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 특전사 보험사기 (1) (127/250)


127. 특전사 보험사기 (1)
2022.04.06.


“우측 어깨 회전근개 파열이었습니다. 이미 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더라고요. 견관절과 이어지는 힘줄이 손상된 상태였죠. 쉽게 말해서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지 못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후유장해 판정을 해 준 거고요.”

강준의 질문에 김민철은 꽤 진지하게 답했다. 어쩌면 매사 그는 진지한 사람인 건지도 몰랐다.

“선생님의 진단이 맞는 거라면 그 부대원에게는 보험금이 지급되겠군요.”

“글쎄요. 그건 보험사들이 판단할 문제요. 전 진단만 내리는 사람일 뿐이고요.”

“혹시 진단을 내린 부대원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환자에 대한 정보는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원리원칙을 지키는 김민철이었다.

“그럼 아까 벌꿀을 주고 갔던 박 상사라는 분 연락처는 알려 주실 수 있으시죠? 저도 벌꿀이 먹고 싶어서요.”

강준은 애써 날린 농담이었지만, 김민철은 받아주지 않았다.

“어떤 문제 때문에 그러신가요? 혹시 저분들을 보험사기범으로 의심하시는 겁니까?”

방어적인 대답이었다. 강준은 자신이 이미 특전사 집단 보험사기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물론 저희가 하는 일이 보험사기를 의심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보험사는 작은 절차를 빌미로 선량한 보험계약자를 보험사기로 몰기도 하니까요…….”

“박 차장님……!”

강준의 말에 놀란 건 오히려 송지희였다. 보험조사관으로서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그녀였다. 송지희로서는 강준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김민철은 잠시 고민하더니 박 상사의 연락처를 넘겼다.

“무슨 일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박강준 차장님을 한번 믿어 보겠습니다. 전에 TV에도 나오셨던 분이시니…….”

강준은 앞으로도 가끔 언론에 나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하던 김민철의 표정도 조금은 풀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러다 정말 유명인이라도 되는 거 아닌가……!’

* * *

특전사 출신 전역 군인 주성식은 아프간 파병군인이었다.

아프간 파병은 이라크 파병에 이은 두 번째 파병이었다. 파병 중 공식적인 전투를 치른 적은 없었지만, 언제 어디서든 테러의 위협에 놓인 상황에서 파병 생활은 늘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을 버티게 해 준 건 특전사로서의 자부심이었다. 열사의 사막을 누비던 그가 전역을 결심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불의에 찾아온 어깨 부상!

군장을 짊어지고 작전 지역을 순회해야 했지만, 어깨가 망가진 그로서는 동료들에게 폐를 끼칠 뿐이었다. 극복하려고도 해 봤지만, 어깨 부상은 결국 수술 권유로 이어졌고, 그렇게 아프간에서의 파병 근무가 끝났다.

어색한 민간인 복장을 걸친 주성식은 박 상사가 얘기한 보험대리점 사무실을 찾았다.

김학규 상사! 그는 파병 직전 상해보험과 생명보험을 직접 권유했던 특전사 선배이기도 했다.

“……계십니까?”

“어떤 분 찾아오셨어요?”

“김학규 상사님 뵈러 왔습니다.”

“아! 김 부장님이요. 이쪽으로 오시죠!”

작은 회사였지만 김학규의 사무실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만큼 회사에서는 특전사 인맥을 가진 그를 대우해 주고 있었다.

“김 상사님, 단결!”

특전사는 전역해서도 특전사였다.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관계는 민간인 신분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었다.

“단결!”

김학규 상사는 주성식의 경례를 받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본인도 경례로 답했다.

“잘 왔다! 성식아!”

“잘 지내셨죠?”

“그럼! 지난번에 영만이랑 부대로 축구 시합하러 갔는데 넌 안 보이더라?”

“이제 제대하니까요. 이제 슬슬 빠질 때는 빠져 줘야죠.”

