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 교통사고 위장 살인 (4) (138/250)


138. 교통사고 위장 살인 (4)
2022.04.17.


선거는 결국 한승일 시장의 당선으로 끝났다.

하지만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강준은 이준구가 녹음한 테이프를 시사뉴스닷컴의 함지훈 기자에게 건넸다. 그가 줄곧 한승일 시장과 최진태의 유착관계를 취재해 왔기 때문이었다.

“박 차장님, 한 시장이 추진하는 번암지구 개발사업에 리안건설이 얼마나 알박기를 해 놨는지 아십니까? 총 45만 평에 달하는 토지에 30개가 넘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그게 모두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이고요.”

“토지보상금을 올리기 위한 작업이었나 보네요…….”

함 기자는 강준과 마주 앉아 그간에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털어놓았다.

“최진태의 리안건설 법인으로 들어간 토지보상금이 총 700억 원입니다. 시 의회에서 번암지구 사업비 산출내역하고 사업성 검토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는데, 남부개발공사에서는 묵묵부답이고요.”

“사업내용을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나요? 더군다나 부지가 들어서는 사업주체자인 지자체 의회의 요구인데요.”

강준의 질문을 받은 함 기자는 불만을 토로하듯 말을 이어갔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직접 담당자를 만나 보니까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었다며 자기네들도 사업 여건이 열악하다는 말만 반복하더라고요. 결국 자기네들도 힘드니 쓸데없는 태클은 그만 걸라는 거죠.”

최진태가 리안그룹으로 독립하면서 제일 먼저 추진한 일이 바로 번암지구 개발 건이었다.

“함 기자님, 그럼 최진태 대표가 그간 남부개발공사까지 구워삶았다고 봐야 하나요?”

“아니요. 이건 한승일 시장도 직접 개입했을 겁니다. 공기업인 남부개발공사도 사업 주체인 지자체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건…… 엄연한 권력형 게이트입니다!”

함 기자는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남부개발공사는 토지수용 감정을 하면서 리안건설이 졸속으로 세운 텅텅 빈 가건물을 상업시설로 평가해 줬다.

그런 식으로 리안건설에 들어간 700억 원의 자금을 추적한다면 그 끝에는 한승일 시장이 있을 게 뻔했다.

“아마 이번 일이 보도되고 나면 파장이 꽤 크겠네요?”

“그렇죠. 벌써 선거가 끝나 버리긴 했지만…… 여론이 들끓는다면 한승일 시장이 중도 사퇴하지 않고는 못 버틸 겁니다.”

“혹시 민한당 쪽과도 얘기가 된 겁니까?”

스모킹 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일개 인터넷 신문사가 단독으로 터트릴 사안이 아니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함 기자였다.

“만약에…… 번암지구 게이트가 커지게 되면 박 차장님이 직접 증언하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검사 출신이자 여당의 유력 정치인인 한승일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강준도 잘 알고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해야죠. 자기 권력을 이용해서 사익을 추구했으면 죗값을 받아야 하는 거니까요!”

강준이 장영상 보좌관의 살해지시가 담긴 녹음파일을 전달한 며칠 후, 포털의 뉴스에는 번암지구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각종 언론사에서 쓰인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사뉴스닷컴의 단독 특종으로 시작된 의혹이었지만, 타 언론들에 의해 재생산되면서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여당인 대한당 대척점에 서 있는 민한당에서 정치공세가 펼쳐졌다. 아무리 한 시장이 검찰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도 녹음파일에 등장한 장영상 보좌관이 소환되지 않게 할 방법은 없었다.

―방금 장장 10시간에 걸친 검찰 조사를 마치고 한승일 시장의 보좌관이 막 남부지검을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번암지구의 의혹이 점차 재선에 성공한 한승일 시장을 겨누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뉴스였습니다!

서서히 한승일의 정치생명도 끝나가고 있었다.

* * *

고 김기동 사무관 자택.

“사모님께서 굳이 이렇게 버틸 이유가 있으신가요?”

