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 장기밀매 사건 (5) (121/250)


121. 장기밀매 사건 (5)
2022.03.31.


“뭐라 그러는 거예요?”

송지희는 인민병원의 간호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 장기밀매범들이 잠입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별일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기 때문이었다.

래리 청도 그런 간호사의 태도에 당황했는지 바로 통역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자기도 여기서 일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신장 이식 환자를 몇천 명이나 봤다네요.”

“몇천 명이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수술을…….”

“근데 그중에서 검사만 받고 나가는 사람도 태반이랍니다.”

“그건 또 왜요?”

“……물어봤는데 ……그건 자기도 모른답니다.”

인민병원의 간호사는 2만 위안을 챙기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럴 요량으로 온 것인지도 몰랐다.

그나마 김만석의 의료기록을 확보한 건 다행이었다. 의료기록에 따르면 김만석은 단순 건강검진을 위한 입원 절차를 받았을 뿐이고, 주치의는 배정되지도 않았다.

의료기록은 서용호 일당이 애초부터 이식 환자를 속이고 중국에 데려왔다는 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앞으로 김만석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말해 주면 2만 위안을 더 주겠다고 하세요.”

“2만 위안을 더요?”

“네, 그렇게 통역해 주세요.”

래리 청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고는 간호사를 설득했다. 그녀가 팔짱을 낀 채 한참을 실랑이했고, 래리 청은 한참을 그러다 송지희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5만 위안을 달라는데요…….”

“하아…… 참나…… 어처구니가 없네!”

5만 위안이면 간호사의 연봉을 넘는 금액이었다. 송지희가 뭘 원하는지를 눈치채고 한몫 잡아보려고 하는 거였다.

“주겠다고 하세요.”

“네? 정말요?”

“지금 우리 약점을 가지고 노는 거예요. 그럼 우리도 같이 놀아줘야죠.”

래리 청은 일단 정보부터 빼내려는 송지희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간호사와 협상을 계속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어가지 않는 듯했다.

“……예상했던 대로네요. 여기에 있던 환자 중에 인민병원이 아닌 장춘 시내의 다른 곳에서 수술한다는 얘기를 본인이 들었답니다.”

“거기가 어디라는 데요?”

“장소는…… 나머지 돈을 받으면 말해 주겠다는데요…….”

간호사는 팔짱을 끼고는 송지희의 날카로운 시선을 외면했다. 정말 돈을 주지 않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제스처였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요.”

“네? 지희 씨!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들이 앉아 있는 곳은 대형 쇼핑센터의 오픈된 찻집이었다. 그곳에서 큰 소리라도 난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 있었다.

송지희는 덤덤하게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 서류는 일회용 주사기와 수액을 납품하는 곳의 거래 장부였다. 그 서류를 받아 본 간호사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오래전부터 당신이 담당하는 과에서 사용된 일회용 주사기가 재사용되었더라고요, 남은 수액도 다시 합쳐져서 새것처럼 환자에게 주입됐고요.”

“그건 자기가 그런 게 아니라는데요?”

통역하는 래리 청의 표정도 상기되었다.

“그럼 이거는요?”

이번에는 간호사가 일회용 주사기와 수액 납품처에서 받아 챙겨온 리베이트 내역서였다. 그녀는 납품처와 짜고 재사용한 의료용품만큼의 금액을 본인이 횡령해 온 거였다.

간호사의 이름은 장메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준 건 미 국무부 요원 마이크였다. 송지희는 애초부터 흠집이 있는 그녀를 압박하려고 일부러 접근했던 것이었다.

하나씩 내어놓는 송지희의 정보에 간호사의 표정은 얼음처럼 굳어갔다.

“자기 위에 있는 의사가 지시한 거라 자기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네요…….”

전형적인 책임회피의 발언이었다.

“얼마 전 광저우에서도 일회용 수액 재사용 사건으로 환자들이 C형 간염에 집단감염됐었죠. 과연 그런 변명이 공안에도 통할까요?”

장메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수세에 몰리자 억지를 쓰기 시작한 거였다. 그 목소리에 오히려 주변의 이목이 쏠렸다.

“장기밀매 조직의 불법 수술 장소를 알고 있을 거예요. 그 장소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이 서류를 공안에 제출할 거라고 말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슬슬 눈빛에 불안이 차오르는 장메이였다. 중국에서 공안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공안에 끌려가느니 나중에 어찌 될는지는 몰라도 당장 장기밀매 조직의 정보를 넘기는 게 나았다.

“저희 시간 없어요. 할 말 없으면 공안 쪽에 도움 요청하고요.”

냉정하게 몰아붙이는 송지희였다. 래리 청은 이미 장메이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했다.

“……후시쓰창!(湖西市场)”

장메이의 입에서 나온 지명은 축산물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이었다. 그곳에서는 돼지를 비롯한 온갖 가축의 고기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통나무 작업이 이뤄진다고 해도 남은 사체를 처리하기 좋은 장소였다.

“구체적으로 어디래요? 시장 전체를 조사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잠시만요.”

한참을 다시 장메이를 설득하는 래리 청이었다.

“낙타고기를 파는 곳이라네요. 그런 데는 몇 군데 안 될 겁니다!”

“결국 우리가 찾았네요! 아직 마이크도 장기 적출이 이뤄지는 현장을 찾지는 못했었잖아요!”

“일단 장메이는 돌려보내겠습니다.”

“네, 허튼짓하면 이 자료 공안에 넘길 거라고 말해 주세요.”

래리 청의 통역을 들은 장메이는 송지희를 노려봤다. 마치 상대가 무고한 자신을 속였다는 듯이 말이었다.

“2만 불 확 뺏어버리기 전에 눈깔아!”

