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 교통사고 위장 살인 (2) (136/250)


136. 교통사고 위장 살인 (2)
2022.04.15.


“사고 차량과 부딪힌 1차 충격으로 튕겨 나가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고, 2차로 차량에 깔려서 역과 손상이 일어났네요. 다발성 장기손상인데, 더 정확히는 흉부의 늑골이 골절되어 내부의 장기가 파열됐고, 팔과 다리에도 박피손상이 있었어요… 물론 타이어가 지나간 바퀴흔이 확인됐고요.”

교통경찰계의 장 경장은 귀찮다는 듯이 김형식 형사에게 사건보고서를 읊었다.

“근데 말이야…… 차량 보넷 위로 몸이 튀어 올랐을 텐데…… 유리창에 아무런 흔적이 없잖아? 안 그래?”

“그야 운전자가 제동하면서 속도를 줄였으니까 그렇죠. 그리고 충격 부위가 보행자의 무게중심보다 위에 있으면 피해자는 차량 진행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그대로 차량에 깔리는 거예요.”

뭘 알지도 못하면서 들쑤신다는 표정의 장 경장이었다. 그는 직접 현장 조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건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이었다.

김 형사도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장 경장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가서 보니까 말이야…… 스키드마크가 지워져 버렸더라고?”

“도로 청소과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도로 청소하는 거 모르십니까? 그래서 스키드마크 확보하려면 우리도 현장 통제부터 하는 거고요.”

“그래……? 장 경장, 정말 이 스키드마크는 거짓말을 안 하는 거겠지?”

장 경장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김 형사를 돌아봤다.

“경사님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 우리 쪽 조사에 의구심이 드셔서 이러시는 거예요?”

“에이! 같은 식구끼리 왜 이래? 나도 교통사고 건 배우려고 이러는 거야. 알잖아? 나 곧 보험사로 이직하려는 거.”

“……해리츠 보험으로 가시는 겁니까?”

“어. 그렇게 됐어. 보험사기 중에 제일 많은 게 교통사고 건이라고 하더라고…… 근데 내가 가서 모르면 망신당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이 기회에 장 경장한테 좀 배우려는 거지. 경찰에 몸담았을 때 하나라도 더 얻어가려고…….”

장 경장은 어쩌면 자신도 나중에 보험사로 이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 그날은 비가 좀 내렸어요. 그러니까 스키드마크가 평소보다는 덜 생겼다고 봐야죠. 스키드마크 속력 계산법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마찰계수랑 스키드마크 길이로 추정 속도를 도출해 내는 거거든요.”

“그럼 비가 왔으니까 노면 마찰이 덜 생겼겠네?”

“맞아요. 아스팔트 포장도로에서 평소에는 마찰계수가 0.8인데 비 올 때는 0.6이에요. 우천 시에는 스키드마크가 덜 남는다는 얘기죠.”

“음… 복잡하네…….”

“조사서에 스키드마크가 37미터로 되어있죠? 그럼 추정 속도는 시속 86.70km에요.”

김 형사는 조사서를 골똘히 바라봤다. 복잡한 산술식은 그에게 낯설었다.

“잠깐만! 방금 우천 시에는 스키드마크보다 추정 속도를 낮게 봐야 하는 거 아냐?”

“그렇긴 한데…… 이 건은 사고운전자가 바로 자수한 건이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날 비가 내렸다 말았다 한 상황이라…….”

장 경장의 발언은 아까 비가 내렸다고 말한 본인의 말을 정면으로 뒤집을 수 있었다. 사건보고서의 내용은 적당히 작성된 거였다. 그게 아니면 누군가의 압력에 의해 일부러 누락되었거나…….

“처음 현장에 출동한 게 119구조대지?”

“네, 그렇죠. 김 경사님은 우리가 현장 확인도 제대로 못 했을까 봐서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좀 이상한 게 있어서 말이야. 목격자가 전혀 없어. 주변 CCTV도 없고.”

