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아동학대 사건 (1)
(123/250)
123. 아동학대 사건 (1)
(123/250)
123. 아동학대 사건 (1)
2022.04.02.
“김준혁! 오늘부터 제이콥 친아버지를 찾는 거에 힘 좀 써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강준은 제이콥의 국적회복을 위해 그의 친부를 찾아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건 정식 보험사기 업무는 아니었다. 고로 일을 맡긴 김준혁에게 강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서 제이콥이 신세 지고 있는 이는 바로 김준혁이었다. 어쩌면 강준보다 더 적극적인 모습일지도 몰랐다.
“제이콥은 제가 일단 데리고 다녀도 될까요?”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면…… 그것보다는 언어를 좀 더 배우는 게 좋겠지. 보니까 아직 한글을 능숙하게 읽지 못하더라고.”
강준은 김준혁에게 어학원 입학서류를 내밀었다. 제이콥은 김준혁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입학서류는 제이콥에 곧장 전달될 터였다.
“설마…… 박 차장님이 제이콥에게 여기 어학원 비용까지 대주시는 겁니까?”
“왜? 안 돼……?”
“그게 아니라 굳이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김준혁은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는 너는 왜 제이콥을 집에 있게 해 준 거냐?”
“그야…… 우리 집 말고는 제이콥이 한국에 있을 곳이 없으니까요.”
“나도 그래! 보험조사관 되겠다며 여기까지 찾아온 애를 그냥 내칠 수도 없잖아? 절반은 한국인인데…… 할 수 있는 한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줘야지.”
강준은 금융위기 때 벌었던 돈으로 충분히 생활하고도 남았다. 그런 상황에서 강준은 오랜만에 돈 쓸 일이 생겼던 거였다.
김준혁은 강준이 그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제가 제이콥 그놈 꼭 보험조사관 만들어 놓겠습니다!”
“아서라…… 맨날 야근만 해야 하는 일인데 보험조사관이 뭐가 좋다고…… 가끔 고객들한테 욕도 먹는 일이잖아. 협조 기관에는 눈치나 보고.”
“그건 그러네요. 그래도 일단 친아버지부터 찾아주죠. 그러고 나선 본인이 선택하겠죠.”
“수고해라! 외근 나갔다 올 테니 연락 오는 거 있으면 잘 받아두고…… 아 참! 송지희, 내일 복귀한다더라.”
“하하!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뭐야?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야?”
강준의 놀림에 김준혁이 부정하지 않고 실실 웃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강준은 더는 둘의 사이에 대해 함부로 언급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둘 중 한 명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 * *
제이콥이 기억하는 친부의 이름은 원재승이었다.
김준혁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찰에 친부의 주소지 사실조회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만약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친부와 제이콥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부자 관계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 제이콥이 한국 국적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달이 걸릴지는 알 수 없는 문제였고, 무엇보다도 친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일이었다.
김준혁은 일단 보험통합 전산시스템을 이용해 차량 보험가입자 중에 원재승이라는 이름의 계약자들을 추려 냈다. 그리고 그 계약자 중 제이콥의 친부가 될 만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2차로 추려 냈다.
다행히 희귀성인 원 씨였던 덕분에 대여섯 명으로 후보군이 도출됐고, 일일이 전화를 돌려 필리핀에서의 체류 여부를 확인했다.
하지만 결과는 허탕이었다.
그렇게 지쳐가고 있을 때쯤, 김준혁은 필리핀 한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사해 제이콥이 건넨 친부의 사진과 흡사한 인물을 찾아냈다.
어느 식당의 한인 모임에서 찍은 사진에는 한 무역회사의 이름이 발견됐다. 그리고 김준혁은 끈질기게 그 무역회사를 추적해 당시의 사장과 연락이 닿았다.
―원재성 말하는 모양이네…… 말도 마! 나 그 인간하고 연 끊은 지 벌써 10년도 넘어가! 내가 결제받을 돈만 해도 3억이 넘거든!
“이름이 원재승이 아니라 원재성인가요?”
이름이 달랐기에 김준혁이 전산에서 허탕을 쳤던 거였다.
