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 연쇄살인마의 행적 (3) (149/250)


149. 연쇄살인마의 행적 (3)
2022.04.28.


경기 광역수사대.

이진철 경감은 피곤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았다. 간밤에 조남호의 행방을 추적하느라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가죽점퍼는 혈흔 분석을 맡겨놨습니다. 긴급으로 요청했으니 내일 오전이면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잘하면 오후 늦게 나올지도요.”

“방범창은 어떻게 됐나요?”

“박 소장님, 예상이 맞았네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활에서 사용하는 펜치 같은 도구를 사용했을 거라네요.”

“그럼 조남호 자택 화재는 방화로 수사하시는 겁니까?”

“……그것만 가지고 방화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김서윤 씨의 납치가 조남호의 소행으로 밝혀지면 그때 묶어서 수사를 요청해 보겠습니다.”

확실해질 때까지 부담지지 않겠다는 거였다.

“과거 보험기록을 보니 차량 방화로 보험금을 타낸 기록이 있습니다. 분명 이번 화재 건도 기획된 거일 테고요.”

강준의 말에 이진철이 의례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로서는 강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박 소장님, 그건 그렇고…… 실종된 김서윤 말입니다. 이미 사망했겠죠?”

“어쩌면 시신을 찾는 것으로 수사 방향을 바꾸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납치범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피해자를 죽이게 된다. 강준은 연쇄살인마 조남호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거라고 판단했다.

“조남호의 마지막 통화가 평택 시내에서 이뤄졌습니다. 통화대상자는 아들을 데리고 있는 어머니였고요.”

“그럼 조남호는 평택 시내에 있겠네요.”

“어제부터 평택 시내를 빠져나가는 도로에 검문 수색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아직 평택에 있겠죠…….”

“혹시 저수지 인근을 수색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젯밤 강준이 발견한 저수지의 차량에서는 별다른 단서들이 나오지 않았었다. 경찰이 차량 주변도 수색하긴 했지만, 조남호나 그와 동행했던 여자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어젯밤에 저수지를 수색해서 나온 게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에 다시 수사 인력을 쏟아부을 수는 없죠.”

“제 느낌에는 왠지 그곳에 실종된 김서윤의 시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거는요?”

“조남호에게 익숙한 장소일 테니까요…… 그러니 어젯밤 만난 여자도 그곳으로 데려갔겠죠.”

회귀 전 강준이 접했던 조남호의 시신유기 장소가 바로 그 저수지였다. 하지만 그걸로 이진철 경감을 설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박 소장님 추측일 뿐입니다. 그걸로 대대적인 시신 수색을 할 순 없어요. 게다가 피해자가 아직 생존해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생존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는 게 맞겠죠.”

강준도 더는 우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남호를 잡게 되면 연락해 주십시오. 저도 물어볼 게 있거든요.”

“보험사기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수사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준이 나오자 송지희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어제 조남호랑 있었던 여자 찾았대요! 방금 광역수사대 형사들이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출동했고요.”

“거기가 어딘데?”

“인근 공장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나 봐요. 우리도 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형사들이 조사하겠지. 우린, 조남호가 있을 만한 곳으로 간다.”

“거기가 어딘데요?”

“조남호가 계약한 보험설계사!”

사무실에 있는 김준혁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조남호가 계약한 보험설계사는 그의 중학 동창이었다.

* * *

평택 사철탕 식당.

조남호가 개 사육농장을 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중학 동창인 박병태가 보신탕 식당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개고기를 팔 생각으로 시작한 거였다.

“나름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네…… 농장 주변이 개발되면 보상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고 말이야.”

“소장님, 근데 개는 왜 굶겨 죽였을까요?”

“그거야, 천성이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겠지. 성실하게 일해서 돈 버는 건 답답해서 못 했을 테니까. 매일 밥도 주고 물도 주고 개똥도 치워야 한다는 건 예상하지 못했겠지.”

