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양계장 재해보험 (2)
(132/250)
132. 양계장 재해보험 (2)
(132/250)
132. 양계장 재해보험 (2)
2022.04.11.
강상훈은 아침부터 잔뜩 짜증이 나 있었다. 얼마 전에 영입한 신임 손해사정사가 딴 주머니를 찼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송안읍 출신의 손해사정사 정재우. 그는 차명으로 양계장을 차려 놓고 있었다. 시설 투자비만 억대에 달했겠지만, 무슨 간덩이인지 자신도 모르게 일을 벌여 놓은 거였다.
축협의 실사 담당 손해사정.
쉽게 따낼 수 없는 일거리였다. 그런 일거리를 한 방에 차 버릴 수 있는 위험한 일을 정재우가 벌인 거였다.
“축협에 연줄 좀 있다고 넣어 줬더니만…… 이게 완전히 초가삼간을 다 태우려고 하네! 쯧!”
밖에 있던 정 실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흥분한 듯 말을 이었다.
“사정사님, 제가 알아보니까 그 양계장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정재우 사정사 친구인데…… 돈은 축협 출신의 또 다른 친구가 댔답니다.”
“하…… 그럼 친구 세 놈이 작당 모의를 했다는 건데…….”
“문제는 불똥이 우리 사무실에 튄다는 겁니다!”
“일부러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런 건가……?”
“그럴지도 모르죠. 솔직히 정재우 사정사 나이도 많은데 그전에는 그냥 공무원 시험 준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우리가 그걸 확인할 방법은 없죠.”
신경질적으로 턱을 쓰다듬는 강상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턱을 말을 이었다.
“이래서 출신이 불분명한 인간들은 들이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알겠어! 정 실장, 일단은 모른 척하고 있어.”
“정말 괜찮을까요?”
“그렇다고 판을 깰 수는 없잖아!”
해리츠 보험으로부터 냉대를 받고는 한동안 찬바람을 실감했던 강상훈이었다. 어렵게 잡은 재해보험 일거리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정재우 그 새끼 양계장에서 말만 안 나온다면 말이지……!’
“정 실장, 그 양계장에 돈 댔다는 축협 친구 이름이 어떻게 돼?”
“조합원지원팀에 근무하는 이동수라고 하네요. 부친이 양계 조합장이라 축협 내에서 힘이 좀 있나 보더라고요.”
“알겠어. 내가 해결해 볼 테니 정 실장은 직원들 입단속 잘 시키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당연한 거죠.”
정 실장은 강상훈이 손해사정인 사무소를 열었을 때부터 함께 해 왔던 창립 멤버였다. 그랬기에 둘은 제법 손이 잘 맞았다.
강상훈은 생각해 둔 사람이 있었다. 축협의 재해보험 담당자였다. 그는 분명 이동수보다는 직급이 높았다.
‘공무원들은 규정 위반에 제일 민감하거든. 흐흐!’
혼자 남은 방안에서 강상훈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신출내기 손해사정사인 정재우에게 업계 선배로서 따끔한 맛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상훈은 서류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정 실장! 어디 연락 온 거 있으면 바로바로 문자 보내”
“네, 다녀오십시오!”
인사를 받고 나간 강상훈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땡!
열린 엘리베이터에서는 반갑지 않은 얼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강상훈 사정사님. 저 박강준입니다.”
“여긴… 왜…… 오신 겁니까?”
얼어붙은 표정으로 묻는 강상훈이었다. 우춘배의 보상 협의에 실패한 것도 가스폭발 사건 때 보상 절차에 들어가기도 전에 배후가 밝혀져 버린 것도 전부 박강준 때문이었다.
강상훈이 결코 마주치고 싶은 않은 인간이었다.
“축산농가 재해보험 실사를 이곳에서 진행한다면서요?”
“네……? 그건 어떻게 알고……?”
“한 시간만 조사해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마침 강 사정사님과는 안면도 있고 해서 몇 가지 물어볼 겸 온 겁니다.”
당혹스러운 강상훈은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제가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약속 한번 잡고 정식으로 오시죠?”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인 강상훈은 강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만 헤어지자는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바쁘시다니…….”
