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 양계장 재해보험 (4) (134/250)


134. 양계장 재해보험 (4)
2022.04.13.


송안읍 축협.

광역수사대 특수경제과의 이진철 팀장이 형사들을 데리고 들이닥쳤다. 손에 든 건 체포 영장이었다.

“조합원지원팀 이동수 대리를 체포합니다!”

어정쩡하게 서 있던 이동수가 황당하다는 듯이 상임이사를 바라봤다.

“조 이사님 정말 이런 식으로 하기 있습니까?”

“내가 뭘 어떻게 했다는 거야? 본인이 잘못한 일을 가지고 남 탓을 하면 되겠어? 쯧쯧!”

“내부 감사가 다 끝나지도 않았잖습니까? 그리고 이건 모함이라니까요? 양계장은 김호철이 한 거지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진철은 둘 간의 다툼에 끼어들었다.

“이동수! 김호철이 다 불었어. 친구라면서 혼자 독박 씌우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누가… 독박을 씌운다고 그래요……?”

상황을 인지한 이동수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답했다.

“우긴다고 될 문제가 아니야. 작년에 김호철의 통장 계좌에서 너한테 몇천만 원이 입금됐던데? 해명할 수 있어?”

“그거야 걔가 양계장 차릴 때 저한테 꿔간 돈이 있었으니까요. 그걸 갚은 건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요?”

“꿔 간 돈이다……! 근데 딱 보험금 지급되고 나서 너한테 돈이 갔고?”

“네!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까 한번 조사해 보자고! 그게 투자금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꿔 준 돈이었는지 말이야!”

이진철은 같이 온 형사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형사들이 달려들어 다른 직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이동수를 끌고 나갔다.

경찰 봉고 안에는 이동수가 독박 씌우려던 김호철이 떡 하니 앉아 있었다. 이진철은 축협에 오기 전 양계장에서 김호철부터 체포하고 온 거였다.

“야! 동수야. 이거 아무 문제없는 거라며! 이제 우리 어떻게 허냐!”

“시발…… 정재우 그 새끼…….”

“내가 뭐라 그랬냐? 정재우 그 새끼 하는 말 믿지 말라니까!”

정작 김호철과 마주치자 자리에 없는 정재우를 욕하는 이동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재우까지 물고 늘어질 순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했다간 보험사기를 공모한 걸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동수는 마주 앉은 김호철에게 몸을 숙이고는 속삭였다.

“호철아…… 일단 딱 잡아떼자! 재우 그 새끼도 자기 밥줄이 달린 문제인데 변호사를 사든지 해서 빠져나가려고 하겠지. 그럼 우리도 그 틈에 같이 빠져나가면 되는 거야! 알겠어?”

“……난 이제 모르겠다. 죽은 닭들 묻은 곳까지 전부 다 파본 다잖아! 어떻게 빠져나갈 건데?”

이제 김호철은 더 이상 이동수의 달콤한 말에 속지 않기로 했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해도 혼자서 양계장을 꾸려나가던 시절이 그리웠다.

모든 게 후회되는 김호철이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이동수에게 뭐라도 쏘아 주고 싶었지만, 김호철은 말을 삼켰다.

“이동수! 시발 우린 그냥 좆된 거야…….”

원망하듯 체념하는 김호철이었다. 이동수는 그런 김호철을 보며 더는 뭐라 설득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 * *

강상훈 손해사정사 사무실.

송안읍 축산 농가의 재해보험 사기는 양계장 주인 10여 명과 축협 직원 이동수가 구속되면서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이동수와 함께 범행을 공모했던 정재우 손해사정사는 경찰 조사를 받는 선에서 그쳤다.

공범인 김호철의 계좌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경찰이었기에 정재우가 빠져나가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이진철이 팀장 직위를 맡은 광역수사대에도 압력이 내려왔다.

강상훈이 전에 연을 맺었었던 한승일 시장을 찾아가 경찰 조사에서 정재우를 빼달라고 청탁한 덕분이었다. 그 덕분에 정재우가 혐의 선상에서 빠진 거였다.

“그간 죄송했습니다…….”