“그야 사고 시각이 새벽 2시니까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오히려 장 경장이 되물었다. 현장 확인을 하지 않은 장 경장이었기에 그도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이건 그냥 장 경장만 알고 있어…….”

목소리를 낮추는 김 형사였다. 장 경장은 순간 이례적으로 자신에게 입단속을 하라고 했던 직속상관 이 경사가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네. 당연하죠…….”

“그날 사고를 직접 봤다는 사람을 내가 찾았거든……. 근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애초에 아스팔트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고 하던데?”

김 형사의 말에 눈을 번뜩 뜨는 장 경장이었다.

“아니 그랬다면…… 이준구가 말을 안 할 리가 없는데요? 음주운전 전과자라 본인도 불리한 상황이거든요…….”

“내 말이…… 나도 그 점이 수상하다니까…….”

장 경장은 조심스럽게 김형식 경사에게 재차 질문했다.

“근데 말입니다. 그 목격자라는 사람이 누굽니까?”

“내가 아직 조사가 안 끝나서 말은 못 해 주겠는데…… 이거 만약에 재수사 들어가면 내가 결정적인 증거로 ‘땅!’하고 내놓을 생각이야.”

“결정적인 증거라면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거야 목격자 진술이지. 뭐겠어?”

묘하게 표정이 변하는 장 경장이었다.

“그럼, 목격자가 진술 뒤집으면요?”

“그러니까! 목격자 관리에 들어가야지. 괜히 목격자가 말 바꾸면 중간에서 나만 바보 되는 거거든.”

“하긴 사람 속이 제일 어려운 법이죠.”

장 경장은 김 형사에게 더 질문하지 않고 호응하는 말만 던졌다. 그때, 김 형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장 경사, 나 그럼, 다음에 또 물어보러 올게.”

“그럼요. 언제든지 오십시오.”

“그래, 나 이만 간다!”

교통경찰계 사무실을 빠져나와 복도에 나온 김 형사는 표정을 바꾸고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박 차장님, 말씀하신 대로 목격자 얘기는 던져 놨습니다.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죠.”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마 곧 사건을 조작한 쪽에서 미끼를 물 겁니다.

“그럼 이제 저한테도 알려 주시죠. 결정적인 증거라는 거 말입니다.”

―부검감정서에는 빠진 내용이지만 김기동의 시신에서 졸피뎀과 클로티아제팜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누군가 수면제를 먹였겠군요. 전 김기동의 그 날 행적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김형식 형사는 방향을 틀어 형사과 쪽으로 걸었다. 외근을 나가기 전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형사과 황재규 반장!

김기동의 사망 사건이 있고 난 후, 한승일의 보좌관이 황 반장을 찾아왔었다. 그날 술자리에 김형식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분명 둘이 뭔가 오고 간 게 있었다.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김형식은 김기동의 사망 사건이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는 점을 황 반장에게 알려야 했다. 거꾸로 입단속을 당할 것이 뻔했지만 말이었다.

‘……난 형사니까! 옷 벗을 때 벗더라도 쪽팔리지 말자!’

* * *

남부구치소.

“이준구 씨, 면회 신청합니다.”

강준은 교통사고로 김기동을 죽이고 스스로 자수한 이준구에게 면회를 신청했다.

이준구. 48세. 트럭 운전사.

그는 음주운전 전과가 있었기에 이번 사망사고로 인해 구속형을 받을 게 거의 확실했다. 게다가 트럭 운전사로 일하고 있었기에 형을 살고 나온다면 힘들어질 게 뻔했다.

그런데도 그는 망설임 없이 자수했다. 강준은 이준구가 정말 그렇게 양심적으로 올바른 사람이었는지가 궁금했다.

……그의 평판이 최악인 것과는 별개로 말이었다.

이준구는 면회실에 나와 강준을 얼굴을 보더니, 경계하는 눈빛으로 자리에 앉았다.