“단지 귀찮다는 이유만으로요……?”

“아내랑 장모도 불태워 죽이는 인간인데 보신탕 재료가 될 개 따위를 신경 쓰지는 않았겠지.”

“알면 알수록 잔인한 인간이네요…….”

조남호가 연쇄살인마라는 걸 모르는 송지희도 점점 그에게 치를 떨어갔다.

“저 사람이 박병태인가?”

“그런가 본데요. 본업은 여기 사철탕 집. 부업이 보험설계사네요.”

“들어가 보자고.”

낮에 들어간 식당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박병태는 메뉴판도 없이 다가왔다.

“수육으로 드실 겁니까? 탕으로 드실 겁니까?”

“저희가 개고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요.”

“……네? 이 사람들이…….”

표정이 일그러지는 박병태였다. 그는 화를 더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듯했다.

“조남호 씨 얘기 좀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네? 남호요……?”

“얼마 전에 생명보험 계약해 주셨죠? 박병태 씨가 직접 상품 권유하셨고, 조남호 씨가 아내 대신 서명했죠?”

“휴…… 아뇨. 남호 와이프가 직접 서명한 겁니다.”

“그건 필적 대조해 보면 드러날 일이고요. 근데 문제는 계약자인 조남호 씨 부인되시는 분이 일주일 전 사망했다는 겁니다.”

순간 박병태의 표정에 변화가 있었다.

“……나…… 난 모르겠고…… 안 먹을 거면 가쇼!”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냥 모른 척하실 겁니까?”

강준은 돌아서려는 박병태의 손목을 잡았다. 놀란 송지희가 강준을 말리려 했지만, 그러기 전에 이미 박병태의 기억이 강준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너 그게 안 걸릴 거 같냐?]

[저번에 자동차 불낸 것도 잘 넘어갔잖아?]

박병태가 하소연하듯 말을 내뱉은 사람은 중학 동창인 조남호였다. 그는 태연하게 박병태에게 보험사기를 제안하는 중이었다.

[인마! 그건 자동차니까 그랬던 거고…….]

[병태야, 나오는 거 딱 절반씩 가른다. 어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의 아내를 죽이는 계획을 말하는 조남호였다. 하지만 자동차 불태워 먹고 보험금 타는 거와는 차원이 다른 범죄였다.

[미안한데…… 난 못 하겠다. 너도 다시 생각해 봐. 계획대로 안 될 확률도 높아!]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 조남호였다. 박병태는 평소 그의 성격이 어떤지 알기에 더는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나 그냥 지금이라도 경찰서 가서 확 다 불어 버린다! 너 보험설계사 앞으로도 해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야…… 알았으니까…… 그건 그만 얘기해.]

[시발! 보험설계사가 보험사기 쳤다고 내가 동네방네 얘기하고 다녀볼까?]

박병태는 과거에 함께 공모했던 자동차 보험사기에 얽혀 조남호에게 발목이 잡혀 버렸다.

[알겠어…… 내가 상품 몇 개 추려서 갈 테니까…… 며칠만 줘라.]

[보험대리점이라는 게 여러 보험사 상품을 다 팔 수 있는 거라며? 최대한 뽑아서 가져와. ……나 그리고…… 이번이 내 인생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거야. 병태야, 너도 잘 알지?]

무거운 말을 내뱉은 조남호가 박병태의 어깨를 두드렸다.

강준은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박병태의 불안한 눈빛을 빤히 쳐다봤다.

“지금 장사 방해하는 겁니까! 보험조사관이면 다냐고? 어? 이거 갑질이야! 갑질!”

송지희가 대신 무마하려고 박병태와 강준의 사이를 막아섰다.

“사장님 그런 게 아니라…… 저희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송지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준이 직접 입을 열었다.

“어젯밤 조남호 씨 차량이 또다시 불탔습니다.”

“그……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이상하지 않나요? 한 사람의 차량이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불탔습니다.”

