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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고물상 노예 (2) (162/250)


162. 고물상 노예 (2)
2022.05.11.


랜턴 불빛을 쐈던 남자는 고물상 주인 고종원이 아니라 그냥 이웃에 사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야간에는 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 고물상에 사람들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이렇게 밖에서 감금하듯 문을 잠가 놔도 되는 겁니까?”

“저기 있는 사람들…… 잘 곳 없고 배고픈 사람들이에요. 고 사장이 오히려 저 사람들 데려다 돌봐주고 있는 거라니까요.”

강준은 그가 고종원의 편을 드는 걸 보고 어둠 속에서 한발 다가갔다.

“그럼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자물쇠부터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르시는 말씀인데…… 쟤네들이 얼마나 위험하다고요. 얘네 이거 열어 놓으면 온 동네 휘젓고 다니면서 술 마시고 난리를 피울 거라고요.”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군요.”

“맞아요! 쟤네들이 여기 머리가 딸리는 애들이거든요.”

남자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가리키면서 키득거렸다.

“그래서 전 더 의문이네요. 저렇게 자기 가늠도 못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수의 보험계약에 가입했을까요? 그것도 야외작업을 하면서 다칠 수 있는 상해보험 위주로요…….”

강준은 그 말을 하며 남자를 쏘아봤다. 남자는 그제야 강준이 보험조사관이라고 말했던 걸 떠올렸는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혹시 고종원 씨랑 어떤 관계십니까?”

“그야…… 이웃이죠. 별거 있겠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 대신 감시해 주고 있는 거 아니고요?”

남자가 한 걸음 물러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원…….”

“그게 아니라면 제가 여기 묶인 자물쇠를 열려고 하는 걸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아니…… 이래도 되나? 잠깐만 내가 전화 좀 해 볼 테니까…… 좀 기다려봐요.”

남자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때, 강준은 이웃 남자의 팔목을 붙들며 그의 기억을 읽어냈다.

[이봐, 김 씨! 몸은 좀 어때?]

[밖에서 자는데 성할 리가 있어요…… 소주나 한 병 사줘요.]

[자! 여기 삼만 원 받아. 어디 가서 국밥 한 그릇 사 먹고 근처 여관에서 하루 푹 쉬면서 몸도 씻고 그러라고.]

김 씨라는 사람은 지폐를 받아들고는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박 사장님이 진짜 우리한테는 천사네, 천사!]

[에이, 아니지 내가 김 씨를 특별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거니까 여기 있는 사람 다는 아니라고.]

어깨를 두드리는 박 사장이라는 남자는 강준에게 랜턴 불빛을 쐈던 고물상 이웃이었다.

[근데 말이야…… 전에 내가 얘기한 거 생각해봤어?]

[……아, 그 고물상이요…?]

[그래! 거기 가면 편하게 먹고 자고 할 수 있다니까? 게다가 일자리까지 있으니까 돈도 모으고 얼마나 좋아? 안 그래?]

코를 후비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김 씨였다. 이미 노숙인 생활에 익숙해진 그는 다시 어딘가에 갇히는 고물상에서의 생활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속해서 호의를 베푸는 박 사장의 제안을 딱 잘라 거부하기도 애매했다.

[네…… 한번 생각해 보죠…….]

[김 씨, 뭘 더 생각한다고 그래? 그러지 말고 일단 나랑 가 보자니까. 어?]

팔목을 잡아끄는 박 사장에게 끌려가는 김 씨였다. 결국 김 씨는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빵 하나를 사고는 박 사장의 택시에 올라탔다.

강준이 읽는 박 사장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눈앞의 박 사장은 강준이 붙잡은 손을 뿌리치고는 핸드폰의 버튼을 눌렀다.

어딘지 모르게 조급해 보이는 손길이었다.

“고종원 씨 부르려고 하죠?”

“여기 주인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근데 저도 부를 사람이 있을 것 같네요.”

“여기 고 사장 말고 누구를 부른다는 거요?”

“경찰이요. 아무리 직원이라지만 강제로 감금하고 있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서요.”

“그것까지는 내가 잘 모르겠네…….”

