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고물상 노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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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고물상 노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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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고물상 노예 (4)
2022.05.13.
대선항 금성장 모텔.
밤새 술을 마신 박종만은 목이 말랐다.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는 냉장고 쪽으로 휘청대며 걸어갔다. 그리고는 안에 있던 생수 하나를 꺼내 들었다.
벌컥벌컥! 꿀꺽꿀꺽!
“황 선장…… 징그러운 새끼! 어떻게 사람이 취하지를 않냐, 아주 죽을 뻔했네!”
박종만은 간밤에 만났던 원양어선 선장인 황두식을 떠올렸다. 그는 일꾼들을 구해 주면 두당 50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해 왔다.
기존처럼 염전에 팔아 버리면 두당 300만 원!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어쩌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제안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거기서 박종만은 머리를 굴렸다.
두당 200만 원의 차액을 보스인 고종원에게 주지 않고, 중간에서 자신이 먹을 요량이었다.
“눈치 빠른 그 인간이 모르게 해야 할 텐데…….”
염전의 주인들은 고종원과 직접 연락하는 사이였다. 만약 염전에 일꾼이 가지 않는다면 고종원에게 바로 연락이 갈 터였다.
그럼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일꾼들이 도망쳤다고 하거나 다른 하나는 일꾼을 아예 못 쓰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거였다.
박종만은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고향 후배인 김 경사가 떠올랐다. 박종만과 김인균 경사. 그 둘이 있었기에 그간 좀 모자란 이들을 염전으로 팔아먹을 수 있었던 거였다.
고종원이 대선항을 일꾼을 팔아먹을 곳으로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런 박종만의 인맥 때문이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박종만의 핸드폰에서 발신음이 들리고, 김 경사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김 경사는 대선항과 인근 섬을 담당하는 대선파출소의 소속 경찰이었다.
“인균아, 나다.”
―박 선배님,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지금 서울에서 귀찮은 놈들이 왔는데요?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예상치 못한 소식에 담배 연기를 내뿜는 박종만의 미간이 찌그러들었다.
―무슨 보험조사관들이라고 하는데, 선배님도 찾고…… 저한테는 일꾼들 어디 있냐고 캐묻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뭐라고 그러긴요. 일단 알아본다고 하고 돌려보냈죠.
“나 어디 있는지 말 안 했지?”
―에이! 선배님! 제가 그렇게 멍청한 놈으로 보십니까?
박종만도 생각해 보니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그동안 소선도에 일꾼들을 팔아먹은 걸 걸리게 되면 후배인 김 경사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 인간들 어디 있는지 알아?”
―그냥 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이던데요…… 근데 자기네들이 별수 있습니까? 근처 섬까지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일 텐데…… 그냥 우리한테 얻어걸리기를 바라는 거 같은데요?
“하긴 여기 사정도 쥐뿔 모르는 것들이 뭘 하겠냐? 어쨌든 지금 대선항 주변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지?”
―네, 며칠만 좀 조심하시죠.
실질적인 위협이 안 될 거라고 생각되자 다시 잔머리가 굴러가는 박종만이었다.
“그래, 그래야지. 근데 인균아.”
―네, 선배님.
“너 시간 되면 여기로 잠깐만 와라.”
―지금은 좀 그렇고…… 점심 먹고 들르겠습니다.
“그래, 여기 금성장 모텔 305호다.”
전화를 끊은 박종만은 다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몰랐다. 보험조사관에게 쫓긴다는 핑계로 일꾼들을 황 선장에게 팔아버리면 두당 500만 원이 고대로 자기 돈이 되는 거였다.
‘그래…… 시발! 이제 고 사장 그 새끼 손아귀에서 벗어날 때도 됐지!’
그때, 박종만의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본인이 뒤통수를 치려 했던 고종원의 전화였다.
“하…… 이 새끼가 어디 숨어서 날 보고 있나……!”
박종만은 전화벨이 10번이 넘게 울리고서야 받았다.
“네, 사장님!”
