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 폐차장 살인사건 (3) (168/250)


168. 폐차장 살인사건 (3)
2022.05.17.


민혜주의 아파트.

“뭐예요? 지금 거짓말을 했다는 거예요?”

“함께 계셨던 분들을 따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점 죄송합니다.”

강준은 민혜주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그녀는 명함에 보험조사라는 문구가 적힌 걸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마치 자신에게 들러붙은 성가신 파리 떼를 보는 것처럼 말이었다.

“이진석 부원장님과 마지막으로 통화를 하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경찰에 다 진술했는데요?”

“실종된 지 2주가 다 되어갑니다. 아직 살아 계신지 아니면 사망하셨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죠. 근데 아까 제가 사망보험금을 얘기했을 때…… 마치 부원장님의 사망을 확신하시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제가요?”

“네, 민혜주 씨의 표정이 딱 그랬습니다. 어차피 죽었으니까 그 사망보험금은 내 거다. 딱 이런 표정이요.”

어차피 민혜주의 적의를 누그러뜨릴 방법은 없어 보였다. 차라리 이럴 때는 상대를 자극해 보는 것도 방법이었다. 더군다나 신체접촉을 통해 상대의 기억을 읽을 틈조차 없다면 말이었다.

“무슨 얘기가 듣고 싶은 거예요?”

“이진석 부원장님에 대한 모든 얘기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두 분이 내연관계라고 들었습니다.”

당장 나가라는 호통이 들릴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강준은 차라리 그렇게 되면 밀쳐내는 민혜주의 손길을 통해 그녀의 기억을 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중요한 얘기를 하던 순간에 민혜주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가 사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강준은 그사이 거실을 둘러봤다. 널찍한 가죽 소파에 고급 가전제품들, 해외여행 중 찍은 사진. 경제적 씀씀이가 남들보다 절대 뒤처지지 않는 그녀였다.

안방에서 나온 민혜주는 먼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자신에게는 이제 더 잃을 것도 없다는 듯이. 그리고 좀 전의 차갑게 끊어 내던 말투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저 진석 씨랑 내연관계였어요. 몇 년 전부터요.”

“따님도 그럼……?”

“에이, 그건 아니고요.”

민혜주는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듣고 왔냐는 듯 피식 웃었다. 그녀의 태도는 확실히 좀 전과는 다르게 누그러져 있었다.

“근데 그 사람 정말 절 사랑했어요. 바보 같은 사람이었죠. 자기 자식도 아닌데…… 우리 서연이를 그렇게 좋아해 줬으니까요.”

“언제부터였나요? 혹시 한승일 시장의 비서를 그만두시고서부터였나요?”

“아까 사망보험금을 내가 눈독 들였다고 했죠?”

민혜주는 강준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했다.

“그랬었죠…….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

“실례 맞아요.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판단하세요? 얼굴만 보고?”

“직업이 보험사기를 잡으러 다니는 거라 쉽게 의심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강준은 누그러든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뭐, 직업이 그러시다니 이해해드리죠. 그 사람…… 아마 지금 죽었을 거예요.”

“네? 사망하셨다고요?”

“이미 다 알고 오신 거 아니에요? 노리는 사람이 많았잖아요.”

“다른 분들이 많이 찾아왔었나요?”

“이유린 기자요. 그 기자분이 다 알고 있던데요?”

여기까지 듣자 강준은 혼란스러웠다. 민혜주가 누구의 편인지 헷갈렸다.

“바깥의 사람들은 누군가요?”

“최진태 회장이 보낸 사람들이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리안건설의 사람들이고요.”

“최 회장이 왜 민혜주 씨를……?”

“최진태 회장이 이진석 부원장의 실종과 관련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 입막음을 하려는 거고요.”

“그럼 지금 저 사람들의 감시를 받고 계신 겁니까?”

“네, 맞아요.”

민혜주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답했다.

“이진석 부원장은 어떻게 된 겁니까?”

“최진태 회장이 저를 이진석 부원장에게 붙여 줬죠. 한국보험 백상현 대표를 통해서요.”

