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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공사장 추락 사고 (2) (140/250)


140. 공사장 추락 사고 (2)
2022.04.19.


“손해사정사 이상현입니다.”

“성원화재 박강준입니다.”

사무실 앞의 길가에서 만난 둘은 자연스럽게 악수를 나눴다. 그 순간 강준이 읽은 이상현의 기억에는 온통 건설 현장과 법원을 들락거리는 장면들뿐이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간 처리한 재해보험 사건이 엄청 많으시다고요?”

“에이, 원래 인생사가 다 어쩌다 아닙니까? 저도 어쩌다 이 바닥에 발을 들여서 여태 발을 못 빼고 있는 겁니다. 허허! 일단 들어가시죠.”

그곳은 김기동 청부살인에 연루되어 구속된 강상훈 손해사정사의 사무실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오래된 소파며 가구들이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했다. 게다가 잘 차려입은 데스크의 직원도 없었다.

“둥굴레 차 드릴까요? 제가 커피를 안 마셔서요.”

“아무거나 주십시오.”

직접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티백을 우려내는 이상현이었다.

“명성정공 사장이 누군지 아십니까?”

“글쎄요. 누굽니까?”

“윤재구라고…… 원청인 리안건설 최진태 대표와는 먼 친척 관계죠.”

“혹시 최진태 대표의 모친인 윤미경 씨와 혈연관계인가요?”

“오호! 아시네요! 역시 성원그룹에 계시는 분이시니 그 정도는 알고 계시는 거군요.”

이상현은 놀란 눈을 뜨며 과하게 반응했다. 상대가 더 적극적으로 나오게 만드는 그의 대화법이었다.

“저도 윤미경 감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습니다. 최진태 대표의 배후를 만들어 주는 건 항상 모친인 윤미경 감사였으니까요.”

“저번 일은 어떻게 보십니까?”

“번암지구 게이트 말입니까? 그게 이번 일과 관련이 있나요?”

뭔가를 말해 주겠다는 듯 자신만만한 눈빛의 이상현이었다. 그는 둥굴레 차를 건네면서 말을 이어갔다.

“완전 없다고도 말씀 못 드리겠네요.”

“그럼 뭔가 관련이 있다는 거네요…….”

“번암지구 아파트 계획이 졸속으로 처리된 거 아시죠?”

건설업계의 세세한 것까지는 강준도 모르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것까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최진태 대표가 성원그룹에서 독립하면서 조바심을 좀 냈나 보더라고요. 자기 장인이 임기 중에 있을 때 빨리 개발계획을 확정하고 추진하려고 한 거죠.”

“사실 번암지구 개발은 그간 많이 안 알려지지 않았었나요?”

“맞아요. 괜히 알려져 봤자 친인척 간의 이권 챙겨주기다 그런 소리밖에 듣지 않을 테니까요.”

강준은 팔짱을 끼며 되물었다.

“졸속 추진 과정에서 번암지구 공사 현장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네, 아무래도 하청 업체 일정 맞추기도 빠듯하니 안전 시설물을 규정대로 갖추는 것도 힘들었죠.”

“그래서요?”

“현장에 실사를 나오는 산업안전감독관을 리안건설에서 구워삶은 겁니다.”

처음 듣는 새로운 정보였다.

“최진태 대표라면 그럴 수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직접 일을 벌인 건 리안건설 이종도 대표였습니다.”

성원건설 대표였던 이종도가 자연스럽게 리안건설 대표직을 맡고 있었다. 아마 그가 산업안전감독관을 직접 매수하면서 최진태 대신 손을 더럽혔을 터였다.

“최종욱 씨가 사망한 건 산업안전감독관이 실사를 나온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아…… 그럼 설마 그런 커넥션을 숨기려고 재해 사망을 자살 사망으로 몰아간 건가요?”

“네. 안타깝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바로 그겁니다.”

“부검은 진행했습니까?”

“유족 측의 반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추락사였으니까요…….”

