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경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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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경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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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경찰 자문위원
2022.04.30.
서울특별시 경찰청.
강준은 조남호의 보험 살인을 밝혀낸 공로로 경찰 자문위원에 위촉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진철이 소속된 서울 광역수사대 소속의 보험사기 범죄 자문위원이었다.
“이걸로 소장님께 보상이 될는지 모르겠네요.”
“경감님이 애써 주신 거 다 압니다.”
이진철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강준이 경찰청장이 부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딱딱한 분위기의 실내 강당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평소 같지 않게 기자들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본 경찰청은 날로 지능화되어 가는 보험사기 범죄를 밝혀내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가진 민간 보험조사관인 박강준 소장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한다!”
경찰청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강준에게 위촉장을 전달했다. 이미 온라인상에서는 연쇄살인마가 될 뻔한 흉악범 조남호를 잡는 데 강준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김준혁이 새로 개설한 웹사이트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고 있었고, 몇몇 광적인 사람들은 박강준 소장의 팬임을 자처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하지만 광적인 팬들은 항상 부작용을 낳는 법이었다.
―연쇄살인범 잡는 보험조사관!
―경찰이 부실 수사로 이번에도 범인을 놓칠 뻔한 거 아닌가?
―경찰들 우리 세금으로 도대체 뭐 하는 거지?
애꿎은 경찰들이 욕을 먹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그건 강준이 바라는 바는 결코 아니었다. 앞으로도 경찰과 공조해야 하는 일이 태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누구보다도 강준의 보험조사사무소에 몰린 세간의 관심을 불편해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수사당국인 경찰, 그중에서도 연남 경찰서장인 임철호였다.
“황 반장, 우리 경찰이 매번 저놈한테 휘둘려서야 되겠어?”
“송구합니다. 지난번에 김형식 경사, 그 녀석이 똘기를 부리는 바람에…….”
“그 또라이 새끼는 형사과에서 아직도 버티고 있어?”
“그게…… 해리츠 보험 쪽에서도 뒤통수를 맞은 격이니까요. 그쪽으로 이직하는 게 막혀 버려서인지 경찰 조직에 어떻게든 독하게 붙어 있겠답니다….”
“적당히 분위기 수그러들면 김 경사는 내가 직접 보직 이동시켜 버릴 테니까 그다음은 황 반장, 네가 알아서 잘 처리해. 무조건 내보내는 거로다!”
“네, 알겠습니다…….”
둘이 강당 밖을 빠져나갈 때, 입구에서 막 도착한 최은정 이사와 마주쳤다. 임 서장으로서는 아무리 박강준이 눈엣가시였어도, 안면이 있는 대기업 임원인 최은정과 인사도 없이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고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제 박강준 차장이 성원화재 소속도 아니지 않습니까?”
“모르셨어요? 박강준 보험조사사무소가 우리 회사 주요 거래처가 됐는데.”
“허허! 아주 끈끈한 관계네요. 그나저나 성원화재가 이제 한국보험에 밀리고 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재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말도 들리고요.”
“경찰 서장님께서 그런 소식까지 챙겨 들으신다니 놀랍네요. 물론 저희 둘째 오빠한테서 들으신 거겠죠? 무슨 소리를 듣고 다니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요.”
최은정의 말에 임철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갑작스러운 돌직구였기 때문이었다.
“뭘 기대하지 말라는 겁니까?”
“둘째 오빠 그렇게 신뢰 있는 사람 아니거든요. 괜히 쫓아다녀봤자 저기 경찰청장 자리가 임 서장님 자리가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옆에 있던 황재규 반장이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다. 임 서장이 부하 경관 앞에서 체면을 구긴 거였다.
“하하! 왜 재계에서 왕따를 당하시는지 알 것 같네요…… 전 이만 바빠서…….”
붉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재빨리 자리를 뜨는 임철호였다. 그의 출세 지향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최은정이 그 모습을 보며 혼잣말로 비아냥거렸다.
“조만간 퇴직 경찰 되시겠네…….”
