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 폐차장 살인사건 (5) (170/250)


170. 폐차장 살인사건 (5)
2022.05.19.


멜버른 외곽 클레이턴.

민혜주는 박강준 보험조사사무소의 도움으로 호주로 출국할 수 있었다. 당분간 그곳에서 지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자신의 친딸까지 호주로 데려가는 데 성공한 민혜주였다. 그녀는 앞으로 지낼 고급 빌라의 테라스로 나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본인이 이유린을 통해 폭로했던 최진태 회장이었다.

“내가 뭐라 그랬어요? 잘 수습될 거라고 했죠?”

―그러게…… 내가 괜히 마음을 졸였나? 민혜주, 당신을 믿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래서…… 지금 어디야?

“내가 어디 있는지는 알 필요는 없잖아요. 당신은 내 덕에 진석 씨 죽였다는 의혹을 덮었고, 난 당신한테 돈을 받았으니 우린 서로 윈윈이죠.”

―뭐, 나쁘지는 않네. 근데 말이야. 혹시라도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엉뚱한 짓 하려고 마음먹지는 말라고…… 그랬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알죠. 폐차장에서 고철 더미에 짓이겨져서 죽겠죠.”

덤덤하게 말하는 민혜주였다. 통화음 너머의 최진태 회장에게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뭐야? 폐차장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박강준 소장이 출국하기 전에 그러더라고요. 진석 씨 죽은 데가 폐차장이라고 말이에요.”

―진…… 진짜? 박강준이 그렇게 말했어?

“왜요? 영원히 그게 비밀인 줄 알았어요?”

최진태 회장은 충격을 받았다. 바로 좀 전에 고종원이 강준을 직접 처리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왔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박강준이 고종원의 폐차장을 알고 있다면? 역으로 박강준이 함정을 파 놓았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민혜주! 잘 들어, 내가 잘못되면 너도 잘못되는 거야. 알아?

“내가 왜요? 난 그냥 진석 씨를 당신 지시로 만난 것뿐인데…… 내가 그 사람을 직접 죽인 건 아니잖아요?”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좋아. 내 성격 어떤지 보여 줄게. 기다리라고…… 흐흐!

기분 나쁜 웃음을 터트리는 최진태였다. 전화가 끊겼고, 민혜주는 태연하게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띵똥! 띵똥!

이사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자신을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집주인? 아니면 건물관리인? 민혜주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출입구 인터폰 수화기를 들었다.

밖에 있는 사람은 한국인으로 보였다.

“……누구시죠?”

“며칠 전에 이사 오셨나 봐요? 한국분이시죠? 교민회에서 나왔슴다.”

“무슨 일이신데요?”

“교민 목록을 작성해 주셔야 함다.”

“아…… 그건 나중에 할게요. 지금은 그런 거 작성하고 싶지 않아서요.”

“……혹시 안에 누가 계십니까?”

“네?”

그제야 민혜주는 출입문 밖의 남자가 의심스러웠다. 그는 히죽거리는 표정으로 인터폰을 통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띠리릭!

민혜주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는데도 출입문이 알아서 열렸다. 카드키를 남자가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신발을 신고 들어온 남자는 인터폰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얼굴이 검고 어두웠다. 그는 최진태의 새로운 해결사가 된 금해성이었다.

“와, 집 좋다……!”

“당신 누구야……? 나 경찰에 신고할 거야!”

민혜주가 스마트폰의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금해성이 민혜주의 팔목을 확 낚아채며 꺾었다.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 마라! 내 경고하러 온 거다.”

“최진태 회장이 보낸 거예요?”

“그래, 그러니까 순순히 내 말을 따르라!”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이거 놔줘요.”

“욕실이 어디니?”

“욕실은 왜요?”

“묻는 말에만 답하라!”

“저기…… 저기 있어요.”

금해성은 욕실 쪽으로 우악스럽게 민혜주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욕실 안으로 민혜주를 던져 넣고는 태연하게 뒷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민혜주가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남자는 망설임 없이 총구를 당겼다.