“멀리 안 나간다. 다신 보지 말자고.”

“그럼…….”

박스를 들고는 고개를 푹 숙여 마지막 인사를 하는 정재우였다. 처음 사무실에 입사했을 때의 당당했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차갑게 냉대하는 강상훈에게 정재우는 내심 서운했다. 자기 덕분에 송안 축협의 실사 일거리를 따낼 수 있었던 강상훈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만 내쳐지고 강상훈은 자기가 물어 왔던 걸 혼자 날름 먹어 버린 셈이었다.

“여우 같은 새끼…… 두고 보자!”

강상훈의 참모인 정 실장을 한번 노려본 정재우는 인사도 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정 실장이 쪼르르 강상훈의 방으로 들어갔다.

“사정사님! 정재우 저 새끼, 아주 끝까지 싸가지가 밥 말아 먹었는데요?”

“알아. 근데 신경 쓰지 마! 매사 그렇게 뒤돌아보다간 정 실장 머리 더 빠진다고…….”

강상훈의 말에 정 실장이 자신의 정수리를 매만졌다. 이미 탈모가 진행되어 훤히 두피가 들여다보이는 정수리였다.

“그나저나 정재우가 남기고 간 똥 치우느라 우리가 일 하나 떠맡았어.”

“무슨 일이요? 한승일 시장이 던져 준 건가요?”

“정 실장이 눈치 하나는 빠르네. 여기 이 사람 교통사고 건 좀 처리해 줘. 보호자 만나 보고 보상 절차 시작하자고.”

강상훈이 내민 건 종이쪽지 한 장이었다. 그리고 그 종이쪽지엔 사람 이름과 연락처만 적혀 있었다.

―김기동, 43세, 010―8589―38XX

“보호자라고 말씀하신 거 보니까 이 사람 많이 다쳤나 보네요?”

“어, 의식불명. 앞으로 일어나게 될지 안 일어나게 될지 모르고.”

“그럼, 노동력 상실 100%의 영구장해네요.”

“그렇지.”

“합의 액수는 얼마까지 가능한 겁니까?”

“음…… 5억.”

“네? 5억이요? 그럼 이거 완전 꿀인데요?”

“그렇지? 그러니까 정 실장이 가서 원만하게 처리하고 와.”

하지만 눈치 빠른 정 실장은 방에서 나가지 않고 목소리를 낮춰 되물었다.

“사정사님…… 솔직히 말씀해 주시죠? 이거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게 뭡니까?”

강상훈은 자리에 앉은 채 조용히 눈을 치켜뜨며 정 실장을 빤히 노려봤다.

“정 실장은 다 좋은데 가끔 선을 넘어…… 안 그러면 안 될까?”

“네……! 물론 그래야죠! 알겠습니다. 좀 있다가 일 처리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군말 없이 강상훈의 말에 따르는 정 실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나가고 나자 강상훈은 여지없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장 보좌관님, 오늘 우리 쪽에서 병원 조사할 건데요. 경찰에서도 합을 맞춰 주셔야 합니다. 알죠?”

―그럼요! 이미 병원하고도 말을 맞춘 상태니까 별문제 없을 겁니다.

“네,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지난번 뵙던 한식집에서 예약 잡아 놓고 있겠습니다.

“시장님도 오시는 거죠?”

―선거가 코앞이라 오늘은 같이 못 뵈실 거 같습니다. 저를 통해서 하실 말씀 전달해 주시면 됩니다.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상훈은 미간을 한번 찌푸렸다. 같은 사무실 정재우 손해사정사의 보험사기 공모 혐의를 해결해 주는 대신 그는 꽤 부담스러운 사건을 맡았다.

바로 연남시 시청 건축과의 김기동 사무관을 교통사고로 처리해야 하는 건이었다. 그건 엄연한 사건 조작이었다. 왜냐면 김기동 사무관은 머리를 얻어맞은 뇌진탕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 * *

성원화재 을지로 본사.

김성호 이사가 오랜만에 강준을 본인 사무실로 불렀다.

