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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연쇄살인마의 행적 (4) (150/250)


150. 연쇄살인마의 행적 (4)
2022.04.29.


박병태의 차량을 수배했으니 조남호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음 날 오전, 수원의 한 숙박업소에 자고 있던 조남호가 현장에서 긴급 체포됐다.

그리고 곧바로 경기 광역수사대 본부로 끌려온 조남호가 조사실로 끌려왔다. 조사 담당 형사는 허찬 경사였다. 하지만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허 경사는 점점 짜증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니…… 난 모른다니까요!”

조사에 전혀 협조적이지 않은 조남호였다.

“개 사육농장에서 발견된 머리핀에 끼어 있던 머리카락과 가죽점퍼에서 발견된 혈흔이 동일 인물의 걸로 판명됐어! 이래도 부인할 거야?”

“부인하는 게 아니라 모르겠다는 겁니다! 형사님!”

“축협에서 퇴근하고 버스를 기다리던 김서윤한테 접근한 거지?”

“……모른다고요…… 몰라요!”

계속 부인한다고 해도 조남호를 김서윤 납치 범행의 용의자로 특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그의 차량과 소재지에서 김서윤의 생체증거가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남은 건 김서윤의 시신을 찾는 것이었다.

“조남호, 내 눈 똑바로 봐봐! 김서윤…… 네가 죽였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조남호는 살인했냐는 질문에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웃어? 이 새끼가 웃어!”

주먹을 들어 올린 허찬 경사를 보며 밖에서 조사 광경을 지켜보던 이진철이 벌떡 일어났다. 강준은 이진철의 팔을 붙잡았다.

“경감님, 제가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그러시죠. 허 경사도 잠깐 쉬어야 하니까요.”

조사받는 조남호에게 휴식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강준으로서는 간단한 확인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김서윤을 죽였는지. 그리고 죽였다면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 두 가지를 알아내야 했다.

허찬 경사 대신 강준이 들어가자 조남호의 눈빛이 경계하는 투로 바뀌었다. 저수지에서 강준에게 주먹을 날렸었기 때문이었다.

“주먹이 꽤 세더라.”

“…….”

“괜찮아. 뭐 너도 좀 놀랐겠지.”

조남호는 강준이 부드럽게 나오자 꽉 끼고 있던 팔짱을 슬며시 풀었다.

“형사님, 솔직히 어둑어둑한데 일방적으로 다가오니까 나도 무섭더라고요…….”

그는 여전히 강준을 형사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 대 날렸다?”

“……뭐, 본능적으로 그런 거였으니까요.”

은연중에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조남호였다.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면 어떻게든 밀어 넣고 보는 게 그였다.

“근데, 왜 차량을 불태우셨을까……?”

“불이 왜 났는지는 저도 모르죠……. 그냥 냅다 뛰어서 도망쳤으니까요…….”

“말이 안 되잖아? 본인 차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지금 면허정지 상태거든요. 그러면 안 되는데…… 겁부터 덜컥 나더라고요.”

강준은 그가 면허정지 상태였다는 걸 알지 못했었다. 덕분에 그럴듯한 변명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강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조남호의 어깨 뒤로 갔다.

“정말 그것 때문에 차를 불태웠다고? 김서윤을 살해한 장소가 그 차라서 그런 게 아니고?”

“……하하…… 지금 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거든요?”

비릿하게 웃는 조남호의 어깨를 강준이 부드럽게 만졌다. 그 순간 조남호가 떠올리는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역시나 조남호의 기억은 저수지에서부터 시작됐다. 조남호는 김서윤의 시신을 저수지의 갈대밭 사이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비가 온 다음 날인지 땅바닥은 축축했다.

한참을 걸어갔을 때, 조남호는 김서윤의 시신을 내팽개치고는 가져온 삽으로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강준은 그 장면에서 조남호가 땅을 판 곳을 기억하려 했지만, 드넓은 갈대밭에서 장소를 특정할 수 없었다.

