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 장기밀매 사건 (4) (120/250)


120. 장기밀매 사건 (4)
2022.03.30.


연남 중앙병원 휴게실.

“그러니까 그놈이 불법 장기매매범이다…… 이 말이지?”

송지희는 혈액 투석을 마치고 나온 김만석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모두 털어놓았다. 서용호가 경찰 수사를 알아챈 이상 더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김만석에게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 맞아요. 지금 당장은 달콤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서용호를 따라서 장기이식을 하러 중국에 가더라도 실제로 이식을 못 받을 확률이 높아요.”

“그 말은…… 신장 이식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김만석은 기대했던 이식에 대한 희망의 끈을 쉽사리 놓으려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김만석의 아내도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남편의 심리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를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못했다.

“영감…… 이분 말씀이 맞아요. 괜히 그런 놈들 말 믿었다가는…… 정말 큰일 날지도 모른다고요…….”

“자네는…… 거 가만히 좀 있어 봐!”

버럭 신경질을 내는 김만석이었다. 평소의 점잖았던 성격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점점 판단력을 잃어 갔다.

“정말 장기이식을 하게 되더라도 검증되지 않은 곳에서 하는 수술이라 부작용의 사례가 많아요.”

“그 부작용이라는 게 뭐가 있소……?”

“제대로 공여자에 대한 검사를 안 하게 되면 면역거부반응이 올 가능성이 제일 커요. 그 외에도 수술 중에 세균 감염의 문제도 있죠. 간혹 요도와의 연결 부위 접합을 잘못해서 출혈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고요…….”

“근데 그런 문제는 국내에서 이식수술을 받을 때도 생길 수 있는 문제잖소……?”

고집을 꺾지 않는 김만석이었다.

“중국에서 장기이식을 받은 국내 환자 중 32%가 합병증으로 14.4%가 면역거부반응을 나타내고 있어요.”

구체적인 통계수치로 설득해 보려는 송지희였다. 하지만 혈액 투석으로 일상이 고통인 김만석에게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절반은 성공했다는 거구만…….”

“……선생님!”

송지희는 환자인 김만석의 마음을 잘 이해했지만, 그를 말로는 설득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그쪽에서 아마 수술비를 크게 요구할 거예요. 억이 넘어가는 금액으로요.”

“……그야 그렇겠지.”

“그럼 절반만 입금하시고 나머지 절반은 수술이 끝난 후에 주겠다고 하세요.”

“그건 또…… 왜?”

의심이 많은 김만석이었다. 송지희는 평소에 그런 그가 왜 장기밀매범 일당은 의심하지 않는지 답답했다.

“당연히 수술비만 먹고 나르는 경우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요?”

“암! 그렇지! 내가 깜빡 잊고 있었네…… 워낙 세상에는 다양한 사기꾼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송지희가 간만에 자신에게 원하는 답변을 했다는 듯 김만석은 슬며시 웃었다. 그런 김만석을 내버려 두고 송지희는 김만석의 아내를 복도로 따로 불러냈다.

“사모님, 지금 남편분께서는 냉정하게 생각을 못 하시고 계세요. 아시죠?”

“원래는 똑똑한 사람인데…… 몸이 저렇다 보니까 점점 짜증만 내고 생각도 흐릿해지네요…….”

송지희는 안타까워하고 있는 김만석의 아내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아마 남편분께서는 서용호 일당에게 이식수술을 받으시려고 할 거예요……. 어쩌면 신장 같은 장기를 더 많이 확보하고 있다고 믿으시겠죠.”

“말려야지 어쩌겠어요…….”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닐 거예요. 하지만 남편분 목숨이 달린 일이잖아요. 어떤 경우에라도 저와 연락은 절대 끊으시면 안 돼요. 아시죠?”

“네, 그럴게요…… 우리 바깥양반이 깐깐한 구석이 있어도 말은 통하는 사람이니까…….”

우우우웅!

그때, 송지희의 핸드폰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김만석 씨와 부인 명의로 길림성 장춘(长春)행 항공권이 발권된 게 확인되네요. 출국 일자는 일주일 후고요.