“야! 인마! 그럼 내가 뭐가 되냐? 전역한 지 5년이나 지났는데 나는 주말마다 부대원들이랑 어울리는데!”

“그야…… 아직도 부대에는 김 상사님 따르는 애들이 많지 않습니까?”

“하하! 그야 그렇지! 그런 거 보면 나는 딱 장기 체질인데 말이야. 안 그러냐?”

김학규는 우람한 체구에 붙임성 좋은 성격이었다. 부대원들 누구나 그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김학규의 동기들이 부대 곳곳에 퍼져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보급대의 박영만 상사, 그리고 의무대의 허재현 상사. 이들은 부사관들을 위주로 구성된 특전사 38부대의 중심축이었다.

김학규는 먼저 따듯한 차를 한잔 내주고는 주성식의 보험 서류들을 꺼내왔다.

“성식아, 네가 중사 제대지?”

“네. 특전사에서 뼈를 묻으려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네요.”

“인마! 그게 어디 네 잘못이냐? 작전하다가 다친 거잖아. 오히려 훈장이지. 훈장!”

“퇴역한 마당에 훈장도 아닙니다…….”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는 주성식이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너같이 국가에 봉사한 특전사가 대우를 못 받으면 누가 대우를 받아야 하냐!”

김학규의 말과는 달리 주성식의 어깨 부상은 상이연금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작전 중 당한 부상이긴 하지만 당시에 군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산재 소송을 통해 싸워 볼 수도 있었지만, 주성식은 자신이 몸담아 온 특전사를 상대로 그런 법정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너 후유장해 진단서가 잘 나왔더라. 장해 등급이 6급으로 나왔어. 네가 가입한 상해보험이 2곳이고 생명보험이 2곳인데…… 장해치료비 명목으로 상해보험에서는 천만 원씩 나오고, 장해 등급판정으로 4백씩, 그리고 특약 조건으로 3백씩 더 나온다. 다 합치면 3,400만 원 정도 되네…….”

주성식은 말없이 목울대만 꿀렁거렸다. 진짜 중요한 건 생명보험 쪽의 보장이었다.

“생명보험에서는 상해 일반후유장해로 3천씩 나온다. 그럼 두 개 합쳐서 6천…… 상해보험까지 다 합치면 대략 1억 정도 나온다고 보면 된다.”

“아…… 감사합니다…….”

군인연금을 받지 못하는 주성식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순간이었다.

“네가 당연히 받아야 할 건데 뭘!”

“김 상사님이 없었으면…… 아버지 병원비도 감당 못 할 뻔했네요.”

“맞다. 아버님은 좀 괜찮으시고……?”

주성식의 부친은 백혈병으로 항암치료 중이었다.

“그래도 천만다행히 공여자가 있어서 지금은 골수이식을 받으시고 회복 중이세요. 항암치료도 거의 끝나가고요.”

“다행이네. 그래, 넌 이제 뭘 할 거냐?”

“전, 식당 한번 해 보려고요.”

“식당? 그거 망하기에 십상이라는데 괜찮겠어? 차라리 회사에 들어가는 게 어떠냐? 특전사 출신이면 그래도 대우를 해 주는 데가 있을 텐데…….”

주성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을 이어갔다.

“파병 갔을 때, 요리를 직접 해 봤는데 의외로 적성에 잘 맞더라고요…… 그리고 제 손으로 직접 뭘 하는 거니 제일 정직할 거 같고요.”

“하긴 성식이 너처럼 착실한 스타일은 그게 맞을 수도 있겠다.”

김학규는 주성식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내심 주성식을 자신이 일하는 보험업계로 끌어들이려 했던 그였다. 하지만 주성식의 결심이 굳건한 걸 보고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군에서 봐왔던 주성식은 자신이 결심한 건 늦더라도 묵묵히 해내는 스타일이었다. 어쩌면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고 실적압박에도 시달리는 보험영업은 주성식에게 어울리지 않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 * *

2010년 3월.