기억을 빠져나온 강준의 앞에 뻔뻔한 표정의 조남호가 조롱하는 눈빛으로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갈대밭 맞지? 그날 저수지 근처의 갈대밭에 김서윤을 묻은 거야! 갈대가 높게 자라서 남들 눈에 띄지도 않고 흙이 부드러워 땅도 잘 파지고 말이야.”

순간 눈빛이 흔들리는 조남호였지만, 이내 머리를 굴린 듯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갈대밭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도 한 가지 말해 줄게요…… 내가 개 농장을 하고 있잖아요? 근데 개들이 먹잇감이 없어서 쫄쫄 굶고 있네? 그래서 내가 특별식을 줬거든. 크크…… 잘 뜯어 먹더라고요!”

강준이 김서윤의 시신을 찾아낼 것처럼 보이자 다른 정보를 던지며 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조남호였다.

“야! 조남호 너 방금 살인을 인정한 거다!”

흥분한 얼굴의 이진철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난 안 죽였는데?”

“방금 네가 한 말! 김서윤의 시신을 개 먹이로 줬다는 얘기 아니야!”

“특별식이라고 했지…… 시체라고는 안 그랬는데?”

이진철은 더는 조남호에게 말려들 수 없다는 듯 강준을 데리고 조사실을 빠져나왔다.

“박 소장님, 갈대밭 얘기는 왜 나온 겁니까?”

근거를 대라는 이진철이었다.

“……그건 감이라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겠네요. 하지만 경감님! 범인은 항상 익숙한 곳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행동 패턴이 있습니다. 그날 안산에서 만난 여자를 그곳으로 데려간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원칙대로 하죠. 전 용의자의 입에서 나온 정보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광역수사대의 형사들은 일제히 조남호 소유의 개 사육농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김서윤의 시신 처리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 * *

저수지 갈대밭.

강준은 무작정 저수지로 향했다. 하지만 드넓은 저수지를 다 파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장님, 막막한데요?”

“송 실장, 그래도 어떻게 하냐? 일단 둘러보자고.”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흩어져 수색하고 있을 때, 김준혁이 도착했다.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말이다.

“아이고, 고생이 많습니다!”

“준혁 씨, 뒤늦게 와서 놀리는 거예요?”

뿔이 난 송지희가 심술궂게 한마디를 던졌다.

“에이 그럴 리가요! 제가 그동안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렇죠 소장님?”

“연락은 다 됐고?”

“네, 장비들이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는 했는데…… 그 전에 포인트들만 골라 달라고 했습니다. 중장비가 와도 갈대밭 전체를 헤집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잘했다.”

“조만간 올 때가 됐는데…….”

김준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멀리서 포크레인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송지희가 무슨 일이냐는 듯 강준에게 되물었다.

“소장님, 뭐예요?”

“어, 돈 좀 썼다. 우리 팀원들 고생하면 안 되잖아.”

가까이 다가온 포크레인을 보니 얼추 열 대는 되어 보였다. 송지희의 생각에는 그 중장비를 동원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통장에 10억밖에 없으시다면서요?”

“송 실장, 전에는 10억씩이나 있다고 좋아했잖아?”

“그래도 이렇게 쓰는 건 좀 허무한데요?”

“왜? 며칠 고생하는 것보다야 이렇게 한 방으로 끝내는 게 좋지.”

포크레인을 끌고 온 사람은 명성정공의 작업반장이었던 이호석이었다. 그는 밀린 임금을 받은 것과 은행에서 돈을 빌린 걸 합쳐 중장비 사업을 시작한 거였다.

포크레인은 강준이 있는 곳 근처에서 멈춰 섰다.

“소장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공사 현장에 오더는 좀 많습니까?”

“리안 건설에 찍혀서 어딜 가나 푸대접이죠. 그래도 박 소장님께서 이렇게 불러주시니 고마울 따름이고요!”

“앞으로 더 잘되셔야죠. 일단 다들 모이라고 해 주십시오. 회의부터 하고 시작하죠.”