―어! 확실해. 나하고 거래를 했었으니까 내가 잘 알지. 마지막에 여기저기에서 선금받고 싹 날랐거든!
제이콥의 친부는 마닐라 인근에서 가죽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의 거래처들에 납품하면서 한때 잘나가기도 했었지만, 공장 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점점 돈에 쫓겼다고 했다.
―지금 청주에 있을 거요…… 거기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민사소송을 걸었을 때 보니까 거기가 주소지더라고.
“혹시 그 주소지 저희에게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원재성 씨 아들이 아버지를 찾고 있어서요…….”
―찾게 되면 내가 벼르고 있다고 전해 주쇼!
전화를 끊은 김준혁은 무역회사 사장에게 받은 문자 메시지를 강준에게 보냈다. 강준이 제이콥의 친부를 찾게 되면 본인이 꼭 직접 만나겠다고 당부를 해 뒀기 때문이었다.
* * *
청주 구도심 아파트.
원재성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한 강준은 한가한 시간에 때맞춰 주변 부동산에 먼저 들어갔다.
“여기 집 좀 보러 왔는데요?”
“요 앞 아파트는 지금 나온 집이 없는데…….”
“실은 경매로 나온 집이 있다고 해서요. 시세가 어떤지 확인 좀 해 보러 나왔습니다.”
“아…… 혹시 그 408호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 좀 어떤가요? 낙찰받으면 명도소송도 진행해야 할 거 같은데…….”
김준혁이 추가로 찾은 정보에 따르면 원재성이 소유주로 되어 있는 아파트는 1년 전부터 경매로 나왔지만, 계속 유찰되어 왔다. 최초 낙찰가 대비 40%나 빠진 가격이었지만, 언제 다시 경매가 재개될지는 미정이었다.
“아휴! 그 집 말도 마요. 경매 낙찰받으려고 왔다가 다들 학을 떼고 돌아가니까.”
“왜요? 지금 사는 사람이 문제가 좀 있나요?”
“원래 집주인인데…… 아주 사람이 막무가내라…… 일도 안 하는 거 같고, 하여간 그 집 낙찰받았다가는 아주 골치가 아플 거예요.”
부동산 사장은 붙임성 좋은 50대의 중년 부인이었다. 강준의 말에 신나서 말을 이어 가는 걸 보면 그 동네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소문은 모두 꿰고 있을 듯했다.
“집주인이 문제가 좀 있었나요? 집까지 경매로 넘어간 거 보면 확실히 금전적으로 쪼들리는 뭔가는 있었겠지만요…….”
살짝 운을 띄우자 부동산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거기…… 마누라가 도망갔잖아…… 남자가 얼마나 엉망이면 도망을 다 갔겠어? 애들까지 버리고 갔을 정도니까…….”
“애까지 있었다고요?”
강준은 그 말을 하면서 슬쩍 의자에 앉았다. 한창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 사장이 말할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커피 믹스를 타 강준에게 건넸다.
“이거 확실하지는 않은 얘기인데…… 그 집 둘째가 입양해서 온 거 같더라고. 여자가 임신한 걸 본 사람이 없다는데 갑자기 애를 데려왔거든.”
“애를 좋아하는 부부였나 보네요.”
“에이…… 그렇게 화목한 집이었으면 마누라가 도망을 갔겠어?”
“하긴…… 그렇죠.”
강준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홀짝 마시고는 사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이웃들도 그 집 때문에 얼마나 골치가 아픈데…… 매일 애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전에 여자가 애를 전혀 달래주지를 않더래.”
“왜요?”
“그니까 정상이 아니라는 거지. 아래 윗집으로 애 우는 소리에 진절머리 나서 살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하더라고.”
“혹시 학대 정황이 있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빼는 부동산 사장이었다.
“근데…… 그럴 가능성은 있지 않겠어? 보통 입양할 때는 좋은 마음으로 입양했다가 나중에 마음이 달라져서 애를 학대하고 그러는 경우가 많잖아?”
“그렇죠. 게다가 상황도 안 좋은 분들 같은데…….”
“내 말이…….”
혀를 쯧쯧거리며 그들 가족을 걱정하는 척하는 사장이었다.
