는 대한뉴스가 만드는 것이어야만 했다.
“당연히 아니요.”
“그래…… 결론은 우리가 그리는 대로 가는 거야. 항상 그랬듯이.”
“네, 민한당 쪽으로 엮어 보겠습니다.”
“그래, 난 장 국장만 믿어.”
대표실을 빠져나오는 장선우 국장은 얼마 전 박상도 의원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대선 캠프가 마련되면 장 국장님도 정식으로 모시겠습니다. 언론들과 원만하게 가려면 국장님 같은 분이 꼭 필요합니다.
장선우 국장은 차기 정부에 입각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쩌면 본인의 인생에서 찾아온 절호의 기회가 될는지도 몰랐다.
이미 죽어 버린 이진석 부원장과 민한당을 엮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한쪽은 말이 없으니까 말이었다.
* * *
검찰은 예상대로 뜸 들이기를 하며 최진태를 살인교사죄로 기소하지 않았다. 증거불충분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마치 그걸 알고 있었다는 듯 경찰은 마땅히 해야 할 수사를 하지 않았다.
얼마 후, 강준은 이진석의 유가족을 찾았다.
“다행히 약관상 실종 시에도 사망보험금이 나오게 되어 있네요.”
“이딴 보험금 필요 없어요…… 우리 애 아빠 시체도 못 찾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이진석 부원장의 부인은 참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원래 이진석 부원장의 사망보험금 지급자는 민혜주였다. 하지만 경찰이 민혜주의 사망을 확인하면서 보험금 지급대상자는 상속권자인 부인에게로 넘어갔던 거였다.
하지만 그런 속사정을 일일이 당사자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소장님이 직접 조사를 하셔서 그만큼 밝혀 주신 건 정말 감사해요. 근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네요.”
“뭐든 말씀하십시오.”
“남편이 정말…… 민혜주 그 여자랑 그렇고 그런 관계였나요?”
강준은 순간 고민이 됐다. 생명보험에 적혀 있는 보험지급자 필체는 분명 이진석의 필체였다. 그리고 민혜주의 주변 조사에 따르면 이진석은 분명 그녀와 내연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진실은 말해 준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상처만 남기는 거라면…….’
“민혜주는 의도적으로 부군께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부군의 죽음과도 연관되어 있던 게 분명하고요…… 물론 지금은 사망했습니다만….”
“그랬군요…… 꼭 밝혀 주세요! 나쁜 놈들…… 얼마나 아이들에게 충실한 아빠였는지 몰라요…… 이제 아빠 없이 아이들이 살아가야 한다니…… 흑흑!”
“부인, 외람되지만 한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네? 무슨 말이요?”
“이 아파트 절대 팔지 마십시오.”
“……왜요?”
갑자기 아파트를 팔지 말라는 말에 울다가 황당해하는 부인이었다. 이진석이 살던 아파트는 그가 근무하던 여의도에 있는 대형 아파트 단지였다.
“지금 시점에서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우습겠지만, 여기 아파트가 나중에는 크게 오를 겁니다. 두 배 이상이요.”
“……어차피 애들 학교도 있고 당장 옮길 마음은 없어요…….”
“지금은 헛소리 같겠지만, 제 얘기가 언젠가는 도움이 될 때가 있을 겁니다.”
강준은 이진석의 부인을 다독인 후, 자리를 빠져나왔다. 회귀 전 여의도의 집값이 폭등한 게 생각나서 오지랖을 떨었던 거였다.
‘금감원 부원장 직책의 퇴직금에 사망보험금까지 받았으니…… 남은 가족들은 이제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강준은 살인을 교사한 최진태 회장을 완벽하게 단죄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유족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살인의 실행자였던 고종원만이 재판에 넘겨졌고, 1심 재판에서 35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미 사망한 민혜주가 치정 문제로 살인을 청부했고, 고종원이 그 청부살인을 실행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판결문 어디에도 최진태 회장에 관한 얘기는 없었고, 고종원도 최 회장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대한뉴스에서 최 회장을 물고 늘어졌다. 의혹은 민한당이 이진석 부원장에게 뇌물을 줬고, 그 뇌물의 자금 출처가 바로 최진태라는 거였다. 결과적으로 최진태는 사법적 심판이 아니라 여론의 심판을 받은 격이었다.
물론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경영에 복귀한다고 기어 나올 테지만.
삐삑!
강준은 차량의 리모콘 키를 눌렀다. 그리고 차량에 다가섰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이진석 부원장 사건을 의뢰했던 박동식 수석조사관이었다.
“박 소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쩐 일로요? 사건은 다 끝난 거 아닙니까?”
“네, 사건은 끝났죠…… 저희 금감원에서 밍싱그룹의 국내 보험사 투자를 승인할 모양입니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됐군요.”
“그래도…… 제가 언젠가는 밝혀 낼 겁니다. 금감원 꼭대기에 앉은 사람들이 재벌들과 어떤 결탁을 했는지를요…….”
“이진석 부원장님이 생전에 막으려고 했던 게 밍싱그룹이었나요?”
“글쎄요…… 꼭 밍싱그룹을 막으려고 했다기보다는…… 국내 보험사를 인수할 만한 적격대상자라고 보지 않으셨던 거죠.”
사망한 이진석 부원장은 그저 원칙주의자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원칙을 지킨다는 게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거였다.
“실은 오늘은 다른 일로 찾아뵙습니다.”
“다른 일이라면……?”
“저희 금감원에서 특별보험수사팀을 꾸리려고 합니다.”
“자체적인 SIU팀을 만들겠다는 거군요.”
“네, 그래서 그 특별보험수사팀에 박 소장님의 합류를 부탁드리려고 온 겁니다.”
어쩌면 금감원 자체적인 SIU팀을 만든다면 보험 사건을 조사하기에 더 효과적일 수도 있었다. 경찰이나 공공기관의 협조를 구하기도 좋고, 금감원의 권한을 이용해 금융기록을 확인한다든지 통신사에 통신기록을 조회하기도 좋을 것 같았다.
“어쩌죠? 전 저한테 딸린 식구들이 있어서요. 그놈들 두고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물론 박 소장님 상황은 제가 잘 알죠. 이번 특별보험수사팀은 컨소시엄으로 구성될 겁니다. 그러니까 각 보험사의 우수한 인력을 모아 팀으로 구성하고 금감원에서 사건을 배당해드릴 예정입니다.”
“음…… 그러니까 팀 전체가 합류해라 뭐 이런 거군요.”
“네, 맞습니다. 일종의 외주라고 봐야겠죠”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물론 조건을 살펴봐야겠지만.
“권한은요……?”
“관계 기관과의 협조를 최대한 요청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협조로는 부족할 겁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합류하시겠습니까?”
“돈은 얼마나 주실 겁니까?”
강준의 현실적인 질문에 박동식 수석이 반쯤 수락을 받은 듯이 웃었다.
“당연히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1년 계약입니다. 그 이후로 계속 계약은 갱신될 거고요.”
“팀원들에게 물어보죠. 여기서 바로 수락하지는 못하겠네요.”
조금은 당황하는 박동식이었다.
“소장님의 의견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닙니까? 설마 팀원들을 핑계로 거절하는 건 아니겠죠?”
“제 의견을 물으셨으니 바로 답을 드리죠. 전 일단 긍정적입니다. 팀원들을 설득해 보죠.”
강준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차에 올라탔다.
“소장님, 그럼 조만간 다시 얼굴 뵙겠습니다!”
박동식 수석도 운전석에 탄 강준에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