부검으로 자살과 추락사를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종욱 씨의 사망은 분명한 업무상 사망에 해당합니다. 전 산업재해 소송을 할 생각입니다.”

“명성정공을 상대로 말입니까?”

“네. 그리고 리안건설을 상대로도 소송을 걸 겁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제2항에 따르면 하청 업체가 취약한 점을 감안해서 산업재해 발생 위험장소에서는 원청도 이를 보완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돼 있으니까요.”

“그걸 법정에서 인정할까요?”

“……싸워 봐야죠. 처음부터 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강준은 단호하게 답하는 이상현 사정사를 바라보고는 속셈을 알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사정사님께서 저를 부른 건 최종욱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걸 밝혀 달라고 부른 거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나머지 사안인 공사 현장에서 원청이 안전관리가 미흡했다는 걸 입증하는 건 제 역할이고요.”

강준은 옆에 앉은 이경미를 돌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회사와 했다는 합의부터 무력화시켜야겠네요.”

“네? 어떻게요?”

겁부터 집어먹는 이경미였다.

“합의해 준 사람부터 찾아가 봐야죠. 경미 씨 전 시아버지부터요…….”

“아마 만나 주지 않을 텐데…….”

곤란한 표정을 짓는 이경미였지만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버님, 저 경미예요. 말씀드릴 게 있어서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 반드시 만나 뵈어야겠어요! 그이 유산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고 하셨잖아요!”

점점 목소리가 독해지는 이경미였다. 강준은 통화음 너머로 들리는 최종욱의 부친에게서 그가 상식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최종욱이 작성했다는 유서부터 찾아보자!’

* * *

국감이 막바지로 향해가고 있을 때, 속보가 떴다.

―금일 오전 한승일 연남시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중도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번암지구 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결단코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었음을 항변했습니다.

앵커는 신이 난 듯 격앙된 목소리로 한승일의 소식을 이어나갔지만, 윤미경 감사는 TV 화면을 꺼 버렸다. 그녀의 앞에는 겁을 집어먹고 달려온 최진태가 다리를 떨며 앉아 있었다.

“너희 장인 이제 끝났네.”

“아…… 정말, 나 이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이럴 때를 대비해서 엄마가 다른 라인 만들어 놨잖니.”

“……박상도 의원 말이에요?”

태연하게 손톱을 매만지며 말하는 윤미경이었다. 그녀는 제 나이로 보이지 않는 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 한국보험 인수할 때도 검찰을 움직여서 RS투자 수사하게 해 준 게 박상도 의원이야. 그쪽이 진짜 동아줄이라고.”

“엄마, 그래도 장인어른이 이대로 무너지지는 않겠죠? 유진이가 그러는데 장인어른이 이번에 사퇴하시고 다음번에 국회 들어가신다고 그랬거든요.”

“넌 그 말을 믿니?”

“사실 이렇게 된 게…… 내 책임도 있고…….”

약한 소리를 하는 최진태의 말에 윤미경이 허리를 다시 세우며 노려봤다.

“야! 그게 왜 너 때문이야? 본인이 잘못해서 여기까지 온걸! 네가 아파트 지어서 번 돈이 다 어디로 갔는데! 결국 본인 위해서 일 벌인 거야. 널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엄마… 그래도 유진이가 있는데 설마…….”

“정신 차려! 얘! 넌 그렇게 약한 소리만 하니까 성원그룹도 차지 못한 거 아니니!”

윤미경 감사의 일갈에 풀이 죽은 최진태는 아무 말로도 대꾸하지 못했다.

“잘못되면 너한테까지 똥물 튈 수 있으니까 당분간 괜히 사돈댁 들락거리지 마”

“에이…… 어차피 이번 일은 이종도 이사가 책임지면 되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사돈이 물러나는 걸로 끝나면 괜찮겠지만 저놈들은 결국 너를 노리고 있다고.”

“나를……?”

“재벌 하나 망가뜨리겠다는 거겠지. 쟤들로서는 표적으로 삼기 좋거든. 그게 아니라도 혹시 뒷돈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까 무조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거고.”

