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 교통사고 위장 살인 (3) (137/250)


137. 교통사고 위장 살인 (3)
2022.04.16.


연남시청 시장실.

“시장님, 좀 전에 화장 처리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재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막바지 선거전이 한창이었지만, 한승일의 신경을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가죽 회전의자에 앉은 한승일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장 보좌관 나랑 몇 년을 같이 했지”

“올해로 6년째입니다. 시장보좌관으로는 4년째고요.”

“좀 있으면 공무원연금법이 개정된다더라. 별정직 공무원이라도 이제는 10년만 일하면 연금 타 먹을 수 있어. 나 이번에 재선하고 임기 마치면 국회 들어갈 거야. 그때까지 쭉 같이 가자. 어때?”

공무원 연금이라는 달콤한 말을 던지는 한승일이었다.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너무 많은 걸 부어 넣어서 무를 수 없다는 걸 말이었다.

“그때까지 잘 보좌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더라?”

“네? 어떤 문제 말입니까?”

한승일이 슬슬 진짜 하려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임철호 서장이 그러는데, 또라이 형사 한 놈이 김기동이 교통사고로 죽은 사건을 물고 늘어진다는데……?”

“또라이라면……?”

“그건 자네가 알아봐야지. 안 그래?”

“네. 제가 뒷말 안 나오게 처리하겠습니다.”

“벌써 뒷말 나왔어!”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한승일이었다. 공안검사 출신인 그의 눈빛에는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장영상은 한승일의 의중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의혹이 나오더라도 일단은 부정하십시오. 선거를 이기고 나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질 테니까요.”

“번암지구…… 괜찮겠어?”

번암지구의 아파트 개발은 최진태의 건설사에 특혜를 준 사업이었다. 부지 선정부터 시공업체 선정까지 성원건설의 새로운 이름인 리안건설을 염두에 둔 사업 진행이었다.

문화복합단지에 비해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조용히 번암지구의 사업은 착착 진행되어 갔다.

수용인구 8만 명, 3만여 가구의 아파트공급. 거기에 대량의 상업시설. 그 사업을 리안건설이 따내는 과정에서 연남시 5급 사무관이었던 김기동이 모든 실무를 맡았었다. 그리고 그런 김기동이 상대편 후보 측에 넘어간 거였다.

“큰 문제 없을 겁니다. 금융위기 이후에 부동산 경기는 엉망이지 않았습니까? 그때 리안건설이 구원투수로 나서 준 격이고요.”

“그렇긴 한데 말이야…… 그쪽에서 사업자선정 과정을 문제 삼지 않겠어?”

정작 문제는 사업자선정 이전에 부지 선정 과정이었다. 부지로 선정한 토지 대부분을 리안건설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최근에 매집한 토지로 말이었다.

“단독 입찰한 것이기 때문에 절차상의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최진태 대표님과 시장님과의 관계를 물고 늘어질 수는 있습니다.”

친인척 비리가 맞긴 하지만, 그렇게 안 보이도록 묻자는 말이었다. 장 보좌관은 한 시장의 질문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가 듣고자 하는 답을 내놓은 거였다.

“그래도 김기동이 우리 사람이었는데…… 유족들이 섭섭하지 않도록 해 주고.”

“네. 강상훈 사정사가 위로금 조로 합의를 보고 있습니다. 괜한 뒷말 나올 일 없을 겁니다.”

“그래, 난 장 보좌관만 믿고 있을 테니 잘 좀 부탁하네.”

1번이라는 선거 기호가 적힌 점퍼를 차려입은 한승일 시장이 장 보좌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 * *

연남경찰서 형사과.

“김 형사……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 교통경찰계에서 나한테 뭐라 그랬는지 알아?”

“전, 도통 모르겠는데요?”

“나보고 너나 잘하래! 너나!”

황재규 반장은 파일철로 책상을 ‘탕탕’ 쳤다. 그 소리가 형사과 전체에 울려 퍼졌고, 형사들은 일제히 김형식을 바라봤다.

