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고물상 노예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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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고물상 노예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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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고물상 노예 (5)
2022.05.14.
대선항에 남아있던 김준혁과 송지희는 일선 경찰관인 김인균 경사의 뒤를 쫓았다. 그는 조금 전 당구장 건물로 들어갔었다.
분명 지역 경찰이 박종만과 유착되어 있을 거라고 강준이 말했지만, 둘은 눈으로 직접 확인할 때까지는 믿을 수 없었다.
“준혁 씨, 정말 박종만이 나오리라고 생각해요?”
“지희 씨는요?”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요?”
“……어! 저기 박종만 아니에요? 역시!”
가타부타할 거 없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 둘이었다. 박종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이는 거친 외모에 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그리고 잠시 후, 김인균 경사까지 나타났다.
찰칵! 찰칵!
송지희는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었다. 경찰과의 유착관계를 증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경찰관이 거짓말을……!”
김준혁이 흥분해 차 문을 열고 나가려는 걸 송지희가 막았다.
“지금 나가서 어쩌려고요?”
“박종만한테 물어봐야죠! 일꾼들 지금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예’하고 순순히 말해 주겠어요? 일단 앉아 봐요.”
송지희의 얼굴을 한번 보고는 운전석에 털썩 주저앉은 김준혁이었다.
“저기 저 남자 선장인 거 같지 않아요?”
“……지희 씨는 어떻게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합니까?”
“그럼! 여기서 외모 말고 뭐로 판단해요?”
송지희의 말처럼 한눈에 봐도 뱃사람으로 보이는 남자는 원양어선 선장인 황두식이었다. 그들은 기철이 데려오는 일꾼들을 원양어선에 태우기로 당구장에서 말을 맞추고는 막 나오는 길이었다.
“아마 저 남자의 배에 일꾼들을 실어서 섬에다 팔려고 할 거예요. 그간 고물상의 일꾼들만 피해자였겠어요?”
“그럼 저놈들을 쫓아가 봐야겠네요….”
김준혁은 차에 시동을 걸고는 박종만의 차를 쫓아갔다. 조수석에 앉은 송지희도 할 일이 있었다. 그녀는 광역수사대의 이진철 경감에게 연락을 취했다.
“저 송지희 실장이에요.”
―송 실장님, 지금 저희 선박 서해안 해상으로 출발했습니다.
“광역수사대 팀들하고 같이 오는 거죠?”
―네, 해상에서 잡으려고 합니다.
“근데 저희가 지금 대선항이거든요. 여기서 방금 박종만이 선장으로 보이는 사람하고 같이 움직였어요.”
―소선도에 박강준 소장이 들어가 있는 걸로 아는데…… 그럼,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송지희는 앞서가는 차량을 바라보며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답했다.
“일단 소장님 계신 곳으로 가세요! 여기는 저희가 따라가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럼, 다시 연락합시다! 좀 이따 해경들하고도 공조할 겁니다.
전화를 끊은 송지희는 박종만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물상 일꾼들이 가입한 상해보험의 계약서필적이 박종만의 필적으로 보인다는 감정 결과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준혁 씨, 바짝 따라붙어요!”
“오케이! 명령대로 따르지요!”
김준혁은 가속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한참을 달린 박종만의 차량은 예상대로 대선항의 부둣가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김준혁이 생각지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대선항에 정박해 있는 배는 엄청난 규모의 원양어선 선박이었다.
“지희 씨, 저놈들 부둣가에 멈췄는데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요? 따라 올라가 봐야죠.”
원양어선은 3천 톤급의 대형 어선이었다. 바로 출항할 듯 갑판 위의 선원들은 분주했다.
“잠깐만요! 소장님께 전화는 드려야죠.”
“알겠어요. 지금 해 봐요.”
김준혁이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음만 계속 울렸다. 소선도에 들어간 강준이 염전에서 한창 염전주들과 싸울 때였다. 이제 상황 선택은 온전히 두 실장의 몫이었다.
“안 받으시는데요?”
“그럼 준혁 씨는 여기 남아서 이진철 경감님께 상황을 알려요. 전 이 선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볼 테니까요.”
“그건 절대 안 되죠!”
“왜 또 그래요?”