푸슛! 푸슛!

두 발의 총성. 소음기에 가려진 낮은 총성.

두 발 모두 민혜주의 머리에 관통했고, 통제를 잃은 몸이 그대로 철퍼덕 바닥에 뒹굴었다.

금해성은 총을 다시 뒷주머니에 넣은 채, 일회용 라텍스장갑을 꼈다. 항상 그랬듯 바닥의 핏물을 닦고 남들의 눈에 안 띄게끔 시체를 수습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연남시 남일폐차장.

강준은 정체불명의 놈들에 의해 어두컴컴한 폐차장으로 옮겨졌다. 얼굴에는 포대가 씌워져 있어서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게 만들었지만, 강준은 본능적으로 그곳의 냄새를 기억했다.

그곳이 회귀 전 자신이 죽음을 맞이했던 폐차장이라는 걸. 젠장! 또 여긴가?

“저기! 잠깐만요. 지금 뭘 어쩌자는 겁니까?”

정체불명의 놈들은 질문에 대꾸하지 않고 랜턴 불빛을 강준의 얼굴 포대 위로 비췄다. 강한 불빛이 눈을 찔렀다.

“여기 폐차장 같은데……? 고종원 사장 얼굴 좀 봅시다!”

강준의 말에 움찔한 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고종원이었다. 더 이상 포대 따위로 시야를 가릴 이유는 없어졌다.

“벗겨.”

“네, 형님!”

낮고 음침한 목소리. 고종원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고철 뼈대만 남은 차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폐차장,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터.

강준이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참 쓸데없는 인간이야. 박강준 너 말이야…… 왜 그렇게 남의 일에 참견질이야. 그러니까 네가 결국 이렇게 된 거야.”

고종원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강준을 내려다봤다.

* * *

사실 강준이 여기까지 끌려오게 된 건 민혜주가 던진 미끼를 물었기 때문이었다. 민혜주에게 석연치 않다는 걸 확신하게 된 건 이유린의 보도 기사가 나간 다음부터였다.

본인에 관한 가십성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민혜주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최진태 회장에게 접근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강준이 그녀의 기억을 읽어 낸 건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의 기억 속에는 누가 이진석을 죽였는지에 대한 정황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그녀가 최진태 회장과 연락하며 공모해 왔다는 거였다.

그러던 와중에 민혜주가 강준에게 미끼를 던졌다.

[진석 씨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대요.]

[그게 누굽니까?]

[리안건설 하청업자요. 어떻게 하실래요? 만나 보실래요?]

[물론이죠.]

강준은 망설임 없이 그 미끼를 물었다. 그리고 수상한 낌새는 여지없었다. 하청업자가 강준을 나오라고 한 곳이 무척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연남시 외곽의 국도의 한 휴게소. 강준과 김준혁이 미리 가 본 그곳에는 CCTV가 없었고, 인근에는 물류센터들이 있어서 온갖 종류의 화물트럭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즉, 누군가가 강준을 납치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납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소장님, 저희 인력만 가지고는 힘들겠는데요? 경찰이라도 동원해야 할 거 같은데…….]

[여기 연남서의 경찰들이 우리말에 응해 주려고 할까? 그리고 이건 놈들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잖아.]

[그래도 너무 위험한데요?]

[그거나 줘 봐.]

김준혁은 미리 준비한 뿔테안경을 강준에게 건넸다. 그 뿔테안경은 영상을 녹화할 수 있는 장비였다.

* * *

“이진석 부원장도 이렇게 죽인 겁니까?”

“왜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이왕 이렇게 된 거, 말 짧게 할게. 너 최진태 회장에 대해서 잘 모르나 본데…… 이렇게 뒤처리만 하면서 네 손만 더럽혀지면 나중에는 어떻게 될 거 같냐?”

강준은 고종원 사장이 내심 찜찜하게 생각하던 바를 찌른 거였다. 고종원 사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실 강준을 처리하는 폐차장에는 고종원의 부하들만 와 있는 게 아니었다. 고종원도 알지 못하는 금해성의 사람들이 와 있었다. 그는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었지만, 일단 강준을 먼저 처리하기로 한 거였다.

