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9. 폐차장 살인사건 (4) (169/250)


169. 폐차장 살인사건 (4)
2022.05.18.


연남법원 뒤편

제일 인력소개소.

오피스텔에 머무는 민혜주를 관리하는 건 송지희의 몫이었다. 덕분에 김준혁이 강준을 지원하러 연남시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 와중에 김준혁은 실종된 이진석 부원장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가져왔다.

“김 실장, 난 이진석 부원장한테 진짜로 생명보험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러니까요…… 보험금 지급자가 민혜주로 돼 있는 게 더 놀랍지 않나요?”

“누군가에게는 진짜 사랑이었던 건지도 모르지.”

“소장님은 최은정 이사님과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겁니까?”

“우호적인 관계라고나 할까…… 솔직히 서로 바빠서 통화 안 한 지도 2주다! 2주!”

“와, 정말 프리하네요. 프리! 부럽습니다!”

김준혁이 넉살을 떨 때쯤 인력사무소에 불이 켜졌다. 새벽 시각, 인력사무소의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강준도 김준혁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가자!”

“진짜 오늘 노가다하는 겁니까?”

“모르겠다. 일단 가 보자고.”

새벽의 인력시장은 치열했다.

“서신동 현장 10명!”

“여깁니다! 여기요!”

“번암동 현장 15명!”

“거기 오늘 가면 진짜 빡셀 겨!”

“다른 데는 뭐 안 힘든대요? 제가 가겠습니다!”

현장 반장들이 필요한 인원을 말하면 인력사무소 직원이 눈도장을 많이 찍은 사람을 뽑는 시스템이었다.

“거기 김 씨, 지난번처럼 농땡이 부리다가는 알지?”

“에이, 다시는 안 그런다니까…… 그래도 나 일 잘하는 거 소장님들이 다 알아!”

“알겠어. 근데…… 이 두 사람은 처음 오셨어?”

직원이 강준의 행색을 아래위로 훑고는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여기 사장님을 좀 만나러 왔는데요?”

“어? 사장님? 위로 올라가 보쇼.”

일이 바쁜 건지 직원은 강준에게 말없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얼른 현장에 인력을 배분해야 하는 그로서는 강준이 왜 사장을 만나려 하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분주한 1층과 달리 2층 사무실은 조용했다.

“뭡니까?”

“여기 사장님 되십니까?”

“네, 그런대요?”

“혹시 얼마 전에 여기서 민혜주 씨를 보호하는 인력을 내보낸 적 있죠? 두 명을 내보내셨던데?”

강준의 말에 뒤로 누워 손톱을 깎던 사장이 스프링처럼 벌떡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어디서 나오신 건지?”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보험…… 뭐…… 뭐요?”

“보험조사사무실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경찰이 아니네?”

갑자기 말이 짧아지며 안도하는 표정으로 변하는 사장이었다.

“한 가지 묻죠. 민혜주 씨 보호하는 일…… 리안건설에서 의뢰한 겁니까?”

사실 생각해 보면 이진석 부원장의 일은 한국보험 쪽의 일이었다. 강준은 민혜주가 왜 굳이 리안건설을 주목했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아…… 그거야 리안건설한테 직접 물어보면 될 거 아니야? 왜 여기 와서 그러는데……!”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준에게로 다가왔다.

“비켜요! 바쁘니까!”

강준은 자신을 지나쳐가려는 사장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그리고 곧장 사장의 기억을 훑었다.

[그냥 그 여자 주변에 따라다니기만 하면 돼.]

[고 사장님…… 이거 별문제 없는 거죠? 괜히 또 엄한 짓거리했다가 나중에 뒤탈 생길까 봐서요…….]

인력소개소 사장의 기억 속에 등장한 이는 고물상 보험사기로 체포됐었던 고종원이었다.

[이 새끼가 그냥 입 닥치고 하면 될 것이지 뭘 궁금해하고 지랄이야……! 넌 참 궁금한 게 많아. 그러니까 네가 여기서 계속 이따위로 사는 거야.]

[아니…… 뭐 서로 확실히 하고 가자…… 이런 얘기죠…….]

머뭇거리는 인력소개소 사장에게 고종원은 혀를 끌끌 차면서 답했다.