그는 성원그룹의 경영권 문제가 일단락되자 전략기획팀의 수장 자리를 최은정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그룹의 자문역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런 그가 강준을 은밀하게 부른 것이었다.

“박 차장, 회사 나갈 준비는 잘하고 있는 거야?”

빙긋이 웃으면서 강준에게 차를 건네는 김 이사였다.

“…최은정 이사님이 투자해 주기로 했습니다……. 뭐,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괜히 퇴사한다는 말을 먼저 던졌다가 머쓱해지기만 한 강준이었다.

“괜히 민망해할 필요 없어. 나도 여기까지 오는데 성원그룹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수십 번이었으니까.”

“다들 그렇죠. 그나저나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왜 이제는 뒷방 늙은이가 된 나랑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은 없다는 게야?”

“에이 왜 그렇게 또 말씀하십니까? 제 마음 아시면서…… 그래도 평소에 성원그룹을 제일 생각하시는 분이 이사님이 아니십니까?”

김성호 이사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손을 내저으면서도 광대가 한껏 올라갔다.

“이 사람이! 능청스러운 구석이 생겼구먼! 좌우간…… 오늘 자네를 부른 건 사건 하나를 맡아 줬으면 해서.”

“이렇게 은밀히 저를 부른 걸 보면 보안 사항이지 싶은데요?”

“맞아! 연남시 건축과 팀장 김기동. 5급 사무관이고 그간 한승일의 최측근이나 다름없었던 사람이야.”

김 이사가 내민 자료에는 김기동에 대한 사항들이 적혀 있었다. 연남시의 문화복합단지를 추진하면서 리안건설, 그러니까 최진태가 운영하던 성원건설이 이름을 바꾼 건설사에 일감을 몰아줬던 것이었다.

“지금 이 사람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죽었어.”

“……네?”

“말한 그대로야. 원래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의식불명으로 중환자실에서 입원해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사망했어.”

“김 이사님 보시기에는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한 차례 뜸을 들인 김 이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교통사고 조사한 놈들이 누군지 알아?”

“누구입니까? 어느 보험사인데요?”

“해리츠 보험…… 그리고 해리츠랑 연결된 강상훈 손해사정사. 잘 알지? 강상훈?”

“잘 알죠. 근데, 여전히 해리츠랑 일을 하네요?”

“가스 폭발 사건 때 별로 일 처리가 시원찮았는지 일거리를 쭉 못 받다가 이번에 다시 받은 모양이야.”

“아무래도 미더운 사람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때로는 구관이 명관일 때가 있는 법이거든.”

강준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지금인가요? 한승일 시장의 선거가 한 달 뒤가 아닙니까? 무리수를 두기엔 민감한 시기 아닌가요? 자신의 재선 가도에 위협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아마 반대편 후보 측에서 한승일의 약점을 가지고 있는 김기동을 포섭했을 수도 있어. 김기동도 선출직인 한승일을 무조건 믿고 갈 수만은 없었을 테고.”

김 이사의 현실적인 추측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김 이사가 그보다 더 확실한 정보를 입수했기에 움직이는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한승일의 반대편일 터였다.

“김 이사님은 이걸 어떻게 처리하셨으면 좋으시겠습니까?”

“밝혀야지. 있는 그대로…….”

강준은 그 순간 김성호 이사의 기억을 읽을지 말지를 고민했다.

“누가 뭐래도 우리 성원화재의 에이스는 박강준 너야. 그러니까 누구 눈치 볼 거 없어. 원래 네가 하던 대로 해. 그렇게 하라고 내가 박 차장 자네를 부른 거야.”

강준을 믿어 주는 김성호 이사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강준이 성원화재의 보험조사팀에 붙어 있을 수 있었던 건 김성호 이사 같은 우군이 있었기에 가능한 건지도 몰랐다.

“이사님! 선거 전에 조사가 안 끝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김성호 이사는 강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박강준 자네가 내가 지시한 대로 따를 인물이 아닌 거 잘 알아. 그러니까 염려 말고 가서 조사나 잘해!”

“네! 그럼 전 이만 이사님 지시 수행하러 가 보겠습니다!”

강준은 거수경례하듯 장난스럽게 손을 올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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