“보상금 몇 푼 얻자고 그럼 애들 아빠의 억울한 죽음을 모른 척하라는 거예요?”

강상훈 손해사정사는 답답하다는 듯이 미망인의 옆에 앉은 아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이를 봐서라도 냉정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교통사고로 처리되면 제가 보험사들에서 1억 5천만 원까지는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따로 마련한 합의금 3억 원도 받을 수 있고요.”

합의금 얘기가 나오자 강상훈을 홱 돌아보는 미망인이었다.

“그 합의금이 어디서 난 거래요? 트럭 운전사였다는 사람이 3억이라는 돈이 어디서 난 거냐고요? 뭔가 구린 게 있으니까 지금 돈으로 막으려는 거 아니에요…….”

“말귀 참 못 알아들으시네…….”

눈빛이 싸늘해지는 강상훈이었다.

“사모님, 마지막으로 말씀드릴게요. 김기동 씨 핸드폰 어디 있습니까?”

묵묵부답인 미망인이었다. 강상훈 사정사는 번암지구 게이트가 터진 상황에서 김기동의 핸드폰을 수거해야 했다. 그 안에 죽은 김기동의 통화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모님, 이건 무의미한 짓입니다. 한승일 시장에게 맞서서 얻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괜한 영웅심에 휘둘리지 마시고 실리적으로 생각하시죠…….”

미망인은 혼란스러웠다. 20년 동안 성실하기만 했던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이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죽은 거였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됐다. 누구든지 사고는 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었다니!

“진짜 제대로 말씀 좀 해 주세요. 애 아빠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다가 그렇게 된 건가요?”

“전 손해사정사일 뿐입니다. 제가 일일이 세세한 걸 알 수는 없는 거죠. 단지 의뢰인의…….”

띵동! 띵동!

강상훈 사정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집안의 벨이 울렸다. 자동으로 벌떡 일어나 현관문으로 나가는 건 갓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김기동의 아들이었다.

“어! 엄마! 저번에 그 아저씨야!”

미망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은 엄마의 허락이 있자 현관문을 열었다.

“준형아! 잘 지냈어? 엄마 말 잘 듣고?”

강상훈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였다. 보험조사관 박강준이 손에 도넛 박스를 들고 현관문에 서 있었다.

“어! 여기서 뵙네요. 강상훈 사정사님.”

시선을 돌리며 인상을 쓰는 강상훈이었다. 안 좋은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스쳐 갔다.

“사모님. 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제가 했던 말 잘 기억하시고요. 정말 한 푼도 못 받으시고 끝날 수 있습니다…….”

강준은 일어서려는 강상훈을 제지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돈이 중요하긴 하죠. 근데 말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김기동 씨의 한을 어떻게 풀죠? 제 생각엔 번암지구 게이트에 엮이긴 했지만, 김기동 씨가 죽을 정도로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강준이 본론을 꺼내자 미망인은 아이를 얼른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는 강상훈의 앞에 딱 앉았다.

“그래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저도 알아야겠어요? 강 사정사님. 도대체 애 아빠 핸드폰은 지금 와서 왜 달라는 거예요?”

핸드폰 얘기가 나오자 얼굴이 벌게지는 강상훈이었다.

“전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사람일 뿐입니다…… 자세한 사정은 저도 모르죠.”

“그 사정은 제가 알 것 같은데요? 한승일 시장이 장영상 보좌관을 시켜 김기동의 살인을 지시했고, 그 증거가 될 만한 김기동 씨의 행적이 핸드폰에 들어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아니! 살인 지시를 죽을 사람한테 합니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강준은 녹음기를 꺼내 둘 앞에 놨다. 그리고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서로 인사들 하시죠! 여기는 강상훈 사정사님. 이번 일 뒤처리를 해 줄 분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준구라고 합니다.]

[네. 강상훈이에요.]

유난히 거만한 말투의 강상훈이었다. 그에 반해 이준구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그다지 어려운 건 없어요. 우리가 연락하는 장소에 가서 ‘부웅’하고 액셀만 밟으면 됩니다. 아!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80킬로는 되는 속도로 오다가 한 50미터 전에는 브레이크를 콱 밟아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스키드마크가 찍히니까요…….]