[이거 최진태 회장 일이라는 것만 알아둬.]

[네? 그게 진짜예요?]

[그래 이 자식아, 하여간 너 이번 건은 입 함부로 놀렸다간 여기 인력소개소도 날아간다. 솔직히 리안건설 없으면 너 먹고살기 힘들잖아?]

[그야 그렇죠…….]

고종원이 대놓고 자신을 무시해도 별달리 반박하지 못하는 인력소개소 사장이었다.

강준이 눈을 뜨자 짜증이 가득한 사장의 얼굴이 보였다. 얼른 비키라는 표정이었다.

“고종원 사장이 여기 근처에서 폐차장 하죠?”

“……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는 자리를 피하려 했다.

“고종원 사장이 사람을 죽였을 겁니다!”

강준의 말에 인력소개소 사장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자신이 우려했던 께름칙한 것들을 현실이 됐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역시 고종원 사장과는 어울리는 게 아니었다.

* * *

이유린 기자는 어제부터 다 써놓은 기사를 업로드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몇 시간째 고민 중이었다.

‘민혜주를 믿어야 할까…… 이진석 부원장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거라면 그 여자 말대로 이미 죽었을 확률이 큰데…….’

이유린 기자는 강준이 연남시에 내려가 조사를 하는 동안 한국보험 매각이 박상도 의원의 정치자금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박상도 의원실에서 일하던 전직 비서관으로부터 입수한 정보였다.

그리고 그 정보에 따르면 적자 상태인 한국보험을 인수하는 밍싱그룹의 진짜 목적은 박상도에게 흘러갈 정치자금을 통해 그를 자신들의 편으로 묶어두는 거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차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거였다.

그런 정황을 박상도 의원의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대한뉴스의 경영진도 알고 있었지만, 정치자금이 어디서 들어오건 윗선에서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이유린은 어디까지 기사로 오픈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사실관계에 대한 걸 밝히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결했다. 그게 기자의 책무니까.

‘에라…… 모르겠다!’

이유린은 고심 끝에 업로드 버튼을 눌러 버렸다. 그리고는 포털에 기사가 올라간 걸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대한뉴스 사옥을 나가는 이유린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보도국장의 전화였다. 지금 받으면 호통을 당할 게 뻔했다. 퇴사까지 각오하고 쓴 기사였다.

이미 이진석 부원장 실종에 관해서는 손을 떼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이유린은 그런 윗선의 지시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기사를 내보낸 거였다.

‘자기네들이 별수 있겠어? 이미 나가 버린 기사인데!’

―금융감독원 부원장의 실종사건, 한국보험의 리안그룹과 관련 있나?

보도 기사는 민혜주의 증언을 담아내며 이진석의 실종이 최진태 회장과 연관됐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게 골자였다.

민혜주가 본인이 내연녀라는 불리한 입장이 드러나는 걸 감수하고 증언한 것이기에 이유린은 한번 믿어 볼 만하다고 판단한 거였다.

우우우웅!

문자가 도착했다. 예상대로 보도국장의 문자였다.

―너 당장 들어와! 이렇게 대형 폭탄을 떨어뜨리고 가면 나보고 어떻게 수습하라는 거야!

이유린은 사무실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폭탄 같은 기사를 쓰지도 않았을 거였다.

사건의 파급은 컸다. 이유린이 며칠 동안 회사에 휴가를 쓴 기간 동안 여러 억측과 반발 기사가 포털을 뒤덮었다.

그중에 가장 큰 흑색선전은 내연녀 민혜주에 대한 폭로성 공격이었다. 제보자는 민혜주와 함께 시청에서 일했었던 공무원이었다. 그는 민혜주가 한승일의 비서로 일하던 시절부터 소문이 안 좋았고, 여러 풍문을 일으키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 폭로가 있은 지 바로 다음 날, 리안그룹에서는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했다.

―민혜주가 주장하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이며, 본 그룹은 금감원 이진석 부원장의 실종과도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그거 알아? 민혜주가 한때 최진태 회장에게 접근했었대, 그래서 한몫 챙기려고 했었다는데?”