자기 방으로 불러 조용히 전달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오픈된 사무실에서 혼을 내는 황 반장이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리고 그 목격자는 또 무슨 소리야? 교통계 나 반장이 나보고 묻더라. 네가 목격자 만났다고!”

“목격자 같은 건 없습니다.”

김 형사의 말에 사무실 내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모두 숨죽이며 황 반장과 김형식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뭐? 그건 또 뚱딴지같은 소리야?”

“반장님이 그러셨죠? 범인은 제 발 저려서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와 흔적을 남긴다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장영상 보좌관이 교통사고를 낸 이준구를 직접 면회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할까요? 김기동 사무관이 아무리 한 시장의 측근이었다지만, 한 시장의 보좌관이 교통사고 가해자를 만난다? 뭔가 좀 어색하지 않나요?”

꼿꼿한 자세로 황재규 반장에게 답하는 김형식 형사를 형사과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 자리의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갈 게 뻔했다. 황 반장은 그게 부담스러웠는지 말을 돌렸다.

“인마! 어쨌든 이거 우리 사건 아니야…… 괜히 오지랖 부리지 마!”

“한승일 시장이 관련되어 있어서 그러신 겁니까?”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김형식 형사였다. 황재규 반장의 얼굴이 굳었다.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못 하는 말이 없어! 너 그래서 누가 이 사건을 교통사고로 덮었다는 거 아니야? 그럼 증거가 있어야지. 안 그래?”

“있습니다! 이거요!”

김형식 형사가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 황 반장에게 내밀었다. 그건 직접 사망한 김기동의 시신을 부검한 김예준 과장의 부검소견서였다.

“……이건 그냥 소견서일 뿐이잖아.”

공식적인 국과수의 부검감정서가 아니라 부검의 개인의 소견서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견서의 내용은 다분히 사건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졸피뎀과 클로티아제팜 성분이 검출되어 사고 이전에 의식이 온전치 못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온전치 못한 정신에 혼자 걸어가다가 차에 부딪혔다고요? 그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십니까?”

목소리를 높이는 김형식이었다. 황 반장은 허리춤에 팔을 얹고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때, 임철호 서장이 어떻게 알았는지 형사과 사무실에 나타났다.

“황 반장! 김형식! 둘 다 내 방으로 들어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둘이 서장실에 들어서자 임철호 서장이 조용히 문을 잠갔다. 그걸 본 황재규가 침을 꿀꺽 삼켰다.

“후우…… 야! 황재규 너는 꼭 이렇게 나를 엿 먹어야겠냐?”

“죄송합니다.”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황 반장이었다. 그는 임철호 서장이 무슨 말을 하건 토 달지 않는 게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김형식. 너 경찰 그만둔다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긴 뭘 몰라 이 자식아! 해리츠 보험 박성태 부장이 나한테 다 얘기했는데 뭘 거짓말을 해!”

“간다고는 했는데 결정된 사항은 아닙니다.”

“그게 그거지! 인마! 그래서? 그만두기 전에 함께 동고동락해 온 동료들! 선배들! 전부 뒤통수 때리기로 한 거냐? 어!”

황당한 논리였지만, 줄곧 경찰 생활을 해 온 김형식으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오해였다.

“서장님 이거 보십시오.”

“뭔데 이게! 겨우 이따위 종이 쪼가리로 우리 경찰 조직을 뒤흔들어!”

김형식이 건넨 김예준 과장의 부검소견서를 보지도 않고 찢어버리는 임철호 서장이었다.

“야! 김형식. 내 말 잘 들어. 김기동 사건은 술 취해서 무단 횡단하던 피해자가 야간에 그걸 피하지 못한 이준구가 차량으로 치어 죽인 거야! 알겠어?”

임철호 서장의 말은 사건을 그대로 덮자는 거였다.

“서장님. 그날 김기동이 누굴 만났는지 아십니까?”

“이미 사망한 사람이야. 그게 뭐가 중요해!”

