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특전사 보험사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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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특전사 보험사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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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특전사 보험사기 (3)
2022.04.08.
“박강준, 당신이 왜 우리 조사에 끼어듭니까?”
“제가 조사에 합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
“그게 아니라…… 이건 정말 경우가 아니지 않습니까?”
조사실에는 해리츠 보험의 윤태영 실장이 시간을 끌며 주성식을 심리적으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강준이 들이닥친 거였다.
“그러는 해리츠 보험 측에서는 변호인도 입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를 강행하는 건 제대로 된 경우이고요?”
윤태영 실장은 민훈 변호사가 김학규를 조사하고 돌아간 틈을 타 기습적으로 주성식을 조사실로 불렀던 것이었다.
“당신이 주성식 씨 변호사라도 됩니까?”
강준의 우격다짐에 목소리가 높아지는 윤태영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강준은 그 상황을 즐겼다. 윤태영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읽어 내기 위해서였다.
“주성식 씨, 도대체 무슨 얘기가 오간 겁니까?”
“의무기록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전 기억도 안 나는데요!”
강준은 조사실 안쪽에 앉은 주성식에게 물었고, 윤태영은 조사실로 들어서려는 강준을 직접 몸으로 막아섰다.
“이러지 마시라니까요!”
직접 밀치진 않았지만, 강준은 윤태영과 몸이 엉키면서 그의 기억을 읽어 내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윤태영의 기억은 헬스장의 낯선 남자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전역한 또 다른 특전사 요원이었다.
[그러니까 허재현 상사가 의무기록을 파기한 건 사실이라는 거죠?]
[네, 맞아요. 분명히 그 새끼가 조작하는 걸 목격했거든요.]
[누구 지시로 그런 건지는 확인할 수 있나요?]
[뻔하죠. 김학규 그 인간하고 친했으니까 그쪽 부탁으로 그렇게 한 거겠죠! 한두 건이 아닐 거예요. 개새끼!]
특전사 의무대 허 상사에게 억한 마음을 품고 있는 이는 그의 직속 부하였던 이 하사였다. 그는 연신 땀을 닦아 내면서 물통에 있는 물을 마셔 댔다. 민소매 티를 입은 그의 팔뚝에는 커다란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 개인적인 감정으로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엄연히 증거가 있어야 법정에서 채택이 되니까요.]
[그 새끼 때문에 내가 장기신청에서 떨어졌는데! 어떻게 감정이 없을 수가 있어요! 네?]
목소리를 높이는 이 하사였다. 하지만 그의 문신이 군에서 어떤 문제를 발생시켰을지를 단박에 보여 주고 있었다.
윤태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옆에 선 다른 동료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럼, 법정에서 직접 증언은 해 주실 수 있나요?]
[당연하죠! 필요할 때 연락해요! 내가 가서 아주 박살을 내 줄 테니까!]
헙! 헙!
말하는 와중에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양손에 10kg이 넘는 아령을 들고 자기 운동을 계속하는 이 하사였다. 강준이 읽어 낸 윤태영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윤태영 실장님, 이렇게 몰아붙이는 이유가 뭡니까?”
“네? 박 차장님도 같은 보험조사관이니 잘 아시겠지만, 보험사기는 선량한 다른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자…….”
“그딴 입바른 소리 말고요! 진짜 목적이 뭐냐고요? 해리츠에서 이 사건을 빌미로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을 만들려는 거 아닙니까!”
윤태영은 잠깐 당혹감을 비췄지만,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성원화재가 동업자 정신이 없다고 하더니만…… 박 차장님을 뵈니 정말 그런 거 같네요…… 반드시 통과되어야 할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을 마치 무슨 음모론 다루듯 후려치는 거 보니까요.”
보험사 간의 제도적 담합!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은 그들의 이익을 지키는 사법적 울타리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저렇게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 군인들을 첫 번째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건가요?”
“근 몇 년간 전, 현직 특전사 출신들이 타간 보험료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2백억입니다! 2백억!”
“보험사기로 확정된 금액이 아니라 수사 대상에 오른 금액이겠지요.”
윤태영은 수치를 제시한 자신의 주장을 강준이 반박하자 더 화가 난 듯 소리쳤다.
“이건 시작입니다. 앞으로 수사가 확대되면 2천억 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건 보험사 재정을 악화시키는 독버섯 같은 겁니다! 더 자라기 전에 잘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강준 차장님!”
그때, 뒤늦게 조사실에 들어온 다른 형사들이 강준을 끌어내려 했다. 윤태영이 전직 형사 출신이었기에 그들은 일방적으로 윤태영의 편을 드는 것이었다.
“주 중사님! 의무대 이 하사라는 사람을 들먹일 겁니다. 괜히 거기에 흔들릴 필요 없습니다.”
강준의 말에 주성식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하사가 평소에 부대에서 어떤 평판을 받는지 주성식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는 우리 서로 예의 차리자고요!”
윤태영이 훠이훠이 손짓하자 형사들이 강준은 조사실 밖으로 완전히 끌고 나갔다.
* * *
이병진 하사.
그는 다혈질에다 남들과의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대화법 자체가 서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항상 그는 남들이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니까 이 하사님이 특전사에서는 최고 인재였다는 거 아닙니까?”
“내가 아프간으로 파병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시발 놈들이 지네들 친한 애들을 나 대신 보낸 거야! 술을 얻어먹었는지 돈을 먹었는지 시발 새끼들!”
근거 없는 욕을 해대는 이병진이었고, 그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듯한 강준이었다. 둘은 헬스장 앞의 치킨집에 마주 앉아 있었다.
“허재현 상사랑은 마음이 안 맞으셨나 봅니다?”
“그 인간은 나를 항상 싫어했지! 시발!”
