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 폐차장 살인사건 (1) (166/250)


166. 폐차장 살인사건 (1)
2022.05.15.


서울구치소 앞.

고종원은 철문 밖으로 나오면서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담뱃불을 붙이려던 순간, 검정 세단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눈앞에 멈춰 섰다.

“아이…… 시발! 담배 하나 태울 시간도 안 주네……!”

조수석이 열리고 건장한 사내가 내렸다. 그는 고개를 까딱하며 고종원을 향해 목례했다. 예의를 차리고는 있었지만, 어딘지 모를 강압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거 하나만 태우고 갑시다……!”

“회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와, 진짜…… 사람을 아주 달달 볶네, 볶아!”

고종원의 입에서 더 거친 말이 나오려다 사내의 단호한 눈빛에 말을 삼키고는 차에 올랐다. 다행히 뒷좌석에 다른 누군가가 타고 있지는 않았다. 자신을 죽이지는 않겠다고 생각한 고종원이 혼자 피식 웃었다.

[박 의원님, 저한테 정말 이러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옛정을 생각해서 한 번만 도와주시죠.]

[너 이 새끼! 감히 나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 너 같은 새끼가 누군지 내가 알 바 아니니까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지 마!]

[의원님……! 저 고종원입니다! 고종원이요!]

고종원으로서도 마지막 카드를 쓴 거나 다름없었다. 그대로 구치소에서 가만히 있었다간 보험사기와 불법감금 및 노동법 위반으로 몇 년을 썩게 될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과거를 자꾸 캐내려는 경찰의 수사가 부담스러웠다. 수사가 계속된다면 몇 년이 아니라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근데 최진태 회장은 무슨 일로 나를 보자는 겁니까?”

“그건 가 보시면 압니다.”

“혹시 나를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고……?”

고종원은 태연하게 조수석에 앉은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한차례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러고자 하셨다면 이렇게 정중히 고 사장님을 모시지도 않았을 겁니다.”

“건설 사업으로 돈 많이 벌었을 거 아닙니까? 고층아파트 올라간 게 얼마인데…… 근데 그렇게 되기까지 내 역할도 만만치 않았다는 거 아실란가 몰라…….”

이죽거리며 혼자 웃는 고종원이었다.

잠시 후, 차는 연남시 외곽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 도착했다.

“정중히 모신다더니만 이런 데서 보자는 건…… 또 무슨 수작이신지…….”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겁이 날 만한 상황이었지만, 고종원은 개의치 않아 했다. 최진태 같은 얄팍한 인물이 자신을 칠 수 있을 만한 대범함을 가질 수는 없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최대한 똥물은 튀기고 죽을 테니까 말이야…….’

최진태는 자기한테 똥물이 튀는 게 싫어서라도 고종원을 끌어안을 터였다.

“타시죠.”

“와! 무섭네. 엘리베이터 타면 ‘탁!’하고 전기 나가면서 추락시키는 거 아니야? 이거 누가 많이 써먹던 방법인데…… 흐흐…….”

아파트 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땅 주인을 그런 식으로 처리한 적이 있었던 고종원이었다. 그의 잔인한 웃음에 오히려 그를 데려가던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에이 농담이야, 농담! 요즘 누가 그런 고리타분한 방법으로 일 처리를 한다고 그래? 피 튀기지, 보는 눈 많지, 시체 옮겨야 하지…… 뒤처리가 만만치가 않다고.”

우우우웅!

한참을 올라간 엘리베이터가 25층에서 멈춰 섰다. 문이 딱 열리자 최진태 회장이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이고! 고 사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회장님…… 제가 먼저 찾아뵀어야 하는 건데…….”

고종원이 생각했던 최진태의 모습은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태연한 척했지만, 고종원은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뭐야…… 나한테 뭔가 또 부탁할 일이라도 있는 건가?’

최진태가 안내한 곳에는 고종원이 처음 보는 인물이 있었다.

“자, 오늘 인사시켜 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는 금해성 사장입니다. 한중 무역으로 꽤 잔뼈가 굵으신 분이시죠.”

고종원은 한눈에 봐도 그가 어떤 구린 일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양태식의 휴대폰 보험사기에 연루되었다가 보이스피싱 인출조직을 털려 버린 금해성이었다.