말문이 막힌 박병태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근데 이번에는 좀 다르더라고요…… 저번에는 보험금을 노린 보험사기였다면 이번에는 살인 증거를 인멸하려는 목적으로 차를 태워 버린 겁니다.”

“남호가 살인을…… 했다고요……?”

지인이라고 해서 그 사람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소의 일상적인 모습 때문에 그 사람이 강력범죄를 저질렀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네, 축협 여직원을 납치해서 살해했습니다. 살해장소는 차량으로 추정됩니다.”

“……아…… 아…….”

굳은 얼굴로 잠시 생각하던 박병태는 한차례 침음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경찰이 남호를 쫓고 있는 겁니까?”

“네. 찾게 되면 긴급체포를 할 겁니다. 보험조사관인 저도 보험사기에 연루된 조남호 씨를 찾고 있는 거고요. 물론 함께 공모한 보험설계사분도 같이요…….”

강준의 말에 절망하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박병태였다.

“조남호 씨가 수원 집에 불을 낸 후에 박병태 씨를 찾아왔었죠? 전화 통화기록 확인해 보면 다 나옵니다.”

“그야…… 사고가 났으니 보상 때문에 전화를 한 거죠…… 통화를 한 건 사실입니다.”

“경찰에서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저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전, 상관없는 사람이라니까요!”

기회를 줬는데도 부인하는 박병태였다. 그는 문제에 부딪히면 일단 회피하고 도망치는 사람이었다.

강준은 다시 그의 팔목을 붙들었다.

“이거 놓으라니까! 시발!”

강준은 그의 기억을 다시 읽었다. 조남호는 오늘 아침 박병태에게 왔었다. 차량이 불탔으니 발이 묶여 버린 그가 박병태에게 원한 건 차를 빌려주는 거였다.

[일주일만 쓰고 돌려줄게.]

[야! 내일 네 차 고치고 바로 돌려줘. 나도 차 없으면 오가는데 불편해서 안 되니까!]

[아…… 새끼가…… 알았다니까! 내일까지 가져올게. 됐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조남호가 차 키를 뺏어가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박병태는 거칠게 운전해 빠져나가는 조남호를 냉랭하게 쳐다봤다.

[친구 한 명 잘 못 둬서 아주 생지랄이네…… 생지랄이야!]

기억을 빠져나온 강준은 자신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는 박병태와 마주했다.

“뭐 하는 거냐니까!”

“이제 당신한테 볼일은 끝났습니다!”

강준은 붙잡은 박병태의 손목을 팽개쳤다. 그리고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제가 시간 낭비하는 걸 제일 싫어하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강준의 핸드폰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이진철 경감님, 지금 조남호, 중학교 동창인 박병태의 차량으로 도주하고 있습니다. 차량 수배부터 해주시죠!”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박병태 씨를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강준의 통화를 들은 박병태가 사색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송지희가 박병태의 뒤에서 그를 막아섰다.

―박 소장님, 그리고 오전에 보낸 혈흔 감정 말입니다. 긴급으로 처리해서 좀 전에 바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됐나요?”

―말씀하신 대로 가죽 재킷에서 혈흔이 발견됐고, 그 혈흔이 실종된 축협 여직원의 DNA와 일치했습니다.

“그럼 이제 납치 살해범 조남호를 잡기만 하면 되겠네요.”

―체포하면 곧바로 연락드리죠. 박 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준은 굳은 얼굴의 박병태를 보고는 냉정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박병태 설계사님은 두 건의 보험사기에 관여되신 겁니다. 한 건은 적극적인 공모 혐의고 두 번째는 범죄 방조 혐의겠네요. 아…… 차량을 빌려주셨으니 살인 용의자의 도주를 도운 죄도 추가되고요!”

“나…… 난 몰랐다니까요! 남호 그 새끼가 사람 죽인 거 정말 몰랐다고요!”

박병태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호소했지만, 강준은 그가 듣길 원하는 말 따위는 해 주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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