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폐차장 살인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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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폐차장 살인사건 (2)
2022.05.16.
대한뉴스 광화문 본사.
강준을 박동식 금감원 수석에게 소개한 건 대한뉴스 소속의 이유린 기자였다. 그녀는 몇 개월 전부터 한국보험 매각에 대한 이슈를 취재하던 중에 얼마 전 금감원 부원장이 실종됐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이상한 건 아무도 그 실종 사건에 주목하고 있지 않다는 거였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 그곳의 2인자가 사라졌다?
이유린 기자가 보기에는 대형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걸 막고 있는 세력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자신이 몸담은 대한뉴스의 윗선이었다.
“알아보니까 경찰에서도 제대로 수사를 안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계속 닦달하니 못 이겨서 통화기록을 확보한 게 다였고요.”
“통화기록은 어땠습니까?”
“마지막으로 이진석 부원장의 통화기록이 연남시 시내의 기지국으로 나와 있었어요.”
“하아…… 연남시라…….”
강준은 누군가 자신을 계속 연남시로 잡아당기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최진태의 장인인 한승일의 지역구가 연남시였다.
그곳에서 특혜를 받아 신도시 건설을 명목으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리안그룹이었다. 어쩌면 최진태와의 악연으로 죽음에 이르렀던 강준이 연남시에서 일어나는 일과 계속 얽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박 소장님 고향 아닌가요?”
“그렇죠. 최진태 회장이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이진석 부원장의 마지막 통화 상대는요?”
“민혜주라는 여자예요.”
강준으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이유린은 팔짱을 끼고는 보충 설명을 이어갔다.
“민혜주는 한승일 시장의 전 비서였어요. 처음 연남시에 내려와서 시장 선거본부를 차렸을 때부터 있었던 인물이고요.”
“역시 한승일 쪽에서 뭔가 일을 벌인 거군요.”
“의심은 가지만 그렇다고 직접 연관 짓기에도 애매해요. 이미 한승일 시장을 떠난 지 2년도 넘었으니까요. 경찰에서는 오히려 그런 점을 이용해서 개인 간의 치정 사건으로 치부하려는 거고요.”
강준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이유린은 그간 이진석 부원장의 실종 사건에 대해 꽤 많은 걸 취재했다.
‘근데 왜 이 시점에서 나를 끌어들인 거지?’
강준의 눈빛을 눈치챘는지 이유린이 자신의 처지를 해명했다.
“전…… 더 이상 이 사건을 취재할 수 없어요.”
“왜죠?”
“위에서 손 떼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민혜주를 발견한 직후였죠.”
“민혜주라는 여자의 뒤에 확실히 뭔가 있다는 거네요.”
“미혼모였어요. 딸 하나를 혼자 키우고 있는데 그 딸의 친부가 이진석 부원장이라는 소문도 있고요.”
강준의 머릿속에 혼란스러워졌다.
“민혜주와 이진석 부원장…… 분명히 둘 간의 뭔가가 있는 거였군요. 근데 이진석이 사망하고서 누군가 그 사건을 덮으려 한다…… 민혜주를 보호하려는 걸까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민혜주가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죠.”
강준은 접대용으로 내놓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실종된 이진석 원장과 민혜주의 부적절한 관계. 정말 표면 그래도 단순한 치정 문제일지도 몰랐다.
“만약에 제가 이 사건을 좀 더 들춰내면 기자님께서는…… 기사를 쓰실 겁니까?”
“윗선에서 중단시킨 거니 대한뉴스 쪽에서 기사화하긴 힘들 거예요. 하지만 소장님께서는 비교적 자유로우시잖아요?”
“그럼 제가 이 사건 보도를 다른 언론사에 줘도 되는 겁니까? 이런 큰 사건은…… 언론의 힘도 같이 이용해야 하니까요.”
“시사뉴스닷컴의 함 기자에게 주시려고요?”
서로가 예상하는 인물이었다.
