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 독립 사무소 개업 (2) (146/250)


146. 독립 사무소 개업 (2)
2022.04.25.


을지로 인쇄 골목 박강준 SIU사무소.

김준혁은 아까 전부터 간판업자와 실랑이 중이었다.

“사장님, 전기가 안 들어온다고요?”

“여기 관리하는 분 없어요? 옥상 분배기에서 선을 따와야 할 거 같은데…….”

“건물주분이 직접 관리하시는데, 오늘 안 나오셔서요!”

“에이…… 그럼 나가리인데…….”

하지만 잠시 후 송지희가 방법을 찾았다.

“계속 그러고만 있을 거예요. 다들 올라와요!”

닫힌 옥상 문을 열쇠공을 직접 불러 열어 버린 거였다.

“지희 씨, 이거 건물주가 알면 안 될 텐데……. 이러다 우리 쫓겨나는 거 아니에요?”

“간판 다는 건 이미 허락을 받은 일이에요. 문은 다시 원상복구 시켜 놓으면 되는 거고요!”

송지희는 답답하다는 듯 김준혁을 한번 쳐다보고는 간판업자를 채근했다.

그 와중에 사무실 책상에서 몇 시간째 앉아 있던 강준은 국내 선물회사를 통해 해외선물 계좌를 만들고 있었다. 선물 계좌를 통해 일본 니케이 지수에 직접 투자할 계획이었다.

“자…… 보자. 20억 중에 절반은 사무실 운영자금으로 놔두고 나머지 절반인 10억을 증거금으로 넣으면? 음…… 증거금 비율이 10%니까 100억을 운용할 수 있다는 거네.”

2011년 3월 니케이 지수는 –22.56%까지 폭락한다. 이론적으로 강준이 니케이 지수선물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은 22억 5천 6백만 원이었다.

“딱딱 맞춰서 사고팔 수 없으니까 목표는 20억으로 잡자!”

결론이 나오자 강준은 깍지를 끼고는 뒤로 기지개를 켰다. 하지만 어느새 강준의 모니터를 보고 있는 김준혁과 눈이 마주쳤다.

“어흐흑! 김준혁 언제 온 거냐?”

“소장님, 간판 다 달았습니다. 근데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뭐 하긴? 앞으로의 거시경제에 대해 살펴보고 있었지.”

“근무시간에 주식투자 하신 거 아니고요?”

“험험…… 뭐 그러면 안 되는 거냐?”

“됩니다. 돼요. 근데 지금 몇 주일째 일거리 하나도 없는 거 아시죠? 성원화재에서 준 몇 가지 뻔한 사건들 빼고는 없어요.”

잔소리가 부쩍 많아진 김준혁이었다.

“안 그래도 오늘 이진철 경감이 오기로 했으니까 뭐라도 맡은 사건이 있나 물어보자고!”

“이 경감님이요?”

“그래, 이제 광역수사대에서 꽤 자리를 잡았다니까.”

“오! 그러게요. 특수경제과에 계속 계시는 건지 궁금하네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찾아온다고 책상 위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진철의 전화였다.

“경감님, 광희빌딩 2층입니다!”

잠시 뒤, 찾아온 이진철은 커다란 화분을 안고 왔다.

“뭘 이런 걸…… 다!”

강준은 화분을 얼른 받아들고는 함께 온 시사뉴스닷컴의 함지훈 기자와도 인사를 나눴다.

“전, 이걸 개업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오! 이탈리아산 에스프레소 머신이네요!”

당시만 해도 에스프레소 머신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던 때였다.

“이걸 어디에서 구하셨습니까?”

“박 소장님이 커피 좋아하시는 걸 아니까요. 이제 담배는 끊으시고요.”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하하!”

큰 테이블에 모여 앉은 사무실 직원들과 이진철 경감, 그리고 함 기자 사이에서는 덕담이 오가고 자연스럽게 근간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화제로 옮겨갔다.

“함 기자님은 번암지구 게이트로 확실히 언론계에서 눈도장을 찍으신 거 같습니다. 시사뉴스닷컴을 함 기자님이 먹여 살린다는 얘기도 들리던데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후원이 는 건 엄연한 사실이죠. 하하!”