강준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성원화재의 자문의 김민철로부터의 전화였다.

―박강준 차장님, 제가 상의를 좀 드려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네? 무슨 일인데 그러시죠?”

―제가 보험사기범으로 오해를 받고 있어서요…….

“올 게 왔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전에 특전사 전역 군인에게 써 준 진단서 때문에 그러신 거죠?”

통화음 너머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전에 김 선생님께서 박영만 상사의 연락처를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럼, 그때 조사를 하셨던 겁니까?

“그럼요. 이 건은 법정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건 관련자들이 쉽게 혐의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강준은 이번만큼은 보험계약자들의 편에 서고자 했다.

회귀 전 강준이 접했던 정보에 의하면 무리한 보험 가입으로 보험사에 손해를 가져다준 건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보험사들 역시 일방적인 고발과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로 다수의 적법한 보험계약자들을 전과자로 만들었었다.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됐다.

―알겠습니다…… 절대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제 진단에는 진짜였으니까요.

전화를 마친 강준은 식당 주인에게 손을 들어 주문을 했다.

“김치찌개로 하나 주시죠!”

“네…… 알겠습니다!”

식당 주인이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다. 벽에 붙은 메뉴를 보니 낮에는 점심 장사로 밤에는 선술집으로 빡빡하게 운영되는 듯했다.

잠시 후, 코를 자극하는 김치찌개의 냄새가 풍겨왔다. 뚝배기에 담긴 1인분의 김치찌개는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근데, 주성식 씨!”

“네?”

식당 주인은 특전사 제대군인 주성식이었다.

“성원화재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아…….”

보험조사관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인상을 구기는 주성식이었다. 이미 해리츠 보험으로부터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쪽도 저를 보험사기범으로 조사하러 나오신 겁니까?”

“아니요. 전 반대입니다.”

강준의 말을 쉬이 믿지 않는 듯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않는 주성식이었다.

“약속드리죠. 성원화재는 주성식 씨를 보험사기로 고발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일단 여기 앉으시죠.”

숟가락으로 김치찌개를 퍼먹으며 태연히 말을 이어가는 강준이었다.

“주성식 씨 돈 있으세요? 파병을 다녀오셨으면 수당으로 꽤 많은 돈을 받았을 텐데요. 게다가 지난번에 수령한 보험금까지 하면 통장에 꽤 많은 금액이 찍혀 있을 거로 생각하는데요?”

“……조금밖에 없습니다. 보험금으로는 이 식당을 차리는 데 썼고, 제대하면서 받은 퇴직금과 복무하면서 모은 돈은 대출금을 갚은 데다 다 썼습니다…….”

하얀 쌀밥을 입으로 가져간 후, 고추를 고추장에 푹 찍어 와삭 씹은 강준은 잠시 후 말을 이었다.

“그 대출금은 아버님 병원비 때문에 냈던 거고요?”

“도대체 저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오신 겁니까?”

“보험조사관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험계약자분의 신상부터 확인하는 일이죠. 재무 상태를 포함해서요…… 변호사를 쓰셔야 할 겁니다.”

강준의 말을 들은 주성식의 눈빛이 흔들렸다.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굳이 변호사를 쓸 이유가 있겠습니까? 경찰에서 조사한다고 하니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나오면 되겠죠…….”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경찰에서는 저를 보험사기범으로 몰겠지만…… 판사님들이 잘 판단해 주시겠죠. 그러라고 대한민국 판사들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상황을 나이브하게 판단하고 있는 주성식이었다. 그에게 닥쳐올 고난은 그리 간단히 끝날 일이 아니었다. 해리츠 보험을 비롯한 유수의 보험사들은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었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법안이었지만, 그 내용을 들어보면 보험사들이 보험계약자들을 무작위로 고발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법안이기도 했다.

보험조사관 강준은 이제는 보험계약자의 편이 되어 줘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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