“진짜? 그럼 이진석 부원장인가 하는 사람은 뭐야?”

“그 사람은 집에서 민혜주랑 불륜한 걸 걸린 모양이야. 집에서 난리가 나지 않았겠어? 자기가 그동안 쌓은 사회적 지위도 있는데……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겠지.”

“혹시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 아니야?”

“모르지…… 남녀 간의 일인데…… 하여간 그 집 부인만 불쌍하지 뭐.”

이진석 부원장 실종에 관한 관심이 모조리 민혜주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녀가 폭로했던 최진태 회장과의 연루설은 오히려 그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될수록 힘을 잃었다.

결국 이유린은 휴가 기간이 끝나고 보도국장과 맞닥뜨려야 했다.

와장창!

장선우 보도국장은 회의실 책상에 있는 유리컵과 종이 자료들을 바닥으로 쏟아 버렸다.

“너 나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 야! 이유린, 나 집에 애가 둘이야. 한 놈은 아직 초등학생이고, 또 한 놈은 고3이라고. 내년에 대학가야 해. 근데 아빠가 실업자면 어떻게 되겠어? 넌 지금 한 가정을 파괴하고 있는 거야!”

자신을 가정파괴범 취급하는 보도국장 앞에서 이유린은 입을 꾹 다물었다. 너무 일찍 최진태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린 게 무척 뼈아팠다. 자신의 눈앞에서 난리를 치는 보도국장의 말마따나 너무 성급했던 건지도 몰랐다.

“국장님, 국장님 애들이야 리안그룹에서 장학금 받고 다닐 텐데 앞으로 탄탄대로 아니에요?”

“뭐 인마! 그걸 말이라고 해?”

“맞잖아요? 괜히 우는 척하지 마시고…… 이왕 이렇게 됐으니 후속보도나 준비해 보는 게 어때요?”

“이런 또라이가……!”

장선우 보도국장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장이라도 이유린의 뒤통수를 한 대 칠 기세였지만,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긴 어떻게든 수습은 해야지. 말해 봐! 어떻게 수습할지.”

현실 앞에 냉정한 보도국장이었다. 리안그룹으로서도 정정 기사까지 내보낸 마당에 자기 탓만 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리고 해고는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일단은 이유린에게 본인이 싸질러 놓은 똥을 직접 치우게 할 생각이었다.

“경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이진석 부원장의 행방에 대해 찾는다고 발표한 거 들으셨죠?”

“그래서 경찰 수사 결과로 이목을 끌어 보시겠다?”

“만약 이진석 부원장의 행방을 저희가 찾는다면요?”

“죽었을 확률이 높지 않아?”

보도국장은 팔짱을 낀 채 서서 이유린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뭐야? 안 죽었어?”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지금 보도국장인 나한테도 말을 안 하겠다는 거야? 이거 진짜 또라이 맞네!”

“좌우간 후속취재 해요? 아님 말아요?”

헛기침을 한번 한 보도국장은 조건을 달았다.

“해! 하는데 이번에는 최진태 회장 쪽은 건드리지 마라. 이번에도 봐봐 괜히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망신이라는 망신은 다 당했잖냐…… 그리고 정작 저쪽에는 기스 하나 안 났어!”

“이번에는 그럼 제가 확실히 기스 나게 해드리죠!”

“인마! 너 회사 진짜 그만 다니고 싶냐? 대한뉴스가 지금 어떤 라인 탔는지 너도 잘 알잖아.”

“박상도 의원 쪽 라인 탔죠. 우리 대한뉴스 오너 조 대표님은 본인이 킹메이커라도 된 줄 알고 있고요.”

보도국장의 얼굴에는 좀 전의 호통 치던 모습과는 달리 오히려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너 진짜 이 바닥에서 사라지고 싶냐?”

“네, 사라지고 싶습니다! 아주 진력이 납니다. 진력이요!”

이유린은 강준에게서 폐차장 주인 고종원이 사건주동자라는 정보를 받은 상태였다. 그리고 강준은 그 폐차장을 조사해 보면 이진석 부원장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었다.

‘박강준 소장은 한 번 믿어봐야겠지…!’

이유린은 자신의 기자 인생 마지막을 강준에게 걸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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