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 특전사 보험사기 (2) (128/250)


128. 특전사 보험사기 (2)
2022.04.07.


해리츠보험 SIU팀.

박성태 부장은 상기된 얼굴로 팀원들을 바라봤다.

“지난 몇 년간 자료 털어 보면 특전사 출신 몇십 건은 보험사기로 기소할 수 있을 거야. 법무팀도 팔 걷고 지원해 준다고 했으니까 이번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돼!”

“네, 알겠습니다!”

팀원 중 간부 한 명이 손을 들고 발언했다.

“부장님, 근데 성원화재 쪽에서 태클을 걸고 들어오는데요?”

“누가? 박강준 그 양반?”

“네……. 정말 별종이네요. 그 회사는 위에서 뭐라 안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최진호 대표가 언제까지 그렇게 경영해 나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점점 업계에서 왕따가 되어가는 건 감수해야 하겠지…….”

성원그룹의 최진호 대표는 특전사 보험사기에 대한 강준의 보고를 듣고는 자세한 검토를 지시한 상황이었다.

그에 반해 외국계 대형 보험사인 해리츠를 비롯한 한국보험과 신명보험은 특전사 집단 보험사기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한 상태였다.

그 대응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거대 언론을 배후로 움직이는 거였다.

[국가를 지키는 특전사 부대원, 그 부대원들은 전역해서도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런데! 그 유대감이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된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보험사기입니다! 국내 보험사 3곳은 합동으로 보험사기특별팀을 구성해 전직 특전사 부사관 김모 상사를 보험사기 혐의로 고발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여론은 군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군이라는 폐쇄성, 그리고 본인들끼리의 연대 의식은 밖에서 볼 때는 삐딱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집단에서 발생한 보험사기라는 이슈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명분을 주기에 충분했다.

* * *

특전사 의무대.

해리츠 보험의 조사실장 윤태영이 담당한 조사대상은 군 내부의 의료기록을 쥐고 있는 허재현 상사였다. 지난 5년간 특전사에서 근무한 사람 중 민간 보험가입자의 모든 의료기록을 달라는 거였다.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일임을 윤 실장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군이 자료제공에 협조를 안 한다는 걸 빌미로 법정에서 보험사에 유리한 주장을 펼칠 셈이었다.

“민간 보험가입자는 총 121명이었습니다. 이건 이들이 군 병원에서 치료한 기록들이고요.”

허재현 상사는 며칠 전 자신을 찾아왔던 강준을 떠올렸다. 그때 강준은 자신이 우려하는 바를 꼭 짚어냈었다. 얼마 전 보험설계사인 김학규로부터 부탁받은 게 있었다. 그건 의료기록의 조작이었다.

[특전사 대원 중에는 분명히 증상을 과대하게 포장해서 보험금을 받은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숨겨주기 위해 특전사 전체의 명예를 더럽혀서는 안 될 겁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군 기록은 개별 병사들의 기록이라고 해도 엄연한 군 기밀 사항이라니까요…….]

[주성식 중사의 기록 때문에 그러신가요?]

[네……?]

김학규가 부탁했던 건 주성식이 파병 전 치료받았던 어깨 치료의 흔적이었다. 보험 가입 전의 의료기록이었기에 혹시나 역선택(질병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하는 행위)의 오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재현 상사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제일 먼저 찾아온 보험조사관이 의료기록을 지우려 했던 주성식을 언급한 것이었다. 허재현 상사는 속으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 중사 일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이미 조사를 다 하고 오신 건가요?]

[한 가지만 묻죠. 허 상사님이 보실 적에 주성식 씨가 입은 후유장해는 파병 전 한국에서 얻은 겁니까? 아니면 이라크와 아프간의 파병 복무 기간 동안 얻어진 겁니까? 저에게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자신의 손을 잡고 물어보는 강준에게 허 중사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허 상사가 기억하는 확실한 건 한국에서의 복무 기간 동안 주성식의 훈련 성적은 매번 우수했다는 점이었다.

그가 이끈 부대는 산악에서 하루에도 수십 킬로미터씩 이동하면서 작전을 수행했다. 그 작전 기간 개인 군장의 무게는 40kg이었다. 만약 주성식의 어깨가 이미 망가져 있었다면 군장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을 터였다.

[성식이가 왜 장기복무를 못 하고 제대하게 된 건지 아십니까?]

[그건 허 상사님이 제게 설명해 주셔야 할 거 같은데요?]

[어깨 수술 이후로 더 이상 작전이 불가했거든요. 특전사 생활이라는 게 부상을 달고서 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성식이가 어깨를 다친 건 제대 직전 다녀온 파병에서였다고 봐야죠.]

[알겠습니다. 저희 성원화재는 특전사 보험계약자분들에 대한 어떤 고소, 고발도 진행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강준의 반응은 의외였다. 허재현 상사는 이번 보험사기 건이 자신의 군 경력에 흠집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직감했었기 때문이었다.

[……말씀하시죠.]

[주성식 중사의 기존 의료기록이 보험의 역선택이라고 판단할 결정적인 증거는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 중사의 의료기록…… 삭제할 필요 없으세요.]

허재현 상사는 뭐라 대꾸를 하고 싶었지만, 침만 꿀꺽 삼켰다. 강준이 자신이 하려던 자료조작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속절없이 강준의 말대로 뭔가를 감추기보다는 투명하게 자료를 정리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해리츠 보험의 윤태영 실장이 의무대를 찾아온 지금, 허 상사는 당당하게 자료를 제공할 수 있었다.

“……자료제공이 안 될 줄 알았는데……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군 기밀 사항이라 외부반출은 불가합니다. 혐의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사본을 제공해드리죠.”

