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고물상 노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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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고물상 노예 (1)
2022.05.10.
을지로 오션빌딩.
박강준 보험조사사무소는 보안이 철저한 신축빌딩에 새 거처가 마련됐다. 그리고 의뢰인을 맞이할 수 있는 응접 공간은 별도로 구성했다. 사무실을 찾아온 의뢰인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였다.
“이제 인터넷으로 의뢰가 들어오니 굳이 이런 응접실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는데요…… 소장님이 저희 쉬라고 해 두신 거죠?”
김준혁은 새로 들어온 가죽 소파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넉살 좋게 물었다.
“그럼 그럼! 두 실장들 편하게 쉬라고 주문했다! 근데 김 실장, 인터넷으로 무슨 의뢰가 들어온다고?”
“얼마 전부터 홈페이지에 게시판을 하나 달아 놨더니 온갖 사연들이 다 들어옵니다.”
“그래? 어떤 게 들어오는데?”
“대부분은 보험금 지급을 못 받았다는 하소연들인데…… 그건 손해사정사의 영역이지 저희 영역은 아니지 않습니까?”
보험사고의 손해를 평가하고 적절한 보험금을 보험사로부터 받아 내는 건 국가가 공인한 손해사정사들의 몫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서 남의 시장까지 건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 우리 쪽 일은 별로 없는 거냐?”
“제가 하나 추려놓은 게 있긴 한데……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요…….”
“왜?”
“익명으로 글을 썼더라고요.”
인터넷으로 게시판을 열어 놓으니 생기는 새로운 문제였다. 의뢰의 양은 많아졌지만, 그중에 손대야 할 사건을 구별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의뢰인의 진정성까지 검증해야 하니 강준은 오히려 예전처럼 사무실을 찾아오는 의뢰인들을 맞이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왔어요!”
사다리 게임에 졌던 송지희가 양손에 커피를 가지고 들어왔다. 달달한 캬라멜 마키아토가 강준의 커피였다.
“소장님 이런 것도 드세요?”
“어, 이제 담배 끊어 보려고.”
“아…… 그러시구나. 근데 그거 가지고 되시겠어요? 금연 껌이라도 씹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송지희는 강준의 금연선언을 믿지 않는 듯했다.
“그거라도 씹어야 하나…… 좌우간! 송 실장도 아는 얘기야?”
“뭘요?”
“김 실장이 추려놨다는 의뢰건.”
“아, 그거……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이더라고요. 일종의 현대판 노예라고 해야 하나……?”
노예라는 자극적인 용어가 강준의 귀에 박혔다. 회귀 전 한창 문제가 됐던 염전이나 농가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을 데려와 무임금으로 몇 년씩 부려 먹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가해자들이 국가에서 지적장애인에게 주는 지원금마저 가로챈 분통 터지는 사건이었다.
“농장이야? 아니면 염전……?”
“아니요. 고물상이요.”
“어? 고물상?”
고물상이라면 도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도시에서 나오는 고물들을 수집하고 분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네, 제보자가 자기네 동네에 고물상이 있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한테서 좀 문제가 있는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지?”
“어떻게 아셨어요? 정신적으로 좀 모자란 사람들인데 구타당한 상처도 봤다고 했고요.”
“그리고 또?”
“알코올 중독자들도 있는 거 같다고 했는데…… 어쨌든 그 사람들이 고물상에서 먹고 자고 하는데 항상 고물상 주인한테 꼼짝을 못 한다는 거예요.”
“먹을 것도 제대로 안 주고 돈도 제대로 안 주고…… 맞지?”
“그거까지는 확인을 못 해 봤어요. 어쨌든 학대 정황이 있다는 건 확실한 거 같아요.”
강준은 남은 캬라멜 마키아토를 쪽쪽 빨아들였다. 사건을 어디에서부터 손대야 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소장님, 그래서 제가 그 고물상 주인 이름으로 된 보험상품을 확인해 봤는데요.”
“그걸 어떻게 확인했어?”