동생 금해철과 달리 땅딸막한 체격에 안색이 안 좋아 보이기까지 하는 극히 어두운 얼굴을 갖고 있었다.

“중국 동포분이신가 보네?”

고종원이 금해성의 행색을 아래위를 훑으며 의례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조선족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둘을 어색하게 마주 앉힌 최진태는 여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이 인간 또 얕은수를 쓰네…….’

아랫사람을 경쟁시켜 자신에게 더 충성스럽게 만든다! 원론적인 방식이긴 했지만, 그 수가 읽혔을 때는 예상치 못한 분란을 만들 가능성도 다분히 있는 수였다.

특히, 고종원 같은 산전수전 다 겪은 인간에게 걸린다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얄팍한 인간들끼리의 만남이었으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결말인지도 몰랐다.

“자자! 한잔 마십시다!”

최진태가 건넨 술잔을 받아든 고종원은 위스키를 한 방에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앞에 앉은 금해성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쓸데없이 기죽을 이유는 없었다.

평소에 겸손은 오히려 무시당하기에 십상이라고 생각하는 고종원이었다.

“근데…… 고 사장님 고물상은 왜 하신 겁니까?”

조롱하는 표정으로 묻는 최진태였다. 사실 고종원이 고물상은 한 건 자기 조직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조직원들이 먹고살 걸 마련해 줘야 조직도 유지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물상의 고철 장사는 돈을 세탁하기에도 적합한 아이템이었다. 부잣집 도련님인 최진태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기는 했지만, 대놓고 조롱하는 최진태를 보자 고종원은 내심 불쾌했다.

“회장님 덕택에 차린 폐차장이 썩 돈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뭐라도 해 보려고 차린 겁니다.”

“그래요?”

“네, 사람이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하는 거니까요.”

“맞는 말씀이시네. 하하하!”

최진태의 웃음에 옆에 있던 금해성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호응했다. 옆에서 기분을 맞추는 걸 보니 금해성이 최진태로부터 뭔가 콩고물이 떨어지는 걸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하하하…… 그래서 말인데…….”

속없이 웃음을 터트린 최진태가 표정을 싹 바꾸며 화제를 돌렸다.

“제가 고 사장님께 일거리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뭐든 말씀하시죠. 제가 언제 안 된다고 하는 거 보셨습니까?”

기세에서 물러서지 않는 고종원이었다. 그리고 최진태는 바로 그런 모습을 마음에 들어 했기에 아파트 건설 현장이 돌아갈 때부터 고종원을 써왔던 거였다.

“이 사람이 꽤 우리를 괴롭혀서요…….”

최진태는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그 명함에는 ‘금융감독원 부원장 이진석’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오…… 이거 사이즈가 좀 나오는데……!”

“에이 쉬운 일이면, 제가 고 사장님께 부탁을 안 드리지요.”

“최 회장님, 근데 이거 박상도 의원님도 아는 겁니까?”

비릿하게 웃으면 묻는 고종원이었다. 잘못됐을 때 박 의원까지 붙잡고 늘어지려는 속셈이었다.

“이번에 고 사장님이 구치소에서 나오게 해 달라고 박상도 의원님께 부탁하셨죠?”

“네. 그랬죠.”

“실수하신 겁니다.”

순간 둘러앉은 자리에 긴장이 흘렀다.

“회장님…… 지금 나한테 충고하는 겁니까?”

“충고가 아니라 조언이라고 해 두죠. 지금 박 위원님을 건드리시면 고 사장님께도 좋을 게 없습니다. 박 위원님으로서는 흠집이 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피를 좀 흘리더라도 깨끗이 털고 가시는 걸 원하실 테니까요.”

어금니를 꽉 깨문 고종원이 맞은편의 금해성을 바라봤다. 그제야 오늘 자리에 왜 그가 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말을 제대로 안 듣거나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하면 저 인간을 시켜 나를 처리하겠다는 거네……!’

최진태의 경고에 고개를 주억거린 고종원이 눈을 치켜뜨고는 답했다.

“회장님 조언은 뼈에 잘 새겨 두죠. 그럼 다시 일 얘기 하시죠. 어떻게 해드릴까요? 죽여 버릴까요?”

“늘 하던 대로 해 주시죠……. 핏자국 하나 없이, 머리카락 한 톨 안 나오게…… 깔끔하게 처리해 주시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죠.”

