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아동학대 사건 (3)
(125/250)
125. 아동학대 사건 (3)
(125/250)
125. 아동학대 사건 (3)
2022.04.04.
청주 정명천 힐링의원.
강준은 송지희와 함께 원재성이 자녀들의 보험금 지급을 위해 진단서를 발급받은 병원을 찾아갔다.
오래된 주상복합 건물의 4층에 있는 정명천 힐링의원은 내과와 정형외과, 이비인후과를 한꺼번에 진료하는 동네병원이었다.
병원 이름으로 알 수 있다시피 동네마다 하나씩 있을 법한 개인병원이었다. 입구에는 각종 예방접종을 홍보하는 포스터들이 붙여져 있었다.
강준 일행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기실에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온 노인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명천 의사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어디서 오셨는데요? 진료받으실 거면 줄 서시고요.”
“보험사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서 발급된 진단서에서 확인할 사항들이 좀 있어서요.”
“네? 보험사요? 잠시만요…….”
접수대에 있던 간호사는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진료실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에 환자가 나오자 진료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정명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체구의 남자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말없이 강준에게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얘기였다.
“보험회사에서 나오셨다고?”
“네, 원재성 씨의 딸인 원은정 양의 후유장해 진단서를 원장님께서 작성해 주셨더라고요.”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요? 전 의사로서 의학적인 판단을 내린 겁니다.”
“좌측 손목관절 주상골 골절로 핀을 박는 수술을 진행했고…… 그 이후에 예후가 좋지 못해서 6개월 뒤에 골절 후 불유합 판정을 내리셨네요?”
손목 부위의 주상골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면서 다치게 되는 대표적인 부위였다. 원재성이 진술한 둘째 딸 원은정 양의 사고도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다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보험사에서 나왔다니까 잘 아시겠지만…… 손목에 주상골 하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작은 뼈와 혈관들이 많이 분포된 곳이라 수술 예후가 썩 좋지 못한 건 아주 일반적인 거예요!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요!”
정명천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으며 강준과 송지희를 노려봤다. 바쁜 사람을 왜 찾아와 괴롭히냐는 눈빛이었다.
강준의 옆에 서 있던 송지희가 나섰다.
“수술 전 엑스레이상으로 봤을 때, 골절 부위가 보이지 않더군요. 아이의 진술로만 판단하신 건가요?”
정명천은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는 잠시 송지희를 빤히 노려봤다. 마치 시비를 걸듯 적대적인 표정으로 말이었다.
“……보험조사관이라고 하더니…… 당신이 무슨 의료인 출신이라도 돼요?”
“네. 연남중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었습니다.”
“그럼 진단과 수술 여부에 관한 판단은 의사의 고유권한이라는 거 몰라서 그딴 걸 물어? 사람 피곤하게 왜들 이러는지 몰라…… 돌아가요! 바쁘니까!”
돌아서려는 정명천을 향해 강준이 결정적인 말을 던졌다.
“원은정 양은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으로 바닥을 짚었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야 넘어지는 방향에 따라서 다르죠. 오른손잡이라 오른손으로만 바닥을 짚어야 하는 법은 생전 처음 들어보네…….”
“그게 아니라 혹시 처음부터 부상이 없었던 건 아닙니까? 일상 생활할 때 오른손을 더 많이 쓰니 멀쩡한 왼손을 수술한 거고요!”
강준은 원재성의 집에서 학대당하고 있는 은정이의 기억을 읽었었다. 그 기억에서 은정이는 멀쩡한 손목을 수술했어야만 했다.
은정이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제이콥이 자신의 동생들을 친부로부터 구해 내려고 몰래 아이들을 만나러 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강준은 안심하고 원재성을 보험사기로 고발해 구속하고 친권도 박탈할 생각이었다.
“무슨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당장 여기서 안 나가! 업무방해로 고소해 버릴 테니까!”
병원장인 정명천이 소리쳤다. 강준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병원 문을 나서며 강준이 송지희에게 속삭였다.