“고물상 주소지랑 사장 이름으로 찾아봤죠. 성원화재를 포함한 몇 개 보험사 쪽에서 확인이 되더라고요.”
“정말? 벌써 그게 나왔어?”
“네, 근데 보니까 사장 이름으로 된 보험은 없고…… 직원들 이름으로 보험이 수십 개가 나왔습니다.”
김준혁이 이미 고물상 주인에 대한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강준은 대충 어떻게 일이 돌아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제일 먼저 할 일이 보험계약자들을 확인하는 일이겠군. 본인들이 직접 서명한 건지 아니면 그 고물상 주인이라는 사람이 대리로 서명한 건지 말이야.”
“전 지금까지 그 보험으로 지급된 내역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좋아, 김 실장이 그 부분은 수고해 주고 나랑 송 실장은 주변인 탐문부터 시작하자고!”
강준의 지시에 송지희가 손을 들고 되물었다.
“소장님, 그 사람들 일단 탈출부터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구청 복지과 쪽 공무원들을 한번 접촉해 볼게요.”
“좋아! 그럼 각자 움직이자고!”
“근데 소장님…….”
이번에는 김준혁이 제동을 걸었다.
“왜?”
“이번 건 의뢰자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지.”
“우리도 사건 해결 비용을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꽤 진지하게 말하는 김준혁이었다.
“그렇다고 제보자가 주겠다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받아내겠냐? 김 실장, 돈 걱정은 하지 마. 이 사무실 운영 비용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까.”
“모금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 모금?”
강준은 모금을 빙자한 허울만 가득한 단체들을 보아왔다. 굳이 돈이 급한 것도 아닌데 공개 모금 같은 걸 할 필요는 없었다.
“저도 김 실장님 생각에 동의해요. 이제 우리가 하는 일은 보험사를 위한 일만은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모금이라는 걸 통해서 사람들에게 빚을 질 필요까지 있을까?”
“소장님……! 모금이라는 건 꼭 돈이라기보다는 마음을 보탠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건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건을 맡을지에도 영향을 줄 거고요…….”
강준은 대충 송지희가 하는 얘기가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다. 하지만 강준은 그 말에 백 퍼센트 동의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세상이 더 각박해지고 서로를 미워하는 세상이 될 텐데…… 우리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강준은 회귀 전 자신이 마지막으로 겪었던 세상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떠올렸다. 마음을 합치기보다는 편을 나눠 싸우기에 더 몰두하는 세상을 말이었다.
“그래 두 실장 의견도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금 받을 수 있으면 받아봐. 근데 이건 분명히 하자. 송 실장 말처럼 모금을 받는다면 그건 우리 행보에도 분명 영향을 받을 거다.”
두 실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강준의 말에 동의했다.
“미안하지만 난 간섭받는 건 딱 질색이거든. 근데 모금 때문에 간섭받는다? 난 별로다. 모금액은 전액 우리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기부하는 거로 한다. 다들 알겠지?”
“그럼 계속 소장님 돈에서 운영비를 쓰는 겁니까?”
“지금은 개인사업자지만 조만간 법인화할 거야. 난 그 법인에 재보험사인 소프트성원리의 주식을 출자할 거고. 그렇게 되면 우리 사무실은 법인이 소프트성원리로부터 배당받는 이익금으로 운영해 나간다. 다들 잘 알아들었지?”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 어쨌든 이번 사건은 그럼 사람들에게 모금해도 된다는 거죠?”
김준혁은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모금하려는 생각에 흥분된 표정을 지었다.
“돼. 근데 김 실장 기부금품법이라고 들어봤어?”
“네? 기부금품법이요?”
전산 업무에는 밝았지만, 법률적인 부분은 맹탕인 김준혁이었다.
“개인이 천만 원 이상 기부금을 받게 되면 불법이야. 그 이상 돈을 모금하려면 정식으로 시청에 모금단체로 허가를 맡아야 하지.”
“하아…… 복잡하네요…….”
“이번 기회에 김 실장이 그 업무는 맡아서 한번 해 봐.”
