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 양계장 재해보험 (3) (133/250)


133. 양계장 재해보험 (3)
2022.04.12.


강상훈은 같은 사무실 정재우 손해사정사가 차명으로 양계장을 차렸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곧장 조민구 이사를 만났다. 그는 송안 축협의 상임이사였다.

“네? 이동수 대리가 직접 양계장을 운영한다고요?”

“저도 직접 확인까지는 못 한 사안이라 걱정되는 마음에 이사님께만 살짝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여간 조합장 빽으로 들어온 인간들이 항상 문제라니까요…….”

한숨을 내쉬며 심경을 토로하는 조 이사였다. 그는 그간 맺힌 걸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상임이사는 조합의 대의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선출직이었다. 당연히 조 이사는 힘 있는 조합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조합의 실질적인 운영은 상근직인 상임이사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 이사는 그간 조합원 낙하산인 이동수 과장이 눈엣가시였지만, 단박에 쳐낼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솔직히 재해보험이라는 게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지원정책 중 하나가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더 민감한 거고요.”

“근데 저희 쪽에서 바라보는 재해보험에 관한 시각은 좀 다릅니다.”

“네? 시각이 다르다니요……?”

“보험사에서도 국가에서 개입하는 보험상품이니 그렇게 까다롭게 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괜히 말이 나왔다가 밉보일 수가 있으니까요.”

순간 조 이사는 헷갈렸다. 재해보험 실사 담당자인 강상훈이 자신을 찾아온 건 경고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근데 반대의 얘기를 하며 자신을 안심시키고 있는 거였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결 안심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대리 일은 그냥 넘어가기는 어렵습니다. 내부 기강의 문제도 있고요…….”

“물론입니다. 원래 작은 거 하나가 새면 계속 새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이사님이 송안 축협의 내부 감사를 직접 진행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내부 감사라…….”

“물론 직원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보험사 측에도 보여 줄 모양새가 되고, 추후 혹시나 모를 문제가 드러난다고 해도 이사님께서 면피할 수 있는 핑곗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사정사님…… 그래도 문제가 있으면 제가 다 책임져야지요…… 상임이사인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 이사는 자기 입장을 헤아려 주는 강상훈 사정사와 죽이 잘 맞는다고 내심 생각했다.

“어쨌든 제게 먼저 자초지종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동수 대리는 분명히 징계까지 가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네. 전 이번 일을 빌미로 정재우 사정사를 내보낼 생각입니다. 저희 선에서 일을 잘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도 재해보험 상품이 잘 유지되지 않겠습니까?”

“그럼요. 제가 이쪽은 잘 단속하겠습니다…….”

강상훈이나 조민구 이사나 재해보험이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조 이사나 그런 축협으로부터 실사 일거리를 받은 강상훈이 너무 빡빡하게 축산 농가를 압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손해율을 떠안고 가는 게 운영의 묘미였다. 보험회사들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관계자인 강상훈 손해사정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 *

송안 축협의 내부 감사에 대한 파장은 컸다. 조합원지원팀이 뒤집힌 건 당연했고, 작년도 재해보험 관련 자료를 탈탈 터는 내부 감사의 강도에 조직원들의 동요가 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문에 소문으로 이어진 건 이동수 대리의 양계장 대리 운영이었다.

“이동수 대리는 잘리겠는데요?”

“그냥 사람 한 명 자르는 거로 무마하고 가겠다는 건가?”

김준혁은 주변인 탐문을 통해 송안 축협 내부의 분위기를 입수할 수 있었다.

“박 차장님, 근데 더 문제는 뭔지 아세요? 이동수 대리가 버틴다는 겁니다.”

“재밌네. 내부의 알력다툼 때문에 자기 목에 칼 들어오는 것도 못 본다라…….”

강준은 강상훈이 먼저 손을 써서 재해보험 사기를 대충 덮으려는 의도를 눈치챘다. 작년도 송안읍 양계장 주인들이 제출한 보험금 청구 자료에는 죽은 닭들이 축사 앞에 늘어져 있는 사진뿐이었다.