“오늘은 잠복을 좀 해 보자고요.”
“네, 차장님!”
* * *
강준은 낡은 주상복합 건물 앞에 차를 세워 두고 정명천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늦은 저녁, 그들의 눈에 먼저 들어온 건 친딸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원재성이었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을 찾는다는 말…… 이럴 때 쓰는 말인가요?”
“글쎄, 내 생각엔 그냥 원재성 저 인간이 아무 생각이 없는 거 같은데?”
강준은 망원렌즈를 당겨 원재성과 그녀의 친딸 원은주의 모습을 초 간격으로 찍었다.
“차장님 근데, 지금 시간이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아까 간호사들도 전부 퇴근했잖아요.”
“그렇지! 원래 뒤가 구린 일은 보는 눈이 있으면 안 되는 법이거든.”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떻게 하긴……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 보자고!”
강준은 차 문을 열고는 상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원재성이 입양한 둘째 딸에게 그랬듯 친딸인 첫째 딸에게도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마침 퇴근을 하고 나오는 접수대의 간호사와 마주쳤다.
“어! 아까 그 보험사…….”
“원장님은 보통 밤늦게 퇴근하시나 봐요?”
“가끔 그러시죠. 근데…… 다시 병원에 올라가 보시게요?”
“네,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강준의 말에 간호사가 우물쭈물하며 곤란해했다. 그녀는 손에 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당장이라도 원장에게 전화를 걸려는 듯했다.
“아뇨. 없죠…….”
“있는 거 같은데요. 그 핸드폰으로 원장에게 알리려는 거 아닙니까?”
“네? 아닌데요……? 전 그만 가 볼게요.”
간호사는 강준 일행을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때 강준은 간호사의 팔을 붙잡고는 그녀의 기억을 읽으려 했다. 옆에 있던 송지희가 그런 강준의 돌발행동에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멀쩡한 아이 팔에 핀을 박아 대는 거! 그게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 같나요?”
간호사의 기억은 어느 카페 안에서였다.
[형부 어제 병원에 다시 왔더라?]
[그 미친 인간! 거긴 또 왜 갔대? 보험금까지 다 탔잖아?]
[몰라, 애가 팔이 부러졌다나 뭐라나……?]
[뭐? 은주가? 우리 은주가 팔이 부러졌어?]
맞은편의 여자는 원재성의 집 나간 아내였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다쳤을까 봐 놀란 기색이었다.
[아니…… 은정이. 언니네가 입양한 딸.]
[내가 입양한 거 아니야. 그 인간이 보험금에 눈이 멀어 입양한 거지…….]
[우리 원장을 괜히 소개해 줬나 봐…….]
간호사가 말끝을 흐리자 원재성의 아내가 눈을 치켜뜨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 인간 절대 용서 안 해! 어떻게 애들을 해코지해서 보험금을 탈 생각을 해? 내가 언제 이혼을 결심했는지 알아? 은주를 기관지염으로 세 번이나 입원시켰을 때야!]
[언니는 왜 나한테 화를 내고 그래? 난 상관없는 사람이야. 그냥 형부한테 원장님 소개해 준 거뿐이잖아…… 돈을 챙긴 것도 아니고…….]
자신은 억울하다고 말하는 간호사였다. 하지만 원재성의 아내는 그녀를 더 몰아붙였다.
[형부가 너 술 사주고! 백 사주고! 내가 모를 줄 알아? 나 이혼하게 되면 김보경 너한테도 일정 지분 있는 거야!]
분위기는 차갑게 식었고, 서로 시선을 외면하는 둘이었다.
간호사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자신을 피해 도망치는 간호사를 향해 외쳤다.
“원재성 씨 부인께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간호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상황을 회피하려는 거였다.
“김보경 씨! 원재성 씨 보험사기를 묵인한 거면 공범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강준의 외침을 듣고서야 김보경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이 씨! 나 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요!”