“나도 알아. 이 새끼들이 전부 내 편이 아니라는 거.”

고종원은 그 상황이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회를 봐서 금해성의 부하들을 다 묻어버리고 최진태 회장의 목줄을 쥘 생각이었다.

“이진석 부원장도 여기서 죽였냐?”

“어, 저기 보이는 고철 더미 안에 찌그러져서 시체도 못 찾았을 거다. 혹시…… 시체 찾겠다는 미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못 찾을 것도 없지.”

“에이, 그 고철 더미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 벌써 중앙아시아 어디로 나갔어! 수출됐다고. 우리나라가 수출 강국 아니야! 수출 강국! 크흐흐!”

“고종원 당신…… 최진태가 왜 이진석을 죽이라고 한 건지는 알아?”

사실 고종원도 왜 이진석을 납치해 죽이라는 건지는 알지 못했다. 솔직히 그가 금감원 부원장이었다는 사실도 죽이고 나서 안 거였다.

“나야 상관없지…… 내가 할 일만 끝내면 되는 거니까. 안 그러냐?”

“네, 형님!”

“아니, 궁금해 해야 할걸. 저기 저 사람들…… 한국 사람들 아니지?”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딱 보니 밍싱그룹 사람들인 거 같은데?”

“……밍싱그룹?”

그러고 보니 고종원도 금해성이 데려온 사람들이 밍싱그룹에서 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금감원 부원장을 죽인 게 지금 언론에서 난리잖아? 언제까지 숨기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야. 근데 내가 알기론 최진태가 그렇게 책임감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 게다가 이제는 밍싱그룹에서 당신 역할 대신해 줄 수도 있을 거고 말이야?”

“시발…… 좆같네 진짜! 야 이 새끼 얼른 차에 태워!”

“네, 알겠습니다!”

고종원의 부하들은 강준의 양팔을 붙잡고는 크레인에 매달린 차에 태웠다. 강준의 뿔테안경에서는 그 장면이 고스란히 담아지고 있었다.

“어이, 보험조사관 양반! 나 원망하지 말고, 당신이 그렇게 미워하는 최진태 회장이나 실컷 원망해! 당신 죽이라고 한 게 바로 최진태 그 인간이거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고종원은 크레인을 끌어 올리라는 손짓을 했다. 크레인은 강준이 탄 차체를 공중으로 들어 올렸고, 동시에 다른 폐차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몰려나왔다.

그들은 번암주류의 장재식과 그 직원들이었다. 그중에는 민혜주의 경호를 맡았던 두 남자도 있었다.

순식간에 폐차장은 난장판이 됐고, 수적으로 우세한 장재식 일당이 기세를 잡아갔다.

“시발, 다들 담가 버려!”

고종원이 앞에서 지시하자 부하들이 칼을 빼 들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사상자가 생길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때, 폐차장 담벼락 위로 이삿짐용 사다리가 올라왔다. 그 사다리 짐칸에는 방송용 카메라가 켜져 있었다. 확성기를 한 손에 든 짐칸의 기자는 이유린이었다.

“다들 칼 버려요! 우리는 대한뉴스 기자입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촬영하는 영상들은 경찰에 제공될 거고요! 칼로 상대를 위협하는 행위는 살인미수로 처벌될 수 있어요!”

강준은 민혜주의 미끼를 물고는 역으로 함정을 팠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고종원이 순순히 잡혀 온 강준을 의심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강준은 이유린을 확인하고서야 쓰고 있던 뿔테안경을 벗었다. 뿔테안경에는 고종원이 직접 본인 입으로 했던 얘기와 납치의 모든 정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제야, 최진태 회장을 확실히 잡을 수 있겠네! 벌써 궁금하네…… 이번에는 뭐라고 변명할지.”

꼬리를 끊어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대한뉴스의 보도가 나가게 되면 그 파장은 단순 살인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국내 재벌이 금감원 부원장을 살해했다는 건 국가 시스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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