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특전사 보험사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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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특전사 보험사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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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특전사 보험사기 (4)
2022.04.09.
[얼마 전 특전사 대원들의 집단 보험사기로 알려졌던 사건이 색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보험사들의 무리한 강압 수사와 무작위적인 고소, 고발로 인해…….]
여론의 향배가 바뀌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보험조사관으로 집중됐다.
“최 대표님, 괜찮으시겠습니까?”
강준은 성원화재의 최진호 대표에게 의견을 물었다. 어쩌면 강준의 조사가 보험사 측에는 이미지 손실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안 그래도 다른 보험사 쪽에서 연락이 많이 오고 있네요. 하지만 아버님께서 보험업에 뛰어드실 때, 보험계약자들을 고소하면서까지 이윤을 내는 걸 원하셨을까요?”
“……대표님, 그래도 굳이 우리 성원화재가 앞장서는 모양새는 좋지 않을 거 같습니다. 주주들의 입장도 있으니까요.”
강준의 말에 최진호 대표의 곁에 있던 김성호 이사가 피식 웃었다.
“박 차장이 이제는 회사 걱정도 다 해 주고 정말 오래 두고 볼 일이야. 하하!”
“저도 이제는 책임져야 할 위치니까요.”
“그러니 이제 자네도 팀원들을 더 키워 내야 해. 그래서 말인데…… 우리도 경찰 쪽 인력들을 더 보충하는 게 어때? 아무래도 조사업무라는 게 기관과의 공조도 필요한 부분이고 말이야.”
최진호 대표도 고개를 끄덕이며 김 이사의 말에 수긍했다.
“저도 동감입니다. 보험사기의 양상도 더 복잡하고 조직화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실은 이 시점에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긴 한데…….”
강준은 한 차례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무척 감사했습니다만, 이쯤에서 전 퇴사하고자 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퇴사라니요?”
눈을 동그랗게 뜨는 최진호 대표였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성원그룹 내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거 같습니다.”
옆에 있던 김성호 이사가 공격적으로 되물었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네, 독립 보험조사팀을 꾸릴 생각입니다.”
“독립……? 그런 사례가 있었나?”
“제가 처음 만들어봐야죠.”
잠시 당혹스러움을 추스르던 김성호 이사가 예상대로 강준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박 차장, 요즘 밖에 나가면 무진장 추워! 알고는 있는 거야?”
“그럼요, 때 되면 월급 나오고 활동비는 회사 경비로 처리하고 좀 헛발질해도 혼 좀 나면 되고…… 편하게 생활한 거 두 분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달래듯 말하는 김성호 이사에게 강준은 작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보험사기를 밝혀 내는 건 누군가의 이익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이미 일어나 사건이니까요. 팩트만 봐야 하는 거죠.”
“누가 너더러 조작하래?”
“때로는 회사의 이익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절실히 알게 됐습니다.”
“회사 이익 좀 해쳐도 되니까 군소리하지 말고 보험조사팀에 딱 붙어 있어!”
“……그건 안 됩니다. 이미 결심했습니다.”
“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이정훈 팀장이 특별수사과로 충분히 배려도 해줬잖아?”
무작정 말리려는 김성호 이사와는 달리 최진호 대표는 강준의 얘기를 더 들어보려 했다.
“그 마음 저도 이해합니다. 저도 성원그룹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독립적인 걸 추구했었으니까요…….”
“……대표님! 박 차장은 우리 보험사 간판입니다. 싫으나 좋으나 끌어안고 가야 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본인 생각도 존중해 줘야 하는 거니까요.”
최진호 대표는 강준에게로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박 차장님,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왕 시작하신 거니 이번 특전사 사건은 제대로 마무리 짓고 다시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회사로서도 박 차장님을 놔줄 시간이 필요하고요.”
에둘러서 정중하게 표현하는 최 대표의 말에 강준은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네, 알겠습니다.”
곁에 있던 김성호 이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강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 밖에서 비서가 상기된 얼굴로 들어왔다.
“최 대표님…… 회장님께서……!”
“무슨 일인데 김 비서?”
“좀 전에 심정지가 오셨답니다……!”
“뭐?”
최진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김성호 이사는 재빠르게 병원으로 갈 차를 대기시켰다.
“김 이사님, 저도 가겠습니다!”
“박 차장도? 그래! 같이 가자고!”
강준은 속으로 병원에서 최 회장의 병상을 지키고 있을 최은정이 걱정됐다. 그녀가 받았을 충격과 슬픔이 바로 옆에서 전해져 오는 듯했다.
* * *
연남경찰서 서장실.
“야! 윤태영! 너 설명해 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죄송합니다…… 서장님. 저도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지는 전혀 예상 못 해서…… 회사 측에서도 무척 당황하는 중입니다.”
“뭐? 예상을 못 해? 나한테 뭐라 그랬어? 사상 최대의 보험사기 사건이라며! 증거도 자료도 다 있어서 밀어붙이기만 하면 되는 거라며!”
임철호 경찰서장은 답답한 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장님, 모든 수사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의도하지 않은 방향에서 걸려들기도 하고…… 또 반대로…….”
“반대로 뭐? 강압 수사한다고 온 언론에서 우리를 후려치는데 그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해! 어!”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윤태영은 이런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쉽게 흥분했다가 쉽게 가라앉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런 윤태영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너희 회사 박성태 부장은 뭐래?”
“일단은 분위기 바뀔 때까지 웅크리고 있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십니다…….”