어쩌면 일이 쉽게 전개되는 건지도 몰랐다. 최진태 회장 측의 내부자가 돌아섰으니…….

“아까 그럼 제 얘기가 맞은 거네요. 한승일 시장의 비서를 그만두고부터…….”

“아뇨, 그 이전부터였어요. 제가 어떻게 금감원 부원장에게 접근할 수 있었겠어요? 공식적인 직함이 있으니 가능했던 거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한국보험에서 포럼을 연 적이 있었어요. 국내 보험사의 해외 진출, 뭐 그런 포럼이었는데 그때 부원장님이 오셨었죠. 전 한승일 시장의 대리인 자격으로 참가했었고요.”

“한승일 시장은 최진태 회장의 장인이고요. 한통속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그러니까 제가 허튼수작을 부릴까 봐 저러는 거고요.”

강준이 민혜주로부터 알아내야 하는 건 이진석 부원장이 어떻게 실종됐는지였다. 강준이 찻잔에 손을 뻗는 민혜주의 손을 슬쩍 잡으려 했지만, 민혜주는 반사적으로 그 손을 피했다.

“분명히 저 사람들이 어디 공사 현장에 묻든지 했을 거예요. 자기들 소행이라는 게 밝혀지면 세상이 들썩일 테니까요…….”

“그렇게 이진석 부원장이 최진태 회장 쪽에 방해가 됐습니까?”

“한국보험의 해외매각에 반대했으니까요…… 근데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솔직히 관심도 없고요.”

우선 해야 할 일은 민혜주를 감시의 망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거였다.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는 게 어떻습니까?”

“경찰요? 여기 연남경찰서가 누구 편이겠어요? 한승일 시장의 편이겠죠?”

“그럼 혹시 다른 곳에 피해 계실 데라도 있으신가요? 다른 친척분이라든가…….”

“그러지 말고 서울에 거처를 마련해 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알기론 박강준 소장님이 그 정도는 해 주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저에 대해서 알고 계셨습니까?”

처음 민혜주가 강준을 대했던 거와는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기억이 났어요. 부원장님도 보험 쪽 담당이었잖아요. 그래서 소장님이 여러 사건을 해결한 걸 칭찬하셨죠.”

“아…… 그랬군요.”

뭐라 반박할 수 없는 강준이었다.

“거처는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럼 서울로는 언제 올라가실 겁니까?”

“조금 기다려 주시면 짐을 챙겨 볼게요.”

바로 움직이려는 민혜주였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강준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송 실장에게 급하게 머물 수 있는 오피스텔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유린 기자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만나 보셨어요?

“민혜주 씨가 많은 걸 알고 있던데요. 잘하면 실종된 부원장의 주변에 대해서도 증언해 줄 수 있을 거 같고요.”

―정말요? 저한테는 무척 적대적이던데…… 어쨌든 수고 많으셨어요. 저도 저희 윗선이 박상도 의원과 어떻게 움직이는지 계속 지켜보고 있을게요.

“네, 그럼 서울에 다시 올라가서 연락드리죠.”

전화를 끊은 강준은 안방에서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끌고 나오는 민혜주를 발견했다.

“좀 도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짐을 넘겨받는 순간에도 그녀는 강준의 손길을 피했다. 마치 의도적인 것처럼 말이었다.

문 바깥에는 여전히 남자들이 민혜주의 집을 지키고 있었다. 강준이 들어가는 걸 봤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지금 남의 집 앞에서 뭐 하는 겁니까?”

“저희는 그냥 여기 있는 것뿐입니다. 특정인을 감시하거나 그런 목적이 아니라요.”

법적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얘기였다.

“그럼 비키시죠!”

강준이 그렇게 말하고 캐리어 가방을 끌어 나가자 큰 키의 남자가 막아섰다.

“비키라고!”

강준은 그의 가슴팍을 밀치며 남자의 기억을 읽었다. 예상대로라면 그들이 이진석 부원장의 실종과 관련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 읽은 건 인력업체로부터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것뿐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2교대로 움직이고, 일할 때는 정장 입고 알겠죠?]

