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공사장 추락 사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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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공사장 추락 사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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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공사장 추락 사고 (5)
2022.04.22.
한식당 다인.
윤재구가 키에 비해 비대한 몸집을 흔들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 윤재구를 이종도 대표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이종도는 자고로 품격이란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이종도에게 윤재구는 남들에게 짐짓 무례한 말과 행동을 해 대는 그야말로 안하무인인 사람이었다.
단지, 윤미경이라는 5촌 혈육의 빽이 있다는 것뿐.
“……오늘도 늦으셨네요.”
“요즘 하도 신경 쓰이게 하는 일들이 많아서 말이죠. 하하! 감독관님 잘 계셨죠?”
껄끄러운 상대를 대하기 싫다는 듯 만만한 감독관 쪽으로 몸을 돌려 인사하는 윤재구였다.
“네, 별일 없습니다. 윤 대표님이 워낙 잘해 주시니까 저로서는 할 일이 없는 거죠. 하하!”
윤재구의 손을 맞잡은 석재곤 감독관의 팔목에서 다이아가 박힌 드레스 시계가 번쩍였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고 했던가? 과한 화려함을 뽐내는 명품 시계는 석재곤의 투박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본인만 모르고 있는듯했다.
“일단 다 모였으니 식사 내오라고 하겠습니다.”
“뭐, 그렇게 하시죠. 참! 정종도 한 병 부탁드리고요.”
“네.”
원래는 하청업자인 윤재구가 해야 할 일을 본인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종도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동년배나 다름없었지만, 둘은 살아온 길이 완전히 달랐다.
“윤 대표님 오시기 전에 석 감독관님과 미리 얘기 나눴습니다만 최종욱 씨 사건을 경찰에서 다시 수사한다는 얘기가 들려서요…….”
“그거 어차피 시신도 화장했는데 무슨 수로 뒤집는다는 거예요? 그냥 경찰도 박강준인가 하는 그 보험조사관이 설치고 다니니까 움직이는 척하는 거뿐이라고요!”
석재곤 감독관은 걱정하는 이종도와는 달리 여유가 넘쳤다.
“하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제가 경찰 쪽 생리는 잘 몰라서 뭐라 확답은 못 드리지만 원래 시신이 있어야 부검을 하든 뭘 하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대표님께서 너무 걱정이 많으신 듯합니다.”
윤재구는 석 감독관의 말에 흐뭇하게 웃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니까요… 이래서 월급 사장은 안 된다니까…….”
대놓고 조롱하는 윤재구에게 이종도는 이를 으득 갈았다.
‘돼지 새끼… 누가 먼저 고꾸라지나 보자……!’
“윤 대표님, 근데 직원들 월급은 도대체 왜 밀리시는 겁니까?”
“그건 또 어디서 주워들었어요? 뭐 우리 회사에 스파이라도 심어 놓은 겁니까?”
“원청인 제가 왜 그걸 모르겠어요! 임금 밀린 명성정공 인부들이 우리한테까지 와서 항의하는데!”
“그놈들 말을 그대로 믿어요? 맨날 투덜거리고 생떼를 쓰는 게 일인 놈들인데!”
가재는 게 편이라고 했던가? 목소리를 높이는 윤재구 앞에서 건설사 사장인 이종도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왜들 그러십니까? 한 잔씩 드시고 즐겁게 식사합시다!”
석재곤은 매사 부화뇌동하며 그저 대접받는 감독관이라는 자기 위치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가 공무원 청렴 서약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참! 이 대표님, 다음 달부터 리안건설 현장이 이제 본격적으로 많아지겠네요?”
“진즉에 났어야 할 허가가 이제야 났네요.”
“그래도 리안건설이 시공으로는 국내 최고 아닙니까? 첫 삽 뜨고 나면 또 금세 뚝딱 올라가겠지요!”
“감독관님이 많이 도와주십시오.”
옆에 앉은 윤재구가 또 밉살스럽게 끼어들었다.
“하여간 어딜 가나 방해꾼들은 꼭 있습니다!”
