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 휴대폰 분실보험 (5) (160/250)


160. 휴대폰 분실보험 (5)
2022.05.09.


강준이 원하는 건 법적인 처벌이 아니었다.

양태식 일당의 완전한 경제적 파산! 그리고 그로 인해 다시는 보험사기를 떠올리지도 못할 타격을 입히는 거였다.

“대포통장 인출책들이 한 열 명은 더 넘네요. 다들 아르바이트라고 하는 거겠지만요…….”

광역수사대 이진철은 강준의 휴대폰 분실 보험사기를 보이스피싱 사건들로 확대 수사했다. 왜냐면 보험금이 지급된 대포통장의 돈을 찾는 인출책들이 다른 보이스피싱 범죄에도 동원되었던 인출책이었기 때문이었다.

“금해철 친형이 보이스피싱 조직을 운영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양태식이 금해철을 섭외했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거죠.”

강준은 그간 금해철을 추적하면서 그가 어떻게 해서 양태식과 연관됐는지를 파악해냈다. 양태식이 노숙자 명의의 대포통장을 거래하던 곳이 바로 금해철의 친형 금해성이었다.

양태식의 제안은 마침 동생을 한국에 정착시키려던 금해성의 상황과도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금해성이 자신의 동생 금해철을 양태식에게 보낸 거였다.

“이 경감님, 그럼 잡힌 인출책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본인들은 모르고 가담했다고는 하지만 법적 처벌을 비켜 가긴 힘들 겁니다. 범죄에 이용된다는 걸 본인들이 몰랐을 리는 없으니까요.”

보이스피싱 인출책들은 강준의 사무실에 침입했던 남자들이었다. 강준은 그들을 경찰에 넘기지 않았지만, 그들은 결국 대포통장 인출책으로 다시 붙잡힐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전 소장님을 믿고 금해철을 풀어준 겁니다. 만약에 배신이라도 하고 그 인간이 밀항해 버리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금해철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움직일 겁니다. 양태식을 따를 이유가 없거든요.”

강준은 사무실에 침입했던 금해철을 경찰에 넘기지 않고 그를 회유했었다.

[우리 거래나 하나 하자. 난 양태식을 잡을 텐데 거기에 협조해 주면 너한테 보험사기의 죄는 묻지 않으마. 너도 앞으로 한국에서 살려면 시작부터 별 달고 시작할 순 없잖아? 안 그래?]

[시답지 않은 소리 마오. 내가 왜 그래야 하오?]

[너희 형이 보이스피싱 인출조직 운영하지 않아? 그거 싹 다 털리고 싶냐?]

친형인 금해성에 대해 언급하자 입을 꾹 다물었던 금해철이었다. 강준은 친형과 양태식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한 거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뻔했다.

“이제 슬슬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되지 않았나요?”

“금해철하고 만나기로 했으니 나올 겁니다.”

분실 휴대폰의 보험금이 지급되기로 한 날이었다.

“양태식 그 인간 얼굴이 벌써 궁금해지네요. 자기 딴에는 금해철하고 보험금 들고 중국으로 같이 튀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워뒀을 텐데 말입니다.”

“결국 친구인 고병훈까지 철저히 배신하고 혼자 살려는 거죠.”

“그래도 소장님은 그 둘과 동창 관계 아닙니까?”

“네, 안타깝게도요. 그러니까 제가 확실히 저 두 놈은 처리할 겁니다.”

강준은 이진철과 함께 오전부터 양태식의 대포통장 인출책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들이 인출한 돈을 가지고 가는 곳에 양태식이 있을 테니 말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의 추적 끝에 인출책들이 모여드는 곳을 찾아냈다. 그곳은 일전에 양태식이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하던 도림동의 상가 점포였다.

양태식은 아직 임대계약이 남았던 그곳을 자신의 비밀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었다. 투자자이자 친구인 고병훈이 모르는 장소로 말이었다.

