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교통사고 위장 살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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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교통사고 위장 살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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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교통사고 위장 살인 (1)
2022.04.14.
연남경찰서.
김형식 형사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보험회사로의 이직을 결정지은 상태였다. 해리츠 보험 손해사정팀의 팀장인 박성태 부장이 힘쓴 결과였다.
그런 김 형사에게 김기동을 차로 받은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재수사해 달라는 강준의 부탁은 무척 곤란한 일이었다.
“박 차장님…… 그러니까 그 사건을 고의적인 살인으로 보신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면밀하게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근데 그건 엄연히 교통조사계의 일입니다. 저희가 의심 간다고 함부로 사건을 우리 맘대로 할 수는 없다는 거! 그거 잘 아시잖습니까?”
“이걸 한번 보시죠.”
강준이 내민 건 사고 차량의 사진이었다.
“이건 어디서 난 겁니까? 혹시 교통경찰계에도 아는 사람이 있는 겁니까?”
“폐차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곧바로 폐차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급하게 가서 찍어온 사진입니다.”
“……박 차장이 냄새를 맡으신 거면 뭔가 있다는 거긴 한데…….”
마지못해 인정하는 김형식이었다. 하지만 그도 앞으로의 상사가 될 박성태 부장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이번 교통사고의 사망자가 한승일 시장의 측근이기 때문에 쓸데없이 오해를 살 만한 말들이 형사과에서 나오지 않게 해 달라는 거였다.
“일단 돌아가 계시죠. 제가 이거 정식으로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것만 마저 태우고 가시죠.”
“네네…… 편하게 피우십시오.”
말없이 경찰서 뒤 벤치에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우는 둘이었다. 둘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걸 먼저 깬 건 김 형사였다.
“……박 차장님! 뭔가 알고 오신 거죠?”
“뭘 말입니까?”
“제가 경찰 그만두고 보험조사관으로 이직하는 거 말입니다.”
“몰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강준은 태연하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사실 김 형사의 말대로 강준은 알고 있었다. 좀 전에 읽은 김 형사의 기억에서 박성태가 얼마나 연남경찰서의 강력반 형사들을 구슬려왔는지를 읽어 냈기 때문이었다.
“박 차장님, 우리 한번 솔직히 말해 보죠…… 이번 교통사고 사망자가 한승일 시장의 정책담당관인 거 아시고 계셨죠……?”
“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리츠 보험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해리츠 보험이 한 시장과 배후에서 관련이 있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니까요.”
“근데 벌써 부검 결과가 나왔습니다. 뇌진탕과 다발성 장기손상으로 인한 사망입니다. 이거 뒤집을 수 있겠습니까?”
강준은 다시 사고 차량의 사진을 꺼내 들었다.
“차량 앞 범퍼는 큰 충격에 의한 손상 흔적이 있습니다. 근데 앞 유리창 부분을 보십시오. 멀쩡하죠?”
“이건 사람이 깔린 겁니다…… 그래서 앞 유리창은 멀쩡한 거 아닙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건 차의 속도가 높지 않았을 경우입니다. 이 사고 차량처럼 범퍼에 이 정도 손상을 줄 충격이었으면 속도가 꽤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박 차장님 말씀은…… 이 속도에서 차에 받혔으면 사람이 보넷 위로 튀어 올라서 유리창에 부딪혔을 거다…… 뭐 이런 말이죠?”
김형식 형사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본래 태생 자체가 형사였다. 강준은 담뱃갑에서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김 형사에게 내밀었다.
“김 형사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보험사가 해리츠만 있는 건 아닙니다. 굳이 벌써 해리츠에 끌려다닐 이유는 없습니다…….”
자신이 고민하는 바의 정곡을 찌르는 강준에게 김 형사는 새삼 놀라웠다.
“눈치 빠르신 분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하하!”
머쓱하게 웃는 김형식이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꾸고는 말을 이었다.
“만약 지금 이 사건이 조작된 거라면…… 교통조사계에서 협조해 주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저 같은 강력반 형사들이야 교통사고 흔적을 잘 모른다지만, 교통조사계에서 현장을 둘러보면 단박에 알거든요.”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이는 건 너무 번거로운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흔적을 많이 남기니까요…….”
김형식 형사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며 강준을 돌아봤다.
“박 차장님, 차장님 정도 되시면 성원화재에서 연봉은 얼마 받나요?”
“왜요? 저희 성원화재에 입사하시려고요?”
“저 이번에 잘못 설치다간 경찰에서도 쫓겨나고 해리츠 보험으로도 못 가고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인사담당자는 아니지만, 추천서 정도는 써드릴 수 있습니다.”
반농담조로 얘기한 거지만 김 형사는 안심했다는 듯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면 됐습니다. 박 차장님 명성이면 써주신 추천서도 그만큼 힘이 있겠죠! 좌우간 전 다시 현장을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사고 차량의 스키드마크(skid mark)가 어떻게 찍혀 있는지 직접 확인해 봐야겠네요.”
“전 부검의를 한번 만나러 가 보겠습니다. 진짜 사고가 아니라면 충분히 부검에서 밝혀졌을 테니까요…….”
“부검의까지 한패라는 말씀인가요?”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게 맞는 거라면요.”
잠시 침묵하는 둘이었다.
“박 차장님…… 한 가지 조언해드리자면 보통 주변인 탐문은 사건과 제일 관련이 없는 사람부터 하는 겁니다. 왜냐면 자신에게 부담이 없어야 진실을 말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좌우간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김형식 형사는 강준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경찰서 건물로 돌아갔다. 김 형사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건 강준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 자들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는 거였다.
강준은 김 형사가 멀어지는 걸 한참 바라보다 반대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유족 대표분께만 부검감정서를 드릴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미 수사 기관에는 전달했고요.”