“다행입니다. 그런 이제는 좀 더 편하게 취재하실 수 있겠습니다.”

“에이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얼굴이 팔려서 취재가 더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요즘엔 제보 들어오는 거에 더 많이 의지하는 상황이죠.”

그 얘기를 듣던 김준혁이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소장님! 저희도 제보를 받아보는 게 어떨까요? 보험사기가 의심된다거나 혹은 보험사에 부당하게 보험금을 지급 못 받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준혁 씨, 아니 김 실장님. 그게 돈이 될까요? 우리 이제 대기업 보험사가 아니라고요.”

현실을 말하는 송지희였다. 강준은 더는 직원들을 맘 졸이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간 당신들한테 말을 안 했는데…… 실은 내 통장에 지금 10억이 있어…… 그러니까 당분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강준은 천연덕스럽게 김준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에? 소장님 통장에 10억 원이나 있다고요?”

“어, 있어. 직접 보여 주랴?”

“그거 어디서 저희 모르게 뇌물 먹은 거 아닙니까?”

딱!

강준은 김준혁의 뒤통수를 살짝 때렸다.

“어허! 믿음 소망 사람 그중에 제일은 믿음 이랬거늘! 넌 어찌 나를 못 믿는 거냐? 몇 년 전 금융위기 때 선물로 돈 딴 거다. 못 믿겠으면 성원증권의 이삼 이사한테 물어보던지.”

당시 강준은 성원증권의 계좌를 통해 선물투자를 했었고, 경이적인 투자 수익률을 얻은 강준에게 이삼이 직접 연락해 왔었다.

하지만 당시에 강준은 자신의 투자수익을 철저히 비밀로 해 달라고 당부했었다. 회사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물어봅니다!”

“어, 괜찮아. 어차피 이제는 뭐 성원그룹에서 퇴사한 몸이니 상관없지.”

놀란 김준혁과는 달리 송지희의 얼굴에서는 화색이 돌았다.

“잘됐네요. 소장님! 이제 저희 진짜 돈 걱정 안 하고 조사하고 싶은 사건 맘껏 맡아도 되죠?”

“어…… 어, 그렇긴 한데…… 일단 먹고 생각하자!”

“네?”

“너희 고기 좋아하잖냐? 모였는데 한잔해야지!”

“소장님, 그럼 우리 소고기 먹는 거예요?”

송지희가 간만에 적극적으로 나왔다.

“아니 삼겹살에 소주!”

“왜요?”

“왜긴 왜야? 아껴 써야지. 10억이 큰돈이니? 몇 달 쓰다 보면 금방이다.”

이진철과 함지훈은 부럽다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박 소장님네는 팀웍이 워낙 좋아서 사무실도 번창할 겁니다.”

“부럽습니다! 기자 안 하고 저도 보험조사관을 하고 싶네요. 하하!”

* * *

수원의 한 다세대 주택.

내부에서 불길이 솟았고, 곧이어 검은 연기가 창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리고 한 남자가 방범창을 발로 차고는 자신의 어린 아들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왔다.

남자는 얼른 아들을 피신시킨 뒤, 불타고 있는 자신의 집을 바라봤다.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손에 쥐고는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119에 신고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마치 불길이 더 타오르기를 기다리는 듯 남자는 침착하고 냉정하게 화재 현장을 지켜봤다.

안에서 사람이 빠져나오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 광경을 즐기는 듯 희미한 미소마저 입가에 띠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마 조남호였다.

조남호는 집 내부가 유독가스로 꽉 채워졌다고 생각했을 때, 핸드폰의 폴더를 열어 119 버튼을 눌렀다.

“소방서죠! 빨리 와주세요! 여기 불났습니다……!”

신고 전화를 마친 조남호는 바닥에 쭈그려 앉은 자신의 어린 아들을 바라봤다. 아들도 울음이 터질듯한 눈동자로 남자를 바라보고 물었다.

“아빠…… 새엄마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 새엄마는 또 구하면 되지!”