“근데…… 누구십니까?”

“성원화재 박강준 차장입니다. 사망한 김기동 씨가 저희 보험사의 보험계약자고요.”

“합의 문제라면 강상훈 씨하고 얘기하시죠……. 전, 그분한테 위임했으니 더 할 말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이준구 씨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어서 온 겁니다.”

“네? 저요?”

이준구는 주변을 돌아봤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그를 면회 온 사람은 강상훈 손해사정사밖에 없었다.

“도박을 꽤 하셨더라고요?”

“뭘 듣고 온지 모르겠지만, 내가 당신한테 대답할 이유는 없지.”

“음주운전 때문에 버스 운전을 그만두셨고요. 트럭 운전은 일거리가 불규칙해서 생활이 전만 하지 못했겠네요?”

“…참나 ……계속 지껄여 보쇼.”

“근데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음주운전 사건 때 뺑소니였더라고요. 그래서 잠깐 구속되셨죠?”

이준구는 호흡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면회실을 박차고 나가지는 않았다. 그는 강준이 누군지 그리고 뭐 하러 왔는지가 궁금했다.

“그때 이두철이라는 사람 만났죠? 환전상 하는…….”

강준은 고개를 들어 이준구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자수는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깔려 있을 것 같았다.

“아뇨.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강준은 그의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의 기억이 강준의 눈앞에 펼쳐졌다.

[당신, 나가면 뭐 할 거니?]

[이제 버스 기사는 못 하니까…… 어디 학원 같은 데라도 운전기사 뽑는지 알아봐야지.]

[내가 사람 한 명 소개해 줄까?]

[누군데?]

[돈 많고 힘 있는 사람.]

이두철은 다음 날 구치소를 나가는 이준구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강준은 이두철이 소개한 사람이 누군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보좌관이라고…… 뭐, 당신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모시는 사람 골치 아픈 일들 해결해 주고 그런 사람을 보좌관이라고 하거든.]

[알지. 국회의원 보좌관 뭐 이런 사람들이잖아.]

[음. 맞아. 근데 국회의원 보좌관은 아닌데…… 어쨌든! 한번 만나 볼래?]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불안함과 의심이 뒤섞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준구를 발견했다.

“그 환전상이 장영상 보좌관을 소개해 줬죠? 당신도 알다시피 한승일 시장 뒤치다꺼리 도맡아서 하는 사람이 바로 장영상 보좌관이고요.”

“……면회 그만하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이준구였다.

“그 사람들이 당신을 죽일 겁니다. 김기동처럼…….”

이준구는 얼음처럼 굳은 표정으로 강준을 돌아봤다. 그도 한승일 측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구는 그들에게 약속받은 게 있었다. 피해자와의 합의 후에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돼 있었다. 그리고 이후 연남시 외곽에서 펼쳐지는 아파트 공사의 자재운송 사업권을 받을 예정이었다.

“지랄 마! 시발! 날 한번 흔들어 보겠다고 그러나 본데! 어림도 없어!”

차가운 표정으로 뒤돌아서는 이준구였다. 강준은 굳이 그를 붙잡을 이유를 못 느꼈다. 어차피 이준구의 기억 속에서 단서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나랑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 몸조심하시고요.”

이준구는 섬뜩했다. 이두철이 장영상 보좌관을 소개해 주면서 자신에게 가르쳐준 게 하나 있었다.

보험을 만들어 두라는 것!

[그 바닥 사람들 절대 흔적을 안 남기려고 해.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억지로라도 만들어놔야겠지. 믿을 놈 아무도 없는 판이야. 각자도생이라고!]

이준구는 그 보험을 사용해야 할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그 모든 걸 지시했던 장영상 보좌관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다.

자신이 결코 혼자 죽지는 않을 거라는 걸.

면회실을 먼저 빠져나가는 이준구의 발걸음에는 머뭇거림이 묻어 있었다. 강준은 조만간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올 것이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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