“네…… 알겠습니다. 업무가 더 늘었네요.”
아까와는 달리 어깨가 축 늘어지는 그였다.
“거봐,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책임이 따르는 법이야. 송 실장도 모금에 동의했으니까 김 실장 도와주고.”
“네. 당연하죠.”
“와…… 말을 많이 했더니 담배 한 대 피우고 싶네……! 김 실장 나 한 대 피우고 올 테니까 아까 당신들이 얘기했던 고물상 주인에 대한 자료들 준비해 줘!”
강준의 말에 분주해지는 둘이었다.
“얼른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근데 소장님, 제가 금연 껌이라도 사드릴까요?”
“아냐, 됐어! 자료나 부탁해!”
* * *
동두천 시내 경계 고물상.
고물상 주인은 50대의 고종원. 젊은 날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몇 년 전 동두천의 땅을 매입해 고물상을 차렸다고 했다.
그리고는 각종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처리하는 일을 하면서 연간 2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그럭저럭 굴러가는 고물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고물상은 고물을 지켜야 한다.
고종원은 그래서 먼 곳에서 노숙자들과 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을 데려와 고물상 컨테이너에서 먹고 자게 한 거로 보였다.
사건의 제보자는 그 고물상을 오가는 화물트럭 기사의 아내였다. 몇 번 남편을 따라 일하러 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목격했다고 했다.
“얼마나 기가 죽어있던지…… 사장이 나오면 아주 일꾼들이 꼼짝을 못 하더라고요…….”
“직접 폭행하는 걸 보셨나요?”
“아뇨…… 직접 보진 못했어요.”
“몸에 상처가 있는 걸 보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건 확실하지는 않은데 얼굴이 거뭇거뭇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말한 거고요.”
강준의 질문에 여자는 똑 부러지는 답을 하지는 못했다. 여자의 증언이 고물상 주인의 학대를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먹지도 못하는 거 같더라고요…… 제가 저번에는 빵을 사줬는데 어찌나 허겁지겁 먹던지…….”
“일단 제가 한번 가 봐야겠네요…….”
“사장이 없는 시간이 오후니까 그때 가 보세요. 내가 보니까 오후 늦게는 벌써 사장이 퇴근하고 없는 거 같더라고요. 일꾼들은 밤늦게까지 일하는데…….”
“사장도 없는데 밤늦게까지 일한다고요?”
“남편 말로는 가끔 사장이 밤에 와서 일꾼들 잡고 그런 거 같대요…….”
말끝을 흐렸지만, 여자는 사장이 밤에 와서 일꾼들을 팬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제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잘 조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너무 불쌍해요. 일꾼들만 생각하면…….”
“고맙습니다. 그냥 지나치지 않으셔서요.”
강준은 진심으로 여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어쩌면 세상이 더 각박해지고 서로를 미워하는 세상이 된 건 사람들의 탓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누군가는 오지랖 넓다고 욕하겠지만……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굴러가는 건지도…….’
강준은 여자와 만났던 카페에서 나와 고물상으로 향했다. 고물상 주변은 창고와 드문드문 세워진 주택들만 있는 곳이라 강준의 차량이 눈에 띄었다.
결국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는 걸어서 고물상까지 걸었다. 고물상의 입구는 바깥에서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여자가 말했던 것처럼 안에는 여전히 불빛 아래 고철을 분류하고 있는 일꾼들의 모습이 보였다.
강준은 출입구 옆의 시멘트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두 손으로 담장을 짚고는 몸을 번쩍 들어 올렸을 때였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강준의 뒤에는 고물상 주인 고종원으로 짐작되는 남자가 랜턴 불빛을 쏘며 강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종원 사장님 되시나요?”
“당신은 누군데?”
“전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여기서 일하는 분들 앞으로 보험금 청구가 자주 들어오더라고요…….”
보험조사관이라는 말에 남자의 공격적인 눈빛이 수그러들었다.
“여기 사장 내일 오전에나 나올 겁니다. 내일 다시 오슈!”
남자는 고물상 주인 고종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