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 공사장 추락 사고 (4) (142/250)


142. 공사장 추락 사고 (4)
2022.04.21.


최상덕은 신용불량자였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게 되면 은행에 자동으로 차압당하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월급을 받게 되더라도 일부만 제하고는 죄다 은행에 빼앗겼다.

그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않는 핑곗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천성적으로 최상덕은 성실하지 못한 인간이었다.

[이래서 언제 돈 벌겠어?]

최상덕이 다단계를 하던 시절 입에 달고 다닌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말은 사람들에게 썩 잘 통했다.

문제는 현실이 말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거였다. 최상덕은 점점 자기 말의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최상덕은 땡길 수 있을 때 확실히 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합의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사님…… 이왕 챙겨 주시는 거 좀 더 부탁드립니다…… 내가 혼자 남은 우리 며느라기가 참 딱해서 그래요…….”

“그건 기존의 합의금에서 처리하셔야 할 문제죠. 저희가 아버님 가정사까지 개입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최상덕의 맞은편 좌식의자에 앉은 남자는 명성정공의 강대희 이사였다.

“정말 이러시기 있습니까! 내가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종욱이한테 종신보험이 있었답니다. 거기서만 사망보험금이 5천만 원 나오고 또…… 재해보험 신청하면…… 하여간 제가 그런 것도 다 포기하고 도와드린 거 아니에요!”

강대희 이사에게 이런 상황은 무척 익숙했다. 뒤로 일을 수습하려면 웬만한 강심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 저희가 그래서 각서까지 받지 않았습니까?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요. 기억 안 나세요?”

말은 여전히 정중했지만, 묘하게 표정은 무례한 강대희였다. 그리고는 마침 전화벨이 울린 핸드폰을 받았다.

―이사님, 지금 사무실 들어오셔야 할 거 같은데요?

“왜? 무슨 일인데?”

―이호석 반장이 사람들 데리고 와서 대표님 만나겠다고 난리거든요.

“알았어. 지금 갈 테니까 절대 당황한 척하지 말고! 별것도 아닌 놈들이니까!”

전화를 끊은 강대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방을 챙겨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강 이사님, 이대로 가시면 안 되죠……!”

다급해진 건 최상덕이었다. 강준이 걸어온 재해보험 소송을 빌미로 돈을 더 뜯어내려 한 계획이 수포가 되기 직전이었다.

“원칙적으로 합의 이후에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강 이사! 진짜 이러기입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강대희는 최상덕이 들리게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차갑게 자리를 떴다.

“하여간에 끈질기게 들러붙는 인간들이 있다니까…….”

살아오면서 이런 모욕을 한 번만 당해 오지는 않았던 최상덕이었지만 이번에는 남달랐다. 뒤늦게 죽은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시발…… 종욱이 자식만 불쌍하게 됐네……!”

타의에 의한 심경변화였을까? 최상덕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경미냐? 나다. 우리 한번 보자꾸나.”

최상덕의 머릿속에는 현금으로 받은 합의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강준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어차피 돈은 이미 받은 거고, 잘못돼 봤자 겨우 서류위조죄였다.

게다가 며느리와 얘기만 잘된다면 죽은 아들의 사망보험금에 더해 재해보험금까지 타 먹을 수 있었다. 그런 기회를 그냥 지나칠 최상덕이 아니었다.

“그래! 남들이 손가락질 좀 하면 어때? 땡길 수 있을 때 확실히 땡겨야지! 흐흐!”

최상덕은 잔에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명성정공 공장 사무실.

이호석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윤재구 대표가 자신들과의 면담 자체를 거부할 줄을 예상하지 못했었다. 몇 번의 임금 지급 요구를 거부해 왔던 사측이었다.

“분명히 안에 있는 거 다 아는데! 당장 나오라 해!”

흥분한 비계 설치공들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경비원들에 덤벼들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런 일이 다반사인 듯 무덤덤하게 스크럼을 짠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장님, 이 새끼들이 지금 우리 농락하는 겁니다! 우리가 올 줄 알고 이놈들을 배치한 거라고요!”

“너희 어디서 온 놈들이야! 어? 철거반이냐?”

목청이 쉬어 버리기 직전인 이호석은 자신이 대표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팀원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당장 안 비켜 이 새끼들아!”