“소장님, 저기 나오네요!”

“옆구리에 낀 가방이 바로 현금다발일 겁니다.”

양태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낡은 스포츠카로 걸어갔다.

부르르릉!

시동을 걸었을 때, 이진철의 밴이 스포츠카의 운전석 문짝을 막아서며 바짝 붙었다. 그러자 당황하며 창문을 연 양태식이 강준의 얼굴을 확인했다.

“시발! 뭐냐…… 박강준 개새끼야……!”

글로브박스에서 뭔가를 꺼낸 양태식이 조수석을 통해 차에서 내렸다. 그의 손에는 전기충격기가 들려 있었다. 접근전을 펼치면 그대로 통닭구이를 만들어 버리겠다는 의지였다.

“양태식, 오랜만이다. 여기서 뭐 하고 있냐?”

“넌 또 내 뒤꽁무니 따라다닌 거냐? 근데…… 금 사장 이 새끼가…….”

“금해철이 나 잘 처리했다고 뻥쳤지? 그거 내가 시킨 거야. 그래야 네가 보험금 잘 타서 이렇게 떡 하니 갖고 오지. 인출책들도 전부 노출하고 말이야.”

강준의 말에 얼굴이 일그러지는 양태식이었다. 어차피 수배범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판사판이었다.

치칙! 치지지칙!

전기충격기를 누르며 달려드는 양태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운전석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진철 경감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탕!

총성이 울렸다.

“첫발은 공포탄이지만 둘째 발부터는 실탄입니다. 양태식 당신은 수배로 인한 도주 중에 인명을 살상할 목적으로 전기충격기를 손에 쥔 거고요. 경찰인 저는 정당방위로 응사한 겁니다. 정당방위로요!”

조곤조곤 말하는 이진철 경감은 두 손으로 양태식의 얼굴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었다. 십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 양태식에게 남은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돈 들고 튀기!

조수석에 있던 돈 가방을 든 양태식은 힘껏 강준에게로 달려들어 어깨로 밀치고는 도망치려 했다.

“어딜 가냐 태식아! 나랑 얘기 좀 하자니까!”

넘어진 강준은 양태식의 바짓가랑이를 쥐었고, 양태식은 그대로 앞으로 자빠졌다.

철푸덕!

앞니가 부러진 건지 주저앉은 양태식은 입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강준을 쏘아봤다. 이진철 경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런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수갑을 채웠다.

“자 이제 양태식 당신은 두 건의 보험사기로 긴급체포되는 겁니다. 변호사 선임할 돈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어요…….”

한때 강준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던 양태식이 드디어 감방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 * *

3개월 후.

휴대폰 분실보험이라는 별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사건은 대리점이 낀 조직적인 보험사기로 언론에 보도됐다.

양태식은 강준에 대한 폭력 사주 혐의와 두 건의 보험사기 혐의, 개인정보 무단도용, 그리고 수배 중 도주 혐의까지 추가되어 경제사범으로는 이례적으로 5년 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법원은 고병훈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가 양태식으로부터 실질적인 협박을 받았다는 게 주된 무죄판결의 이유였다.

강압적인 협박으로 인한 비자발적 투자. 법원은 그 점을 인정해 고병훈에게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고병훈에게는 감방보다 더 무서운 파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10여 개의 대리점을 만드는 데 들어간 몇억 원은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그는 이제 은행 대출이 잔뜩 낀 카센터를 제외하고는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 버렸다.

당연하게도 구치소에 갇힌 양태식을 면회 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마지막 남았던 친구 고병훈과의 관계까지도 틀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고병훈은 오히려 법정에서 양태식에게 불리한 증언함으로써 그가 무거운 형을 선고받는 데 일조했다.

문제는 금해철과 금해성 형제였다.