조남호는 아이는 안중에도 없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가 내뱉은 담배 연기가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화재 현장과 묘하게 대비됐다.

* * *

며칠 후, 경기 광역수사대.

이진철 경감의 의뢰로 강준은 송지희와 함께 광역수사대 본부에 도착했다.

“박 소장님, 이건 분명 보험사기가 맞는 거 같은데…… 증거를 잡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이진철 경감은 서울 광역수사대 소속이긴 했지만,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사건 때문에 다른 지방경찰청 산하의 광역수사대에 파견을 나와 있었다.

해당 사건은 화재 원인에 대한 국과수 결과가 방화로 판명되지 않았다. 그러자 보험사기를 의심했던 이진철이 강준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였다.

“화재감식반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그게…… 가스레인지에 올려져 있던 냄비에서 발화가 시작된 거라 고의성이 있다고 보기엔 힘들 거랍니다.”

“사망자는 몇 명인가요?”

“모녀관계인 여성 두 명이 질식으로 숨졌습니다. 함께 있던 남자는 딸의 남편인데 방범창을 뚫고 탈출했습니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데리고요.”

강준은 이진철이 직접 작성한 조서를 살펴보다 조남호의 이름을 발견했다.

‘연쇄살인마 조남호……!’

아내와 장모의 방화 살인을 시작으로 경기 남부 일대에서 10여 명을 살해한 잔혹한 연쇄살인마였다. 강준은 잠시 충격을 받긴 했지만, 이내 어쩌면 그의 연쇄살인 행각을 조기에 멈출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번 방화사건으로 조남호를 감방에 집어넣는다면 이후에 발생할 살인 피해자들도 없을 거다!’

“이 경감님, 방범창은 확인해 보셨나요?”

“현장에서 말인가요?”

“네.”

“현장에서 사망한 시신을 확인하기까지는 했습니다만…… 이미 파손된 방범창에 대해서는 자세히 못 봤습니다. 박 소장님 뭐 짚이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보험사기를 계획한 거라면 분명 자기는 빠져나올 수 있는 장치들을 해 뒀을 겁니다.”

이진철은 팔짱을 끼고는 강준에게 되물었다.

“그럼 힘으로 빠져나온 게 아니란 말씀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방범창을 뜯는 게 그냥 발로 몇 번 찬다고 될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다세대 주택에 오래된 방범창은 쉽게 절도범들이 파손하고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았던 거고요.”

“그렇군요…… 하지만 제가 한번 다시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강준은 조남호 사건에서 그가 방범창의 고정 나사를 미리 빼 뒀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좋습니다. 현장에 미리 연락해 두겠습니다. 근데 소장님…….”

잠시 뜸을 들이는 이진철이었다.

“사건의뢰 비용 때문에 그러신가요?”

“네, 이제 소장님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움직이실 수는 없잖습니까?”

“저희가 조만간 홈페이지를 만들 겁니다. 거기서 사건의뢰를 받을 생각이죠.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 나면 광역수사대의 자문위원으로 들어갔으면 하는데, 혹시 힘 좀 써 주시겠습니까?”

비용 몇 푼보다는 경찰의 공식 자문위원이라는 명함이 더 값어치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실전이었다.

‘김준혁이 웹사이트를 만든다고 했는데 잘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간 언론에 노출되었던 강준의 인지도와 경찰 자문위원이라는 신뢰도, 그리고 성원그룹의 후원이라면 얼추 사무실 굴리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 싶었다.

“저도 공무원 신분이라 된다는 말씀은 지금 못 드리지만, 위에다 건의는 꼭 드려 보겠습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좌우간 저희는 현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네, 저희는 사건 조사를 계속하고 있으니까 계속 정보공유를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말입니다…… 아, 아닙니다. 그럼 수고해 주십시오!”

이진철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삼켰다.

그가 강준에게 다 말하지 않은 뭔가가 있었다. 그건 얼마 전 발생한 축협 여직원 실종사건이 조남호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거였다. 하지만 아직 추측에 불과했다.

이진철 경감은 일단 보험사기로 조남호를 구속한 다음, 나머지 여죄를 캐물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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