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 고물상 노예 (3) (163/250)


163. 고물상 노예 (3)
2022.05.12.


[종만아…… 이 새끼야! 내가 너한테 뭐라 그랬어? 여기 고물상 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지? 근데 나를 이 야밤에 여기까지 불러?]

고종원은 양손을 허리에 짚은 채 고개를 숙인 박 사장을 코앞에서 노려봤다.

[형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보험조사관이라는 양반이 찾아와서는…… 저도 놀랬습니다.]

화물차 기사의 부인이 봤다던 고물상 주인은 실은 명의상 사장인 고종원이 아니라 이웃집 택시 운전사인 박종만이었다.

즉, 박 사장이라 불리는 박종만은 야밤에는 택시 운전사였지만 낮에는 고물상 관리자였다.

[일단 이 새끼들 전부 차에 실어!]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시발!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나도 지금 생각하고 있잖아…… 안 보여?]

[……네, 죄송합니다!]

입을 다문 박종만이 일꾼들에게 다가가 무섭게 소리쳤다.

[당장 다들 나와! 야…… 김 씨! 이 씨! 빨리 안 움직여? 이것들이 또 푸닥거리 한 번 해야 정신을 차리려나!]

무서운 얼굴로 일꾼들을 윽박지르는 박종만이었다. 일꾼들은 그의 말에 자다 만 얼굴로 나와 검은색 봉고차에 묵묵히 올라탔다.

다섯 명이 다 올라타자 고종원이 운전석을 가리키며 박종만에게 말했다.

[종만아, 일단 네가 얘네들 데리고 섬 쪽으로 내려가 있어라. 내일 너는 여기에 코빼기도 비추지 말고. 어?]

[그래도 형님 고물상 일인데…… 제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새끼가 근데 질문이 많아졌네…… 쓰읍!]

고종원은 때릴 듯 손을 들어 올렸고, 박종만은 반사적으로 목을 거북이처럼 움츠렸다.

[야, 어차피 고물상 명의가 나로 되어 있는데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어? 애들 관리나 똑바로 하라니까 그거 하나 못 해서 지금 이 꼬락서니로 만든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형님.]

고종원에게 쩔쩔매는 박종만이었다.

[그리고 얘네 섬에다 넘기고 당분간 너도 숨어있어! 전에처럼 괜히 술 처먹고 돌아다니다 쓸데없이 입 놀렸다간 넌 내 손에 죽는다! 알겠어?]

[염려 놓으십쇼, 형님…… 이제 그런 일 절대 없습니다.]

[얼른 출발해.]

[그럼…… 형님은 대선항으로 언제 내려오십니까?]

[내가 때 되면 연락할 테니까…… 넌 절대 나한테 연락하면 안 된다, 경찰 새끼들이 요즘 휴대폰 추적으로 통화기록 다 들여다보고 있어. 무슨 소리인지 알지?]

연신 고 사장에게 고개를 숙인 박종만은 얼른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바로 수동기어를 올린 그는 앞으로 튕겨 나가듯 봉고차를 출발시켰다. 먼지를 날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봉고차였다.

강준이 읽은 고종원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선생님! 이거 놓으시고 말씀하세요!”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의 눈앞에는 경찰관들이 고종원을 말리며 떼어 놓고 있었다. 씩씩대는 고종원의 눈빛이 불안했다.

“상식적으로 본인이 고용하던 직원들이 하룻밤 사이에 없어졌다는 게 말이 되나요? 혹시 간밤에 직원들을 어디론가 보낸 거 아닙니까?”

“……소설 쓰고 앉아 있네!”

고종원은 비꼬는 표정으로 경찰관들에게 강준의 말이 얼토당토않다며 호소했다.

“그럼, 연락처라도 있을 거 아닙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핸드폰이 없는 사람들도 있나요?”

“이봐, 그 사람들 제대로 한 사람 몫도 못 해. 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자선사업가는 아니지만 불쌍해서 데려와서 일 시키고 돈 줘가며 데리고 있던 거야!”

경찰관은 수첩을 꺼내 들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일단 고종원 씨, 그 사람들 인적 사항은 있겠죠?”