자신에게 득이 된다 싶으면 민망하리만큼 달라붙고 반대로 얻을 게 없다 싶으면 안면을 몰수하고 돌아서는 인간! 황재규 반장은 그런 임철호에게 속으로는 환멸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살아남는 그가 어쩔 수 없는 거라며 합리화시켰다.
최은정이 강당에 들어서자 이미 위촉식은 끝나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혼잡스러웠다. 이번 위촉식에서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건 강준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강준과 함께 경찰 자문위원이 된 거였다.
“축하드려요. 강준 씨!”
“이사님 오셨네요. 바쁘실 텐데 감사합니다.”
“강준 씨 일인데 제가 와야죠.”
묘하게 사람들 앞에서 강준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최은정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준혁과 송지희가 슬며시 웃었다.
“성원화재에서 매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저희가 자체적으로…….”
“혹시 이번 주에 시간 되세요?”
“……네?”
앞으로는 김준혁이 만든 웹사이트를 통해 사건을 의뢰받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최은정이 강준의 일정을 먼저 물어봤다.
“아직 특별한 건 없는데…… 맡길 사건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이번에는 사건이 아니라 사업적인 자문을 좀 부탁드리려고요.”
“우리 성원화재가 이번에 재보험시장에 진출하려고 해요. 매번 국내 보험사들이 해외 재보험사를 이용하면서 보험 관련 무역수지도 엉망이거든요.”
재보험이란 보험회사가 막대한 손실을 볼 경우를 대비해 드는 보험이다. 즉, 보험회사의 보험! 대형사고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민간 보험사가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막아 줄 방패막이 바로 재보험인 거였다.
“영국의 로이즈 재보험시장에 진출하려는 건가요?”
“강준 씨도 로이즈 시장을 알고 있었네요.”
“저도 손해보험사에 있었는데 그 정도는 알아야죠.”
실은 강준이 알고 있는 재보험에 관한 지식은 짧았다. 영국의 재보험시장인 로이즈가 선박 항해를 시작했던 17세기부터 시작된 보험시장의 시초라는 걸 주워들은 적이 있을 뿐이었다.
“로이즈는 재보험회사가 아니에요. 수많은 재보험회사와 개인들, 그리고 그들을 이리저리 엮은 신디게이트(syndicate, 유가증권 인수를 위한 인수단)들을 중개하는 중개 시장일 뿐이죠.”
“잠깐만요…… 그 재보험사에 개인들이 있다고요?”
“네, 맞아요. 네임이라고 부르는 개인 보험인수인들이 있어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재력가들이라 손해보험의 위험을 감당하는 딜을 할 수 있는 거고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준혁이 끼어들었다.
“그럼, 네임이라는 개인 보험인수인들은 대단한 사람들이겠네요?”
“그렇죠. 근데 최근 재보험시장이 경영악화를 겪으면서 로이즈 시장에서 네임 멤버는 줄어가고 재보험 법인들이 늘어가는 추세예요. 이번에 우리 성원화재가 진출하려는 것도 바로 로이즈 네임 멤버 중 한 명과 같이 영국 현지에 법인회사를 차리려는 거고요.”
강준은 최은정의 말을 다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대충 무슨 일을 하려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최 이사님, 근데 저한테 자문받을 일이 뭔가요? 재보험시장 관련해서라면…… 제가 아는 게 별로 없는 거 같은데요?”
“눈치요. 제가 보니까 왠지 강준 씨는 눈치가 빠르더라고요.”
“네? 눈치요? 감이라면 좀 있는 편이긴 하지만…….”
상대의 기억을 읽는 강준의 능력이 최은정이 보기엔 눈치가 빠른 걸로 보였던 것이었다. 강준의 당황하는 반응에 최은정은 손에 입을 대며 웃었다.
“농담이에요. 실은 우리가 접촉하는 네임 멤버에 대해서 조사를 좀 해 줬으면 해요.”
“어떤 사람인가요? 어떻게 연락이 된 거고요?”
곧바로 실질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하는 강준이었다.
“성원화재의 일본 사무소에서 추천한 네임 멤버예요.”
“네? 성원화재에 일본 사무소가 있었다고요?”