―너, 뭐야 이 새끼야!
“네……?”
갑자기 화를 내는 고종원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렸다.
―보험조사관이 벌써 소선도에 들어와서 휩쓸고 다닌다더라!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말하고 다닌 거 아니야? 어?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는 박종만이었다. 밤중에 만났던 보험조사관이 어떻게 소선도에 고물상 노예들이 있는지를 알았던 걸까? 박종만은 혼란스러웠다.
―야! 내 말 듣고 있어?
“네, 사장님…….”
―그 보험조사관 새끼를 죽여 버리든지 아니면 일꾼들을 죽여 버리든지! 둘 중에 네가 선택해! 어쩔 거야?
“염전 주인들한테 말해서 일단 일꾼들 먼저 빼 오겠습니다…….”
―이번에도 실수하면 알지? 내가 널 죽여 버릴 거야! 알겠어?
전화를 끊은 박종만은 생수병에 있는 남은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 * *
소선도로 오가는 배는 하루에 두 편이었다. 오전에 한 편, 그리고 이른 오후에 한 편.
이미 배가 끊겨 버린 상황이었다. 섬으로 들어가려면 따로 고기잡이배를 구해야 했다.
“근데…… 잠깐만…… 그럼 그 보험조사관이라는 놈은 오늘 밤에 섬에서 못 나온다는 건데….”
박종만은 대선항에 와 있는 보험조사관들의 면면을 확인해야 했다. 섬의 안과 밖에서 보험조사관들이 조여오고 있다면 차라리 이번 틈을 이용해 일꾼들을 원양어선에 팔아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보험조사관들을 따돌릴 시간도 필요했고 말이었다.
박종만은 읍내에 있는 당구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자신의 말에 따를 수 있는 후배들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박종만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내기 당구를 치는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그를 돌아봤다.
“종만이 형! 웬일이래요?”
“너희들 지금 시간 있냐?”
“시간이야 많죠……? 같이 한 게임 하시려고?”
“아니, 소선도에 좀 같이 가자.”
“네? 왜요?”
“거기 주민들 괴롭히는 외지인들이 좀 있어서 말이야.”
남자들은 박종만에게 꼬치꼬치 내용을 따지지 않았다. 손에 쥔 당구대를 내려놓고, 먹던 짜장면 그릇을 내려놓고 당구장을 나섰다.
그들은 박종만의 지시에 따라 대선항의 부둣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깃배를 가진 조기철을 찾았다.
“기철아, 지금 소선도 갈 수 있냐?”
“뭔 일이래?”
“종만이 형이 그러는데 소선도에서 소란 피우고 있는 인간이 한 명 있다고 해서.”
“외지인이여?”
“어, 그런 가봐. 좌우간 염전 하는 방 사장님한테 가면 된다는데?”
“……일단 얼른 타.”
기철은 본인이 들은 바는 없었지만, 박종만의 일이라면 그냥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박종만은 일을 시키고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든 작든 반드시 보상해 주는 사람이 박종만이었다. 기철의 고깃배에 올라탄 이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근데 종만이 형님은 왜 안 보이는 겨?”
“그 형님은 대선항에서 볼일이 있다는 데? 바쁜 일이 있는가 보지.”
“하여간 그 외지인 끌어내오면 된다는 거지?”
“어, 해 떨어지기 전에 와야 하니까 빨리 출발해!”
기철은 배에 시동을 걸고는 곧바로 소선도를 향해 출항했다. 하지만 그들은 섬에서 어떤 일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했다.
* * *
“아니, 당신 소금 사러 온 거라며? 근데 거짓말을 한 거야?”
얼굴이 햇빛에 검게 그을린 남자가 강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외쳤다.
“죄송합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저분들이 염전에 절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아서요. 어쨌든 이분들은 제가 찾던 분들입니다.”
“근데 이 사람이 미쳤나……?”
염전 주인 방 사장은 손을 치켜 올리면서 강준을 한 대 치려고 했다. 방 사장의 뒤에는 다른 염전주들이 위협적인 자세로 함께 버티고 있었다.