* * *
정명천 힐링의원.
간호사 김보경이 열어 준 병원 내부는 적막했다. 불이 꺼진 복도를 조용히 걸어간 강준 일행은 수술실 근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었다.
“원장이 항상 듣는 음악이에요. 무슨 교향곡 몇 번이라고 했는데…….”
김보경이 강준에게 설명했다.
“자, 그럼 채증하러 들어가 볼까요?”
“박 차장님, 잠시만요! 원재성이 안 보이는데요?”
“김보경 씨, 혹시 뭐 아는 거 있어요?”
뭔가 말렸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구긴 김보경은 손가락으로 입원실을 가리켰다.
“저기서 자고 있을 거예요…….”
“딸 아이가 수술하는데 자고 있다고요? 그러고도 그 인간이 아빠라는 자격이 있는 거예요!”
“원래 그런 인간이에요. 나도 말린 거라니까요…….”
강준은 입원실을 지나쳐 음악이 흘러나오는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의 작은 창문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벌컥!
“……뭐야!”
인기척을 느낀 정명천이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원은주 양도 손목관절 골절입니까?”
“당신 뭔데 함부로 수술실까지 들어와! 이거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야……!”
하지만 원장은 강준과 함께 들어온 김보경을 확인하고는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보경이…… 너는 왜 거기 있는 거야……?”
“원장님, 이 사람들이 절 억지로 여기에 끌고 온 거예요…….”
끝까지 본인만 빠져나가려는 김보경이었다.
“김보경 씨가 친절히 병원 문을 열어 주더군요. 원장님이 한밤중에 가끔 수술에 열중하신다는 얘기도 들려줬고요.”
그 말에 김보경은 사색이 되어 강준을 노려봤다. 하지만 강준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녀의 입장 따위를 신경 써 줄 필요는 전혀 없었다.
강준의 뒤에 있던 송지희가 카메라를 들고 수술실의 광경을 찍었다. 은주 양은 수면 마취에 들어갔는지 철제 침대에 누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송지희는 은주 양에게 다가가 수술 부위를 살폈다.
“박 차장님, 아직 핀을 박기 전이에요!”
멀쩡한 손목에 핀을 박는다면 오히려 없던 장애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당신이 보면 뭘 알아? 환자를 수술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이걸 보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겠어요?”
송지희가 보여준 건 카메라에 찍힌 원은주 양의 연속촬영된 사진이었다. 한 손에는 인형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원재성에게 강제로 잡혀 끌려가고 있었다.
만약 손목에 이상이 있는 상태였다면 절대 그렇게 손을 사용할 수 없을 터였다.
“너무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않아요? 제 눈에는 무척 정상으로 보이는데 원장님 눈에는 수술로 핀을 박아야 할 증세로 보이시나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원은주 양의 차트 모니터에는 멀쩡한 손목을 찍은 엑스레이 촬영본이 띄워져 있었다. 수술이 끝나면 삭제하려고 했던 엑스레이 촬영본이었다.
송지희가 내민 증거와 엑스레이 촬영본 앞에서 정명천 원장은 할 말을 잃었다. 그때 바깥에서 소란한 소리를 들은 원재성이 수술실로 들어왔다.
“뭐야 당신들!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사람 괴롭히는 게 당신들 일이야? 보험사가 보험금 안 주려고 고객들 괴롭히는 거! 내가 언론에 폭로할 거야!”
“맘대로 하시죠. 전 원재성 씨를 아동학대와 보험사기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하겠습니다!”
경찰이라는 말에도 원재성은 당황하지 않았다.
“걸핏하면 보험사기로 고소부터 하려고 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어디 한번 해 봐!”
오히려 당당하게 나오는 원재성이었다. 그는 고소당하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강준은 이 싸움이 조금은 길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친부인 원재성은 아이들을 돈과 맞바꾸었지만, 김보경의 기억 속에서 읽었던 아이들의 친모는 여전히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