경호원 중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한발 앞으로 나왔다.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업무방해로 고소합니다!”

책임자는 한 손에는 무전기를 들고는 또 다른 손으로는 이호석을 밀쳐내고 있었다. 그 순간 화가 치민 이호석이 책임자를 밀고 들어갔고, 일순간 대표실 앞은 서로가 뒤엉켜 혼란스러워졌다.

“저기 윤 대표다!”

“어디? 저기다!”

비계 설치공들이 달려들려 했지만 이미 윤재구 대표는 경호원에 둘러싸인 채 자신의 차량에 올라타고 있었다.

“어딜 도망치는 거야!”

“윤재구 당신이 그러고도 사장이야!”

끼이이익!

그때 윤 대표가 급하게 올라탄 외제차량 앞에 밴 한 대가 나타났다. 강준이 타고 다니던 밴이었다.

“뭐야? 이거는…… 당장 안 치워!”

차량 유리창을 내린 윤재구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경호원에게 소리쳤다. 밴에서 내린 강준은 그런 윤 대표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당신 누구야? 당장 안 비켜!”

“성원화재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뭐? 보험조사관이 여기는 왜 온 거야?”

“산업재해 관련해서 현장 조사차 들렀습니다.”

“……보험회사에서 왜? 누구 맘대로 우리 현장을 조사하겠다는 건데?”

“저희가 조사하는 사건이 최종욱 씨 사건이거든요. 여기 명성정공의 비계 설치공으로 일했었죠.”

“그 건은 이미 끝난 건으로 아는데 왜 자꾸 우리를 귀찮게 하는 겁니까?”

최종욱 사건이라는 얘기가 나오자 말투를 바꾼 윤재구였다.

“근데 최종욱 씨가 작업 중 추락한 일이 불량 자재 사용으로 인한 거라는 얘기가 있어서 여기 고용노동부 조사관도 함께 나왔습니다.”

어느새 강준의 뒤에 쭈뼛쭈뼛 다가온 남자는 고용노동부 감독관 김민석이었다. 그는 갑자기 불려 나와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몇 시간 전 강준은 명성정공이 불량 강관을 비계 자재로 썼다는 신고를 고용노동부 연남지부에 넣었고 덕분에 그는 책상에 앉아 있다가 졸지에 현장으로 끌려 나오게 된 거였다.

‘원래 공무원들이란 일이 커지는 걸 싫어하는 법이지!’

감독관은 생각지도 못한 임금체불 건 때문에 사람들이 엉켜있는 모습을 보고는 경악했다. 산업안전만큼이나 중요한 이슈가 바로 임금체불이었다.

“여기 회사 대표님이 누구십니까?”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 감독관이었다.

“정식 절차를 거쳐서 현장실사를 나오셔야지…… 이렇게 급작스럽게 들이닥치면 되겠습니까? 김민석 감독관님.”

감독관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보고는 관등성명을 또박또박 말하는 윤재구였다. 그건 무언의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아…… 그게 우리도 신고를 받고 나온 거라…… 미리 통지를 못 드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점 양해를 좀 해 주시고요…….”

“어떤 신고를 받으셨는데 말입니까?”

“여기 계신 박강준 차장님이 명성정공이 불량 강관을 사용했다고 하셔서요.”

“아니, 관계자도 아닌 제3자의 말을 믿고 이런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어디 이래서 맘 놓고 기업 운영을 하겠어요?”

강준은 윤재구가 어디까지 궤변을 늘어놓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윤재구의 입을 막은 건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이호석 반장이었다.

“불량 강관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여러 번 사고도 난 거고요!”

그의 말에 감독관의 눈이 동그래졌고, 윤재구는 자리를 뜨려 했다.

“김 감독관님, 보니까 여기 임금체불도 빈번한 것 같더군요. 왜 이런 곳이 여태 연남시에 방치되어 있었던 겁니까?”

“그게…… 우리가 관할 지역이긴 하지만 일일이 다 돌아볼 수는 없는 거거든요.”

“여기 담당이 석재곤 감독관님이시더군요. 산업안전감독관으로 그간 명성정공을 담당하신 걸로 아는 데 맞나요?”