[저는 정장이 없는데요……?]

[그건 알아서 해야죠. 그런 것까지 우리가 챙겨 줘야 하나요? 어쨌든 일 잘하시면 계속 우리 쪽과 일하실 수도 있는 거니까 잘하시리라 믿어요.]

강준은 그 기억 속에서 인력업체의 이름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평범한 인력사무소라는 걸 확인했을 뿐이었다.

“어! 이러시면 이거 폭력입니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강준의 손길을 뿌리치며 우격다짐을 하기 직전이었다. 강준은 남자에게 맞서기보다는 그들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연락 한번 주시죠. 제가 지금 하시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을 소개해 드릴 수 있거든요.”

“……네……?”

남자는 물러서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온 남자와 눈빛을 교환하며 눈치를 봤다. 그리고 강준은 억지로 그들 사이의 틈을 가르며 빠져나갔다.

* * *

연남시 외곽 번암주류.

민혜주는 강준이 마련한 오피스텔에 며칠째 머무르고 있었다. 대한뉴스 이유린이 회사 몰래 그녀와 계속 접촉하며 이진석 부원장의 실종 기사를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강준은 다시 연남시로 내려왔다. 알바생이었던 남자 둘이 강준에게 며칠 뒤 연락을 해 온 거였다. 그들로서는 민혜주가 없어진 마당에 인력사무소로부터 더 이상 일거리를 받지 못했던 거였다.

강준은 그들에게 했던 약속대로 일자리를 소개해 줬다. 바로 주류도매상을 운영하는 장재식 사장에게 말이었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그들에게 일자리를 얻은 인력사무소에 대해서도 물었다.

“거기, 법원 뒤에 있는 곳인데 아파트 건설 현장 쪽으로 많이 보냈었거든요. 근데 이제는 뭐 점점 일거리가 줄어들죠.”

“그건 왜죠?”

“아파트 단지들이 거의 다 들어섰잖아요? 이제 남은 곳은 작은 단지들밖에 없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조선족 현장 반장들이 자기네 아는 사람들만 뽑아 가더라고요…….”

“민혜주를 감시하는 일은 언제부터 한 건데요?”

“그게 한 열흘 됐죠? 기자가 달라붙었다면서 그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남자들이 말하는 기자는 이유린 기자였을 터였다. 그렇다면 민혜주가 뭔가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런 민혜주에 대해 의구심이 생긴 건 번암주류에서 박영미를 만나고부터였다. 그녀는 태백에서 다시 연남으로 돌아와 장재식과 실질적인 동거 관계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민혜주 딸이 우리 동현이랑 같은 학교에 다니거든요. 그래서 몇 번 봤었죠.”

“학년이 틀리지 않아요?”

강준은 몇 년 전 10살이었던 동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민혜주 딸은 저학년일 거예요. 근데 학부형 대표 모임에 나왔더라고요. 근데 학부형 사이에서도 소문이 빠르잖아요. 민혜주 아빠가 무슨 고위 공무원이라는 얘기가 파다했어요. 어떤 사람은 한승일 시장이라는 얘기까지 있었으니까…….”

“그럼 민혜주가 그런 시선 때문에 꽤 불편했을 텐데 왜 학부형 모임에까지 나왔을까요?”

“그러게요. 그것까지 생각해 보진 않았었는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민혜주가 그런 자기 얘기를 남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말하고 다녔다는 거예요.”

“소문이 나도 상관없다는 거였네요.”

“맞아요. 민혜주가 이진석 부원장과 정말 그런 관계였다면…… 자신과의 관계를 주장하려고 일부러 그런 걸 수도 있겠네요.”

남녀 간의 일은 모르는 거였다. 아무리 최진태 회장이 일부러 그녀를 이진석 부원장에게 붙인 거라고 할지라도 그 이후에 둘 간에 진짜 정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진석 부원장의 실종은 정말 치정과 연관된 건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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