금해철은 사무실 불법침입과 개인정보 무단도용으로 기소됐지만, 곧바로 변호사를 선임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리고 진짜 몸통인 그의 친형 금해성은 수사 도중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진철 경감이 수사하던 보이스피싱 수사가 난항에 빠진 거였다. 말단 인출책들만 체포된 채 하얼빈 조직의 진짜 몸통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격이었다.

두 형제에 대한 출국금지가 내려졌지만, 그들이 한국에 있는지 아니면 중국으로 돌아갔는지는 경찰도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강준의 사무실에서 사건이 터졌다.

한낮의 시간에 괴한들이 들이닥친 거였다. 이번에는 강준의 사무실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사무실에 남아있던 김준혁과 송지희는 괴한들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되었지만, 다행히 그들이 목표로 삼은 건 둘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강준에 대한 경고였다.

“박 소장님, 그래도 직원들이 안 다친 건 천만다행이네요.”

다 부서진 사무실에서 이진철과 강준이 다시 조우했다. 흥분한 이진철과는 달리 강준의 표정은 허탈하고 무거웠다.

“다칠 수도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죠…….”

자신에게 향한 경고로 인해 직원들이 다칠 뻔했기 때문이었다. 강준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금해성에 대해서는 윗선에서도 수사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거물이었던 모양이더라고요.”

“거물이요……?”

강준으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저 금해성을 보이스피싱 조직인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금해성의 조직이 밍싱그룹과 연루됐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밍싱그룹…… 말입니까?”

규모로만 보면 밍싱그룹이 어떻게 일개 보이스피싱 조직과 연관될 수 있는 건지 의아스럽겠지만, 그들은 이미 흑룡회와 관련이 있었다. 어찌 보면 금해성의 조직이 밍싱그룹과 연루됐다는 건 꽤 자연스러운 추정인지도 몰랐다.

“밍싱그룹의 대표 샤오빙(肖斌)이 한국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한국 방문 중에 금해성을 만났고요.”

“경감님, 그럼 윗선에서 금해성의 수사를 직접 지시한 건 밍싱그룹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렇죠. 저도 아직 자세한 건 모릅니다. 저야 말단의 일개 경찰 수사관일 뿐이니까요…….”

강준은 전대성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너도 알다시피 SW에쿼티의 뒤에는 밍싱그룹이 있어……그 밍싱그룹이 한국의 재계에 침투하려고 하거든.]

한국의 재계를 노리는 밍싱그룹이 앞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강준은 궁금해졌다. 어쩌면 전대성을 버리고 최진태 회장과 붙은 밍싱그룹이 제일 먼저 할 일은 막대한 자본을 끌어들여 국내 기업들을 집어삼키는 일일지도 몰랐다.

“괴한들에 대해서는 아직 뭐가 나온 게 없나요?”

“그게 참 이상한 점입니다. CCTV에 여기저기 잡혔으면 지금쯤 용의자를 특정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아직 아무런 단서도 못 찾았습니다. 마치 유령처럼요…….”

“한국 국적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쨌든 최대한 윤곽이 나오면 알려드리죠.”

강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두 실장이 그렇게 요 앞의 빌딩으로 옮기자고 하더니 어쩔 수 없이 그리로 옮겨야겠네요.”

“이번에는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잡으시죠. 이제 박 소장님의 신변도 걱정하셔야 합니다. 사람들한테 많이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강준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TV 리모콘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쪽 귀퉁이가 부서진 TV를 향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오늘 국회에서는 해외 기관의 국내 금융시장 진출을 위한 공청회가 대한당 박상도 최고의원의 주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공청회에서는 국내 굴지의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및 기타 기관투자사들이 모여…….]

강준과 이진철은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소장님, 혹시 밍싱그룹이 하려는 일이 바로 저거 아닐까요?”

“앞으로 재미있어지겠네요. 박상도 의원이 윤미경 감사와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럼 결국 저건 한국보험을 밍싱그룹이 먹으려는 사전작업일 거고요.”

TV 화면 속 박상도 의원은 신이라도 난 듯 금융기관장들과 함께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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