“아까 집주인이 일을 안 한다고 하셨죠?”
“간간이 나가는 거 같긴 한데…… 남자가 낮에 집에 있는 거 보니까 제대로 된 직장은 없다고 봐야지.”
사장의 표정을 보니 나올 정보들은 다 나온 거 같았다. 그녀가 다른 화제를 찾기 전에 강준은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사장님, 커피 잘 마셨습니다. 아무래도 여기 경매는 포기해야겠네요.”
“혹시 근처 아파트 관심 있으면 연락처라도 남겨두고 가요. 곧 봄 되고 그러면 이사 철이라 매물들이 좀 나오거든.”
“네, 명함 두고 가겠습니다.”
“그래요. 호호!”
강준의 명함을 건네받은 사장은 놀란 눈으로 강준을 올려다봤다. 그가 받은 명함에서 ‘보험조사관’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사장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 * *
띵동! 띵동! 띵동!
강준이 찾은 408호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한참 벨을 누르자 안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빼꼼히 문을 열었다.
“아빠! 누가 왔어……!”
그 말에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가 거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성원화재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보험회사……? 아! 우리 보험금 왜 안 주는 겁니까? 애가 자전거를 타다가 다리가 부러졌는데 뭘 더 조사한다는 거냐고요!”
남자는 제이콥의 친부로 짐작되는 원재성이었다. 그는 강준이 자신의 보험금 지급 담당자인 줄 착각했다.
“필리핀에서 지내셨던 적이 있으시죠?”
“뭐요……? 그렇긴 한데 왜요?”
“글로리아라는 여자와 동거하신 적이 있으시고요?”
강준의 질문에 원재성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여자인데…… 그건 왜요?”
“그 여자분과의 사이에서 아들이 있었죠? 제이콥이라는 이름의 아들요…… 이래도 전혀 기억이 안 나십니까?”
제이콥의 이름을 들은 원재성이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근데 당신 누군데…… 나한테 와서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제이콥이 지금 한국에 와 있습니다. 친부를 찾고 있어요. 원재성 당신을 말이죠!”
강준의 말에 원재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한눈에 봐도 누군가를 책임질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때 거실 안쪽에서 또 다른 여자아이가 멍하니 강준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의 눈에는 의료용 안대가 채워져 있었고, 팔과 다리에는 각각 한쪽씩 깁스가 되어 있었다.
피부에는 멍 자국이 군데군데 있었고, 얼굴은 씻지 않아 얼룩덜룩했다. 부동산 사장이 말했던 입양한 아이가 바로 그 아이인 듯했다.
강준은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얘 이거 먹어라…….”
아이는 원재성의 눈치를 보더니 쪼르르 달려와 초콜릿을 받으려 했다. 강준은 그 순간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는 아이의 기억을 읽었다.
[은정이 너! 시발 내가 울지 말라고 했지! 내 말이 우스워!]
원재성은 아이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그리고는 머리칼을 붙잡고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의 몸뚱이는 반항 한 번 못 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야! 안 일어나? 아빠 말 안 들을 거야!]
아이답지 않게 은정이는 울지도 않았다. 그리고 원재성은 두 손을 짚고 일어나려는 은정이를 무차별적으로 발로 가격했다. 어른이라고 해도 무서울 법한 폭행이었다.
그 폭행을 대여섯 살의 은정이는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강준은 원재성의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제이콥의 친부이기 이전에 그는 아동 학대범이었다.
“이게 맨날 어디서 아무거나 주워 먹어! 야! 원은주! 얘 방으로 데려가!”
“은정이…… 이번에 보험금 지급 신청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렇죠. 아까 말했잖아요. 자전거 타다가 다리가 부러졌다니까…….”
“혹시 원재성 씨가 일부러 폭행한 건 아니고요?”
“뭐…… 뭐요! 보자 보자 하니까……!”
원재성은 당장이라도 주먹을 불끈 쥐고는 때릴 듯한 눈빛으로 강준을 노려봤다. 하지만 강준 역시 그 눈빛에 밀리지 않았다. 어쩌면 주먹을 먼저 뻗고 싶은 건 강준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