말끝마다 욕설을 반복하는 이병진이었다. 뭐가 그를 그렇게 화나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왜 그가 허 상사와 틀어지게 됐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병진이 가지는 허 상사에 대한 반감만이 읽힐 뿐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 하사님 대신에 주성식 중사를 파병 대상자로 뽑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몰라! 나도! 시발…….”
이병진은 자기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들이켰다. 상대의 나이를 따지지 않고 언젠가부터 반말로 편하게 대화하는 그였다.
“근데 이 하사님은 앞으로 뭘 하실 겁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당신도 마셔!”
테이블에 놓인 강준의 맥주잔에 억지로 건배하는 이병진이었다.
“주성식 중사는 식당을 차렸던데 말입니다…….”
“뭐? 주성식? 보험회사 당신이 그 인간을 어떻게 알아?”
“아! 저기 오고 있네요. 주성식 중사 말입니다.”
강준의 말에 이병진이 술이 깼는지 벌떡 일어났다. 그가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었다.
“……단…… 단결!”
특전사는 특전사였다. 자신보다 몇 기수가 높은 주성식이 오자 군대식 경례를 하는 이병진이었다.
“잘 지냈냐? 전역했다며?”
“뭐…… 그렇게 됐습니다…….”
“요즘에 뭐 하면서 지내?”
“……실은 친구 놈이 동대문에서 옷 장사하자고 해서 그거 같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좀 전의 강준을 대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그래! 이 하사 너는 추진력도 있고 하니까 뭘 해도 잘할 거다.”
강준이 주성식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둘은 별다른 인연은 없었다. 기수도 달랐고 보직도 달랐기 때문에 함께 훈련하거나 작전을 수행한 적도 없었다.
주성식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이병진은 자기 얘기를 더 늘어놓았다.
“식당은 잘되십니까? 미리 말씀을 해 주셨으면 우리 기수 놈들 데리고 한번 갔을 텐데!”
“그래, 언제 한번 와라. 저녁에는 술도 파니까.”
얘기는 자연스럽게 허재현 상사 쪽으로 넘어갔다.
“나도 잘 몰랐는데 네가 허 상사님한테 섭섭한 게 있었다는 거 들었다…….”
“에이! 됐습니다! 그걸 지금 말해서 뭐 합니까…….”
“해리츠 보험조사관 만났다면서……?”
“네? 만나긴…… 만났죠. 법정에서 증언해 달라는데…… 그러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시원하게 말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무척 애매한 답이었다.
“이 하사…… 내가 중간에서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허 상사님이 의료기록 조작은 안 하셨다고 하더라.”
“시발……!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얼굴이 벌게진 이병진이 맥주잔을 다시 집어 들었다.
“허 상사님이 굳이 뭐 하러 의료기록을 조작하겠냐?”
“그야…… 김학규 상사님 부탁 때문이겠죠. 주 중사님 기록도 파기해 달라고 했죠?”
주성식에게 대놓고 묻는 이병진이었다. 강준은 옆에서 주성식 대신 답변했다.
“주 중사님이 보험 들기 전에 어깨 물리 치료받은 기록은 이미 해리츠 보험 측에 넘어간 상태입니다. 그런 마당에 허 상사님이 굳이 군 치료기록을 조작할 동기는 없어 보입니다.”
“그 말 진짜야? 주 중사님! 보험사 사람이 하는 얘기가 맞는 겁니까?”
주성식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이 하사, 우리 특전사잖냐……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는 게 특전사로서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되지 않겠어?”
이번에는 이병진이 진지하게 되물었다.
“주 중사님 그놈들 말처럼 정말 보험금…… 일부러 타시려고 그랬던 거 아닙니까?”
“특전사의 명예를 걸고 말하지. 진짜 아니야. 아프간 갈 때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암 투병 중인 아버지가 내 사망보험금이라도 많이 받으시라고 보험을 좀 무리해서 들어놓은 거다.”
“중사님 아버님 얘기는 들었습니다…….”
주성식의 부친 얘기에 고개를 숙이는 이병진이었다.
“이 하사가 법정에서 진술하는 거를 막을 사람은 없어. 나도 반대하지 않고…… 다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사실을 왜곡하지는 말라는 거야.”
“저도 이제 특별한 감정은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과는 반대로 말하는 이병진이었다. 하지만 그가 마음을 돌린 것만은 사실인 듯했다.
* * *
연남시 지방법원 형사법정.
“증인 들어오라고 하세요.”
판사의 말에 해리츠 보험 측의 증인으로 나선 이병진은 예전과는 다르게 말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증인은 특전사 의무대에서 근무했었죠?”
“네, 맞습니다.”
“허재현 상사와는 어떤 관계죠?”
“허 상사님이 직속 상사입니다…….”
피고인석에 있는 허재현 상사와 눈이 마주치는 이 하사는 얼른 시선을 외면했다.
“오래전부터 김학규 상사, 그러니까 지금은 하나 보험대리점의 김학규 씨의 부탁으로 의료기록을 조작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럼, 혹시 직속 상관인 허재현 상사가 의료기록을 조작한 걸 목격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법정의 모든 시선이 이병진의 입에 집중됐다. 검사가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이 해리츠 보험이 그를 증인으로 세운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못 봤습니다.”
법정 안이 웅성거렸다. 누구보다 그 질문에 당혹해하는 건 윤태영 조사실장이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본인은 의무대 내에서 의료기록이나 기타 자료가 조작되는 걸 목격한 적이 있으신가요?”
“없다니까요! 왜 자꾸 똑같은 말을 하게 만들어요……?”
이병진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검사는 방청석의 윤태영 조사실장을 쏘아봤다. 자신 있다고 장담했던 윤태영이었다.
검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걸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