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 연쇄살인마의 행적 (1) (147/250)


147. 연쇄살인마의 행적 (1)
2022.04.26.


화재 현장에 도착한 강준은 아직 창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방범창을 살폈다. 회귀 전 기억대로 방범창의 아래쪽 나사 두 곳은 억지로 파손된 상태였다.

하지만 발로 차서 휘어진 건지 아니면 그 전에 조남호가 일부러 파손시켰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경감님, 국과수에 감식요청 하나 합니다.”

―혹시 뭐 건지셨나요?

“조남호가 뚫고 나온 방범창 말입니다……. 나사가 파손되어 있었습니다. 감식 결과를 보면 어떻게 파손했는지 나올 겁니다. 정말 발로 차서 파손된 건지 아니면 다른 도구를 사용한 건지를요.”

―알겠습니다! 제가 의뢰해 두겠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는 강준과는 다르게 송지희는 조남호의 보험사기를 확신하지 못했다. 주변 이웃들을 탐문해 본 결과가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그분 성격 좋아 보이시던데?]

[에이 그럴 만한 분 아니세요. 부인한테도 얼마나 다정했었는데요.]

[얘기는 많이 안 해 봤지만, 부부 금실이 좋아 보였어요. 다투는 소리도 전혀 못 들었고요.]

송지희는 이번에는 강준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부인을 불에 태워 죽일 만큼 조남호는 악랄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장님, 근처 주변인들 탐문해 봤는데요…… 평판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데요?”

“요즘 이웃들하고 관계가 예전 같지 않잖아? 서로 최대한 관여 안 하고 살려는 사람들인데 속사정까지 알긴 힘들겠지.”

단박에 반박하는 강준에게 오기가 생긴 송지희였다.

“탐문을 더 해 봐야겠어요.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직장 동료들까지요.”

“직장은 오래전에 그만뒀어.”

“네? 그럼 뭐로 먹고살았던 거예요?”

“직장에서 작은 횡령 건에 연루되어서 퇴직했고, 그다음에는 영업직, 그러다 화물트럭을 몰았고…… 마지막엔 개 사육농장.”

줄줄 읊어대는 강준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송지희였다.

“뭘 그렇게 봐?”

“그 정보 어디서 얻은 거예요?”

사건에 대해 깜깜히 모르는 상태에서 쓸데없이 자신을 뺑뺑이 굴리지 말라는 얘기였다.

“……아, 이거? 나도 이 경감한테 얻은 정보야.”

강준은 회귀 전 들었던 조남호에 관한 얘기였다는 걸 말해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강준도 건네 들은 정보일 뿐이었다. 직접 그를 대면해 봐야 했다.

“소장님, 다음번에는 정보공유 좀 미리 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제대로 탐문 조사를 하죠.”

“오케이! 앞으로는 우리 송 실장과의 공조에도 유의하도록 하지. 근데 말이야. 지금 조남호는 어디 있을까?”

“아마 본가에 있지 않겠어요? 집은 불타 버렸고 아내와 장모가 숨졌으니까요…… 갈 데는 거기밖에 없겠죠.”

“그럼 가 보자고!”

강준은 차 키를 송지희에게 던졌다.

“소장님, 운전 제가 해요?”

“그럼 내가 하리? 송 실장 부탁해!”

떨떠름한 표정으로 운전석에 앉는 송지희였다. 사무실을 독립한 후 은근슬쩍 김준혁에게 향하던 그녀의 잔소리가 점점 강준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강준은 타자마자 라디오의 볼륨을 한껏 키웠다.

“평택으로 고고!”

* * *

평택 시내 커피숍.

“남호 걔가 여자를 무척 좋아하긴 했지…….”

송지희가 탐문한 이웃 사람들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녀의 앞에 앉은 이는 조남호의 옛 직장 동료였다.

강준은 평택 시내로 들어오자마자 조남호가 예전에 일하던 공장으로 먼저 찾아갔다. 그는 조남호의 횡령 건에 연루된 인물이었다. 강준은 일부러 그런 그부터 찾아온 거였다.

제일 약한 고리부터 조사한다! 강준이 경찰이었던 전생에서 가졌던 수사의 제1원칙이었다.