닭들을 파묻은 땅들을 모두 파보지 않는 이상, 보험사기를 확정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했다.

“정말 나올까요?”

“안 나올 확률도 높아. 축산 농가에 사료를 파는 장사꾼인데 자기 고객한테 칼을 꽂으려고 하겠어?”

“아! 그럼, 허탕 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기다려 보자고.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강준이 연남시의 한 아파트 상가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는 사료 회사 영업사원이었다.

“어! 저기 오네.”

카페로 들어오는 젊은 남자는 강준을 발견하고는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네요.”

“준비한 건 가져오셨나요?”

강준의 말에 남자는 순순히 서류 가방에서 파일철 하나를 꺼냈다.

“작년 기준 보험금 신청한 농가의 사료 판매량과 닭 사육 개체 수 자료예요. 이거 대외비인데…….”

“대표님도 아시는 거니 문제 될 건 없을 겁니다. 뭐…… 형식상으로는 김 대리님이 유출한 거긴 하지만요…….”

김준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강준을 돌아봤다.

“……차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사료 회사의 김 대리가 대신 대답했다.

“제가 퇴사를 직전에 앞두고 있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회사에 엿 먹이려고 그런 건 아니고요. 하하!”

“그럼 이 자료는 왜 저희한테 그냥 주시는 겁니까?”

“안 줄 이유도 없는 거죠. 닭이 정상적으로 사육되어야 저희 사료도 판매되는데, 일부러 닭을 죽이고 보험금만 타내려고 한다면 누가 닭을 키우고 누가 사료를 사겠어요?”

소는 누가 키우냐는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김 대리의 말에 강준이 냉소적으로 웃으며 대꾸했다.

“감사 쪽 라인을 잡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고요?”

“에헤이…… 오래간만에 올바른 일 좀 해 보려는데 박 차장님이 너무 박하게 보시네요…… 물론 라인 바꿔 타려는 게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요.”

넉살 좋은 웃음을 짓는 김 대리였다.

“그럼 이제 어디로 이직하시는 겁니까?”

“아뇨. 독립합니다. 잘될지는 모르지만, 아는 사장님들이 절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그 사장님들 중에 송안 축협의 감사님도 있으시겠죠?”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하하!”

축협 내에서 감사 직위는 상임이사를 견제할 수 있는 또 다른 라인의 실세였다. 조 이사가 자체 내부 감사를 내세워 재해보험 사기를 무마하려 하자 강준이 반대편 파를 끌어들인 거였다.

감사로서도 조 이사와 그에 붙어먹은 대의원 조합원들을 날려 버릴 기회였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나만 더 부탁드리죠.”

“아무런 대가 없이 협조해 달라는 겁니까? 이건 너무 날로 드시려는 건데요?”

“대가 있는 내부정보 유출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에헤…… 아까부터 까칠하시네. 들어나 보죠. 부탁이라는 게 뭔데요?”

“작년에 폭염주의보 때 묻은 닭들 말입니다……. 어디에 묻었는지 아십니까?”

난감한 표정을 짓는 김 대리였다.

“음……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전염병이 돌았을 때 가축 매장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지만…… 폭염으로 죽은 가축들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까요…… 아! 당시에 군인들이 매장을 도와준 거로 압니다.”

옆에 있던 김준혁이 뭔가 떠오른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제이콥이 복무 중인 부대에서 도왔겠네요. 인근에 특전사 38부대가 있는데 혹시 김 대리님은 아시나요?”

“근처에 특전사 부대가 있다는 건 압니다. 근데 정말 매장한 곳을 다시 파보겠다는 겁니까?”

김 대리는 그건 무리라는 듯 되물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되지 않게 만들어야겠죠. 하지만 계속 잡아뗀다면 그 방법밖에는 없지 않을까요?”

강준의 답변에 김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죠. 본인들도 큰 범죄라고 생각 안 했을 테니 더 심하게 우길 겁니다. 오히려 억울하게 생각할 지도요…….”

비위가 되풀이되면 의례적인 관례가 되어 버린다. 강준은 그 도돌이표에 마침표를 찍을 생각이었다.