김준혁으로부터의 문자였다. 송지희는 자신에게 중국행 얘기를 함구한 김만석의 아내를 다시 바라봤다.

‘정말 이제는 말릴 수가 없는 거겠군……!’

* * *

2009년 11월.

중국 길림성 장춘.

“와! 박 차장님, 대륙의 바람이라 엄청나게 차네요!”

장춘 인민병원 앞에서 강준은 추위에 떨고 있는 이진철에게 따뜻한 차를 내밀었다.

“경감님, 그나저나 마이크가 정말 미 국무부 사람은 맞나요?”

“이곳에서의 신분은 그냥 대사관 직원일 뿐입니다. 근데 실제로는 은밀하게 중국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미 국무부 요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심천에서 전대성의 죽음을 조사하던 이진철은 핑과일보의 지미 리로부터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조직적인 장기밀매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파룬궁 수련자들의 장기를 조직적으로 불법으로 적출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그리고 그걸 조사 중인 미 국무부 관계자를 소개받은 것이었다.

“저기 오네요.”

장춘이라는 도시에서 서양인의 외모는 단박에 눈에 띄었다. 앞뒤로 상체가 두꺼운 남자가 저벅저벅 강준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카페는 인근에서 유일하게 커피를 파는 곳이었다. 남자가 다가오자 이진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미스터 리? 마이크입니다.”

먼저 손을 내민 남자는 미 국무부 비밀 요원 마이크였다.

“대한민국 경찰 광역수사대 소속 이진철입니다.”

“근데…… 이분은 같은 소속인가요?”

마이크는 강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전 민간 보험사의 보험조사관입니다.”

“보험조사관이라…… 이번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으신 거죠?”

꽤 까칠한 질문이었다.

“한국의 보험사들은 이곳 병원에서 불법 장기이식을 받은 후에 수술비와 이후 입원 치료에 대한 비용을 보험회사에 청구합니다. 그렇게 빠져나간 보험금이 한 해 몇백억이 됩니다.”

“그래서요?”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리죠. 미 국무부에서 중국 내의 장기밀매를 조사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야, 중국 공산당 내에서 자행되는 인권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권 문제는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보편적인 문제니까요…….”

강준은 미국이 단지 인권을 위해서만 움직인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입장을 역이용할 필요는 있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근데 그런 인권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겠습니까? 적극적으로 알려야죠! 그러려면 중국 내에서 일어나는 불법 장기매매에서 파생되는 보험사들의 손해를 부각해야 하는 거고요.”

마이크는 잠시 팔짱을 낀 채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본심을 드러냈다.

“지미 리는 제 오랜 친구입니다. 솔직히 전 아직도 두 분을 완전히 믿지는 못하지만, 지미의 말이니 한번 만나러 나온 겁니다.”

상대를 여전히 경계한다는 말이었다.

“그럼, 저희가 먼저 선물을 드려야겠네요. 지금 저희 동료가 장기매매범 일당을 뒤쫓고 있습니다. 미 국무부에서는 저기 인민병원에서 장기이식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미리 정보를 듣지 못했던 이진철이 놀란 눈으로 강준을 바라봤지만, 이내 호응하듯 말을 보탰다.

“한국의 수사력이 미 국무부에도 보탬이 되면 보탬이 됐지…… 손해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건 뭡니까?”

“그야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미국 대사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공안이 눈치 볼 수 있도록 말이죠…….”

이진철의 말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자국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일들을 가리기에 급급해하는 공안이 장춘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불법 장기매매 조직을 밝히는 데 적극적일 리는 없었다.

믿기 어렵지만 지미 리가 알려 준 정보에 따르면 그 불법 장기매매의 배후에는 중국 공산당의 비밀조직이 연루되어 있다고 했다.

“좋습니다! 일단 같이 가 봅시다!”

마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에 손을 푹 찔러 넣었다. 웅크린 그의 모습이 마치 덩치 큰 곰 같아 보였다.