“전 이분들이 자의에 의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 사장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강준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왕년에 운동을 좀 했던 건지 강준의 몸을 훌쩍 들렸다.
하지만 그 틈새에도 강준은 그의 기억을 읽었다.
[박 사장, 그럼 나는 일꾼들 전부 모아서 기철이 배에 실어 보내면 그만이라는 거지?]
[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시발! 고 사장 그 새끼는 근데 왜…… 지가 전화해서는 지랄이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시잖아요. 고 사장 성격…… 좌우간 이번 일은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방 사장님이 이해 좀 해 주십시오. 헤헤!]
중간에서 염전주 사이에서 목소리가 큰 방 사장을 달래는 박종만이었다. 고종원이 일거리를 물어다 주면 그걸 원만하게 처리하던 게 박종만의 몫이었다.
전화를 거칠게 끊은 방 사장은 주변에 모여있던 염전주들을 둘러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들었겠지만…… 다시 일꾼들 넣어준다니까 어제 들어온 일꾼들은 기철이 배로 태워 보내자고.]
[아까부터 여기 와 있는 그 외지인은 어쩌고?]
[남의 동네에서 깝치는데 본때는 보여 줘야지?]
방 사장의 비릿한 웃음에 모인 염전주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저번처럼 김 씨 멍텅구리 배에 태워서 고생 좀 시켜 볼까?]
[안 그래도 김 씨가 일꾼 못 구했다고 투덜대던데 잘됐네! 흐흐!]
방 사장의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섬뜩함을 느꼈다. 정말 잘못하다가는 무동력 배에 실려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신세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준은 정신을 차리고 방 사장의 목울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켁! 케켁!”
방 사장이 뒤로 물러서자 염전주들이 험악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강준은 이내 뻘밭에서 그들과 함께 뒤엉켰다.
“내가 그냥 여기에 왔을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뭔 개소리야!”
“경찰한테 여기 온다는 얘기하고 온 거거든.”
강준의 말을 듣던 염전주들이 자기네들끼리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경찰……? 경찰이 뭐 어떻게? 너 구해 주러 온대?”
“대한민국 경찰이 이런 비상식적인 현실을 그냥 놔둘 거 같습니까?”
“어, 알았으니까. 넌 우리랑 가자. 섬에 왔으니까 바닷바람 좀 쐐야지.”
결국 염전주들은 강준의 팔을 뒤로 꺾고는 뻘밭에서 끌어냈다. 방 사장이 그 모습을 보고는 염전주 한 명에게 무표정하게 말했다.
“뭐 해? 얼른 김 씨 고깃배에 태워!”
“알겠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와서 막걸리 한 잔씩들 하자고.”
“난 기철이 배 들어왔는지 같이 다녀올 테니까, 일꾼들 도망 못 가게 단단히 감시해!”
“걱정 말아. 내가 후드러지게 패 버릴 테니까!”
염전주들은 자기네들끼리 손발이 척척 맞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한마디씩 보탰다.
강준은 그대로 트럭에 옮겨 태워졌다. 부풀어 오른 입가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는 피식 웃었다.
“저 새끼……저거 웃는 거 아니야?”
“씹새끼가 덜 맞았나?”
진즉에 핸드폰을 빼앗겨 버린 상태였지만, 강준이 믿고 있는 구석은 있었다. 선착장에 이르자 염전주들은 놀란 눈을 뜨고는 바다 쪽을 바라봤다.
해경 마크를 단 배가 선착장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선항 파출소의 경찰들이라면 그 정도 규모의 해경 선박을 절대 움직일 수 없을 터였다.
“내가 뭐라 그랬냐…… 대한민국 경찰이 이런 걸 보고 그냥 넘어가지를 않는다니까…….”
강준의 말에 염전주들은 얼른 트럭을 돌리려 했지만, 해경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차량 움직이지 말고 지금 즉시 트럭에서 나오십시오! 경고합니다! 움직일 시 도주로 간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