“일 끝나고 저보고 어디서 쉬다 오라니…… 해외에 가 있으라니 그런 말은 하지 마시죠. 어차피 깔끔하게 처리할 건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습니까?”

순간 최진태가 고민하는 듯했지만,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 정도야 흔쾌히 들어드려야지요. 그리고 이건 수고가 많으실 텐데 목욕 값 먼저 드리는 거로 생각하십시오.”

최진태 회장은 두툼한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오만 원짜리 신권이 가득 채워진 봉투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1억도 되어 보이지 않는 금액이었다.

‘나보고 꼴랑 이거 먹고 일하라고……? 미친 새끼!’

고종원은 정중하게 봉투를 거절했다.

“……목욕 값이야 일 끝나고 받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 뭐, 그러시던지요.”

최진태는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종원의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맞은편의 금해성에게도 술잔을 내밀었다.

“그럼, 두 사장님께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최진태로서는 고종원이 금감원 부원장만 제거해주면 끝나는 일이었다. 나중에 폭탄이 될 폐차장을 손에 꾹 움켜쥔 고종원은 이제 사라져 줘야 했다.

* * *

을지로 오션빌딩.

박강준 보험조사사무소.

특별한 손님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금감원 수석조사관 박동식이었다. 국내 보험사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곳이 바로 금감원이었다. 그런 금감원의 고위 관료가 강준을 찾아온 거였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국내 보험업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계시더군요.”

“아닙니다. 전 그저 현장에서 구르는 보험조사관일 뿐입니다. 제 직원들도 마찬가지고요.”

“훌륭한 일을 하시고 계신 겁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겸손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보험사뿐만 아니라 보험계약자들을 위해서도 사건을 맡으시지 않습니까? 그럴 자격 충분하십니다.”

금감원 수석조사관 박동식은 전형적인 관료의 모습이었다. 차분한 말투와 조심스러운 몸짓, 그리고 천천히 상대를 이해시키는 화법은 그가 어떻게 해서 고위 관료직책에 올라서 있는지를 알게 했다.

“실은 최근에 한국보험이 시장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그건 몇 년 된 얘기 아닙니까?”

“네, 적당한 인수대상자가 그간 나오지 않았었는데…… 최근에 외국에서 인수 의향을 보인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 어딥니까?”

“밍싱그룹이라고 아십니까……?”

순간 강준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밍싱그룹이 최진태 회장의 배후인 박상도 의원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배후에 의혹이 많은 그룹 같더군요. 광둥의 흑룡회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고, 중국 공산당의 태자당과도 커넥션이 있는 걸로 압니다.”

“네, 소문대로 박강준 소장님께서는 그쪽에도 정보를 갖고 계시는군요. 어쨌든 계속 말씀을 드리자면…… 밍싱그룹에서 만든 신생 보험사가 중국 내 10대 보험사로 뛰어올랐습니다. 겨우 몇 년 만에요…….”

“수석님께서는 밍싱그룹을 국내 보험사의 적격 인수보험사로 보지 않으신 거군요.”

“네, 맞습니다. 재무 정보를 완전히 공개하지도 않는 곳입니다. 근데 그게 중국 상무부의 방침이라고 하더군요!”

기본적인 투명성조차 부재한 밍싱그룹 얘기에 목소리가 높아진 박동식 수석이었다.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회사입니다.”

“근데 얼마 전에 금감원장께서…… 밍싱그룹을 한국보험에 대한 적격인수자로 인정하겠다고 나서신 겁니다.”

“그 뒤에 박상도 의원이 있고요?”

박상도 의원의 얘기가 나오자 얼굴빛이 달라지는 박동식 수석이었다.

“제가 제대로 찾아온 게 맞네요.”

“누가 절 추천했습니까?”

“대한뉴스 이유린 기자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강준에게 박동식의 말이 이어졌다.

“소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네, 어떤 도움말입니까?”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박동식이 마음을 먹은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금감원장의 행보에 태클을 걸고 나선 부원장이 실종됐습니다. 벌써 열흘이 넘었네요. 경찰에서도 어찌 된 일인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답답할 지경이죠!”

강준은 언젠가는 밍싱그룹에 대해 파게 될 줄 예상했었다. 하지만 금감원의 부원장이 제거된 사건은 감당하기 힘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저희 보험조사 사무소를 직접 찾아오신 손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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