허 상사의 말은 해리츠 보험이 필요하다면 부대 내에서 직접 자료를 하나씩 살펴봐야 한다는 거였다. 본의 아니게 일거리를 떠맡은 윤태영 실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물러가겠습니다. 추후 다시 방문하죠. 그때도 오늘 같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네, 언제든지 오십시오. 저희 특전사는 항상 투명하게 협조해드린다는 점 알아주시고요.”

“……뭐…… 그럼 수고하십시오.”

윤태영이 뒤끝을 남긴 채 부대를 떠나고 나자 허재현 상사는 또 다른 보험조사관 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차장님 말씀대로 방금 해리츠 보험에서 다녀갔습니다. 명함에 윤태영 실장이라고 적혀 있네요.”

―혹시 여기 경찰 강력계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진짜 박 차장님은 귀신 같은 구석이 있으시네요!”

―별거 아닙니다. 보통 보험조사팀의 조사실장으로 강력계 형사들을 많이 섭외하니까요.

“참! 학규는 어찌 됐나요? 정말 구속이라도 되는 거 아닙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쪽 변호사가 조사실에 입회해서 함께 경찰 조사를 받고 있으니까요.

강준은 법정 공방에 대비해 보험사기로 고발당한 특전사 대원들의 대표 변호사를 미리 섭외해두었다. 그는 우춘배의 보험금 미지급 사건 때 도움을 줬던 연남시 변호사 민훈이었다.

* * *

연남경찰서.

오랜만에 강준을 만난 김형식 형사는 그간의 일들을 털어놓았다.

“임 서장! 그 양반 다음 인사에서 지방경찰청장으로 못 올라가면 그대로 끝이거든요. 그러니까 아주 일선 경찰관들을 달달 볶는 겁니다.”

김형식 형사는 한때 강준과 함께 살인범 추소희를 잡은 기억 때문이었는지 경찰 내부의 분위기를 허심탄회하게 말해줬다.

“황재규 반장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박 차장님이야 우리 사정 잘 아니까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 인간은 여전히 눈치 살살 살피며 처신을 잘하죠. 이번 특전사 사건이 이렇게까지 커진 거는 황재규 반장이 들쑤셔서 그렇게 된 것도 있죠…….”

강준은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혹시 조사받은 특전사 대원 중에 보험사기를 인정한 사람이 있나요?”

“있죠. 몇몇은…… 근데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네요. 그게 좀 이상해요. 박 차장님네 성원화재 쪽에서도 그거 조사하러 나오신 거 맞죠?”

김 형사는 강준이 경찰서에 찾아온 목적을 반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보험조사관이 경찰서에 온 것이니 보험사기를 잡으러 왔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지만…….

“주성식 씨 데리러 온 겁니다.”

“아! 그 어깨 쪽 장해 판정받은 분?”

“네, 어제부터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 사람은 자기가 파병 가서 그렇게 됐다고 주장하는데…… 글쎄요. 한꺼번에 4개의 보험을 브로커를 통해 가입한 게 말이 안 되지 않아요?”

이미 경찰에서는 김학규 상사를 보험사기 브로커로 단정 짓고 있었다. 경찰이 그런 프레임을 짰다면 쉽사리 빠져나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적어도 몇몇을 감방에 처넣고 나서야 수사를 종결하겠지……!’

“아프간에서는 누가 어디서 총을 쏠지 모르는데 한 달에 백만 원이 넘어가는 보험비를 지출하는 것도 그리 이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파병 수당도 넉넉히 나오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자신이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의 답변을 하는 강준을 보며 김형식 형사는 피식 웃었다.

“박 차장님 또 무슨 일을 벌이시려고 밑밥을 까시는 겁니까? 저도 좀 알고 갑시다.”

그가 허심탄회하게 대해 준 만큼 강준도 솔직히 대해 주고 싶었다.

“제가 볼 때 특전사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는 기획된 측면이 있습니다. 보험사들이 선례를 만들려고 하는 거죠…….”

“선례라면?”

“보험금 지급요청이 들어오면 일단 보험사기로 고소부터 하는 거죠. 그리고 다음 차례로 보험사의 법무팀이 붙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보험계약자 대부분이 겁을 집어먹고 위축될 겁니다. 그때, 보험사 측의 금액 협상이 들어오면 응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겠죠.”

강준은 회귀 전 자신이 들었던 보험사들의 병폐를 입 밖으로 늘어놓았다. 아직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았을 시절이라 보험사들의 그런 행각이 노골화되기 전이었다.

“진짜 의외네요…… 박 차장님은 보험사 편에 서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혹시 성원화재에서 잘리기라도 한 겁니까?”

“아직요, 근데 또 모르죠. 월급쟁이가 영원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강준도 특전사 사건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이 회사의 이익과 배치된다는 걸 점점 느끼고 있었다.

“말씀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보험조사관 업무는 좀 어떤가요? 까놓고 말해서 경찰보다는 월급이 좀 세지 않나요?”

“왜요? 스카우트 제의라도 받으신 겁니까?”

“눈치 한번 빠르시네요. 해리츠 보험에서 강력계 경력이 있는 형사를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황 반장 하는 거 보니까 그게 제 미래 모습인데…… 형사 생활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김형식 형사는 스카우트 제의에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다.

“물론 경찰 때보다는 훨씬 많은 연봉을 받을 겁니다. 근데 한 가지 생각해 두셔야 하는 건 민간 기업은 이익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겁니다.”

실적을 못 내면 언제든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김형식 형사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침만 꿀꺽 삼켰다.

“에이…… 쉬운 일이 없네요. 일단 가시죠. 조사실에 아직 주성식 씨가 있을 겁니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을 앞두고 보험사들의 적극적인 경찰 출신 인력이 보충되고 있었다. 앞으로 누가 악역을 담당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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