“소장님이 저희 파트너로 움직이라고 그랬던 거 생각 안 납니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죠!”
김준혁의 말에 송지희가 차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아이…… 씨! 같이 가자니까……!”
둘은 그렇게 몰래 선박에 올랐다.
* * *
소선도 선착장.
해경들은 신속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염전주들을 체포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데리고 온 염전 노예들을 따로 분리했다.
“박 소장님 괜찮으신 겁니까?”
“여기 섬사람들 주먹이 제법 맵네요.”
강준은 입술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저 사람들 동두천의 고물상에서부터 끌려온 사람들입니다. 염전에 현대판 노예로 팔려 온 거죠. 그 와중에 중간에서 고종원 사장이 돈을 챙겼을 거고요.”
“소장님, 근데 저 사람들은 박종만이 일꾼들을 데려오라고 시킨 게 아니라고 딱 잡아떼는데요?”
박종만이 당구장에서 동원했던 후배들과 고기잡이배의 선주인 조기철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은 그저 섬에 놀러 온 거라며 항변했고, 이진철도 별다른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염전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은 인력사무소를 통해 정식으로 일꾼들을 소개받은 거라는 입장이었다. 어쩌면 그들의 혐의라고는 강준을 쌍방으로 폭행한 거밖에는 없어 보였다.
해경은 슬슬 광역수사대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괜한 일로 자신들까지 움직이게 했다는 거였다.
“경감님, 아까 대선파출소에 연락해 봤는데…… 여기 섬에서 문제 될 만한 염전 노예 같은 건 없다는데요?”
“저희 팀에서 조사할 때까지 조금 기다려 주시죠.”
“네, 물론 기다려야 드리죠. 근데 저희도 할 일이 있고 하니까…….”
얼른 끝내고 가자는 얘기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이 갯벌의 진흙이 묻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까 염전주들에게 되찾아온 휴대폰이었다.
“이거 한번 보시죠.”
강준은 메신저로 온 사진을 확대했다. 그 사진 속에는 대선파출소 김인균 경사와 박종만이 함께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왜 현직 대선파출소 경찰이 동두천 고물상 관리를 하던 박종만과 같이 있을까요?”
“……정말 이 사람이 저 일꾼들을 데리고 있던 사람이 맞나요?”
“네, 백 퍼센트 확실합니다. 만약 박종만을 데려오면 일꾼들이 좀 모자라기는 해도 분명히 답해 줄 겁니다. 자신들을 팔아먹은 놈이라고요.”
“……뭐 그럼 그렇게 해야죠.”
해경은 일이 쉽게 끝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지 티 나게 인상을 쓰면서 물러났다.
한편 조사를 받던 염전주들 사이에서 큰 소리가 나고 있었다. 대장 격인 방 사장이 적반하장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거였다.
“시발…… 보자 보자 하니까! 섬사람들이라고 우리를 호구로 보는 거야 뭐야!”
“선생님, 신고가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대선항에서 들어온 인부들이 보험사기하고 연관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우리 책임이야?”
“혹시 정식으로 근로계약서 같은 건 쓰고 일을 시키신 건가요?”
“뭐, 무슨 계약서? 아니 근데 이 사람들이! 우리가 저 사람들한테 일을 시켰어? 자기네들이 와서 일한다고 했지! 안 그래 김 씨?”
방 사장은 옆에서 함께 조사를 받던 멍텅구리 배의 소유자인 김 씨에게 호응을 유도했다.
“그렇지! 우리는 그냥 바다에서 벌어먹고 사는 선량한 어민이여. 근데 우리를 지금 범죄자 취급해서 되겠어? 안 그래? 이 양반들아!”
방 사장을 따라 적반하장으로 큰소리를 치는 염전주들이었다.
“방 사장이라는 분 통화기록 확인해 보시죠.”
어느새 광역수사대 형사의 뒤에서 끼어든 강준이었다.
“소장님이 뭐 아시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네, 일꾼들을 이 섬에 넘긴 박종만이 다급하게 전화를 했을 테니까요. 일을 수습해야 했으니…….”
“야! 어제 온 일꾼들 다시 내보내라는 전화였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돼? 어?”