송지희는 한국말로 욕을 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혼자 찻집에 앉은 장메이는 송지희와 래리 청이 사라지고 나자 핸드폰을 꺼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 *

인민병원 병실.

“이걸 어째요! 좀 전까지만 해도 여기 누워 있던 양반이!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사모님! 여기 간호사들은 뭐라고 그래요?”

“모르겠다는 말뿐이죠…… 진짜 이거 어떻게 해요!”

김만석의 아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송지희가 장메이를 만나는 사이에 김만석이 사라진 거였다.

“서용호 쪽도 전화를 받지 않네요……. 저희 쪽 요원들이 움직일 거예요. 사모님은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아니…… 나도 같이 가요! 영감이 사라졌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송지희는 래리 청을 한번 돌아봤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위험한 작전에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사모님 약속하나 하시죠. 현장에 도착하면 차 안에만 계시는 거로요.”

“네……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견딜 수 있겠어요……!”

송지희는 강준에게 전화를 걸고는 장메이가 알려 준 후시(湖西) 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인민병원으로부터 몇 블록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후시 시장으로 진입하는 도로에는 차가 가득 막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공안인데요! 대규모 공안이 왔어요…….”

“설마…… 우리 사건 때문에 공안이 움직였다고요……?”

래리 청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일개 강력범죄에 중국 공안이 이렇게 대규모로 움직이는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강준의 전화였다.

“네, 박 차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마이크가 미 대사관을 통해 정식으로 사건을 수면 위로 띄웠어요! 공안으로서도 정부가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을 불식시키려고 일부러 병력을 파견한 거고요.

“지금 어디세요?”

―축산물 시장 입구입니다. 근데 낙타고기를 파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요?

송지희가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낙타고기를 파는 데가 그렇게 많다고……?’

송지희는 믿지 못했지만, 그곳은 온갖 야생동물이 취급되는 곳이었다. 물론 압도적으로 돼지고기를 파는 곳이 많았지만, 곳곳에 야생동물을 판다는 문구가 걸린 곳들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장의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박 차장님, 저희 왔어요.”

강준과 이진철이 시장 입구에서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지희 씨 덕분에 서용호 일당의 범행 장소를 좁히긴 했는데…….”

“근데, 지금 공안은 그냥 길만 통제하고 있는 건가요?”

송지희가 축산물 시장 건물로 들어오면서 목격한 건 공안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미 대사관이 개입하는 걸 통제하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협조를 구하는 건 무리라고 봐야겠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일단 김만석 씨 수술은 막아야 하잖아요.”

강준이 미 대사관을 움직인 건 사라진 김만석의 안위가 걱정되었기에 일단 놈들도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거였다.

“래리 청, 여기 통역 좀 부탁합시다.”

“네, 얼마든 지요.”

“저기 저 책임자 보이죠?”

강준이 가리키는 곳은 공안에서 꽤 높은 계급으로 보이는 지휘관 장리쥔이었다. 그는 후시(湖西) 시장의 관리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저 대화에 끼고 싶어서요. 원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아는 법이거든요.”

너스레를 떠는 강준을 데리고 래리 청은 공안의 지휘관 장리쥔에게 걸어갔다. 그는 장춘시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1급 경감의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쪽은 한국에서 불법 장기밀매를 수사하러 오신 분입니다.”

장리쥔은 별로 탐탁지 못하다는 표정으로 강준 일행에게 다가왔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한국인이 장기 이식을 위해 들어왔다가 실종됐다고요?”

“네, 중국 국적의 서용호가 용의자입니다. 지금 이곳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이진철이 설명하는 동안 강준은 장리쥔의 바짓가랑이를 살폈다. 그곳에는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여기 핏자국이 있는 거 같은데 혹시 범인을 벌써 잡으신 거 아닌가요……?”

래리 청이 통역을 잠시 망설였지만, 강준의 눈빛을 알아채고는 그대로 말을 전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여기서 괜한 간섭 말고 사건은 우리한테 넘기시오!”

“조직적인 불법 장기 이식에 중국 정부도 관여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더군요. 그렇다면 지휘관님께서도 혹시 범인들과 안면이 있는 건 아니십니까?”

“뭐야! 누가 그런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겁니까!”

“유언비어로 치부할 일만은 아닙니다!”

장리쥔은 강준에게 한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 강준은 장리쥔의 가슴팍을 밀치면서 그의 기억을 읽었다.

[누가 사고 친 거야!]

[조선족 서용호라는 작자가 물의를 일으켰나 봅니다.]

[지금 어디 있는데?]

[축산 시장 뒤편의 화물창고에 있답니다.]

[……일단 오늘은 잠잠히 있으라고 해! 미국 놈들까지 날뛰는 거 보면 아무래도 심상치 않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장리쥔은 반대편 부하를 향해 말을 이었다.

[별일 아닌 일에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당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온 거니 우리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야 그렇지…… 괜히 남의 나라 간섭질 하는 외국인 놈들 시선만 가려놓으면…… 되는 거니까!]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장리쥔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강준은 이상했다. 이전까지는 외국인의 기억을 읽었을 때,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들렸다.

기억을 읽는다는 건 타인이 본 시각적 장면을 읽는 게 아니라 그가 보고 듣고 느낀 의식이 통으로 전이되는 건지도 몰랐다.

“축산 시장 뒤편 화물창고!”

“네? 어디요?”

래리 청이 당황해서 물었다.

“놈들이 거기 숨어 있습니다. 미 국무부 요원들을 전부 그쪽으로 보내세요!”

강준의 지시에 눈치 빠른 이진철이 재빨리 움직였고, 그 광경을 지켜본 장리쥔이 오히려 당황한 듯 래리 청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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