“정말 이번 결혼이 4번째라고요?”

“그렇다니까요. 아마 지금도 부인 말고 애인이 따로 있을걸?”

송지희는 직장 동료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로 보아 조남호의 직장 내 인간관계가 어땠는지 대충 짐작이 됐다.

“근데 걔가 또 나름대로 돈 버는 머리 쪽으로는 비상하거든.”

“횡령 건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하아…….”

긴 한숨을 내뱉는 남자였다. 강준은 그의 한숨에 호응하듯 되물었다.

“뭔가 사연이 있나 보네요?”

“우리가 실리콘을 배합해서 납품하는 회사거든요. 근데 이놈이 글쎄 남들 몰래 배합한 걸 빼돌려서 다른 데 팔아먹었더라고요. 그놈이 모르는 게 있었는데…… 이 바닥이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좁은 바닥이거든요.”

“딱 걸렸겠군요.”

“대번에 사장님께 걸렸죠. 아니 근데 그 자식이 내가 배합한 걸 자기는 팔기만 했다는 거예요! 아휴! 그때 생각하면 아주 치가 떨리네요. 치가!”

조남호는 영악하지만, 머리가 그다지 좋지는 못한 인간이었다.

‘하긴 정말 머리가 좋았다면 보험사기 따위를 저지르지도 않았겠지……!’

“아! 보험사기 때문에 오셨다니까 갑자기 생각난 게 하나 있네요.”

“그게 뭡니까? 기억나는 건 뭐든 부탁드립니다.”

“자기가 차를 사고 내서 보험금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새로 차를 샀는데 그게 그랜저였죠. 자식이 허세는 있어서…… 쯧!”

“일부러 사고를 내서 보험금을 받았다는 거군요.”

“자세한 건 나도 모르는데…… 뭐, 일하다 보면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는 법이니까…….”

조남호의 보험사기 행각은 이전의 작은 차 사고로부터 점점 발전되어 온 거였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조남호의 보험사기 범죄는 점점 스케일을 키워 오면서 결국은 살인에까지 이르게 된 거였다.

“조남호가 혹시 지금 와이프분 얘기도 했었나요?”

“그건 나도 모르죠. 여자가 워낙 많았으니까…… 그런 속내까지 말할 정도로 친하지는 않았고요.”

“그렇군요.”

강준은 더는 남자에게 묻지 않았다. 그의 기억을 이미 읽었지만, 그가 조남호에 대해서 숨기고 있는 건 더 이상 없었다.

“맞다! 조남호 그놈이 여자를 만나고 다닌 곳이 어딘지 알고 있어요.”

“거기가 어딥니까?”

“명성관! 안산의 유명한 나이트클럽이죠.”

“참고가 되겠네요.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준에게 송지희가 속삭였다.

“직접 만나 보는 게 빠르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조남호가 우리한테 보험사기를 털어놓겠어? 이미 경찰 조사에서 얘기한 게 있으니 거기에서 한 발짝도 더 안 나갈 거라고…….”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두 가지야. 조남호가 운영하는 개 사육농장에 가 보거나 아니면…….”

“아니면요?”

“아까 그분이 얘기한 나이트클럽 명성관……!”

“네? 소장님, 본인 아내가 죽은 지 일주일도 안 지났어요. 근데 나이트클럽에 출몰한다고요?”

조남호는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던 인물이었다. 강준은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범죄자를 용어 하나로 퉁쳐 버리는 거 같아서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를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단어였다.

사이코패스가 타인에 대한 동정심.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거라면 조남호는 아내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나이트클럽에 갔을 수도 있었다.

“만약 조남호를 거기서 못 보더라도 그를 아는 웨이터라도 볼 수 있을 거 아니야?”

“소장님, 그럼 이렇게 해요. 전 개 사육농장으로 가 볼게요. 그리고 거기서 조남호가 없다면 저도 나이트클럽으로 따라갈게요.”

“……괜찮겠어?”

조남호는 연쇄살인마였다. 송지희 정도를 제압하는 건 그에게 별거 아닌 문제였다.

“당연히 괜찮죠. 저 개 안 무서워해요.”

