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휴대폰 분실보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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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휴대폰 분실보험 (2)
2022.05.06.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
강준은 한참을 차 안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침 출근 시간이 되자 아파트 주민들이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강준이 주목하고 있었던 남자가 아파트 출입구에서 쏙 튀어나왔다.
‘저기 저놈인가…?’
신명보험에서 제공한 휴대폰 분실보험 보상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지난 1년간 총 3대의 스마트폰을 분실한 것으로 리스트에 올라있었다.
‘1년에 3대나 분실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강준이 회귀하기 전에야 의무통화니 기지국 발신내역이니 하며 실사용자가 아닌 개통 기기들을 적극적으로 걸러냈었지만, 회귀한 지금은 아직 아니었다.
1인당 회선을 4개까지 만들 수 있으니, 남자는 실사용하는 회선 1개를 제외한 나머지 3개 회선의 스마트폰은 분실신고 후 보험금을 받아 챙긴 게 분명해 보였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래봤자 겨우 2백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그 돈 때문에 연성보험사기에 가담했다면 그는 정말 돈이 궁하거나 그게 아니면 자기 행동이 보험사기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강준이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행색을 보니 그는 두 번째 가능성에 해당하는 듯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캐주얼 정장과 단정한 머리모양. 사무직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가죽 서류 가방을 든 남자였다.
강준의 눈에 남자는 20대로 보이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만약 그가 진짜 직장인이라면 한 달 월급밖에 안 되는 돈에 찜찜한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일단 강준은 좀 더 남자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삐삑!
남자는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된 승용차에 시동을 걸었다. 사회 초년생들이 많이 타고 다닐 법한 하얀색 소형 세단이었다.
차는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갔고, 강준도 그 차를 따라 움직였다. 영등포에서 고가다리를 건너 도착한 곳은 마포의 한 오피스 빌딩이었다. 강준은 지하 주차장에 함께 차를 댄 후,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가 대체 어디 사무실로 들어가는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하남여행사]
남자가 들어간 곳은 여행사 사무실이었다. 휴대폰을 사고파는 휴대폰 대리점과는 아무 연관이 없어 보였다.
“뭐야… 그냥 이 사람도 당한 건가?”
그때, 한 무리의 남자들이 강준을 제치고 여행사 사무실로 우르를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 체류비자 연장을 잘 해준담서?”
“기간은 잘 몰라도 여기가 제일 싸다.”
“뭐, 문제 있는 거 아니니?”
“에헤… 넌 속고만 살았니!”
하남여행사에서는 재한 중국인들의 체류비자도 처리해주는 듯했다. 강준도 굳이 시간 낭비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과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죠? 이쪽은 체류비자 때문에 오신 분들 같고… 손님은요?”
예닐곱 평정도 하는 공간에는 네 명의 직원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강준이 따라간 남자는 어느새 책상에 앉아 업무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저기 저분을 뵈러 왔습니다.”
강준은 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리켰다.
“네? 여 대리요?”
작은 여행사에서 그는 벌써 대리 직급이었다. 남자는 놀란 눈으로 강준을 바라봤다. 무슨 일로 오셨냐는 눈빛이었다.
“저한테 무슨 볼일로 오셨죠?”
“여재훈 씨죠?”
“네, 맞습니다. 제 이름을 어떻게….”
강준은 명함을 내밀려다가 멈칫했다. 옛 성원화재 때의 명함이었기 때문이었다.
“박강준 보험조사사무소의 박강준 소장입니다.”
“…네? 보험조사요? 거기서 왜 저를?”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강준을 멍하니 쳐다보는 여재훈이었다.
“작년부터 여재훈 씨 명의로 휴대폰이 총 3대나 개통됐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제가 휴대폰을 개통했다고요? 전 이거 하나인데….”
여재훈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는 강준에게 보여줬다. 그는 강준의 예상대로 분실 보험사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인 듯했다.
“아! 저기요! 빨리 좀 처리해줘요. 나올 때 우리 소장한테는 잠깐만 다녀온다고 하고 나온 거니까.”
“네, 잠시만요…!”
기다리고 있던 재한 중국인들이 여재훈을 보챘다. 체류비자 연장 업무는 온전히 그의 담당인 것 같았다.
“혹시 잠깐만 기다려주실 수 있나요…? 이것만 처리하고 다시 얘기하시죠.”
“네, 천천히 하십시오.”
여재훈은 얼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그들의 여권을 받아들고 기타의 서류를 뽑아 함께 철을 해두었다. 여재훈은 그걸 한국 출입국사무소에 가지고 가서 그들의 비자를 연장해주는 게 자신이 맡은 업무였다.
강준이 직접 믹스커피를 타 한 모금 홀짝이려고 할 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어, 김준혁! 공문을 잘 받았냐?”
―네, 잘 받았습니다. 저 이제 통신사로 가면 되는 거죠?
“그래, 너무 서두르지 말고.”
김준혁은 광역수사대 이진철 경감을 만나 정식으로 보험사기 수사에 대한 공문을 받아냈다. 그리고 강준은 그 공문을 근거로 통신사에 보험금을 청구한 휴대폰 분실신고자들의 통화기록을 조회할 생각이었다.
강준이 전화를 끊었을 때, 재한 중국인들이 다시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러자 사무실은 원래부터 그랬던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침이라 갑자기 일이 몰렸네요… 근데 아까 했던 얘기가 무슨 얘기입니까? 제 명의가 도용당한 건가요?”
