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연쇄살인마의 행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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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연쇄살인마의 행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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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연쇄살인마의 행적 (2)
2022.04.27.
송지희는 조남호가 운영하는 개 사육농장에 도착했다.
사육농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외길로 된 흙길이었다. 조남호가 일부러 그런 곳을 고른 것인지는 몰라도 누군가의 차가 진입하면 농장 안의 사람이 반드시 알아차릴 만한 구조였다.
해가 어둑어둑해졌지만, 둘러보기에 시야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커다란 두 동의 비닐하우스, 불투명 차광막으로 뒤덮인 내부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송지희는 컹컹거리는 개들이 철창에 갇힌 걸 내심 상상했었지만, 주변은 조용했다. 이상하게도 개 사육농장에 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여기서 직접 개 도축을 한다고……?’
강준이 알려 준 정보에 따르면 조남호는 이곳에서 불법 개 도축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도축 후의 부산물이나 피가 묻는 기구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조남호의 개 도축농장은 근방에서 개발이 된다고 소문이 난 곳에 있었다. 그는 직장 동료가 기억하는 것처럼 돈에는 잔머리가 빠른 인간이었다.
어쩌면 개 도축농장은 그저 모양새만 갖추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송지희는 비닐하우스 두 곳 중 한 곳에 들어가 전등의 스위치를 찾았다. 다행히 입구 쪽에 불을 켜는 스위치가 만져졌다.
탁!
불이 켜진 비닐하우스 내부는 휑했다. 강준이 말해 줬던 대로 개를 도축할 만한 장소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남호가 여기서 생활했을 것 같은 가재도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냉장고와 침대 매트리스, 소파와 TV.
“여기가 아지트였던 모양이네…….”
송지희가 비닐하우스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진동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네, 소장님! 저 개 농장에 도착해 있어요.”
―조남호가 여자를 납치했다. 혹시 거기 없는지 살펴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여기 납치된 여자가 있다고요?”
―거기에 납치된 여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남호가 여자를 납치한 건 사실이야. 축협 여직원이고 이름은 김서윤!
“살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송지희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 있어요!”
혹시 납치됐다는 김서윤이 여기 있는 건지도 몰랐다. 송지희의 머릿속에는 몸이 결박된 그녀가 어딘가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부스럭!
이번에는 재빨리 소리가 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철창 안에는 죽어 버린 개의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사체를 뜯어먹으려는 쥐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읍…… 우우욱…… 우우우욱!”
송지희는 속에 있던 것들을 바닥에 게워 냈다. 조남호의 개 사육농장에 개소리가 나지 않았던 건 개들이 모두 굶어 죽었기 때문이었다.
개 사체는 모두 뱃가죽이 말라붙어 있는 모습들이었다. 자세히 본 사료통에는 먼지만 남아 있었고, 물통의 물도 언제 채운 것인지도 모르게 말라 있었다.
[지금 조남호는 안산에 있다!]
송지희는 정신을 다잡고 일어나 다시 비닐하우스 주변을 살폈다. 김서윤이 그곳에 없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흔적이라도 찾아야 했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한 채 어둑어둑한 비닐하우스 내부를 샅샅이 뒤지던 송지희는 한쪽 구석의 또 다른 간이침대를 발견했다.
그때, 송지희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그건 간이침대 밑에 떨어진 여자의 머리핀이었다. 장식 없는 고정핀에 불과했지만, 송지희는 그게 뭔지 대번에 알아봤다.
묶음 머리를 고정하는 머리핀. 남자인 조남호가 갖고 있을 이유가 없는 물건이었다.
송지희는 그 머리핀을 조심스럽게 집으려다가 멈칫했다. 보험조사관은 경찰이 아니었다. 무단으로 증거물을 수집했다가는 그저 현장 훼손이 되어 버릴 수 있는 사안이었다.
대신 그녀는 가져온 디지털카메라로 현장 사진을 찍은 후,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강준의 전화였다.
“네, 소장님!”
―거기 혹시 가죽점퍼 있나?
“가죽점퍼요?”
―그래! 가죽점퍼! 아마 김서윤을 납치했을 때, 조남호가 그 옷을 입고 있었을 거거든.
“네, 찾아볼게요!”
송지희는 전화를 끊고는 다시 샅샅이 비닐하우스 내부를 뒤졌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가죽점퍼를 찾을 수 없었다.
‘여기 없는 거겠지…… 집에다 뒀을 수도 있고…….’
하지만 포기하고 나오는 송지희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비닐하우스 밖에 놓인 드럼통. 그건 분명 뭔가를 태울 때 쓰던 것처럼 안쪽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드럼통 안에는 아직 불태우지 않은 잡다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나무 조각과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아무렇게나 뭉쳐진 옷가지. 송지희는 드럼통을 뒤집어 옷가지들을 살폈다. 그리고 다행히 강준이 말했던 가죽점퍼를 발견했다.
엄연히 말하자면 그건 소가죽이 아니라 인공피혁인 레자 원단으로 만든 점퍼였다.
송지희는 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찾았습니다. 브라운 색깔의 가죽점퍼 맞죠?”
―어. 맞아! 그거 챙겨서 와라.
“지금 어디 계세요? 아직 명성관에 계세요?”
―아니. 나 지금 명성관 앞에 있는 포장마차 앞이다. 조남호가 여자 한 명을 꼬셔서 같이 나왔네. 빨리 이리로 와라! 내가 보니까 여자가 술에 취했거든 조만간 조남호가 다른 데로 데리고 갈 것 같다…….
“알겠어요. 포장마차 이름하고 주소 문자로 보내 줘요!”
송지희는 김서윤 같은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아직 조남호가 연쇄살인마라는 걸 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만을 확신했다.
* * *
안산 명성관 앞 포장마차.