“하! 인제 와서 웅크려 봤자 그게 숨겨지냐? 맞을 거 다 맞은 상태인데! 젠장!”
“……해리츠 보험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서장님께 빚을 하나 진 셈입니다. 어찌 보면 서장님께는 잘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뭐……? 잘된 일이라고?”
윤태영은 임철호 서장의 정곡을 찔렀다. 그는 다음 코스인 지방경찰청장으로 올라서기 위해서 자신을 밀어줄 배경이 필요했다. 해리츠 같은 대형 금융회사가 그를 밀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게다가 연남시에서 한승일 시장의 위치도 위태로웠다. 임철호는 이번 기회에 해리츠라는 동아줄을 꽉 움켜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제가 박 부장님과 자리를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좌우간 내가 이번 일은 그냥은 못 넘어가! 따질 건 따져야겠어! 흠…… 흠!”
임철호는 겉으로는 투덜거렸지만, 속으로는 윤태영을 해리츠 보험에 추천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있었다.
“……어쨌든 서장님께는 제가 폐를 끼쳐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
“알겠어! 그럼…… 특전사 건은 내가 적당히 마무리를 지어볼 테니까 해리츠 쪽에서도 다음엔 더 확실한 거로 들이밀라고 해!”
“네. 다음에는 절대 문제없게 하겠습니다.”
윤태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로서는 보험 실장으로서의 자기 이력에 금이 확 간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임철호 서장을 만난 후, 을지로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원그룹 창업자 최창식 회장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해리츠 보험의 직속 상사인 박성태 부장이 그 자리에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자신이 고발했던 특전사 대원들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오늘 아침부터 몰려들었답니다…… 참나! 이건 무언의 시위 아닙니까? 기자들도 다 모여 있는데.”
윤태영의 부하직원이 한탄하듯 말을 내뱉었다.
“박 부장님은?”
“아까 오셨다가 이 꼬락서니 보시고 벌써 가셨죠…….”
“젠장…….”
최창식 회장을 추모하는 장례식장에 특전사 대원들이 모여들었다는 건 언론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유일하게 성원화재만이 보험사기로 구석에 몰렸던 그들의 편에 서 준 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릴 범죄자 취급하더니…… 여기 또 무슨 일로 오셨나요?”
박영만 상사가 어느새 윤태영을 발견하고는 특전사 38부대 대원들과 함께 와 그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눈빛에서는 모두 살벌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같은 보험업계 사람으로서 추모하러 온 겁니다. 조용히 추모하다 가게 해 주시죠?”
“같은 보험업계……? 웃기는 소리군! 선량한 고객을 범죄자로 몰려는 당신네 같은 양아치 보험사하고 여기 성원화재가 같은 줄 알아!”
박 상사의 외침에 장례식장 앞에 와 있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한순간에 공적이 된 윤태영이 상기된 얼굴로 그곳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미 사방에는 특전사 군인들과 기자들로 둘러싸인 상태였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어디 한번 해명해 보쇼? 도대체 우리를 보험사기꾼으로 몰아간 이유가 뭡니까?”
“…….”
불리한 상황에서 윤태영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길 열어 주시죠. 오늘은 최창식 회장님을 추모하는 마음만 가져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파를 헤치고 나타난 사람은 강준이었다.
“박 차장님, 좋겠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팬들이 많이 생기셔서요…….”
조롱하듯 입꼬리를 올리는 윤태영이었다.
“다음에는 윤 실장님도 보험고객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조사를 하시길 바랍니다. 형사 시절 하던 것처럼 무턱대고 자백이나 받아내려 하지 말고요!”
강준의 일침에 얼굴이 벌게지는 윤태영이었다. 강준은 그런 그를 내버려 두고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강준의 뒤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친해진 제이콥과 주성식 중사가 그를 뒤따라 함께 들어갔다.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한 제이콥은 군에 입대해야 했다. 그리고 특전사 사건으로 강준과 친분을 맺어 온 주성식의 추천으로 특전사 입대를 결정한 것이었다.
자리를 잡은 강준은 옆에 있는 제이콥에게 소주를 따라줬다.
“제이콥,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그럼요! 이왕 군 생활을 해야 하는 거라면 주 중사님처럼 화끈하게 하고 싶네요. 제 특기도 살려서 파병 기회가 있다면 꼭 지원하고 싶고요!”
필리핀에서 혼혈로 먹고살기 위해서 배웠던 아시아 각국의 언어가 꽤 도움이 될는지도 몰랐다.
“박 차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이콥은 잘 해낼 겁니다. 특전사에도 이제는 제이콥 같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제가 파병 갔을 때 다국적군으로서의 소통에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주성식은 제이콥의 어깨를 툭 쳐주며 응원했다. 어느새 특전사 38부대 현역인 박 상사도 자리에 함께했다.
“이 친구가 이번에 특전사 입대한다는 그 친구?”
“네, 제이콥이라고 합니다.”
“기특하네. 요즘 다들 군에 안 가려고 하는데…….”
“훈련소 얼른 마치고 뵙도록 하겠습니다! 38부대에 지원하려고요!”
“아 그래? 그때까지 부대가 좀 잠잠해지면 좋겠다! 하하!”
박 상사의 말에 눈치가 빠른 주성식이 물었다.
“부대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아! 인근의 축사들이 무너져대서 큰일이다. 인근의 군부대가 우리밖에 없는데 별수 있냐? 맨날 대민 지원 나가느라 부대가 어수선해!”
강준은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이 그 축사들을 직접 둘러보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