“도림동에 있던 휴대폰 대리점에서 개통된 거였습니다. 정말 모르고 계셨나요? 통신사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핸드폰으로 문자가 오거나 그러지 않았나요?”
“아뇨. 그런 거 없었습니다….”
강준이 회귀했던 시점처럼 통신사의 개통이 본인 명의의 모든 핸드폰으로 통보되지는 않는 듯했다.
“……아! 기억나네요. 제가 휴대폰을 수리하러 거기에 갔었거든요. 근처에서 수리해줄 수 있는 데가 거기밖에 없다고 해서요.”
“휴대폰이 파손됐던 겁니까?”
“네… 그렇죠.”
“그럼 보통 수리센터에 가지 않나요? 일반 대리점에 갔다는 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 액정이 나가서 그랬던 건데… 사설로 고쳐준다는 데를 검색해보니까 거기더라고요. 전 대리점이 돈이 많이 안 벌리니까 수리도 같이하는구나 싶었죠….”
말이 전혀 안 되지는 않았다. 휴대폰 수리를 하러 가서 개인정보를 도용당했고, 그걸로 대리점 측에서 여재훈 몰래 그의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한 거라면 꽤 그럴듯한 스토리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은 경찰 쪽에 개인정보 도용으로 인한 사건으로 고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저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요.”
“지금 피해자분들을 일일이 조사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그런 일을 벌인 주동자가 잡힐 거고요.”
“그래야죠. 저도 경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전 경찰이 아니라 보험조사관입니다만… 어쨌든 그럼 이만 일어나….”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강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그건 벽면에 붙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영등포 도림 조기축구회.
문제가 됐던 휴대폰 대리점이 있는 도림동의 조기축구회였다. 그리고 눈썰미가 좋은 강준의 눈에 들어온 건 사진의 문구만이 아니었다.
익숙한 동창 놈의 얼굴. 아직 수배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양태식의 얼굴이었다. 양태식은 맨 뒷줄에서 여재훈과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축구 좋아하시나 봐요?”
“네… 뭐 좋아합니다. 건전한 취미생활이죠.”
“건전한 취미생활이라…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나 봬서 반가웠습니다.”
강준이 손을 내밀자 입꼬리를 실룩인 여재훈이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그의 기억이 강준에게 읽혔다.
[형님, 이거 정말 한 사람당 50만 원씩 주는 거예요?]
[그렇다니까… 너는 나만 믿고 뒤탈 안 생길만한 놈들로 골라서 보내.]
[한국 들어온 조선족들, 중국이랑 한국을 왔다 갔다 하거든요. 거주지도 들어올 때마다 매번 바뀌고. 그 조선족들 인적 사항 정리해서 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오랜만에 여재훈의 기억 속에서 마주친 양태식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늘 그렇듯 허세가 가득한 짝퉁 명품들을 걸쳐 입고 손목에는 번쩍이는 금빛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그렇지! 너는 나한테 그것만 넘기면 끝!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는 거야. 알지? 이 짓거리도 쉽지 않다는 거? 휴대폰 개통해야지. 보험금 청구해야지. 돈 나오면 세금 처리도 해야지….]
은근슬쩍 자신의 영역을 넘보지 말라고 말하는 양태식이었다. 양아치끼리는 늘 싸우기 마련이다. 서로 구린 구석이 많으니 근본적으로 서로를 믿지 않고, 미래를 함께할 수 없으니 작은 거에 서로 먹겠다고 덤벼드는 거였다.
하지만 여재훈은 그런 양아치들과는 조금 달랐다. 분수를 아는 양아치랄까…?
[네, 형님. 그럼 인당 50만 원씩으로 알고 있을게요.]
[그래, 그래! 돈은 네가 서류 넘기면 바로 줄게… 절반은 바로 주고 나머지 절반은 보험금 입금되면 주고….]
슬쩍 눈치를 보는 양태식이었다. 여재훈은 그런 양태식의 속셈을 알고 있었지만, 절반의 금액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대신…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은 확실해야 했다.
[형님, 대신 돈은 현금으로 주시죠. 그리고 조선족들 정보도 만나서 직접 드릴게요. 괜찮죠?]
[어…? 뭐… 상관없지 뭐. 그렇게 하자고.]
양태식도 여재훈이 혼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는 걸 알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도 서류상 휴대폰 대리점 사장으로 되어 있는 노숙자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강준은 여재훈의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양태식과는 다른 유형의 인간. 나름 자기 방어망을 굳건하게 치고 있는 여재훈은 그저 윽박지른다고 넘어올 것 같지 않았다.
“안 가시나요?”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자신이 멍하니 여재훈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가봐야죠.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강준은 인사를 하고는 하남여행사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대로 여재훈을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좀 전에 마주쳤던 재한 중국인들이 막 오간 참이었다. 만약 여재훈이 분실 보험사기에 연루된 거라면 그들의 서류를 곧이곧대로 출입국사무소로 가져갈 리가 없었다.
강준은 지하 주차장의 지상 입구에서 다시 몇 시간을 잠복했다. 차 안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을 앉아 있을 때였다. 여재훈의 소형 세단이 지하에서 쑥하고 튀어나왔다.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업무시간이 끝나기 전 움직인 것이었다. 강준은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차량의 방향은 폐업한 휴대폰 대리점이 있던 도림동이 아니라 반대편의 서대문구 쪽이었다.
‘메뚜기들도 아니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구나!’
강준은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고는 여재훈의 차량을 바짝 뒤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