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제이콥2022.04.01.
축산시장 화물창고. 공안이 들이닥치기 직전에 마이크를 비롯한 미 국무부 요원들이 그곳을 먼저 급습했다. 화물창고의 한편에 설치된 의료용 장비들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짐작하게끔 했다. 강준은 의식을 잃고 철제 침대에 누워 있는 김만석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다행히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반면 서용호와 그 일당들은 무릎 꿇려져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제압한 마이크가 강준에게 다가왔다. “당신의 말이 맞았어요. 여기 공안은 우리를 엿 먹이려고 한 거였어요!”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공안은 오히려 장기밀매범 일당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을 겁니다.” “이번 사건으로 중국 정부가 불법적인 장기 이식을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됐네요…… 파룬궁 수감자들에 대한 불법 장기 적출도 분명 증거가 나올 겁니다.” 마이크는 자신이 조사 중인 의혹들을 확신하게 된 모습이었다. “아마, 저놈들을 조사해 보면 이곳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파룬궁이나 사형수들에 대한 조직적인 장기 적출에 대한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공안들은 협조해 주지 않겠지만요…….” “저도 그 점이 염려되네요. 대사관에서 나서고는 있지만, 공안들이 제멋대로 범인들을 조사한다고 데려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강준은 마이크에게 담배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근데 저놈들은 정말 지독한 놈들이군요…… 산 사람의 장기를 빼내다니…….” “마이크 요원님, 제가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부탁이라면 질색입니다. 하지만 서로 오가는 게 있다면 한번 들어보죠.” 원래의 까칠한 성격을 드러내는 마이크였다. “저놈들 한국으로 송환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럼 미 국무부가 한국 땅에서 저놈들을 조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공안보다는 한국 경찰이 우리에게 더 우호적이긴 하겠네요…….” “맞습니다. 저기 무릎을 꿇고 있는 서용호는 한국 땅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중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한국의 법에 따라 응징할 이유는 충분한 거죠.” 마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준의 말에 동의했다. “그거야 한국에서 알아서 할 문제지만…… 한중 양국 간의 외교 마찰이 될 수도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중범죄자를 처벌하겠다는데 외교 마찰이 무슨 상관입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해야죠.” 어느새 둘에게 가까이 다가온 이진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공안이 당황했어요…… 장리쥔이 길길이 날뛰면서 부하들을 질책하네요. 우리가 장기밀매 현장을 잡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거죠. 근데 박 차장님 정말 어떻게 아신 겁니까?” “말씀드렸잖습니까? 지희 씨가 간호사인 장메이를 설득해서 알아낸 거라고요.” “그래도 아까까지는 구체적인 장소까지는 몰랐잖습니까?” 이진철이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게요. 지희 씨가 잘 설득한 모양입니다.” 강준은 공을 사건 담당자인 송지희에게 돌렸다. 그때 김만석의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에 있던 그녀를 송지희가 직접 데려와 남편이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영감!”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철제 침대에 누워 있는 남편을 발견한 그녀는 오열했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묻어나는 울음이었다. “죽지 말아요! 이러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잖아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갑시다. 거기서 다시 치료받아요!” “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테니까요.”