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 공사장 추락 사고 (1) (139/250)


139. 공사장 추락 사고 (1)
2022.04.18.


국감장을 빠져나온 강준은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을 맞닥뜨렸다.

“박강준 씨! 민한당 관계자와 만나신 거 인정하십니까?”

“아니요. 만난 적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민한당에 입당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데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호하게 답한 강준이었지만, 사람을 편 가르기 하는 언론의 행태에 환멸이 느껴졌다.

‘일개 보험조사관이 너무 설친다는 게 문제였군……!’

강준은 더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주차장에 도착한 강준에게 한 무리의 남자들이 다가왔다.

“박강준 차장님! 뵙고 싶었습니다. 저희는 리안건설 하청 업체 직원들입니다.”

일렬로 서서 꾸벅 인사하는 그들이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저희 동료 중 한 명이 사고를 당했는데 회사에서 산재 처리를 안 해 줘서요.”

“그 회사가 리안건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하청 업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희가 일하는 곳은…… 명성정공이라고 건설 현장에 가설재를 임대하고 설치하는 일을 하는 회사인데요. 보통 아시바라고 하죠…… 건축 현장에 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게 하는 가설물인 비계(飛階, scaffolding)를 설치하는 일을 합니다.”

하청 회사에서 산재 처리를 안 해 주는 걸 원청인 리안건설에 호소하러 온 사람들인 듯했다.

“리안건설 최진태 대표에게 어필할 생각으로 오늘 국감장을 찾으신 건가요?”

“실은 박강준 차장님을 뵈러 온 겁니다.”

“저요?”

“네. 여러 보험 관련 사건들을 해결하신 걸 봤습니다.”

사람들의 눈빛은 간절했다. 단지 산재 처리 문제 때문에 온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건설 현장에서 다친 사람을 산재 처리하지 않고 회사와의 합의인 공상 처리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었다.

하청 업체에서 산재 처리를 하더라도 원청이 사업 입찰에 참여할 때 받게 되는 PQ(Pre―Qualification·사전심사)점수가 감점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산재 처리는 노무사를 찾아가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쪽이 더 여러분들이 원하는 답을 줄 것 같은데요?”

“저희 동료가 비계 설치를 하던 중 추락해서 사망했습니다. 근데 회사에서는 자살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저희가 나선 겁니다.”

그제야 강준은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세 명의 사람들이었다. 그중 리더 격으로 보이는 남자는 퉁퉁한 체격에 손에는 굳은살이 박인 베테랑으로 보였다.

“여러분들은 자살로 생각하시나요?”

“절대 아니죠! 누가 봐도 추락사였으니까요!”

“뭔가 사연이 있나 보네요.”

“저희 말 좀 잠깐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 셋은 강준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강준으로서도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요 앞에 카페에서 잠깐 시간 내죠.”

강준은 세 명의 남자들과 함께 인근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한 시간이 넘게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그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료는 6개월 전 아파트 공사 중 추락한 최종욱이었다. 그는 작업 중에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작업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갈 때 그 혼자 마무리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터진 거였다.

난간 파이프에 고리를 걸 안전대를 착용하고 있지도 않았고, 발판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구간이었다.

“임시가설물인 비계를 설치할 때는 발판을 반드시 함께 설치하도록 안전 규정이 되어 있지 않나요?”

“뭐 규정대로 현장이 돌아가나요…….”

한숨을 내쉬는 퉁퉁한 남자는 작업반장 이호석이었다. 그의 팀 막내였던 최종욱이 사망한 거였다. 그래서인지 이호석의 말투에는 사고에 대한 자책이 묻어 있었다.

“발판이 없는 구간이 많죠. 비계를 설치해야 할 곳은 많은데…… 강관도 그렇고 발판도 그렇고…… 태부족이니까요.”

“결국 시공비를 줄이기 위해 자재를 덜 썼다는 거네요.”

“네, 저희도 회사가 어쩔 수 없다는 건 잘 압니다. 근데, 적어도 자살로 몰고 가진 말아야죠.”

양손을 격렬하게 흔들며 말하는 이호석이었다.

“이 반장님…… 근데 말입니다. 부검은 했습니까?”

“그게…… 유족이 반대합니다.”

“그건 왜죠?”

“회사하고 무슨 이면 합의가 있었는지…… 이 반장 아버지가 극구 반대하네요.”

“돈으로 막은 거군요.”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한 명이 나섰다.

“제가 종욱이 친구인데요. 걔네 아버지가 좀 그런 사람이에요…….”

“어떻게 이상하다는 거죠?”

“종욱이 어릴 때 이혼하시고 별다른 일도 없이 지내셨거든요. 동생도 있으니까…… 결국 고등학교 졸업하고 종욱이가 가장 역할을 하게 된 거고요.”

“자살에 대한 경찰 조사는 거쳤습니까?”

“그게… 유서가 나왔다고 들었어요…….”

동료들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종욱의 부친은 방에서 유서를 발견해 경찰에 넘겼다고 했다.

“분명히 위로금을 명목으로 합의서 같은 걸 썼을 거예요.”

“자살이라면서 회사에서 위로금은 왜 줬을까요?”

강준의 질문에 작업반장인 이호석이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중에 뒷말 나오지 않게 하려고 그랬겠죠.”

“그간 공상 처리를 하면서 합의서를 작성해 왔나요?”

“네. 이게 저번에 다른 친구가 다쳐서 회사와 작성한 합의서예요.”

다짜고짜 가방에서 합의서 사본을 꺼내 보여 주는 이호석이었다. 그 합의서에 나온 사고는 위의 작업자가 떨어뜨린 강관 파이프에 얼굴을 맞아 앞니가 부러진 사건이었다.