“제가 아는 기자분이 함 기자님과 이 기자님밖에는 더 없지 않습니까?”
“잘 알죠. 그래서 저도 박강준 소장님께 말씀드린 거고요.”
이유린 기자는 대한뉴스에서 다루기 부담스러운 이슈를 강준과 함 기자에게 넘겨주려는 의도였다.
“박상도 의원이 대한뉴스의 윗선과 연결되어 있나 보군요.”
“언론 없이 대권에 도전할 수 있겠어요?”
“그럼 이 사건은 박 의원의 대권 가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네, 사안이 중대해요.”
이유린은 투명한 벽 너머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자님은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박상도 의원과의 연결고리를 밝혀내길 원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실종된 이진석 부원장의 행방을 밝혀내길 원하는 겁니까?”
“둘 다요. 전 이쪽도 저쪽도 아니지만…… 박상도 같은 인물이 대권을 잡는 건 별로거든요.”
“왜요? 부패한 정치인이라서요?”
“아뇨. 꼭 부패 때문만은 아니에요. 박상도는 빚진 게 너무 많아요. 그걸 갚으려면 권력을 잡은 후에 어떻게 하겠어요? 결과는 뻔하죠.”
강준은 회귀 전 이유린과 인터뷰한 직후에 폐차장으로 납치됐었다는 걸 떠올렸다. 어쩌면 그 인터뷰 때문에 자신이 살해당한 거였다.
“기자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사안이 중대하다면 저 혼자 싸우는 건 힘들 거 같네요.”
“……왜요? 부담스러우세요?”
“네, 솔직히 말해서 부담스럽습니다. 아시다시피 대권주자가 배후인데 괜히 설치다가 피 볼 수도 있는 거 아닙니다. 게다가 제 직원들은요? 한참 젊은 친구들입니다. 그 친구들 앞날을 제가 막고 싶지는 않거든요.”
“소장님 변하셨네요…… 예전에는 이런 새가슴은 아니셨잖아요?”
은근히 강준의 자존심을 긁는 이유린이었다. 하지만 그런 수에 넘어갈 강준이 아니었다.
“따뜻한 대기업 안에서 일하다가 밖에 나가서 찬바람을 쐬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기자님 근데 말입니다…… 만약 기자님이 같이 싸워 주신다면 저도 한번 달려들어 보죠.”
“어차피 소장님은 박동식 수석님께 사건의뢰를 수락한 게 아니었나요?”
“그야 번복하면 그만이죠. 저 말고 기자님은 다른 대안이 있으신가요?”
이유린 기자가 펜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며 강준을 빤히 바라봤다.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강준은 회귀 전 자신이 했던 인터뷰가 어떻게 됐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죽음으로써 그냥 묻혀 버린 걸까? 아니면 최진태 회장의 검은 커넥션을 이유린이 세상에 공개했을까?’
“무슨 꿍꿍이예요?”
“대한뉴스의 윗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박상도 의원과 어떤 결탁이 있는지! 이유린 기자가 직접 파헤쳐 주시죠?”
“와! 지금 나보고 회사 그만두고 백수가 되란 건가요?”
“그 정도 각오는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전 목숨 내놓고 하는 건데……?”
강준의 말에 이유린 기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긴 그러네요. 박 소장님께만 독박을 씌울 순 없죠. 알겠어요. 우리 회사 윗선이 박상도 의원이랑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제가 책임지고 알아내죠.”
“그럼 우리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겁니다.”
강준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유린이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이번에는 이유린의 기억이 읽히지 않았다.
“소장님, 제가 방금 무슨 생각 했는지 아세요?”
“무슨 생각을 하셨는데요?”
“기자 신입 시절이요. 그때 같이 입사한 동기 중에 저만 유일하게 남았죠. 왜 그랬는지 아세요?”
“아뇨. 왜 그랬는데요?”
