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아동학대 사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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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아동학대 사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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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아동학대 사건 (4)
2022.04.05.
청주 경찰서 경제수사과.
“난 그 사람한테 필리핀 혼혈 아들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원재성의 부인인 김영미는 그간의 일들을 낱낱이 털어놨다. 처음에는 간단한 병원 치료로 시작했던 보험금 타 먹기였다. 하지만 항상 돈에 쫓기던 원재성은 점점 도를 더해 갔다.
“김영미 씨, 집이 경매로 넘어가신 건 아시죠?”
“……알죠. 무슨 사업을 한답시고 그러더니만…… 채무가 좀 있었나 봐요.”
“집 담보대출이 제2금융권으로 넘어간 지가 한참 됐네요…… 거기서도 연체이자를 못 내고 결국 경매로 넘어간 거고요?”
“네, 뭐 그랬겠죠…….”
“주택소유자였기 때문에 입양도 가능했던 거고요?”
“그렇죠. 그것 때문에 그 인간이 한동안은 직장도 나가고 그랬었거든요. 보험금 타 먹으려는 계획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형사는 김영미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지금 그렇게 발뺌을 하신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동학대 책임은 본인한테도 있으신 거예요!”
“아…… 알죠. 제가 벌을 안 받겠다는 게 아니에요. 사실이 그러니까요…….”
어깨를 늘어뜨리고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김영미였다.
“아동학대 혐의가 정식으로 접수됐으니까 입양된 원은정 양은 파양될 겁니다. 아시고 계셨죠?”
“파양이요……?”
그녀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본인 역시 아동학대와 보험사기 방조 혐의로 처벌을 받을 처지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 *
연남시로 향하는 차량.
강준과 송지희는 연남시로 향하고 있었다. 재판에서 소견서를 써 준 의사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다.
자문의의 소견서는 정명천의 의료행위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걸 재판부가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
“이번에 소견서를 써 준 김민철이라는 의사분과 송 대리랑은 무슨 관계야?”
송지희가 대리로 진급한 다음부터 강준은 그녀에게 좀 더 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둘의 관계는 전보다는 돈독해져 있었다.
“제가 우춘배 씨 의료기록 때문에 병원에서 힘들었을 때, 유일하게 제 편에 서 준 분이시죠.”
“덕분에 지금은 종합병원에서 나와서 한적한 동네병원을 차린 거고?”
“친절하게 설명을 다 해 주셨네요…… 네, 맞아요.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제 덕분에 촉망받는 신경외과 의사에서 한적한 동네병원의 페이 닥터가 되셨죠.”
강준은 그건 네 탓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을 삼켰다. 어쩌면 그런 말은 송지희에게 전혀 위로되지 않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난관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원재성에 대한 재판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부인 김영미와 첫째 딸 은주 양의 적극적인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집으로 원재성이 돌아오는 걸 두려워하는 그들이었다. 법원은 아동학대를 위해 아이까지 입양한 원재성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그 4년 6개월의 형량은 멀쩡한 아이의 팔을 수술시킨 상해죄와 여러 차례 걸쳐 반복된 상습 보험사기의 죄목이 포함된 형량이었다.
함께 보험사기를 공모했던 정명천 병원장에 대해서는 보험사기 방조죄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끝끝내 병원장의 혐의를 완전히 밝혀 내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직접적인 금전 관계가 없었다는 게 결정적이었어요.”
“돈이 오간 정황은 있지만, 증거가 없다 이거군.”
“네, 차장님도 아시다시피 보건복지부에서는 정명천의 의사면허를 취소시키려고 할 거예요. 하지만 정명천 쪽에서 행정소송을 내겠죠.”
“결국, 의사면허는 계속 유지하겠군…….”
송지희는 정명천에 대해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법원의 판결이 무척 불만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법원이 형사 처벌을 내리고 보건복지부가 의사면허를 취소시킨다고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면허 재교부를 통해 의사 자격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강준은 무적의 의사면허가 어쩌면 앞으로 의료계를 더 내부적으로 곪게 만들리라 생각했다.
‘뭐! 대부분은 좋은 의사들이지…… 근데 누구든 의료계 전반을 건드리려고 한다면…… 그건 정말 피곤한 일이 될 거다!’
강준은 회귀 전 자신이 보았던 의료계의 파업을 떠올렸다. 날로 의료 현장을 담보로 목소리를 높이던 의사들이었다. 누군가는 의사들의 권한에 대해서도 견제구를 날려줄 필요가 있었다.
송지희 대리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그 옆에서 강준은 눈을 스르륵 감고 잠을 청하려고 했다.
“박 차장님, 근데 이번 일은 단순히 한 개인의 아동학대 문제가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개인병원 의사까지 공모해서 가짜진단서를 만드는 데 협조했으니까.”
“원재성 사건에서 멈추실 거예요?”
송지희는 대화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리 보험조사관의 역할은 여기까지야…….”
“적어도 어린이 상해보험의 약관 정도는 손 볼 수 있잖아요? 보험이 살인의 동기가 되는 것처럼 어린이 상해보험이 아동학대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송 대리는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강준은 다시 반쯤 드러누운 시트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나를 그냥 쉬게 안 해 주네……!’
“특약사항에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시에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조항이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애초에 어린이 상해보험을 이용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해야 하니까요…….”
“약관은 우리만 바꾼다고 될 문제는 아니야. 우리 같은 보험조사관이 이번 사건과 같은 사례가 보고되면 금감원에서도 문제 인식을 하겠지. 그러고 나면 보험업계 전반의 합의가 있을 거고.”