“설마 저희 들으라고 그러시는 건 아니시겠죠? 하하!”
“감독관님 말고 있습니다. 사사건건 시비 거는 인간들요……!”
이제 슬슬 자신이 늦은 이유를 털어놔야 할 때가 됐다. 아까 낮에 고용노동부 연남지점에서 또 다른 감독관인 김민석이 회사로 찾아왔었다는 얘기 말이었다.
물론 강대희 이사가 그를 알아서 잘 삶아 구웠겠지만, 그래도 같은 감독관인 석재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같은 관청에서 엇박자가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독관님…… 혹시 김민석이라고 아십니까? 같은 연남지점에 근무한다고 하던 데요?”
“네? 김민석이요? 당연히 알죠. 저보다 2년 후배입니다.”
표정이 싹 바뀌는 석재곤이었다. 그간의 온화했던 표정 따위는 온데간데없었다.
“실은 아까 말입니다… 김민석 감독관이 저희 사업장을 찾아왔습니다.”
“네? 아니! 자기 담당이 아닐 텐데…… 왜 거기에 갔답니까?”
“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길래 저희 강 이사를 붙여서 설명하게 했습니다.”
“잠시만요! 무슨 소리를 했다는 겁니까? 자세히 좀 말씀해 주시죠!”
자기 관할의 사업장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곧장 징계감이었다. 석재곤 감독관이 민감해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누가 불량 자재를 썼다나 뭐라나…… 하여간 석 감독관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
윤재구는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했지만, 본인 목숨이 달린 석재곤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윤 대표님, 불량 자재 어떤 거 말입니까? 혹시 강관 파이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발 받침대나 연결 부품이 문제가 된 겁니까?”
“아니…… 강관 파이프를 중국에서 수입했다는 걸 걸고넘어지니까…… 솔직히 말해서 중국산 안 쓰는 현장이 요즘 있습니까? 우리만 딱 짚고 넘어지니까 정말 뭐라도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되더라고요!”
구석에 몰렸을 땐 오히려 역정을 내는 게 윤재구의 특징이었다. 이종도는 대번에 그런 윤재구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무슨 일이 터지긴 터졌다고 생각했다.
그때, 복도에서 거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한식당 다인은 홀이 복도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어서 내밀한 얘기를 나누기엔 최적이었다. 근데 소란이라니…… 평소에 이종도가 그곳에서 듣지 못했던 소음이었다.
드르르륵! 탕!
미닫이문이 거칠게 열렸고, 작업반장 이호석과 그 뒤로 서너 명의 비계공들이 화난 얼굴로 윤재구를 응시했다.
“혹시나 했는데 당신들 딱 걸렸어! 산업안전감독관이라는 사람이 해당 사업장 운영주들이랑 이런 데서 노닥거려!”
“자네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설쳐!”
당황했지만 이내 벌떡 일어나 오히려 호통 치는 윤재구였다. 그의 얼굴은 이미 벌게져 있었다. 그가 정말 화난 이유는 갑자기 들이닥친 직원들 때문에 자기 체면이 깎였다는 거였다.
그것도 본인이 제일 보기 싫어하는 이종도 앞에서 말이었다.
“감독관님! 우리가 비계 설치할 때 자재가 얼마나 모자랐는지 아십니까? 특히 발판이 없는 데가 태반이어서 우리 팀 베테랑 최종욱도 발판 없는 곳을 왔다 갔다 하다가 발을 헛디뎌서 추락한 겁니다!”
“이 새끼들이 당장 안 나가!”
이미 한식당 내부에서는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 시선을 의식하듯 윤재구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너 이 새끼들, 지금 이렇게 우리 협박하는 거 그거 공갈죄야! 알아!”
“공갈이건 협박이건 상관없습니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면서요! 그래서 지금 말하는 겁니다! 불량 자재 쓰고 수량도 줄여서 우리 비계공들 위험에 빠뜨리지 마시라고요! 그리고 밀린 임금도 주시고요!”
이호석과 비계공들에 둘러싸이자 셋 중에 제일 정신줄을 붙잡고 있는 이종도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감독관님 일단 자리를 피하시지요……!”