“……있지! 월급을 그냥 줬겠어요?”

고종원은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 경찰관에게 보여 줬다. 강준이 보려고 하자 몸으로 막아서는 그였다.

“봤죠? 여기 고용계약서가 다 있잖아요? 안 그래요?”

일꾼들의 고용계약서에는 그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맨 아랫부분에는 손가락에 붉은 인주를 묻혀 찍은 지장이 있었다.

“주소 같은 건 없어요?”

“그건 나도 모르죠. 원래 집이 없던 노숙자들도 있었고…….”

“다섯 명 전부 다요?”

“둘은 지능이 좀 떨어지는데…… 집이 어디냐고 물어도 모르더라고요.”

그런 걸 왜 자기한테 묻느냐는 듯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 고종원이었다. 그는 애초부터 일꾼들의 집을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게 아니면 일부러 집으로 가지 못하게 강제로 막고 있었던지.

“박 소장님, 아무래도 오늘 조사는 일단 여기까지 하고, 일꾼들 어디로 갔는지부터는 다시 알아보는 거로 하시죠?”

경찰관은 강준을 돌아보며 그만 돌아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근방에 CCTV가 있는 곳이 어디죠?”

“여기는 좀 외져있는 곳이라 큰 길가 쪽으로 나가면 있습니다.”

“일꾼들이 그냥 걸어서 나가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

“그…… 그건 그렇죠.”

“아마 다섯 명을 한꺼번에 실어 갔을 겁니다. 지난밤에 오간 봉고 같은 차량을 조사해 보면 금방 일꾼들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경찰관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CCTV를 일일이 확인해 차량을 특정하는 건 귀찮고 오래 걸리는 업무였기 때문이었다.

경찰관은 일선 지구대 소속이었다. 강준의 요청에 따라 고물상의 불법 고용 현황을 확인하러 오긴 했지만, 안 그래도 할 일이 태산이었다.

의심이 간다는 이유만으로 CCTV 조사까지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준의 앞에서 대놓고 못 하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네, 소장님도 일단 돌아가셔서 기다려 주시면…… 저희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경찰관의 그런 태도에 고종원의 입가에서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번졌다. 어쩌면 경찰관의 그런 미적지근한 태도가 지금까지 고종원이 고물상에서 일꾼들을 노예처럼 부렸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어오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강준은 결국 팀의 모든 인원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 * *

서해안 고속도로.

강준은 팀원들을 데리고 고종원이 일꾼들을 보낸 대선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송지희가 복지과에 다녀온 일을 보고했다.

“주민센터 복지과에서 담당자가 실사를 나갈 때마다 박종만 씨가 돌봐주고 있는 사람이라며 직접 안내를 했었대요. 숙소며 일하는 환경이며…… 그리고 입금 내역이 확인된 통장들까지요.”

“숙소를 확인했었다고?”

“박종만 씨가 데리고 사는 거로 알고 있던데요?”

송지희가 조사한 내용과 강준이 직접 눈으로 본 내용이 딴판이었다. 박종만은 자신의 거처에 일꾼들과 함께 지내는 것으로 눈속임을 했던 게 분명했다.

“황당하군…… 담당 공무원이 아무런 의심도 안 했었대?”

“장애 수당은 통장으로 지급되는 거니까 매달 나가서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박종만이 맘먹고 속이려 했던 거니…… 속을 수밖에…….”

강준은 눈을 감은 채 혀를 끌끌 찼다.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노예노동을 지금까지 막지 못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강준의 옆자리에는 좀 전 휴게소까지 운전대를 잡았던 김준혁이 앉아 있었다. 그는 출장 가느라 챙긴 커다란 짐가방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소장님, 근데 박종만이 정말 대선항으로 일꾼들을 데려갔다는 거예요?”

“아마 그럴 거야. 그곳이 서해안의 작은 섬들로 가는 배들이 집결하는 곳이거든.”

“소장님은 그걸 어떻게 알게 되신 거예요?”

운전대를 잡은 송지희가 날카롭게 질문했다.

“대충 경찰 내에서 그런 제보가 들어왔다고 하더라고…….”