“박 차장님 말씀은 단박에 우리만 바꿀 수는 없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지 안 그래도 보험금 지급을 제대로 안 한다고 욕을 먹는데 우리 성원화재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회귀 전 강준이 봐 온 보험업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점점 안 좋아진다. 이대로라면 보험조사관으로서 강준의 고민도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량은 어느덧 연남시로 들어가는 번암IC로 접어들고 있었다.
* * *
평화 내외과병원.
강준이 머릿속에서 그렸던 것처럼 김민철은 마냥 사람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삐쩍 마른 몸매에 말수가 별로 없는 꽤 예민한 사람으로 보였다.
“원은정 양 엑스레이 사진으로 볼 때, 불유합이 일어난다는 근거는 아주 부족했거든요. 그리고 은정 양의 전체적인 팔 움직임도 후유장해 진단서에 나와 있는 것보다는 훨씬 자유로웠고요.”
원재성의 보험사기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김민철의 소견서였다. 강준은 그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누군지 얼굴도 볼 겸 말이지…….’
강준은 김민철을 성원화재의 자문 의사로 위촉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객관적인 소견서를 써 줄 수 있는 의사인지가 궁금했다.
“이번 일도 있고 해서 혹시 김 선생님께 제안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떤 제안 말입니까?”
“저희 보험사의 의료 자문의로 위촉을 해드리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잠시 망설인 김민철은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싫습니다.”
자문의가 되면 소견서를 작성하는 대가로 꽤 쏠쏠한 자문료를 받을 수 있다. 게다가 국내 유수의 보험사 자문의라는 명성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거였다. 근데 그걸 단칼에 거절하는 김민철이었다.
“제 제안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거절하시는 이유라도 알 수 있을까요?”
“그 보험사 자문의라는 거…… 결국엔 보험사 입맛대로 소견서를 써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디 한 곳에 소속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보다 못한 송지희가 옆에서 나섰다.
“김 선생님, 그런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평소 하시던 대로 소견서는 작성해 주시면 돼요. 굳이 우리 쪽에 유리하게 뭔가를 하실 필요는 없어요.”
“돈을 그쪽에서 받는데 내 소신대로 할 수 있다고? 글쎄, 난 잘 모르겠네…….”
까칠하게 나오는 김민철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그런 그에게 더 신뢰가 갔다.
“김 선생님, 당장 결정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하세요! 성원화재 자문의 타이틀이면 나중에 병원 옮기시는 데도 도움이 될 거예요.”
“송 간호사, 나 안 옮길 거야. 여기가 편해.”
“편하기는 하시겠죠. 하지만 본인의 능력을 이런 곳에서 그냥 썩히시겠다고요?”
김민철은 태연한 얼굴로 송지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 때문에 괜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전에 우춘배 씨 사건 때는 내가 알고 있는 대로 말했던 것뿐이니까…….”
“그러니까요! 그때처럼 저희가 의뢰한 건에 대해 소견서만 써 주시면 돼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끝까지 김민철을 설득하는 송지희였다.
“……알겠어, 그럼……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건 내 소견서에 덧칠은 절대 안 돼.”
“당연하죠. 제가 선생님 성격 잘 아는데 그럴 리가 있겠어요?”
송지희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똑똑!
응접실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는 특전사 군복을 입은 군인이었다.
“아! 선생님, 여기 계셨네요.”
“박 상사님, 진료하시러 오신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좀 드리려고요.”
박 상사는 환하게 웃으며 손에 든 벌꿀을 치켜들었다.
“이거 제가 직접 양봉한 건데 좀 드리려고요! 지난번에 저희 부대원 진단서 써 주신 거 감사해서요. 하하!”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뭐…… 이건 다시 가져가십시오. 전 못 받습니다.”
“에이! 이거 별것도 아닌데 괜찮습니다! 받으세요! 안 받으시면 여기 놓고 갑니다!”
넉살 좋은 박 상사는 진료실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와 강준과 송지희가 앉은 응접 테이블 위에 벌꿀 통을 내려놓으려 했다.
강준은 무거운 벌꿀 통이 넘어질까 봐 박 상사와 함께 조심스럽게 벌꿀 통을 잡았다. 그때, 강준은 박 상사의 김민철 선생과 관련된 기억을 읽어 들였다.
[너 이제 제대하면 뭐 할 거야?]
[……이제 알아봐야죠.]
[그러지 말고 너 일단 김학규 상사부터 찾아가 봐! 저번에 너 아프간 파병 갔을 때 어깨 다친 거 잘하면 보험금 나올 수도 있겠더라.]
[정말요……? 저 전역하면 보험 해지하려고 했거든요. 이제 월급도 끊기는데…….]
[에이! 안 돼! 우리 같은 특전사는 나중에라도 후유장애가 올 수 있어. 김 상사가 다 알아서 해 줄 테니까 너는 그냥 퇴직금이라고 생각하고 보험금 신청해! 이것도 국가를 위해 일한 거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전역을 앞둔 부하를 격려하는 박 상사였다. 그 모습은 정말 자기 부하를 위하는 모습이었다. 강준이 기억에서 빠져나왔을 때, 박 상사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선생님, 그럼 앞으로도 부대 녀석들 잘 좀 부탁드립니다!”
난감한 상황에 어쩔 줄 모른 김민철이었다. 반면 박 상사는 자신의 마음이 다 전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싱글벙글하며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강준은 회귀 전 떠들썩했던 특전사 보험사기 사건이 떠올랐다. 전·현직 특수부대원 백여 명이 직접 연루된 집단 보험사기 사건이었다.
특전사 특유의 끈끈한 유대감이 대규모의 보험사기로 키워진 격이었다.
“김 선생님 저 군인분께 써드린 진단서가 어떤 건가요?”
강준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군인들이 불명예스럽게 보험사기에 연루되는 걸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