“고인께서 저희 보험사의 보험상품에도 가입하셨습니다. 수사 기관은 아니지만, 부검감정서 열람 정도는 가능할 것 같은데요?”
부검의는 보험사 측에서 부검감정서를 요구하는 경우는 처음 겪었다. 통상적으로 보험사가 경찰에 수사 요청을 하고 경찰을 통해 부검감정서를 받아보기 때문이었다.
“그럼 잠깐 여기서 기다려 주시죠.”
부검의는 소장에게 의견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자신의 의견을 뭉갠 소장에 대한 불만도 내심 작용했기 때문에 그에게 사안을 떠넘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짜증이 나는 건 낯선 보험조사관이 불쑥 찾아와 온갖 세균으로 범벅된 손으로 은근슬쩍 자신의 몸을 만졌다는 거였다.
그는 신경질적인 걸음걸이로 소장실로 향했다.
“어! 김 박사! 웬일이야?”
“저번에 김기동 사망자 말입니다. 보험사 직원이 와서 부검감정서 달라는데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당연히 못 주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통보하죠.”
부검의의 이름은 김예준. 직급은 과장이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만큼이나 매사에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별다른 흥미가 없는 만큼 남 눈치는 보지 않았다.
“김 박사, 이왕 왔으니 안 바쁘면 잠깐 차 한잔하고 가지!”
“아까 그 보험사 직원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아니 내가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잠깐 앉아 봐.”
그제야 김예준 과장은 자리에 앉았다.
‘또 무슨 엉뚱한 부탁을 하려고…….’
직접 차를 탄 소장이 김예준 과장을 달래려는 말투로 말했다.
“저번에 소견서 낸 거 말이야…….”
“네, 말씀하시죠?”
“독성화학과에서 그러는데 오류가 좀 있었다네?”
“무슨 오류 말입니까……? 혹시 수면제 성분이 나왔다는 거 때문에 그러신 건가요?”
“어. 시료에 문제가 좀 있었다나 봐. 저번에 검출된 양으로는 유효성을 입증하기가 힘든가 보더라고.”
잠시 빤히 소장을 바라보는 김예준이었다. 그리고는 표정의 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
“졸피뎀과 클로티아제팜 성분이 검출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농도가 낮다고 해서 검출이 되지 않은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건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는 문제야. 며칠 전에 먹었던 수면제가 인체에 남아 있어서 검출됐다면 어쩔 텐가……? 부검에서 확실하지 않은 건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네.”
“소장님, 어차피 소견서는 소장님께서 이미 고치신 거 아닙니까? 근데 이렇게 저한테 말하는 이유가 뭡니까?”
김예준은 능구렁이 같은 소장이 그냥 그런 말을 꺼내는 게 아님을 짐작하고 있었다.
“김 박사! 내가 김 박사한테 좀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도 되나?”
김예준 과장은 김 박사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소장이 자신이 대학교수가 되지 못한 걸 조롱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말씀하실 거잖습니까? 말씀하시죠…….”
냉랭한 태도의 김예준이었다. 하지만 소장은 그런 김예준의 태도가 익숙하다는 듯이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김 박사가 만난 보험사 직원 말이야…… 그 바닥에서 유명한 보험조사관이야. 어떻게든 보험료 안 주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흠집 잡는 인간!”
“아까 말씀하신 유효성 입증 부족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하하! 자네가 이런 건 빨리빨리 알아들어서 좋아!”
김예준의 냉소를 뻔뻔하게 칭찬으로 받아치는 소장이었다.
“좌우간 저 보험사 직원한테 쓸데없는 정보를 줄 필요는 없다는 거야. 어차피 부검감정서에도 없는 내용을 굳이 말해서 뭣하겠어?”
“그렇게 하시죠.”
너무 간단히 대답하는 김예준이었다. 소장은 입씨름할 걸 예상했었는지 김예준의 반응이 의외라는 듯 놀란 눈을 떴다.
“잘 생각했어. 우리 국과수야! 괜한 민간 보험사가 하는 말에 휘둘릴 거 없다고. 안 그래?”
“저 이만 일어나도 되죠?”
“그럼! 오늘 저녁에 술 한잔 어때?”
“괜찮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어서요.”
“아…… 그래? 그럼, 그래야지! 다음에 한잔하자고.”
소장은 김예준이 다음에도 술자리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지만 마음에도 없는 빈말을 계속해댔다.
김예준 과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보험사 직원을 출입문에 뚫린 투명 홈으로 바라봤다. 그는 소장이 업계에서 유명하다고 했던 보험조사관 박강준이었다.
드르르륵!
하얀 미닫이문을 열었다. 그러자 강준이 벌떡 일어났다.
“소장님께 말씀은 드려 보셨나요?”
“네, 아무래도 민간 보험사에 부검감정서를 드릴 수는 없을 거 같네요.”
“잠깐 앉으시죠.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강준은 또다시 김예준 과장의 팔을 잡아끌었다. 순간 김예준의 미간이 불쾌하다는 듯 찌푸려졌다.
“시간이 없으니 짧게 말씀하시죠. 또 검안해야 할 건이 있으니까요…….”
“김기동의 사체에서 발견된 수면제 성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예준 과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자신이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강준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네요…… 당신이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요?”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 교통사고로 위장한 살인사건이니까요…… 김기동은 이미 정신을 잃고 길바닥에 던져진 겁니다. 그 위를 차가 덮친 거고요!”
침착했던 김예준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추측했던 것이 강준의 말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닥글:
<참고자료>
수사실무 기반 법의학 교육자료 개발에 관한 연구, 전남대학교, 대검찰청,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