“한승일 시장하고 선거에서 맞붙은 지형준 쪽 보좌관을 만났습니다. 그걸 뭘 의미하겠습니까? 한승일 시장 최측근인 김기동을 통해서 뭔가를 폭로하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입술을 깨무는 임철호였다. 그도 대충 내막을 알고는 있었지만, 김기동이 직전에 만난 사람이 지형준의 보좌관일 거라고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김형식 너는 이게 그 폭로를 덮으려고 한승일 측에서 배신자인 김기동을 죽였다는 거야?”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충분히 의혹은 있습니다!”

“너 지형준 쪽 사람들한테 뭐 받았냐?”

갑자기 이상한 쪽으로 몰아가는 김형식을 몰아가는 서장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받긴 뭘 받는다고 말입니까!”

얼굴을 붉히는 김형식이었다. 서장은 그런 김형식을 보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봐. 내가 그렇게 말하니 억울하지?”

“네! 없는 말씀을 하시니까요…….”

“너 이번 사건 파헤친다고 설치면 분명히 이런 말 나온다. 그렇게 되면 나도 김 형사 널 커버쳐 줄 수가 없는 거고. 어차피 너 보험사로 이직한다며? 그래도 경찰 밥을 15년이나 먹었는데 명예롭게 퇴직하는 게 낫지 않아?”

서장의 말은 김형식에게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다. 괜히 더 나섰다간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왔던 걸 한 방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 * *

남부구치소 면회실.

이준구가 강준이 남긴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를 해 왔다. 그로서는 목격자가 나왔다는 상황의 반전 때문에 자신이 위협받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강상훈 그 개자식이 날 맨날 면회 와서는 그날 밤의 일을 꼬치꼬치 캐묻는데…… 감이 싸하더라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신만 없어지면 목격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사건이 미궁에 빠질 테니까요…….”

이준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초조한 듯 강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원래 불구속으로 나가야 할 타이밍이거든! 근데 변호사도 자꾸만 기다리라는 거야. 재판부랑 협의가 잘돼가고 있다며!”

혼자 구치소에 남겨진 이준구의 의심은 눈덩이 굴리듯 커졌다. 그래서 그는 결국 자신의 보험을 꺼냈다.

“그래서 장영상 보좌관을 직접 만나보시니 어떠시던가요? 녹음파일 얘기를 꺼내니 놀라던가요?”

이준구는 보험으로 장영상 보좌관에게 전화 지시를 받는 걸 녹음해 뒀다. 그리고 그 녹음파일이 담긴 테이프를 사고 차량의 글로브 박스에 넣어 두었던 것이었다.

지난번 면회에서 이준구의 기억을 읽었던 강준은 사고 차량이 이준구의 자택에 아직 세워져 있는 걸 발견했고, 녹음파일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거였다.

“뭐야? 당신! 장영상하고 너 내통하고 있었던 거야!”

“그럴 리가요? 전 사고가 교통사고 보험금 지급에 의문을 품은 보험조사관일 뿐입니다.”

이준구는 강준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죽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하긴 강상훈이 널 싫어하더라. 그래서 그 녹음파일을 나한테 달라는 거야?”

“그거 언론에 노출되면 이준구 당신은 살인 혐의로 처벌받을 겁니다. 지금의 과실치사보다 몇 배나 형량이 높죠.”

형량 얘기를 하자 눈을 부릅뜨는 그였다.

“내가 미쳤어? 내가 그걸 왜 언론에 노출하겠어?”

“언론 노출은 제가 합니다!”

강준은 면회실에 가져온 이준구의 녹음테이프를 꺼내 보였다.

“시발! 그게 왜 네 손에 있어! 너 뭐야!”

“이준구 씨, 이 녹음테이프가 언론에 노출되면 당신은 살인 형량을 받겠지만,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훨씬 낫지 않겠어요?”

이죽거리던 태도는 사라지고 얼굴 살이 부들부들 떨리는 이준구였다.

“당신이 한승일 측의 살인 청부를 증언하면 당신은 전 국민의 관심을 받을 거고, 불의를 폭로한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때요? 그냥 여기서 허무하게 죽는 거보다는 그게 낫지 않아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준구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강준에게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구치소에 갇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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