회사에 몇 년을 근무했지만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버지가 경영하던 시절부터 해외사업을 노리고는 있었죠. 물론 그만한 로컬 영업능력과 전문적인 언더라이팅(underwriting, 보험계약의 작성과 심사)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해외사업으로 이뤄지진 못했지만요.”
“그럼 일본 사무소에서는 그간 무슨 일을 한 겁니까?”
“현지 보험시장의 조사업무만 하고 있었죠. 그 조사보고서는 경영진에게만 보고됐고요. 그래서 강준 씨가 몰랐던 거예요.”
“……그럼 어쨌든 그 네임 멤버는 지금 일본에 있겠군요.”
“맞아요. 그래서 이번 주에 저와 일본에 같이 출장을 가줬으면 해요.”
최은정의 말에 김준혁이 슬며시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그거 최 이사님 사심이 작용한 거 아닙니까?”
“그 사심은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른 거겠죠.”
강준을 바라보며 공을 돌리는 최은정이었다.
“일단 저는…… 일본에 가서…… 롯본기 한복판에 있는 미슐랭 식당에 가서 초밥을 먹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소장님!”
강준의 엉뚱한 동문서답에 놀리듯 추궁하는 김준혁이었다. 하지만 그런 화제전환은 이내 회식으로 이어졌다.
“소장님, 저도 초밥 먹고 싶은데요?”
송지희가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회식은 초밥집에서 하는 거 어때? 생각해 보니 조남호 사건은 송 실장이 뛰어다니면서 해결한 거나 다름없잖아? 근데 자문위원은 나만 되고 말이야…… 그러니 오늘 회식은 송 실장이 원하는 대로 가자고!”
“초밥집 좋아요! 근데 저 엄청 많이 먹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맘껏 먹어! 대신 1차만 먹고 들어가기 없기다!”
“꼰대처럼 왜 그러실까? 요즘 쿨한 상사는 1차 끝나면 부하직원들 편하게 먹으라고 자리를 먼저 피해 준다던데요…….”
“난, 쿨하지 못해서 그렇게는 안 되겠는걸! 너희들 집에 가는 거 끝까지 보고 가련다!”
그 모습을 지켜본 최은정이 강준의 팔꿈치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아직 대표 자리에 익숙하지 않으신 거 같은데요?”
“대표는 무슨…… 그냥 동네 구멍가게 사장이죠. 사장.”
“그럼 얼른 가요! 박 사장님이 경찰 자문위원이 된 거 축하해야죠.”
송지희와 김준혁이 신이 난 듯 발걸음을 옮겼다. 뒤쫓아 걸어가던 최은정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조금 있다가 김성호 이사님도 오실 거예요.”
“네? 김 이사님도요? 저야 좋죠.”
“이번 재보험시장 진출 건 우리한테 꽤 중요해요.”
“그렇겠죠…… 뭐든 처음 가는 길이 어려운 거잖습니까?”
“투입될 자금이 2천억이에요.”
“네? 2천억 원이나요?”
놀란 눈빛으로 발걸음을 멈추는 강준이었다. 2천억이라는 돈은 2010년 말을 기준으로 엄청난 인수자금이었다.
개인 보험인수인이라는 네임 멤버과의 합자 법인 출자자금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금액이었다. 강준은 그 네임 멤버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
“우리가 접촉하려는 네임 멤버는 원래 뭐 하던 사람인데요?”
“이름은 찰스 벌링턴. 남작 작위를 가지고 있고요.”
“오! 영국의 귀족이겠군요.”
“맞아요. 로이즈가 영국의 금융을 떠받드는 보험시장이잖아요.”
“근데 이렇게 저한테 조사를 의뢰하는 건 뭔가 짚이는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강준은 최은정이 아직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걸 짚어서 물어보는 거였다.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시네요. 맞아요. 찰스 벌링턴이라는 남자. 사생활이 꽤 난잡하다는 소문이 있어요. 물론 사업과 사생활은 별개지만, 뭐든 확실히 하고 일을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럼요. 2천억 원이 걸린 일인데!”
강준은 주먹을 꾹 쥐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최은정이 함께 주먹을 쥐며 호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