김민석 감독관은 강준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눈앞에 벌어진 일을 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석재곤 감독관은 뒷돈 받아먹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괜히 자기까지 도매금으로 묶여 버릴 수 있었다.

“대표님, 일단 불량 강관 사용에 대해서는 경위서를 제출해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강관 구매 이력도 같이 첨부해 주셔야 할 거 같고요.”

“이봐요. 김 감독관…… 우리가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는데 이렇게 갑자기 자료요구를 하는 건 좀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아무래도 신고가 들어온 건이다 보니 어쩔 수 없네요.”

김민석 감독관은 애써 따가운 윤재구의 시선을 외면하고 이호석 반장에게로 다가갔다. 임금체불의 현황을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뒤늦게 도착한 강대희 이사가 태연스럽게 웃으며 김민석 감독관을 잡아끌었다.

“감독관님 안에서 정식으로 말씀 나누시죠. 물론 이 사람하고도 같이 자리 마련하겠습니다.”

“그… 그럴까요……?”

멍석을 깔아주는 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윤재구가 혀를 끌끌 차면서 다시 차에 타려 했다.

“윤 대표님, 저랑은 아직 할 얘기가 남아 있는데요?”

“아 박강준 당신이 그 유명한 보험조사관인지 하는 양반이군! 최진태 대표가 이를 간다는…….”

눈을 부릅뜨는 윤재구였다. 그는 경멸하는 눈빛을 던지더니 일방적으로 자리를 뜨려 했다. 강준은 그런 그의 팔꿈치를 붙잡았다.

“최종욱 씨의 유서가 조작됐다는 게 밝혀지게 되면 엄중한 책임을 묻게 될 겁니다.”

“뭐? 유서? 아…… 그 자살한 직원 말이지? 참 안됐어. 젊은 나이에 말이야…… 그러게 좀 더 용기를 가졌어야 하는데! 쯧쯧…….”

강준은 윤재구의 팔꿈치를 놔주지 않고 그의 기억을 읽어 들였다.

최종욱의 유서를 언급하는 윤재구의 머릿속에는 한 일식집 방에서의 장면이 펼쳐졌다. 그와 마주 앉은 사람은 강준에게도 익숙한 최진태의 측근인 이종도 대표였다.

[성원화재 박강준이 또 어떻게 안 건지 최종욱 사망사건을 재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는데 일이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요. 자살로 마무리가 된 거죠. 재수사해도 똑같을 거예요. 달라지는 거 없다니까요.]

[네…… 그래도 우리 원청인 리안건설이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으니까요…….]

은근히 원청임을 강조하는 이종도에게 윤재구는 빈정이 상했다. 어찌 보면 자신은 윤미경 감사의 5촌으로 패밀리에 해당하지만, 이종도는 그저 최진태의 머슴일 뿐이었다.

그런 이종도가 말끝마다 원청, 하청 거리니 빈정이 상할 만도 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 대표는 중간에서 말이나 이상하게 전하지 말아요.]

[흠… 흠흠……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뭘 중간에서 해 먹었다고 최 대표한테 말한 거 같던데? 왜 그런 쓸데없는 얘기를 해요? 뭐 어디 내가 혼자 먹었어요?]

[윤 대표님, 그 문제라면 저도 할 말이 있는데…… 명성정공이 수입한 석재들 가격 부풀려서 우리한테 납품하는 거…… 설마 제가 모르고 있을 거로 생각하셨던 건 아니죠?]

석재 얘기가 나오자 끙하고 말문을 닫는 윤재구였다.

[최소한의 지킬 건 지키셔야죠. 그래야 우리도 계속 명성정공을 끌고 갈 수 있는 겁니다…….]

[좌우간…… 내일 밤에 석재곤 감독관하고는 어디서 만난다고요?]

[저번에 갔던 식당인 다인에 예약 잡아놨습니다. 어쨌든 산재로 번지면 절대 안 되는 겁니다. 아시죠?]

윤재구는 잔소리하는 이종도에게 짜증이 났는지 버럭 숟가락을 내려놨다.

[아이 거참!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밥 먹읍시다! 밥!]

강준은 윤재구의 기억 속에서 일식집 방에 걸려 있는 달력을 확인했다. 리안건설의 이종도, 명성정공의 윤재구, 그리고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감독관 석재곤이 함께 만나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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