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다들.” 김만석의 부인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송지희와 한국 경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구석에 무릎을 꿇고 있던 서용호를 발견했다. “저 쳐죽일 놈! 갖은 사탕발림으로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와 놓고! 우리 영감 장기를 빼가려 해? 저 나쁜 놈!” 그녀가 서용호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강준이 그녀를 말렸다. “조직적인 장기밀매범입니다. 충분한 벌을 받을 테니 이제는 저희에게 맡겨 주시죠! 사모님!” “흐흑…… 우리같이 절박한 사람들을 이용하다니……!” 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런 김만석의 아내를 보고는 서용호는 오히려 입꼬리를 올리며 낄낄거렸다. “너희 남조선 놈들 항상 우리 밥이었어…… 우리한테 속은 너희가 잘못한 거지.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니?” 항상 한국 표준어를 구사하던 서용호였다. 그는 말끔한 외모와 침착한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줘왔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본색을 드러내자 특유의 연변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강준은 서용호에게 다가가 망설임 없이 귀싸대기를 날렸다. 철썩! 철썩! 철썩…… 철썩! 쫙! 쫙! 귀싸대기가 이어지자 서용호의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매서운 눈매로 강준을 올려다봤다. “너, 전대성 알지? 전대성 어떻게 했어? 매번 하는 대로 장기를 다 빼내고 통나무로 만들었냐?” 강준은 그의 턱을 부여잡고는 서용호의 기억을 읽었다. 그의 기억은 바로 이곳 후시 시장의 화물창고 안에서 시작됐다. 서용호는 부하들이 끌고 온 남자를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이미 밍싱그룹으로부터 버림받은 전대성이었다. “서 사장, 우리 이러지 말자. 어? 내가 누구야? 나 전대성이야! 한국 돌아가면 얼마든지 돈 되는 사업 펼칠 수 있다고? 내가 검찰 쪽에 뿌린 게 얼마인지 잘 알잖아?” “야…… 전대성 너를 누가 죽이라고 한지 아니?” “누군데? 최진태 그 개새끼 아니야? 아니면 한승일? 내가 다 콘트롤이 가능하다니까…… 그러니까 서 사장!” 서용호가 눈짓으로 명령을 내리자 그의 부하들이 전대성의 두 팔을 잡고는 철제 침대에 눕혔다. “서용호!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그 말에 서용호는 누워 있는 전대성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우악스럽게 쥐고는 얼굴을 바짝 밀착시켰다. “나 원망 마…… 나도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인 거 잘 알잖아. 너 죽이라고 한 사람들…… 네가 그렇게 뇌물을 먹였던 사람들이야. 다들 네가 없어졌으면 하더라고…… 흔적도 없이 말이야!” “야! 서용호! 우리 얘기 좀 하자! 내가 한국에 돈을 얼마나 묻어놨는지 알아! 그거 줄게! 그러니까 이러지 말자! 어?” 서용호는 피식 웃으면서 턱짓으로 부하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얼굴에 긴 칼자국이 있는 부하가 마취제가 묻은 천을 전대성의 얼굴에 덮었다. 그러자 전대성이 이내 의식을 잃고는 고개를 떨궜다. 부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전대성의 셔츠를 벗겨내고는 그의 가슴을 메스로 갈랐다. 메스의 칼날을 따라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용호는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을 여전히 노려보고 있었다. 강준은 회귀 전 자신이 죽임을 당했을 때를 떠올렸다. “야…… 서용호, 너 한국 송환되면 널 죽이려는 사람 많겠는데?” “……뭐 ……무슨 얘기야?” 코에서 나오는 피를 막고 대꾸하는 서용호에게 강준은 다시 주먹을 날렸다. 퍽! “너한테 전대성을 죽이라고 시켰던 사람들 말이야…… 그 사람들이 널 가만두겠냐?” 전대성의 살해를 지시한 건 박상도 의원이었다. 그리고 그는 검찰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국으로 송환된 서용호의 입을 막는 건 그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으윽…… 나 중국 국적이야. 내가…… 왜…… 한국으로 끌려가니?”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희미하게 웃는 서용호였다. 이진철이 어느새 다가와 다시 주먹을 뻗으려는 강준의 팔을 잡았다. “박 차장님, 이만하면 됐습니다. 이놈도 살아야 벌을 받지 않겠습니까?” 강준은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차갑게 돌아섰다. * * * 예상대로 공안은 서용호를 내주지 않으려 했다. 