‘어딜 가나 이목이 쏠릴 테니 이제 은밀히 움직이는 건 글렀군……!’

강준 일행은 마이크를 따라 쌩쌩 달리는 차도를 무단으로 횡단했다. 맞은편에는 정체 모를 밴이 한 대 서 있었다.

* * *

송지희는 장춘에 도착한 이후, 김만석이 입원한 인민병원 주변을 내내 지키고 있었다. 언제 장기밀매범들이 김만석을 다른 장소로 옮겨갈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살기 위해 수술을 받고 말겠다는 그를 말릴 수는 없었지만, 김만석이 도착한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인민병원에서는 몇 가지 혈액 검사를 진행했었지만, 주치의는 한 번도 김만석을 찾지 않았다. 이식수술에 대한 언급도 병원 측에서는 전혀 없었다.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눈치챈 김만석의 아내가 먼저 송지희에게 연락을 취해 왔다. 그리고 둘은 여전히 강경한 김만석의 눈을 피해 병원 바깥에서 은밀히 만났다.

“송 선생님께 미안하네요…… 우리가 속이려고 속였던 건 아닌데…….”

“저도 병원에서 근무했었잖아요. 누구보다도 환자분들 마음 제가 잘 알죠.”

“미안해요……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기도 하고요…….”

김만석의 아내는 눈물을 훔쳤다. 그녀가 진정되었을 때 송지희가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꺼냈다.

“사모님,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요…… 도통 병원에서 말이 없어요. 브로커도 간간이 연락은 오는데 무조건 기다리라는 말뿐이니…….”

송지희가 걱정되는 건 인민병원에서의 이식수술이 아니었다. 어쩌면 서용호 일당은 처음부터 장기이식을 위해 김만석을 데려온 게 아닌지도 몰랐다.

송지희가 허찬 경사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길림성 일대의 병원으로 장기이식을 위해 떠났던 많은 이들이 실종됐다고 했다.

실종자들은 말로만 듣던 통나무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송지희는 그런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야 했다.

“제가 은밀하게 병원 관계자에게 확인해 볼게요.”

“그래 주면 나야 정말 고맙죠…… 영감도 혈액 투석한 지가 며칠 지나서 그런지 계속 피곤하다는 얘기만 해요. 빨리 수술을 받든지 아니면 투석이라도 받아야 할 텐데…….”

김만석의 아내는 초조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사모님, 이거 받으세요. 중국 핸드폰이에요. 위급 시에 이 버튼 누르시고 1번을 누르시면 곧바로 저와 연결될 거예요.”

“아…… 이…… 이렇게요?”

“네, 맞아요. 사모님, 저 믿으시죠?”

송지희는 김만석의 아내와 눈을 마주쳤다. 상대의 눈을 보는 게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거라고 평소에 생각해 온 그녀였다.

“알겠어요…… 다시 선생님께 연락드릴게요…….”

둘은 헤어지고 난 후 서로 반대편으로 인민병원 쪽으로 걸었다. 누군가 김만석의 주변을 감시하는 눈이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부르르르! 부르르르!

송지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래리 청의 전화였다.

―송! 어디예요?

“응급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어요.”

―그럼 저도 그쪽에서 걸어가죠.

래리 청은 핑과일보의 파견 직원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기에 송지희의 통역을 맡아 주고 있었다.

송지희가 응급차가 드나드는 혼잡한 응급실 입구에 도착하자 어느새 곁에 붙은 래리 청이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고 말을 건넸다.

“간호사 중 한 명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어요.”

“얼마나 주기로 했죠?”

“2만 위안이요. 돈은 있으시죠?”

“그럼요. 줄 건 줘야죠.”

“김만석의 확실한 의료기록이 나오면 서용호 일당이 앞으로 뭘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송지희는 의료기록부터 확보하려고 했다. 왜냐면 그 기록에 장기매매 일당의 사기가 드러나 있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바닥글:
《기사 발췌》
중국원정 장기 이식 부작용 심각. 의협신문.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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