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공사장 추락 사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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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공사장 추락 사고 (3)
2022.04.20.
사망한 최종욱 부친의 자택.
“아버님 문 좀 열어 보세요.”
자신의 며느리가 낯선 남자와 함께 들이닥치자 문을 열어 주지 않고 버티는 최종욱의 부친이었다.
[최상덕. 한때 농기계를 파는 회사에 근무했으나 20년 전 퇴직하고 별다른 직업 없이 살아옴.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그는 다단계 회사에 몸담으며 주변에 크고 작은 피해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직후에 이혼할 때 버린 아들이 사는 본가로 돌아온 것으로 추측됨.]
강준은 김준혁 대리가 문자로 보내온 최상덕에 관한 주변 탐문 정보를 확인했다.
“같이 오신 분 보험회사 직원분이에요! 보험금 타면 아버님도 드릴 테니까 제발 문 좀 여시라고요!”
한참을 실랑이를 벌인 끝에 대문이 열렸다.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다. 시멘트벽에는 곳곳에 금이 가 있었고, 철제난간에는 온통 녹이 슬어 있었다.
‘이 집을 담보로 1억 넘게 돈을 빌렸으니 최상덕한테는 이 집이 깡통집이나 다름없군…….’
간밤에 김준혁 대리는 최상덕의 주소지로 등기부등본을 확인했었다. 한마디로 그는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다.
덜컹!
현관문이 열리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는 굽어 있었지만, 눈빛에는 낯선 강준을 의심하는 눈초리가 매서웠다.
“……들어와!”
안에는 최상덕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몇 해 전에 최종욱의 조모이자 그의 모친인 노모는 사망했고, 최종욱이 결혼하기 전까지 둘이서만 살아왔던 집이었다.
“성원화재 박강준입니다.”
강준이 명함을 건넸지만, 최상덕은 명함을 아무렇게나 바지 주머니에 푹 쑤셔 넣었다.
“보험회사에서는 왜 온 거요? 자살한 아들놈 생각하면 억장이 미어지는데 뭘 또 괴롭히려고 온 거냐고요?”
다짜고짜 따져 드는 최상덕이었다. 마치 귀찮다는 듯 말이었다.
“아드님에게 종신보험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망보험금이 5천만 원인데 사인이 자살이라 보험금 지급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지금 나보고 뭘 어쩌라고요? 자식 놈이 그런 선택을 한 거를 뒤집을 수도 없는데 내가 뭘 어쩌라는 거요!”
“보통은 이런 경우라면 유족들이 자살을 숨기기도 하죠.”
“숨길 게 뭐가 있어요?”
“아버님께서 유서를 직접 발견한 걸로 되어 있네요? 절차상의 질문이니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직접 사인이 자살이 맞습니까?”
강준은 최상덕을 응시하며 또박또박 물었다. 순간 최상덕의 눈에서 핏발이 섰다.
“……시발!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내가 그럴 이유가 뭐가 있어!”
“명성정공에서 아버님과 합의가 상당히 이른 시간에 이뤄졌더라고요?”
“뭐? 당장 나가! 뭐 하는 새끼야! 너는!”
그리고는 이내 이경미를 돌아보며 외쳤다.
“너도 나가라!”
“아버님, 그이 사망보험금이 5천이라잖아요. 게다가 재해 신청을 하면 그것보다 훨씬 더 받을 수 있대요. 그에 비하면 아버님 합의금 받으신 거…… 그거는 진짜 얼마 안 되는 돈이에요!”
“뭐? 이게 어디서 수작이야! 네가 종욱이 종신보험 일부러 들어 놓고 자살시킨 거 아니야?”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려는 최상덕의 몸에서 희미하게 술 냄새가 풍겨 나왔다.
“아버님!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저희 사이가 어땠는지 아버님이 잘 아시잖아요!”
어린 나이에 결혼한 둘은 몇 개월 전에야 겨우 반전세로 집을 구해 독립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 시아버지를 가까이 보며 그의 막무가내 행태를 봐 왔던 이경미였다.