미 국무부는 그간 수집한 정보들을 토대로 외교적인 문제로 사안을 확대하려 했고, 몇몇 외신은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불법 장기 적출에 대해서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 얽혀 있던 미국의 언론은 그 보도를 애써 무시했다. 뒤늦게 한국 언론들도 서용호라는 인물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미국과는 다르게 한국인이 납치되어 장기가 털린다는 자극적인 이슈는 인터넷 포털에서 한동안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서용호의 한국 송환은 단시간에 끝날 문제는 아니었다. 강준은 래리 청과 호흡을 맞춘 송지희를 장춘 현지에 몇 주간 더 머물게 하고는 먼저 한국으로 복귀했다. “지희 씨가 래리 청과 잘 지낸다고요?” “왜 무슨 문제 있어?” “그게 아니라 너무 지희 씨 혼자 내버려 두신 거 아닌지 해서요…….” 김준혁은 오랫동안 못 본 송지희가 보고 싶은 듯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남들의 눈에도 훤히 드러났다. “너라도 장춘으로 가서 송지희를 돕고 싶냐?” “제가 갈 수만 있다면…… 저야 좋죠! 하하!” 마다하지 않는 김준혁이었다. “박 차장님, 그리고 이 친구가 중국어도 한다는데요? 저랑 세트로 다녀오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강준을 기다리고 있던 의외의 인물은 대인해운의 선박 피랍 사건에서 보험조사팀을 도왔던 제이콥이었다. 그는 배필립의 검거 작전에서 칼에 찔린 채 바다에 버려졌었다. 하지만 곧바로 투입된 한국의 특무대원들에게 구조되어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진 것이었다. 그렇게 몸이 회복되자 제이콥은 보험조사관이 되겠다며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찾아온 성원화재 보험조사팀에 강준은 없고 김준혁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제이콥, 너 보험조사관이 왜 되려는 거냐?” “한국에서 살려면 그 방법이 가장 빠를 거 같아서요…….” “한국에도 직업은 많아, 근데 왜 굳이…….” “지난번에 보니까 보험조사관이 꽤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솔직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보험조사관이 되고 싶은 제이콥의 이유 중에 어떤 게 먼저인지는 본인도 잘 모르는 듯했다. “제이콥, 지금 비자가 어떻게 되지?” “지금은…… 단순 여행 비자예요…… 근데 전 아버지가 한국인이에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아직 제이콥은 한국의 물정을 완전히 모르고 있었다. “제이콥 네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친부의 확인서가 필요해. 그건 알고 있지?” “전……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데요……?” “혹시 단서가 될 만한 건 있어? 사진이나…… 뭐 그런 것들.” 강준의 말에 제이콥이 지갑 속에 있던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사진 속에는 제이콥의 모친과 찍은 한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름은 모르고?” “원…… 재승.” “그럼 우선 이름으로 찾아보면 되겠네…… 근데, 제이콥 괜찮겠어? 네 한국인 아버지를 찾는 거 말이야.” 제이콥은 심경이 복잡한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네, 한번 찾아보고 싶어요.” “그래, 내가 도와주마.” 강준은 제이콥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제이콥이 자신의 모친과 함께 지내던 기억이 강준에게 전달됐다. 따듯했지만, 한편으로는 허전함이 느껴지는 기억들이었다. 강준은 제이콥의 친부를 찾게 됐을 때, 그가 받을 상처가 벌써 걱정됐다. 자신의 아이를 무책임하게 버린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인지 안 봐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제이콥에게 한 가지 더 해야 할 말이 있었다. “그리고 국적회복 절차를 거치면 넌 2년간 한국 군대에 복무해야 한다. 알고 있어?” “군대요? 제가 군대에 간다고요?” “그래, 대한민국 국민이 되려면 당연히 이행해야 할 의무지. 보험조사관은 네가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다음에 생각해!” 강준의 말에 제이콥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네, 군대 다녀올게요…… 그리고 다녀오고 나서 꼭 보험조사관이 될 겁니다!” 제이콥이 보험조사관이 되겠다는 건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