“남들과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 악물고 동기들과 경쟁했죠. 그래서 정식으로 발령받았을 때, 정치부로 갈 수 있었던 거예요. 근데 지금 소장님과 이렇게 마주 앉아 있으니 그때 생각이 떠오르네요.”
강준이 이유린의 기억을 읽어 낼 수 없었던 건 어쩌면 상대가 강준을 의식해서인지도 몰랐다. 그런 의식이 일종의 방어막이 되어 강준이 기억을 읽는 걸 막아 낸 거였다.
“정치부에 계셔서…… 박상도 의원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셨던 거군요?”
“네, 맞아요. 그때만 해도 박 의원이 막 여의도에 입성했을 때였죠. 저랑 같은 신입 처지였는데…… 이제는 거물이 돼서 감히 대권에 도전하려고 하네요.”
이유린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오후에 곧바로 연남시로 내려가 봐야 하거든요.”
“이건 민혜주에 대한 정보예요. 가면서 읽어 보세요.”
대한뉴스 사옥은 광화문 한복판에 있었다. 마치 대한민국 심장부를 쥐고 흔든다는 언론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듯이 말이었다.
* * *
연남시청 인근
신축 아파트 단지.
강준은 민혜주의 딸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그녀가 거주하는 아파트 입구에서 잠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유린의 정보가 틀린 걸까? 강준은 민혜주가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인근 초등학교에서 민혜주의 딸이 재학 중이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아이를 혼자 두고 어딜 가지는 않았겠지…….’
뚜르르르! 뚜르르르!
강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네, 박강준입니다.”
―아이쿠! 오랜만이네. 나 최진태야. 최진태!
민혜주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와중에 걸려온 전화가 리안그룹 최진태 회장이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네, 오랜만입니다…….”
―아까 우리 직원이 박강준 네가 연남시를 또 휘젓고 다닌다고 해서 말이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나 궁금해서 말이야…….
“제가 하는 일에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이 많으셨나요? 그리고 저한테 감시를 붙이신 겁니까? 어떻게 제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신 거죠?”
―에이…… 여기 연남시가 내 나와바리거든! 그리고 그 정도 정보력은 있어야 사업을 할 수 있지. 흐흐!
“용건이 뭡니까?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죠.”
―한번 보자고. 왜? 우리가 굳이 못 볼 것도 없지 않아?
강준은 차 문을 열고 나와 주변을 살폈다. 자신을 감시하는 눈이 어디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곳에서 그런 감시의 눈길을 찾긴 불가능이었다.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근데 저도 대충 내용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 친분이나 쌓자는 거지! 과거에 좀 껄끄러운 일이 있었다고 지금도 똑같으리라는 법이 있어?
“친분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거 같으시니, 만나드리죠. 어디로 갈까요?”
―연남시 신시가지에 보면 리안호텔이 있어. 길 가는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 없을 테니까…… 찾기 어렵지는 않을 거야.
전화를 끊은 강준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신시가지를 향해 핸들을 돌렸다.
부우우웅!
하지만 차가 아파트의 출입 게이트를 지날 때, 민혜주의 모습이 보였다. 근데 그녀의 곁에는 건장한 남자 둘이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같이 차에 탄 것도 아니라 함께 걷는 괴상한 광경이었다. 민혜주의 옆에는 어린 딸이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모습. 강준은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차를 돌려 민혜주의 일행 곁으로 다가갔다.
“민혜주 씨?”
강준의 부름에 민혜주의 걸음이 멈춰 섰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남자들이 강준을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사망한 박동식 씨 명의로 생명보험이 있었는데, 사망보험금 수령자가 민혜주 씨라고 하더군요. 전 보험사에서 나왔습니다.”
사망보험금이라는 말이 나오자 눈빛이 달라지는 민혜주였다.
“그게 정말인가요?”
“네, 그래서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해야 하는데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요 앞이 제가 사는 집인데…… 그럼 지금 집으로 오시겠어요?”
민혜주의 대답에 두 남자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진석 부원장의 보험금을 확인하려는 민혜주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