“여자 하나 잘못 들이면 집안이 망한다더니! 네가 딱 그 짝이야! 너 때문에 우리 종욱이가 죽은 거잖아!”
막말을 퍼부은 최상덕은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이경미에게 달려들었다. 강준은 최상덕을 막아서며 그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의 기억을 읽어 들였다. 기억의 첫 장면은 그가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급하게 찾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그가 찾아낸 건 두툼한 노트 한 권이었다.
최상덕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강 이사님? 저 최종욱 애비입니다. 방금 찾았네요. 일기장……. 이거면 되겠습니까?]
전화를 끊은 최상덕은 다시 소주병을 찾아 컵에 따랐다. 그리고는 뭔가 떠올랐는지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 강 이사님, 근데 말이죠. 돈은 그 자리에서 바로 주실 거죠? 하하!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 3천만 원…… 현금으로 주실 수 있나요?]
한참을 기다리던 최상덕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었는지 알겠다는 말을 연발하며 전화를 끊었다. 없는 유서를 만들려는 사측과 공모하면서도 최상덕은 연신 히죽거렸다.
[오랜만에 돈 들어오겠네…… 흐흐!]
강준은 최상덕의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여전히 예전 일들을 끄집어내며 독한 말로 며느리를 인신공격하고 있었다.
“최상덕 씨, 강 이사라는 분한테 3천만 원 받으셨죠?”
순간 최상덕과 이경미의 얼굴이 굳었다. 강준은 침착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아마 합의금 조로 받으셨을 겁니다. 물론 현금으로 받았기에 지금은 대부분 써 버리셨을 거고요.”
“…다… 당신 뭐야! 내 뒤를 캐고 다녔던 거야?”
“전 최상덕 씨가 얼마를 받았는지 그딴 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근데 유서 조작은 엄연한 사문서위조 행위입니다.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뜻이죠.”
냉랭하게 말하는 강준에게 최상덕의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를 말로 설득해 자백받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최종욱 씨 방이 어딘가요?”
“거긴 왜요?”
“아버님, 아드님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부탁드립니다. 아드님이 남기신 일기장…… 제가 볼 수 있을까요?”
순간 최상덕은 눈알을 굴리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아들의 일기장은 이미 사측에 넘긴 후였다. 그가 생각할 때 아들의 방을 보여 준다고 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못 보여 줄 이유는 없지…… 저쪽에 들어가 보쇼.”
강준은 이경미와 함께 최종욱이 쓰던 곳의 방문을 열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책상, 생전의 그가 즐겨봤던 음악 CD들이 책장에 꽂혀 있었고 그 옆으로는 전기기사 자격증 수험서가 꽂혀 있었다. 그가 뭘 목표로 해서 살았는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강준은 최상덕의 기억 속에서 봤던 서랍을 열었다. 그러자 서랍 안쪽에서 양장 표지로 된 또 한 권의 작은 노트가 발견됐다. 최상덕이 사측에 이미 건넨 최종욱의 일기장이 아닌 또 다른 일기장이었다.
작은 크기였기에 최상덕은 그걸 일기장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거였다.
“최종욱 씨의 꼼꼼한 성격으로 봐서 일기장을 노트 한 권으로만 쓰지는 않았겠죠?”
“맞아요. 그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썼다고 했어요. 근데 차장님, 이건 필적 감정 때문에 그러신 거예요?”
“잘 아시네요. 최종욱 씨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유서를 쓴 건 다른 사람이었겠죠.”
아직 거실에 머무는 최상덕이었다.
“챙기세요. 나중에 법정에서 쓰게 될 겁니다.”
“……네!”
이경미는 재빨리 일기장을 자신의 핸드백 속에 쏙 집어넣었다. 더는 최상덕의 집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최상덕 씨,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다시 볼 일 없을 거요…….”
강준은 나가려다 말고 돌아서 물었다.