강상훈은 강준이 자신의 손을 잡았을 때, 보통과는 다른 묵직함을 느꼈다. 그리고 손을 빼려고 할 때 강준이 자신을 보고 씩 웃고 있는 걸 발견했다.
미묘하게 불쾌한 순간이었다.
“그럼…… 흠! 흠! 다음에 뵙겠습니다……!”
서둘러 닫힘 버튼을 누르는 강상훈이었다.
* * *
송안읍 축협 사무실.
“이동수 대리님, 지금 현장 가셨는데요?”
“현장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하는 건가요?”
“요즘에 한창 재해보험 가입시키러 다니시니까 아마 김호철 씨네 축사로 갔을 거예요.”
“혹시 대충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강준은 강상훈 사정사의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얻어먹고는 곧바로 송안읍으로 왔다. 정 실장의 기억으로부터 재해보험을 타기 위해 양계장을 기획한 이동수를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잠시만요…….”
축협 사무실에서는 재해보험 운영사 중의 하나인 성원화재에서 나왔다는 말에 별다른 의심 없이 김호철의 축사를 알려 줬다.
그곳은 닭을 사육하는 양계장이었다. 물론 축협 직원이 말했던 것처럼 이동수는 거기 없었다. 하지만 김호철은 같은 동네에 살았던 이동수를 잘 알고 있었다.
“저 언덕 너머에 버스정류장 있는 곳에 당구장 한번 가 봐요. 아마 거기 있을 겁니다…….”
“사장님께도 이동수 대리가 재해보험 가입을 권유했나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
재해보험 얘기가 나오자 그제야 강준을 경계하는 김호철이었다.
“이 지역 재해보험의 작년도 보험금 신청 건수가 너무 많아서요. 혹시 김호철 씨도 작년에 신청하셨나요?”
“그야…… 작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근 20년 만에 제일 더운 날씨였잖아요.”
“그랬던 거 같네요.”
“여기 닭들이 현실적으로 저렇게 밀집시켜서 사육되는데…… 우리가 에어컨을 틀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안 그래요?”
양계장 축사를 운영하는 김호철은 재해보험에 대해서 나름의 불만이 있는 듯했다.
“김 사장님 말씀은…… 폭염 때문에 키우던 닭들이 죽었다는 거군요.”
“네, 일부가 폐사한 거죠.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우리도 보험금 받는다고 그게 이익이 아니라니까요?”
“축산 농가의 보험료 자부담은 25% 선이죠.”
“닭값의 90%만 보상받는데, 사룟값은 생각 안 합니까? 그리고 죽은 닭들 매몰하는 비용은요? 전부 우리가 부담하는 겁니다. 마이너스예요! 마이너스!”
그의 흥분해 목소리를 키웠다. 마치 이동수를 변호하듯이 말이었다.
“근데…… 사장님, 이동수 대리가 이 근처에서 양계장을 운영합니까?”
“네…? 그게 무슨…….”
즉답하지 못하는 김호철이었다. 축협 직원이 양계장을 직접 한다는 건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거였다. 더군다나 그가 재해보험 가입 담당자라면 말이었다.
갑자기 말수가 뚝 떨어지는 김호철은 시선을 돌려 버렸다.
“김호철 사장님 알고 계시죠? 이동수가 하는 양계장이요?”
“……나 바쁘니까 가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건지 참나!”
강준은 그에게 다가가 거칠게 그의 어깨를 잡으며 기억을 읽어 들였다.
[야! 이동수! 너 어쩌려고 이렇게 일을 벌인 거여?]
[넌 원래 하던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닭이 그냥 크냐? 사료 먹여야지! 닭똥 치워야지! 달걀은 누가 수거할 거냐? 다 노가다야! 노가다!]
김호철의 기억 속에 이동수는 인상을 팍 쓰며 그에게 바짝 다가왔다.
[호철아 내가 너 고생시키려고 이러겠냐? 사료를 왜 먹여? 그냥 원래 키우던 닭만 키워.]
[뭐? 축사를 이렇게나 투자해 놓고. 닭을 안 키운다고?]
[어.]
[그럼 축사를 왜 만들었는데?]