윤미경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세간의 질시를 받으면서 올라왔는지를 떠올렸다.

“진태야. 너 내일 시간 빼 둬.”

“……왜요?”

“박상도 의원이랑 식사 자리니까 다른 약속들 다 취소하고.”

“유진이도 같이 가야 하는 거야?”

“미쳤어? 그럼 우리가 편하게 얘기할 수가 있겠어? 박상도 의원이 이제는 사돈을 버리려고 하는 마당에……. 넌 눈치 좀 챙겨!”

“네. 알겠어요…….”

최진태는 윤미경의 독기는 빼닮았지만, 다분히 의존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는 아내인 한유진에게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 * *

다음 날 신사동 중식당 일향.

최진태는 기분이 묘했다. 원래 그곳은 장인인 한승일이 은밀하게 사람을 만나던 장소였다. 그런 그곳에서 장인과 틀어진 박상도 의원을 만난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아이고! 요즘 맘고생이 심하시죠?”

대한당 총재가 된 박상도 의원이 들어서자마자 최진태를 걱정해 주는 척했다. 윤미경은 그 말에 살짝 표정이 굳었지만,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박 위원님이 잘 돌봐주시는데 우리야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 늦었지만, 당 대표 되신 거 축하드려요.”

“제가 하고 싶어서 했나요……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된 건데요. 하하!”

누가 봐도 믿지 않을 너스레를 떨어 대는 박상도는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당내 유력한 경쟁자로 꼽혔던 한승일이 정치적으로 고꾸라진 게 그 이유였다.

“그나저나 찌라시가 하나 돌고 있습니다.”

“네? 찌라시라니요?”

신경을 바짝 세운 윤미경이 안색을 바꾸고 되물었다. 박상도 의원은 갓 잡은 생선으로 뜬 회를 한 입 넣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아직 보도는 안 된 건데…… 물론 뭐 찌라시는 찌라시니까요. 괜한 걱정만 끼쳐드리는 게 아닌지 싶지만…… 리안건설에서 노동자 한 명이 자살했다더군요. 최 대표님도 알고 계셨나요?”

최진태는 분명 보고받은 사안이었다. 하지만 찌라시까지 퍼진 걸 보니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듯했다.

“아뇨. 모르고 있었습니다. 계열사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제가 알 수는 없는 거니까요.”

최진태 특유의 근성이 튀어나왔다. 그는 일단 책임져야 할 사안에서는 무조건 발뺌하고 보는 게 유리하다는 걸 체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여간 그 일로 노총에서 들고 일어나면 상황이 꽤 꼬일 수가 있습니다. 지난번 번암지구 게이트 건도 있고 한데 괜한 잡음을 또 일으킬 필요는 없으니까요…….”

“호호! 물론이죠. 의원님. 그깟 직원 하나 죽은 게 무슨 큰일이 되겠어요?”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워낙 SNS며 인터넷이며… 발달해서 말이죠…… 여론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 노총의 화력까지 받으면…… 어휴!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미간이 일그러지는 윤미경이었다. 박상도는 그런 윤미경을 슬쩍 보며 그녀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 역시 자신의 대권가도를 위해 지원해 줄 빵빵한 돈줄이 필요한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건 없습니다. 제가 검찰 쪽은 잘 단속해 놨습니다. 여기 있는 최 회장한테까지 번암지구 게이트 수사가 미칠 일을 없을 거고요.”

“이렇게 의원님께서 신경을 써 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진태야, 뭐 해? 너도 감사 인사드려야지.”

“아! 네… 네! 박 의원님…… 감사합니다.”

박상도 의원에게 눈웃음을 치며 바라보는 윤미경이었다. 박상도 의원 역시 그런 윤미경을 보며 음흉한 눈빛으로 화답했다. 윤미경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남들이 탐내할 만했다.

그리고 박상도 의원은 자신이 그런 윤미경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유일한 남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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