방 사장이 그걸 듣고는 여전히 큰소리로 반발했다.
“제가 알기로는 박종만이 저 일꾼들을 원양어선에 팔려고 했는데…… 당신이 그 인신매매에 관여한 걸로 압니다.”
“뭐……! 인신매매라니…….”
방 사장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갑자기 인신매매로 후려치는 강준에게 당황한 거였다.
“당신들이 해 오던 염전 노예를 부리는 일은 관행이라고 그간 생각해 왔겠지만, 원양어선에 사람을 파는 일은 인신매매 중범죄입니다. 당신네들은 지금 그 인신매매 브로커한테 협력한 공범이 되는 거고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솔직히 말해보세요. 박종만한테 얼마씩 주고 일꾼들 데려온 겁니까?”
“그야…….”
급히 입을 다무는 방 사장이었다. 하지만, 표정들을 보니 인신매매 공범으로 몰린 다른 염전주들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어! 저기 배가 들어오는데요?”
“뭐 무슨 배가……?”
해경들이 바다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방 사장은 말은 안 했지만, 낭패라는 표정이었다. 그 배는 강준이 몰아갔던 대로 원양어선 배였기 때문이었다.
“박 소장님, 전 해경들이랑 저 배를 조사하고 오겠습니다!”
“네, 저 배가 아마 박종만이 일꾼들을 팔아넘기려던 원양어선일 겁니다!”
이진철을 비롯한 광역수사대를 태운 해경이 곧바로 경비정을 움직였고, 해경을 확인하고 도망치려던 원양어선이 바다 한가운데서 우뚝 멈춰 섰다.
이진철은 강준에게 받은 사진을 다른 형사들과 공유했다. 그 사진 속에는 철창에 감금되어있는 원양어선의 선원들 모습이 찍혀 있었다.
경비정이 다가서자 이진철에게 낯익은 인물들이 소리쳤다.
“경감님, 여깁니다! 여기!”
팔이 뒤로 묶인 김준혁과 송지희가 갑판 위에서 목이 터지라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해경을 공격할지 아니면 도망칠지를 망설이고 있는 황두식 선장과 박종만이 갑판 위에서 허둥대고 있었다.
그들의 진짜 문제는 그 자리에 대선파출소의 김인균 경사도 함께 있다는 거였다. 이진철은 형사들과 갑판 위로 뛰어올라 그들을 모두 체포했다.
“박종만 널 인신매매 혐의로 긴급체포한다. 황두식 선장 당신도 마찬가지고!”
다른 형사가 김인균에게 다가섰다.
“경사님은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뻔히 사람들이 팔려나가는데 그걸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는 건가요?”
“……저도 조사 차원에서…….”
“네, 그러시겠죠. 근데 그건 우리 광역수사대 조사실에서 다시 말씀해 주시고요.”
형사는 냉정한 표정으로 김인균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 * *
그 후 얼마간 소선도의 염전 노예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어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박종만과 고종원은 구속됐고, 원양어선 선장이었던 황두식까지 구속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관심을 끈 건 지역 경찰인 김인균 경사와 염전주들이었다. 지역의 검은 카르텔로 자극적인 기사들이 나갔고, 염전주들의 어처구니없는 발언들도 여과 없이 언론에 노출됐다.
이제 소선도는 염전으로 아름다운 섬이 아니라 노예 섬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거였다.
하지만 다시 얼마 후 강준을 실망하게 만드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구속됐던 고종원이 풀려났다는 거였다.
“소장님, 이게 진짜 무슨 커넥션이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고종원이 변호사 비용을 많이 썼나? 돈이 많았던 모양이네.”
고종원의 재산 얘기에 김준혁이 끼어들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게 있네요. 고종원 저 사람 고물상만 하고 있던 건 아니었어요.”
“여기저기 다른 사업도 했나?”
“네, 연남시 근처에 폐차장을 했네요. 폐차장 이름이…… 남일폐차장! 여기도 고종원 사장의 명의로 된 곳이더라고요.”
순간 강준의 머리를 빵 때리는 게 있었다. 남일폐차장은 회귀 전 강준이 최진태 회장 쪽 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죽임을 당했던 곳이었다.
강준의 죽음에 고종원이 뭔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