“안 무서워하는 거 알겠는데…… 송 실장이 명성관으로 가 봐. 이건 소장으로서 명령이야. 내가 개 사육농장으로 가 볼 테니까.”

“소장님 저 진짜 괜찮은데…….”

“두 번 말 안 한다. 얼른 움직이자고!”

송지희가 강준이 걸어가는 걸 막아섰다.

“소장님, 저도 엄연한 보험조사관이에요. 누구한테 부담 주고 폐 끼치고 그런 사람 되고 싶지 않네요. 소장님도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절 대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조남호의 살인 행각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송지희를 보내도 되긴 하지만, 혹시나 단둘이 마주쳤을 때 조남호가 강간을 시도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나도 한마디만 당부하자. 네가 딱 봐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요?”

“재빨리 튄다!”

“네……?”

“우린 경찰도 아니고 긴급체포권도 없어. 게다가 다치면 국가에서 보상해 주는 것도 아니지. 그러니까 괜히 맞서지 말고 일단 튀라는 거야.”

송지희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이 차 끌고 가. 개 사육농장이니 차 없으면 못 갈 곳이니까.”

“네, 그럼 현장에서 보고드릴게요!”

강준은 송지희가 떠난 후,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님, 안산 명성관으로 가 주세요.”

* * *

황당하게도 조남호는 그곳에 있었다. 아내가 죽은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말이었다.

“이거 제가 말한 거 아닙니다.”

“알죠. 내 애인을 꼬신 놈이라 면상 한번 보려고 한 겁니다.”

만 원짜리 세 장에 넘어온 웨이터였다. 그는 이게 웬 떡이냐며 돈을 주머니에 얼른 넣으면서도 얄팍한 직업의식이라도 발휘하려는 듯 연신 보안을 당부했다.

“걱정하지 마요. 여기서 소란 부릴 일 없으니까요.”

“저기…… 11번 룸입니다.”

강준은 망설임 없이 11번 룸으로 걸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안에는 웨이터가 말했던 대로 조남호와 낯선 여자가 시시덕거리며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뭐예요?”

조남호가 번뜩이는 눈으로 강준을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방을 헷갈렸네요…….”

그리고 짧은 순간에 여자의 얼굴을 스캔했다. 이진철이 주목하는 사건인 축협 여직원 실종사건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이진철은 해당 사건에 대해 함구했지만, 강준은 이미 이진철의 기억에서 축협 여직원 사건의 프로파일링 자료를 읽은 상태였다.

‘분명히 아직 조남호의 살인 행각이 본격화되진 않았을 무렵인데…… 뭔가 불길하군!’

회귀 전 경찰에 검거됐던 조남호의 살인 행각에서 축협 여직원에 대한 부분은 분명 없었다.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을까? 강준은 조남호를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준은 스테이지의 구석에서 조남호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리 룸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화장실을 갈 터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 때, 조남호가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강준은 손에 쥔 맥주병을 한번 들이켜고는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그에게 걸어갔다.

조남호도 그런 강준을 의식했는지 벽에 바짝 붙어 걸었다. 하지만 의도를 가진 강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이 시발! 진짜 재수 없으려니까!”

강준은 쓰러지는 척 그의 발밑에 맥주를 쏟았다. 자연스럽게 그의 바짓가랑이를 털면서 그의 기억을 읽어 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자, 그리고 뒤로 묶인 손.

조남호의 기억에 등장한 여자는 이진철의 프로파일링 자료에서 봤던 축협 여직원이었다.

[……흑흑…… 살려 줘요…….]

[안 죽여. 염려 마…… 근데 난 솔직히 너랑 정말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하거든.]

[아저씨 왜 이러세요…… 저 좀 집에 보내 주세요! 네……?]

[실망이네, 난 우리가 진심으로 뭔가 더 소통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알지? 나 그리 나쁜 사람 아니라는 거?]

여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조금만 참자! 나 밖에 좀 다녀올 때까지…….]

조남호는 여자의 입에 양말을 물리고는 청테이프를 붙였다. 의자에 앉은 여자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조남호를 쳐다봤지만, 이내 문이 쾅 하고 닫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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