[그야 서류상으로 숫자 채워 넣어야 할 거 아니야……. 여름에 폭염주의보 내리면 그간 죽은 닭들 냉동고에서 싹 다 꺼내다가 증거 사진 찍어 놓고 땅에 묻어 버리는 거야.]
그제야 이동수의 계략을 눈치챈 김호철이었다.
[그거 확인 안 하겠냐……?]
[확인하러 오는 실사 손해사정인이 정재우야. 너 재우 알지? 우리 중학교 동창 말이야.]
[그 재수 없는 새끼?]
[에이…… 재우가 좀 까칠하긴 해도 말이 통하는 놈이야. 그리고 지금 이 계획 누가 짠 거 같냐?]
[네가 짠 거 아니야?]
[아니, 재우가 짠 거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연락을 해 왔더라고. 술 한 잔 먹으면서 들어보니까 완전히 쌈박한 계획이더라고!]
실실 웃음을 흘리는 이동수와 그에 못 이긴 듯 호응하는 김호철이었다. 강준은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아! 뭐 하는 거야! 이 양반이! 놔요! 놔!”
불쾌한 표정으로 강준을 노려보는 김호철이었다.
“근데 김 사장님은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이동수 대리는 당구장에 놀고 있다고요……?”
강준은 그들 관계의 약한 고리를 공격했다. 김호철은 자신도 그 점이 답답했는지 한숨을 내쉬고는 팔을 휘휘 저으며 인상을 썼다.
“가라고요! 사람 괴롭히지 말고 가요!”
강준은 어쩔 수 없이 양계장에서 빠져나와 김호철이 말해 준 당구장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김호철의 말이 적중했다. 남자 둘이 한가하게 당구를 치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먹다 남은 짜장면이 놓여 있었다.
“호철이는 왜 안 불렀냐?”
“몰라…… 우리가 불러도 오겠냐?”
“그러지 말고 저녁에 술이나 먹자고 하자.”
“뭐 그러자. 그 자식도 노래방에는 환장한 녀석이니까 크크!”
둘은 김호철을 언급하는 거로 봐서 이동수가 분명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그와 재해보험 사기를 기획한 정재우 손해사정사로 짐작됐다.
“공 드릴까요?”
“네, 4구 주시죠.”
강준은 혼자 당구대를 들고 공을 치면서 옆 테이블의 이동수와 정재우를 관찰했다.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던 강준은 재해보험 사기가 그들 셋만 엮인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규모는 달랐지만 크고 작게 송안읍의 많은 양계장이 연루되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잘 아는 사이였기에 축협 직원인 이동수의 재해보험 권유에 쉽게 응한 것이었고, 피해를 부풀려 보험사에 신고한 것도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그런 걸 챙겨 준 이동수와 정재우에게 무척 고맙게 생각했다.
“재우야, 너도 이번 기회에 여기 땅이나 사 둬라. 혹시 아냐? 개발돼서 돈벼락 맞을지?”
“내가 그럴 돈이 어디 있냐?”
“왜 없어? 올해 우리 짭짤하게 벌어야지? 크크!”
“야 됐고! 이따 뭐 먹을지나 생각해 놔. 간만에 한 번 달려 보자고!”
둘이 그런 한가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 다급하게 당구장으로 들어왔다.
벌컥!
“야! 이 대리!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어? 과장님 웬일이십니까? 전화를 주시지…… 왜?”
축협 점퍼를 차려입은 남자가 얼굴이 벌게져서 갈라진 목소리로 소파에 털썩 앉았다.
“전화로 안 되니까 그러지 인마! 지금 큰일 났다! 이사님이 재해보험 관련해서 내부 감사 들어가신대!”
강준은 자신보다 먼저 누가 송안읍의 재해보험 건에 메스를 들이댔는지 궁금했다. 썩은 걸 잘라 내는 건 당연했지만, 그들이 스스로 자기 치부를 드러냈을 리 만무했다.
그 순간 강준의 머릿속에는 오전에 마주쳤던 강상훈 사정사가 스쳐 지나갔다. 그가 강준이 냄새 맡은 걸 알고서는 미리 손을 써 둔 것일 수도 있었다.
@바닥글:
《참고자료》
가축재해보험 보험사기 재발 방지 대책 추진 중, 설명자료. 농림축산부 재해보험정책과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