그 말에 석재곤은 얼른 짐을 챙겨 일어났지만, 이호석 반장이 그 앞을 막아섰다.
“감독관님도 이러는 거 아닙니다. 나라에서 현장 잘 관리하라고 공무원 박아 둔 거지 이렇게 업체랑 어울려서 술 마시라고 박아 둔 겁니까?”
“이 반장…… 나도 여기 불려 나온 거예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밥도 한 끼 못 먹어요?”
애처로운 눈빛으로 한 번만 봐 달라는 석재곤의 표정이었다.
“에이! 안 되지. 안 돼!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처럼 훅 자리 털고 일어나시려고요?”
방 한구석에 있던 이종도는 비계공들 몰래 휴대전화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다인이라는 식당인데요…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이 좀 있어서요…….”
하지만 그건 오히려 자신의 발등을 찍는 격이었다. 감독하는 자와 감독을 받아야 하는 자들의 부적절한 만남!
“잘됐네요! 잘됐어. 얘들아! 이분들 못 도망가게 꼭 붙들어 놔라. 경찰이 이분들 모여 있는 것도 확인해야 하니까!”
석재곤은 순간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종도를 바라봤다.
‘당신 때문에 일이 더 커졌잖아!’
경찰까지 와서 일이 확대되면 정말 수습하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그리고 공무원 신분인 자신이 제일 먼저 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컸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석재곤은 비계공들이 붙잡은 손을 뿌리치고 맨발로 복도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한식당의 출입문인 있는 곳으로 냅다 뛰어갔다.
그때 누군가가 석재곤의 발을 ‘툭’하고 걸었다.
와장창!
음식을 운반하는 서빙 카트에 부딪힌 석재곤은 그대로 바닥에 뒹굴었다. 마침 비빔냉면이 담긴 놋그릇이 석재곤의 머리 위에 떨어졌고, 이내 그의 얼굴은 빨간 양념 자국으로 범벅이 됐다.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십니까?”
그의 눈앞에는 야합이 이뤄지는 장소에 도착한 강준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방 안의 윤재구에게는 전화가 걸려왔다. 항상 자신의 뒤치다꺼리를 원만하게 처리해 왔던 강 이사의 전화였다.
“어…… 강 이사!”
엉망이 된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다는 한낱 희망이 그의 눈빛에 서려 있었지만, 이내 절망스러운 눈빛으로 변했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김민석 감독관하고 얘기가 잘된 줄 알았는데 사무실에 돌아가서 내부고발했답니다! 방금 그쪽 사무관하고 통화한 내용이고요!
친절하게 정보 입수 경위까지 보고하는 강 이사였다.
“야…… 이 개자식아! 일을 그따위로 처리해!”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윤재구가 당장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당장 경호원 불러서 다인으로……!”
순간 윤재구의 핸드폰을 휙 잡아채는 이호석이었다.
“대표님, 우리랑 얘기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요! 네? 일한 만큼 돈 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요? 그리고 종욱이…… 종욱이 왜 자살로 꾸민 겁니까?”
“제가 봤어요! 종욱이 떨어지는 걸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요!”
“언젠가 사고 날 줄 알았어요! 강관 파이프 강도가 전에 쓰던 거랑은 확연히 달랐다니까!”
한마디씩 거드는 비계공들이었다. 험악한 분위기를 깬 건 뒤늦게 석재곤의 멱살을 붙잡고 도착한 강준이었다.
“윤 대표님, 최종욱 산재로 처리해 주시죠. 입찰점수 깎이는 거 정도가 한 사람의 죽음을 모독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윤재구는 강준의 일갈에 마음을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리안건설 이종도 대표님, 이번 일은 원청에서도 책임지셔야 하는 겁니다. 분명 원청의 사업장에 일어난 안전사고니까요……! 아! 물론 산업안전감독관과 공모한 거는 형사적인 책임도 지셔야 할 거고요!”
얼굴에 빨간 비빔 양념을 묻힌 석재곤이 침통하게 고개를 떨궜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청렴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공무원 신분임을 자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