* * *

송안읍 양계장.

재해보험에 대한 현장 수사는 급습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그 현장 수사에는 죽은 닭을 보관하는 냉동고를 목격했던 제이콥과 그의 상관인 박영만 상사가 함께했다.

“이거 남는 고기들 저장하는 곳입니다! 여길 왜 뒤진다는 거예요! 대체!”

보험금을 청구했던 양계장 주인은 눈을 부릅뜨며 형사들을 밀쳐냈다.

“이거 정식으로 수색영장 받아온 겁니다. 불응할 시 강제로 수색할 권한이 있고요!”

이진철의 부하 형사들은 침착한 태도로 대응했다. 이미 그 양계장의 죽은 닭들이 1만 마리나 있다는 제보를 받은 경찰이었다.

“시발 진짜! 우리 같은 축산 농가를 이런 식으로 음해해도 되는 거야?”

작업복에다 고무장화를 신은 양계장 사장이 시비를 걸듯이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형사 두 명이 그의 양팔을 붙잡고는 길을 텄다.

“야! 냉동고 열어서 확인해!”

“네 알겠습니다!”

형사들이 냉동고를 열어 확인하자 비닐에 쌓인 죽은 닭들의 사체가 끝도 없이 쌓여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양계장 사장은 버둥거리면서 외쳤다.

“닭들이 당신들 생각하는 것처럼 그냥 쑥쑥 크는 줄 알아? 조금만 방심해도 수천 마리 죽는 건 금방이라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진철은 부하 형사들에게 지시했다.

“일단 다 꺼내 놓고 사진 찍어! 증거로 제출할 거니까 수량 파악되게 일렬로 쭉 늘어놓으라고!”

“아! 시발 닭이 죽은 게 내 잘못이야? 내가 지금 죄라도 지었어?”

끝까지 발뺌하는 양계장 사장에게 이진철이 바싹 다가갔다.

“사장님, 그럼 작년에 묻었다던 2만 마리 닭들. 어디다 매장했습니까? 매장한 땅 찾아보면 닭 뼈라도 있을 거 아니에요?”

“저기 뒤에 공터에다 묻었지……!”

한 박자 늦게 대답하는 양계장 사장이었다.

“우리가 땅 안 파볼 거 같죠?”

“……누가 뭐래? 파… 파보라고……!”

“아! 저기 오네. 보이시죠? 포크레인.”

양계장으로 들어오는 포크레인을 모는 사람은 보험조사관 강준이었다. 군 복무 시절 잠시 몰아봤던 포크레인이었다. 땅을 잘 팔 수나 있을지는 강준도 확신하지 못했다.

“이진철 경감님! 제가 어디를 파면 되는 겁니까?”

포크레인에서 고개를 쑥 내밀고 외치는 강준이었다.

“저기 공터 보이시죠? 여기 양계장 사장님이 거기에 닭을 묻었다니 거기부터 한번 파 보시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이진철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양계장 사장의 표정이 어둡게 굳었다.

“젠장……! 그만하쇼! 그만! 내가 이실직고할 테니 그만하자고요! 제발!”

자기 땅에 파헤쳐지는 것이 두려운 양계장 사장이었다. 그는 결국 경찰 조사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강준이 포크레인을 멈추고는 땅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뚜벅뚜벅 양계장 사장을 향해 걸어갔다.

“김 사장님, 압니다. 김 사장님만 그런 거 아니라는 거요…… 송안읍 양계장에서 죽은 닭들을 다른 양계장과 돌려썼더군요. 다른 양계장도 똑같이 처벌받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혼자만 억울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강준의 냉정한 말에 어깨가 축 처진 그는 혼잣말로 불평을 내뱉었다.

“시발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동수 그 자식을 그냥…… 콱!”

재해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뒤로 해먹을 방법까지 알려 준 축협 이동수 대리에 대한 원망이었다.

“거! 사장님! 남 탓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는 거 구린 줄 몰랐나요?”

강준의 쐐기를 박는 말에 양계장 사장은 고개를 땅으로 떨구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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