늦가을의 찬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조남호는 명성관에서 만난 여자에게 연신 술잔을 권하고 있었다. 처음엔 경계심이 있었을 것 같던 여자도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긴 머리카락이 테이블 밑으로 축 늘어지며 여자는 뻗어 버렸다.
“이제 슬슬 본색을 드러낼 땐가?”
조남호는 여자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술값을 계산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여자의 팔을 어깨에 걸친 후, 주차장으로 향했다.
송지희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강준은 결정해야 했다. 혼자 조남호를 따라가든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여자를 태우는 걸 막던지.
“에라…… 모르겠다!”
강준은 휘청거리는 여자를 차에 억지로 태우려는 조남호에게 다가갔다.
“저기 잠깐만요.”
“……네?”
조남호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강준을 돌아봤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집에 가야죠! 집에!”
강준은 여자의 어깨를 흔들면서 깨우려 했다.
“제가 일행인데…… 지금 집에 데려다주려는 거거든요.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염려 말고 저한테 맡겨 주시죠?”
침착하고 부드러운 어투였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분명 넘어가기 쉬웠을 터였다. 하지만 강준은 그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김서윤 씨 만나셨죠?”
“네……? 누구요?”
조남호는 축협 여직원이었던 김서윤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말은 상대도 안면이 있는 상태에서 만난 게 아니라 낯선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납치당했다는 얘기였다.
“축협 여직원이요. 당신이 납치한 김서윤! 지금 어딨어?”
강준이 한발 앞으로 다가선 순간 눈앞에 번쩍이는 뭔가가 스쳤다.
뻑!
그리고 한동안 강준은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있는 건 송지희였다.
“소장님! 소장님, 정신 차리세요!”
뺨을 ‘탁탁’ 때리는 송지희와 눈이 마주친 강준은 벌떡 일어났다.
“고만 때려! 아파!”
“누구한테 얻어터지신 거예요?”
“……글쎄…… 내 기억엔 조남호 같은데?”
짠맛이 나는 입술을 한번 훔친 강준은 이미 조남호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여기 그랜저 혹시 못 봤어?”
“제가 왔을 땐 못 봤어요.”
“……젠장……!”
“경찰에 연락할까요?”
송지희는 얼른 이진철 경감에게 전화를 걸고는 조남호의 차량 추적을 요청했다. 한시름 돌린 강준이 입을 열었다.
“가죽점퍼는 가져왔지?”
“네, 그럼요!”
“잘했어.”
강준은 잠시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대고는 생각에 잠겼다. 한 대 얻어맞던 순간에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저수지……!”
“네?”
“송 실장, 이 근방에 저수지가 있을 거야! 그쪽으로 가 봐야 해!”
“거기가 어디인데요?”
“그건…… 내비게이션에 찍어 보자고!”
차량 내비게이션이 보편화되던 시절이었다. 안산과 평택 사이의 저수지를 검색한다면 조남호의 기억에서 봤던 저수지를 찾을 확률이 높았다.
“소장님, 여기서 평택까지 30km 정도 되는데 근방에 저수지가 10여 개가 넘어요!”
생각보다 저수지가 많았다. 급박한 상황에서 그 많은 저수지를 일일이 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남호 평택 본가에서 제일 가까운 저수지가 어디야?”
“……송월저수지요!”
“거기로 간다!”
“소장님, 정말 거기가 맞는 거예요?”
“범인은 원래 자기가 제일 익숙한 곳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마련이거든.”
송지희는 그 말에 바로 수긍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는 문제였다. 범인이 교과서처럼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저수지 쪽으로 묵묵히 차를 몰던 송지희가 침묵을 깨고 강준에게 입을 열었다.
“정말 조남호가 여자를 납치하고 살해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당사자의 기억을 읽은 거니 강준에게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조남호의 의식이 본인도 모르게 비틀린 게 아니라면!
“난 그렇게 확신하는데 경찰 쪽에서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 심증만 가지고 수사를 하지는 않을 테니…….”
“소장님, 제가 찍은 사진 한번 보세요.”
“무슨 사진……?”
송지희는 비닐하우스에서 찍었던 간이침대 옆에 머리핀 사진을 내밀었다.
“오! 이거면 조남호를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겠는데! 역시 우리 송 실장이 또 한 건 해내는군!”
“그럼요! 저도 보험조사팀에 합류한 지 몇 년이 지났으니까요…….”
차량이 저수지 입구로 향하는 흙길로 접어들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강준의 엉덩이도 들썩였다.
“저기 저 차! 조남호의 차량이 맞죠?”
“어? 그러네!”
근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었다. 창문 안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오는 거였다. 송지희가 차를 근접시켰을 때 새어 나오는 빛이 차량 시트가 타고 있는 불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조남호와 함께 있는 여자도, 조남호도 그곳에 없었다. 다만, 불타는 차량이 있을 뿐이었다.
“소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둘이 차량에서 내리자 조남호의 차량에서 더 거세게 불꽃이 솟았다. 잘못하다간 곧 폭발할 것 같았다.
“방화야…… 전에도 차량을 불태우고 보험금을 지급받은 적이 있거든…… 같은 수법이지.”
“그럼 이번에도 보상금 때문에 이런 거라고요?”
“아니, 이번에는 달라! 아까 내가 김서윤을 찾으며 추궁했으니 날 경찰로 착각했을 거라고…… 그럼, 이 방화는 김서윤의 흔적을 지우려는 목적이야!”
화르르륵! 화르륵!
차량의 보넷에서 큰 불길이 옮겨 붙었다. 강준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온종일 쫓아다녔는데…… 조남호도…… 같이 있던 여자도 결국 놓쳐 버렸네……!”
강준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이제는 경찰의 공권력을 빌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