“대충요?”

어물쩍 넘어가려는 강준의 말을 다시 따져 묻는 송지희였다.

“내가 괜히 소장이겠냐? 너희들이 모르는 경찰 라인이 있어.”

“정말 저희한테는 공유 안 해 주실 거예요?”

“언젠가는 공유해야지. 근데 아직은 아니야. 김 실장과 송 실장이 경력이 좀 올라오면…… 그때 인수인계를 해 줄게. 그러니 너무 보채지 말라고.”

그 말을 듣던 김준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근데 정말 일꾼들을 염전 같은 데 팔아먹는다고요? 지금 2010년대인데……? 그게 가능한가요?”

“육지로 나오기 쉽지 않으니 외부로 나가는 길목만 차단한다면 좀 어수룩한 일꾼들은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겠지.”

“거기도 경찰은 있을 거 아니에요?”

“주변 주민들과 경찰이 다 같은 한통속이라면? 한통속이 아니더라도 관례적인 걸 묵인하는 거라면?”

김준혁은 경찰까지 한통속일 수 있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희 둘은 대선항에 도착하면 항상 붙어 다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소장님, 저 괜찮아요. 제가 요즘 퇴근 후에 뭘 배우는지 아세요?”

“뭘 배우는데?”

“복싱요.”

말이 끝나자마자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속도를 높이는 송지희였다. 마치 나쁜 놈들이 앞에 있어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걸 어필하듯이 말이었다.

“송 실장,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형사들도 말이야. 꼭 두 명씩 다니거든.”

“정말요? 하긴 제가 보니까 항상 현장에서 형사분들이 두 분씩 다녔던 거 같네요. 근데, 그 얘기를 왜……?”

“그 사람들이 전부 싸움을 못 해서 둘씩 다니는 게 아니야. 한 명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나머지 한 명이 대처하기 위해서거든. 그러니까 별로 도움이 안 될 거처럼 보여도 김준혁 데리고 다녀라.”

그 말을 듣던 김준혁이 끼어들었다.

“에이, 소장님! 도대체 절 뭐로 보고.”

“뭐로 보긴, 싸움 못 하는 보험조사관으로 보지!”

“싸움을 뭐 주먹으로만 합니까? 제 한 몸은 제가 지킬 줄 압니다.”

김준혁은 뒤적이던 짐가방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내 보였다. 그리고는 버튼을 눌러 시범으로 작동시켰다.

치직! 치지칙!

“그거 쓰려면 일단 상대와 맞붙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 전기충격기 쓰려고 다가서다가 먼저 주먹에 맞아 쓰러지면 안 된다.”

“에이, 제가 바봅니까? 저도 다 생각이 있는 놈입니다.”

“좌우간 도착하면 난 직업소개소부터 찾을 테니 너희들은 일선 파출소부터 찾아가서 협조를 구해. 인근 섬들을 둘러보겠다고 말이야.”

“소장님, 그럼 우리가 가는 행보를 그냥 상대에게 알려주는 꼴 아닌가요?”

“그렇지. 근데 때로는 명분부터 확보하는 게 중요할 때가 있는 법이거든.”

강준의 말에 김준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느새 차량은 해안도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가는 썰물에 갯벌이 훤하게 드러났고, 멀리 섬들이 육안으로도 확인됐다.

“소장님, 저기에 우리가 찾는 일꾼들이 정말 있을까요? 좀 막막한데요?”

두 실장으로서는 충분히 그럴만했다. 하지만 강준은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그건 회귀 전 크게 보도가 됐던 염전 노예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강준은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출장길에 오르기 전 대선항 인근에서 그 희미한 기억을 확인했다.

―소선도.

대선항에서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소선도. 섬의 크기는 작았지만, 염전으로는 근방에서 꽤 유명한 섬이었다.

‘거기에 일꾼들이 있는 게 확실한데…… 이제는 일꾼들을 꺼내올 방법을 생각해야 하네…….’

강준은 다시 눈을 감았다. 낯선 이가 섬에 들어온 걸 섬사람들이 경계하지 않을 방법이 필요했다.

16555216669919.png

16555216669926.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