강준의 눈길을 사로잡는 합의서 문구가 있었다.

[본건 합의 이후 명성정공 및 명성정공의 이해당사자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 진정 및 산업재해보상보험 등 여하한 방법이나 명목으로 추가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 돈을 먹고 입을 닫으라는 거군요.”

“근데 앞니 두 개에 천만 원이라는 돈을 줬으니 그리 박한 건 아니죠…….”

강준은 합의서를 살펴보다 고개를 들어 물었다.

“이번에도 회사 측에서 합의금을 제시하면 되는 문제인데 왜 자살로 몰고 가려고 했을까요? 아! 물론 최종욱 씨의 죽음이 여러분들이 말씀하신 대로 사고사가 맞는다면요.”

“그야 사람이 죽었으니 골치 아프지 않겠습니까? 보상금을 많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산재 처리를 할 수도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긴장하는 남자 셋이었다.

“어차피 최종욱 씨는 사망했습니다. 고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유족들도 회사와 합의했고요. 근데 여러분들은 왜 이렇게 나서는 겁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이호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사에 질렸거든요. 밀린 임금도 안 주는데 억울하게 죽은 사람 자살로 몰고 가는 꼴은 못 보겠더라고요……!”

“산재 처리가 된다고 해도 여러분들한테 남는 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이상 명성정공에서 일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괜찮으세요?”

“어차피 아파트 공사 현장이야 많습니다. 우리 팀들 다들 베테랑인데 우리 나가면 회사가 아쉽죠!”

큰소리치긴 했지만, 이호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강준은 그의 진위를 확인해 봐야 했다. 고개를 숙인 이호석의 어깨를 짚은 강준은 그의 기억을 읽었다.

[종욱아! 쉬엄쉬엄해라! 너무 무리 안 해도 돼!]

[빨리 마치고 들어가야죠. 오늘 어차피 할당량 다 채우면 끝이잖아요?]

[그래도 다 같이 해야지. 너 혼자 치고 나간다고 빨리 되냐?]

[반장님! 그럼, 사람이나 한 명 더 붙여주세요!]

[그래, 알겠다! 거기! 파이프 조심하고 오늘 비 와서 미끄럽다!]

이호석의 말에 아래를 내려다본 최종욱이 씩 웃으며 대꾸했다.

[제가 이 일을 하루 이틀 합니까? 하하!]

자신만만해하는 최종욱의 모습을 보며 돌아서는 이호석이었다. 이호석은 그런 최종욱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일단 이호석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들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최종욱의 사고사를 밝히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강준은 자신 앞에 앉은 이호석을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근데 저도 성원화재에 소속된 보험조사관입니다. 재해보험 담당자도 아니고요…… 제가 어디까지 도와드려야 할까요?”

“실은 저희가 박 차장님을 찾아온 건 소개를 받아서입니다.”

“네? 소개를 받았다고요? 누구한테서요?”

“……이상현 손해사정사님이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강준은 되물었다.

“누…… 누구요?”

“연남시에서 활동하는 이상현 사정사님이요.”

* * *

연남시 법원 뒤편.

강준은 이상현 손해사정사 사무실을 찾았다. 최종욱은 아직 2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결혼한 여자가 있었다.

“박강준 차장님?”

“네. 맞습니다. 이경미 씨죠?”

둘은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서 만났다. 그녀 역시 최종욱처럼 20대 초반 나이의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거 드세요.”

만나자마자 캔 커피를 건네는 이경미였다. 강준에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여기 사정사님이 건축 현장 재해보상을 많이 해 보셨대요. 비용도 다른 곳보다 훨씬 저렴하고요.”

“여기는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전에 저도 건설회사 사무실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때 알게 된 분이세요. 회사 직원들 다쳤을 때 많이 도와주셨죠.”

“……그렇군요. 근데 어떻게 된 겁니까? 최종욱 씨 부친께서는 명성정공과 이미 합의서를 썼다고 하던데요?”

이경미는 얼굴을 찡그리며 다 마신 캔을 작은 손으로 우그러뜨렸다.

“저랑 한마디 상의도 없이 처리하신 일이에요…… 저도 나중에 알게 된 일이고요.”

“합의금은 얼마나 받았답니까?”

“그것도 안 알려 주세요…… 답답해 죽겠어요.”

강준은 예의가 아닌 걸 알지만 꼭 물어봐야 할 게 있었다.

“이경미 씨, 제가 듣기로는 최종욱 씨와 결혼을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혼인신고는 되어 있나요?”

“……네. 사고 나기 얼마 전에 했었어요. 결혼식은 못 했지만요…….”

강준은 둘의 사정이 어땠는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이한테 보험이 있었어요.”

“네? 무슨 보험이요?”

“종신보험이요…… 친구가 보험설계사가 됐다면서 하나 들어준 거거든요.”

“그럼 사망보험금을 받으시겠네요?”

“그게… 사인이 자살이면…… 사망보험금이 안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최종욱 씨 부친께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나요?”

“네 알고 계시죠. 아마 그래서 더 회사와 빨리 합의하려고 했을 거예요. 그래야 본인이 돈을 챙기실 수 있으니까요…….”

참담한 일이었다. 죽은 아들을 앞에 두고 돈부터 챙기려 한 거였다.

“절 보고선 보험금 타려고 우긴대요…….”

혼잣말하듯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이경미였다. 강준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경미 씨?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여기서 뭐 해요?”

길가에 서 있는 둘에게 다가온 남자는 이상현 손해사정사였다. 그는 커다란 입으로 강준에게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박에 보아도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재주가 있어 보였다.

@바닥글:
<참고자료>
원청사 ‘공상(公傷) 처리’ 요구, 하도급업체 두 번 죽인다. 신동아 기사.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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