[뭐 그야…… 어렵지 않죠.]

[자자! 우리 모두 모였으니 한잔 드시죠.]

잔을 채우는 소리가 들리며 녹음파일이 끝났다.

강상훈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강준이 그를 막아섰다.

“어딜 도망갑니까? 해명은 하고 가야죠.”

미망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짧지만 무서운 침묵이었다. 그리고 이내 날카로운 외침이 쏟아졌다.

“내 남편 살려내! 살인자야! 당신이 우리 그이를 죽였어! 살인자!”

미망인에게 멱살을 잡힌 강상훈은 일이 완전히 그르쳤음을 깨달았다. 흙빛으로 변한 그의 얼굴에서 궁색한 변명이 흘러나왔다.

“…저기… 사모님…… 저도 위에서 지시를 받아서 그런 겁니다… 진짜예요…….”

* * *

번암지구 게이트 관련 특별 국정감사장.

“선서! 오늘 국정감사에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약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박!강!준!”

강준은 함지훈 기자의 말대로 국감장에 직접 나타났다. 결정적인 증거가 된 녹음파일의 입수 경위를 밝혀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준구는 청부살인의 주범이었지만 그를 거짓말쟁이로 보는 여당의 반대로 증언대에 세울 수는 없었다.

“박강준 씨는 보험조사관인데 어떻게 그런 녹음파일을 확보하게 된 겁니까? 혹시 누군가 제공한 건 아닌가요?”

한승일 시장을 비호하는 여당의 국회의원은 게이트를 정치공작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의 질문을 던졌다.

“네, 누군가 제공한 겁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보자는 이준구이고, 그가 녹음파일이 있는 곳을 제게 말해 준 겁니다.”

국감장이 술렁거렸다. 이준구가 직접 녹음파일을 내놨다는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이준구로서는 그 녹음파일이 자신의 살인죄를 입증하게 되는 건데……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제가 설득했습니다. 같은 측근인 김기동 사무관을 죽인 한승일 측입니다. 트럭 기사인 이준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겠…….”

“위원장님! 지금 증인은 한승일 시장을 마치 살해를 지시한 사람으로 단정 짓고 있습니다! 당장 발언 중지시켜 주십시오!”

김기동의 살해를 직접 지시한 장영상 보좌관은 이미 구속되었고, 또 다른 증인으로 나온 한승일이 한쪽 구석에서 강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증인, 묻는 말에만 답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씩씩거리던 국회의원이 다시 강준에게 물었다.

“박강준 씨는 성원그룹에 입사해서 내내 최진태 대표의 반대편에 서 계셨다고 하던데 맞나요?”

“대체로 그런 것 같습니다.”

“혹시 그런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실무자들 간의 갈등으로 빚어진 사건을 번암지구의 아파트단지 개발이라는 게이트로 부풀린 거 아닙니까?”

강준이 국정감사를 생중계로 취재하는 TV카메라를 한 차례 보고는 말을 이었다.

“의원님 반대로 묻겠습니다. 사망한 김기동은 번암지구의 개발계획을 실질적으로 만든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사망한 당일 한승일 시장의 반대편인 지형준 후보 측을 만났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증인은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정치공작을 펼치는 겁니다! 발언 중지해 주세요!”

“최진태 대표의 리안건설이 번암지구 사업을 통해 가져간 돈이 700억 원입니다. 삽도 뜨기 전 미리 갖고 있던 땅만 팔아서요! 그 자금을 추적해 보시면 증거는 자연스럽게 드러나겠죠!”

“위원장님 증인의 마이크를 꺼 주시기 바랍니다!”

강준의 마이크가 꺼졌다. 하지만 강준의 외침은 계속됐다.

“근데 지금 의원님들은 리안건설의 자금추적을 못 하도록 방해를 놓고 있으십니다! 이유가 뭡니까? 국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강준의 목소리가 TV카메라에 생생하게 담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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