슬며시 한 발 빼는 박 사장이었다. 그러면서 말투도 은근슬쩍 바꾸는 그였다.

“선생님 성함은 어떻게 되시죠?”

“어? 내 이름은 왜?”

“이웃분이셨으니 여기 고물상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실 거 아닙니까? 제가 이곳 보험사기를 조사하는데, 도움이 되실 거 같아서요. 협조해 주실 거죠?”

“아…… 그야 협조해 줘야지……. 근데 일단 경찰은 좀 그렇지 않아?”

“왜요? 뭐 문제 있습니까?”

박 사장은 강준을 달래는 표정으로 팔목을 잡아끌었다. 마치 서울역에서 그가 노숙자 김 씨를 꾀었을 때처럼 말이었다.

“당사자한테 일단 말은 들어봐야지…… 안 그래? 그게 사람 사는 순서 아니겠어?”

그럴듯한 말이었다. 마치 덤벼드는 당사자를 민망하게 만드는 되치기의 수법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고종원 사장님을 이쪽으로 오라고 하시죠.”

“그래, 그럼 내가 금방 통화하고 올 테니까 잠깐만 요대로 딱 기다려!”

하지만 박 사장은 고종원과 한참을 통화했다. 그러더니 능글거리는 미소 띠고는 돌아왔다.

“내가 고 사장한테 설명은 잘했고…… 고 사장도 잘 알아들은 거 같더라고. 근데, 오늘 밤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오전에 정식으로 다시 만나자네?”

강준은 고물상 안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는 일꾼들을 바라봤다. 눈치 빠른 박 사장이 입구에서 큰 소리로 일꾼을 불렀다.

“어이! 김 씨! 잠깐만 이리 와 봐!”

박 사장의 목소리에 익숙한 듯 기계처럼 달려오는 김 씨였다. 그는 강준이 박 사장의 기억 속에서 봤던 노숙자 김 씨였다.

“오늘은 이만하고 들어가서 쉬어!”

“……헤헤, 정말요?”

“그래, 얼른 정리하고 들어가!”

김 씨는 박 사장의 말에 마치 하인처럼 허리를 굽신거리고는 다시 작업하던 곳으로 뛰어갔다.

“봤지? 일꾼들도 쉬어야 하니까 내일 오전에 다시 와. 그리고 고 사장이랑 자세하게 오해가 있으면 풀고.”

“저도 오해였으면 좋겠네요.”

하루 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안일한 판단이었다. 강준이 자리를 뜬 후, 고물상 주인 고종원은 바로 그곳에 도착했다.

* * *

다음 날 오전.

일선 경찰관과 함께 다시 찾아간 고물상에는 일꾼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박 사장의 말에 쪼르르 달려오던 김 씨도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고종원 씨, 어떻게 된 겁니까?”

함께간 경찰이 물었다. 강준의 신고 때문에 그들은 기본적인 조사를 하러 나온 거였다.

“밤새 어디로 도망갔는지 난 알 수가 없죠. 두 발 달린 사람들이니 자기네들이 알아서 나간 거겠죠.”

의심의 눈초리로 대하는 강준과 경찰을 향해 고종원은 뭔가를 꺼내놓았다. 일꾼들의 통장이었다.

“제가 그 사람들이 좀 모자라고 그래서…… 임금을 직접 다 챙겨줬습니다. 여기 통장 보세요. 매월 꼬박꼬박 들어간 거 보이시죠?”

“어, 그러네요.”

경찰관은 자세히 보지도 않고서 고종원의 말을 믿었다. 어쩌면 그들로서는 고종원의 말처럼 고물상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걸 원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래야 귀찮은 일이 안 생기니까 말이었다.

“잠깐만요…… 고종원 씨가 이렇게 통장을 가지고 있으면 일꾼들은 자기 돈을 만져 보지도 못했겠군요.”

“당신이 저 사람들 한 번이라도 봤어?”

“네, 어젯밤에 와서 봤습니다. 자정이 되어 가는 시간에도 계속 일을 하고 있더군요. 야간 수당은 제대로 챙겨주신 건가요?”