“제가 지금 명성정공에 가는 길인데 혹시 강 이사에게 전해 줘야 할 말이라도 있나요?”
최상덕은 강 이사를 언급하는 걸 보고는 그걸 부인할지를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최상덕의 패턴에 말려들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까…… 실은…… 강 이사 그 양반이…….”
“강 이사한테 받은 돈 돌려주시려고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굳이 돌려준다고 사문서위조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자 최상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강 이사한테 돈 받은 사람이 나뿐만 인줄 알아! 난 그냥 위로금 받은 거라고! 근데 뭐 사문서위조? 어디 가서 그딴 말 지껄이기만 해 봐! 아주 작살을 내 줄 테니!”
“경찰도 3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단순 위로금으로 생각할까요? 어쨌든 최종욱 씨의 사인에 대해서는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할 생각입니다. 물론 유서의 위조에 대한 감식도 같이요.”
돌아서려는 강준을 묵묵히 보고만 있는 최상덕이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을 용기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강준은 밖으로 나와 광역수사대 이진철 경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박강준입니다. 필적 감정 의뢰합니다.”
―어제 말씀하셨던 재해소송 건 말씀입니까?
“네. 사망한 최종욱 씨의 유서를 사측에서 경찰에 제출했다고 해서요. 비교할 필적 감정 자료는 지금 퀵으로 보내겠습니다.”
―제가 국과수에 의뢰해 놓겠습니다. 필적 감정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근데 명성정공 말입니다. 거기 윤재구 대표한테서 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네요.
강준은 핸드폰을 반대 귀에 갖다 대며 되물었다.
“윤미경 감사의 5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걸 믿고 그러는 건지…… 몇 년 전에 공사한 다른 건설사에서 명성정공에 소송을 건 이력이 있습니다. 불량 설비를 썼다고요…….
“혹시 구체적으로 더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소장 기록에 나와 있는 걸 보니 중국산 저가 소재 강관 파이프를 써서 안전기준에 미달하는 걸 사용했다네요. 뭐 좌우간 총체적인 문제가 있는 인간 같습니다.
“경감님, 어쩌면 이번 사건은 최종욱 개인의 재해보험 사건으로 끝날 것 같지 않군요.”
전화를 끊은 강준은 이경미가 줄곧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이가 자살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회사가 곤란해지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실은 차장님이 아까 대화 중에 말씀하신 강 이사라는 분…… 저를 찾아왔었어요.”
“네? 와서 무슨 말을 하던가요?”
“일을 더 키우지 말라고요…… 그랬다가는 다시는 그쪽 업계에서 일을 못 할 거라고 했어요.”
이경미는 남편이 죽은 후 원래 일했던 건설업계에 취업을 다시 알아보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강 이사의 협박은 꽤 위협적이었을 터였다.
“너무 겁먹지 마십시오. 명성정공이라는 회사…… 제가 더는 건설바닥에서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 버릴 테니까요!”
“그 말을 들으니 힘이 나요. 생각해 보니 그이 억울함을 푸는 게 먼저인 거 같아요. 그게 살아 있는 제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거기도 하고요…….”
강준은 그녀에게 잠시 망설이다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경미 씨를 보니 최종욱 씨가 살아 있는 동안 불행하지만은 않았다는 걸 알겠네요. 좋은 곳으로 갔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이경미는 길가에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모든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아프고 힘든 법이었다.
띠링!
그렇게 이경미를 위로해 주고 있을 때 강준의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저희 지금 명성정공 사무실에 와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 그간 있었던 일을 싹 다 따질 생각입니다. 박 차장님께서는 언제쯤 오실 수 있나요?
최종욱과 함께 일했던 이호석 반장의 연락이었다. 임금체불까지 쌓인 현장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하기 직전인 듯했다.
강준은 최상덕의 기억 속에서 들었던 강 이사를 직접 만나 봐야 했다. 아마도 그가 명성정공의 사고수습과 노동자 관리 등의 온갖 뒷일을 담당하는 인물일 터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