강준은 어느샌가 본인도 회의를 즐겨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직장인이 아니라 본인이 다 책임져야 하는 독립 SIU팀의 책임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 다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박강준 보험조사사무소의 박강준입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시체 묻을 만한 깊이면 저희가 금방 다 파죠. 근데, 이게 엄연히 말하면 시의 허가를 받고 해야 하는 건데…….”

“워낙 시급한 문제라 그 부분은 제가 간과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돼도 제가 책임질 테니 여러분들은 염려 말고 협조해 주시면 됩니다.”

그때 강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조남호의 개 사육농장으로 갔던 이진철의 전화였다.

―소장님, 중장비 동원해서 갈대밭 파헤치신다면서요?

“그건 또 누구한테 들으신 겁니까?”

―송지희 실장한테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으시면 먼저 말씀을 하셨어야죠. 지금 허 경사를 그쪽으로 보냈습니다. 작업은 허 경사 도착하시면 정식으로 하시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근데 거기는 뭐가 좀 나왔나요?”

―아뇨. 아직 아무것도 못 건졌습니다. 소장님 말씀처럼 조남호 그 새끼한테 속은 거 같네요.

통화음 너머로 분노하는 목소리가 전해졌다.

잠시 후, 허찬 경사가 도착했고 대대적인 포크레인을 동원한 갈대밭의 수색작업이 펼쳐졌다. 그렇게 일몰이 다가올 때쯤 한 포크레인 기사가 강준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뭐가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어디요?”

강준을 비롯한 SIU팀원들과 형사들이 그쪽으로 몰려갔다. 파헤쳐진 흙더미 안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다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그건 분명 사람이었다.

허찬 경사는 흙구덩이에 뛰어들어 손으로 다리가 삐져나와 있는 곳을 마구 파헤쳤다. 그러자 부패한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시신이었다.

“박 소장님, 찾았습니다……!”

하지만 시신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다. 발견된 시신의 얼굴 부위가 난도질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발견된 시신은 며칠 후, 실종되었던 김서윤으로 신원이 밝혀졌다. 조남호도 결국 모든 범행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거야……?”

조사실에 마주 앉은 이진철이 물었다.

“왜 그랬냐고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제 안에 저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랬는지…… 술만 먹으면 저도 제어가 잘 안 되더라고요.”

“차량 불태워서 보험금 타고, 집 방화해서 아내 죽여 사망보험금 노리는 놈이 정신이 이상하게라도 됐다는 소리야?”

“저도 이건 어디서 들은 건데…… 심신미약이라고 하죠? 제가 솔직히 애 엄마하고 이혼하면서부터 마음이 많이 안 좋았거든요.”

“개소리 마! 이 새끼야!”

이진철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주취에 의한 심신미약! 술 처먹고 사물을 변별한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해졌다는 말이었다.

“네가 어떤 꼼수를 부리는지는 알겠는데…… 집에 불내서 네 마누라랑 장모를 죽인 방화사건이 보험사기로 밝혀지면 넌 끝장이야! 심신미약? 시발 그건 개나 줘 버려라!”

강준은 뻔뻔한 변명을 늘어놓는 조남호를 조사실 밖에서 지켜봤다. 실종된 김서윤을 살려 낼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 벌어질 그의 연쇄살인 행각은 일단 막을 내린 거였다.

“소장님, 검찰에서 조남호를 살인죄뿐만 아니라 보험사기로 기소하기로 했답니다.”

허찬 경사가 사건의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잘됐네요. 저놈은 지능범입니다. 악랄한 강력범죄자이기도 하고요.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요. 계획 살인이고 극단적으로 인명을 경시한 살인이니 꼭 무기징역형이 나와야죠. 아마 판사도 가중처벌할 겁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조남호 사건 이후로 한국의 연쇄살인마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혹자는 연쇄살인마가 없어진 게 아니라 연쇄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붙잡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준은 마지막 연쇄살인마인 조남호가 조사실 밖으로 끌려 나가는 모습을 차가운 눈초리로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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