꼬치꼬치 캐어묻는 강준에게 고종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근데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보험조사관이면 보험금 지급이나 제대로 할 것이지…… 어디서 사람을 후려치려고 그래!”

“경찰관님, 일꾼들이 여기서 지냈다는데 지냈던 숙소부터 한번 확인해 보시죠. 보아하니 야근수당이나 연장근무에 대한 보수도 없이…… 혹사당한 것 같거든요. 그리고 들어온 금액을 보십시오.”

경찰관들이 강준의 말에 다시 통장을 뺏어 확인했다.

“최저임금보다 조금 못 미치는 거 같은데, 이거 숙소비용으로 빼신 거죠?”

“……그렇지, 그럼 나는 흙 파서 장사하나!”

“일꾼들 숙소를 보여 주시죠. 전 솔직히 어제까지 여기 있던 그 사람들이 어디 갔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가 오고 나서 일꾼들이 전부 없어졌습니다.”

씩씩거리기만 하고 답을 하지 못하는 고종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비릿하게 웃었다. 털어 봐야 나올 게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고종원 씨, 일꾼들 숙소 확인 좀 하겠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경찰들도 어쩔 수 없이 움직였다. 숙소는 고물상 컨테이너 뒤에 움막 같은 슬레이트 지붕의 공간이 나왔다.

방풍이나 방한도 전혀 되지 않을 것 같은 그곳의 입구에는 밥솥과 지저분한 식기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안쪽에는 군데군데 쥐가 파먹은 듯한 스펀지 매트리스와 때가 꼬질꼬질한 이불이 깔려 있었다.

누가 봐도 한눈에 일꾼들이 얼마나 열악하게 생활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와…… 이거 정말! 사장님, 여기서 일꾼들이 지냈다는 게 정말입니까? 여기서 먹고 자고 했다고요?”

경찰관 한 명이 놀란 눈으로 고종원에게 물었다.

“여기 관리는 내가 하나? 이 사람들이 직접 해야지! 근데 맨날 잔소리하면 뭐 하나! 이렇게 청소도 안 하고 맨날 술만 처먹는데!”

고종원은 나뒹구는 술병 하나를 발로 툭 찼다. 데구루루 굴러간 술병이 어딘가에서 멈춰 섰다. 술병을 가로막은 것은 때가 묻은 옷가지였다.

“잠깐…… 이거 혹시 피가 묻은 거 아닙니까?”

회귀 전 경찰이었던 강준의 눈에 때 묻은 티셔츠에서 혈흔을 발견한 거였다.

“어…… 그러네…… 이거 피가 말라붙은 거 아닌가?”

“아니 경찰관분들! 자기네들끼리 쌈박질에…… 난리를 치는 걸 어떻게 내가 일일이 다 관리하라는 겁니까? 네?”

당당하게 그리고 뻔뻔하게 대응하는 고종원이었다. 어찌 보면 그게 그에게는 제일 적합한 대응책이었을지도 몰랐다.

“보험조사관이 제가 볼 때는 이곳에서 상해보험을 타기 위한 모종의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이 정도로 엄청난 피를 흘렸다는 건…… 손가락이 절단됐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강준은 피 묻은 티셔츠를 들고는 두 명의 경찰관들에게 보였다.

“보험금 청구가 된 사건입니까?”

“네, 이전부터 상당히 많은 상해보험금을 청구하셨더라고요. 여기서 일하는 분들이 돌아가면서 말이죠.”

경찰관들도 그제야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 고종원을 바라봤다. 구석에 몰린 그는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시발! 보험조사관이라는 인간들이 보험금 안 줄라고 별 짓거리 다 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어제도 여기 고물상에 무단으로 침범하려고 했잖아!”

고종원은 강준에게 다가와 멱살을 덥석 잡았다. 하지만 그는 강준에게 타인의 기억을 읽는 능력이 있다는 걸 그는 알지 못했다.

‘잘됐네, 어차피 이 인간 감방에 넣으려면 피해자들 행방부터 찾아야 하니까!’

강준은 간밤에 고물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김 씨를 비롯한 일꾼들이 어디로 갔는지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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