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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장기밀매 사건 (3) (119/250)

119. 장기밀매 사건 (3)2022.03.29.

노준석을 설득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 가진 게 많은 자는 잃는 것도 두려워하는 법이었다. “정말 난 그 사람이 그런 건 줄은 전혀 몰랐다니까요!” “그러니까 제대로 협조를 안 하면 당신은 장기밀매 공범이 되는 거예요, 아시겠죠?” 강준은 망설임 없이 광역수사대에 지원요청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노준석은 좀 이따 들이닥칠 형사들이 상상됐는지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알겠어요! 알겠어! 제가 다 말씀드린다니까! 일단 나가서 얘기합시다! 여긴 제 직장입니다……!” 절박하게 외치는 노준석이었다. 그에게는 아직 갚아야 할 주택담보 대출금이 그대로였고, 집에는 한창 학교에 다녀야 할 아들과 전업주부인 아내가 있었다. 강준이 꿈쩍도 안 하려고 하자 노준석은 죽겠다는 표정으로 호소했다. “그래요! 나도 먹고살려고 그랬습니다! 먹고살려고요……! 그게 뭐 잘못됐습니까?” “잘못됐죠. 남의 장기가 털리는 데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뭐, 남들이 살아가는 것까지 다 들여다볼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다들 사정이 있었겠죠…….” 노준석은 적당한 변명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강준은 팔짱을 끼고는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그 일당이 장기를 강제로 적출하는 걸 몰랐단 말입니까? 이상하지 않아요? 장기를 파는 사람 명의로 상해보험이 아닌 생명보험에 가입한 거 말입니다…….” “…….” 노준석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말해 보세요. 그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괜히 장기밀매 공범으로 혐의를 받을 수는 없으시지 않습니까?” 보험계약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노준석을 장기밀매의 공범 혐의로 체포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무너진 노준석에게 강준의 말은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말이었다. “제가 뭐든 다 협조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경찰이 여기 사무실로 안 들어오게 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노준석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강준은 노준석이 협조하겠다는 장담을 들은 후에야 허찬 경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찬 경사님, 일단 밖에서 기다리시죠. 여기 노준석 과장님이 장기밀매범 일당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광역수사대 형사들은 리치라이프 사무실이 있는 건물 근처에 도착했다. 고객을 만나러 간다고 사무실에다 말하고 나온 노준석은 죽을 맛이었다. 괜히 일에 엮였다간 장기밀매범 일당에게 해코지를 당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다부진 체격에 큰 키의 허찬 경사가 차에서 내리자 노준석은 순간적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강준이 그의 팔꿈치를 굳게 잡고 있었다. “노 과장님은 위치만 알려 주시고 차에 계실 겁니다. 그럼 놈들은 누가 발설했는지 모를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제가 보니까 꽤 철저한 놈들이던데…….” “원래 구린 일을 하는 놈들은 주변에 원한이 있는 놈들이 많죠. 의심할 사람은 쌔고 쌨을 겁니다.” 허찬 경사는 성큼성큼 걸어와 강준 일행 앞에 섰다. 말없이 강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노준석에게 짧게 한마디를 했다. “가시죠.” 노준석을 차에 태운 허 경사는 강준에게 다시 다가와 담배를 한 대 건넸다. “이진철 경감님은 지금 심천에 계십니다.” “전대성이 어떻게 죽었는지 확인하러 간 건가요?” “네, 그쪽 공안에 협조를 좀 요청했는데…… 아직 제대로 된 담당자도 못 만났다고 하네요. 어쩌면 정말…… 박 차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서용호한테 장기를 털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마 서용호를 만나 보면 알겠죠.” 허찬 경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예리한 눈초리로 되물었다. “박 차장님…… 설마 지금 가는 곳에 서용호가 있다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아마도요…….” “혹시…… 저 몰래 다른 정보원을 두고 있는 건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저도 경사님과 같은 똑같은 월급쟁이인데 제가 정보원에 쓸 돈이나 있겠습니까?” “…….” 허찬 경사는 턱을 한 번 쓰다듬고는 다행히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장에 가시게 되면 악질인 놈들일 테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차장님도 위험하다 싶으시면 그냥 차량에 계셔도 됩니다.” “엄연히 이 사건은 제 보험사기 사건입니다. 현장 조사에 빠질 순 없죠.” 전직 경찰이었던 강준은 자존심을 굽히며 차에 앉아만 있고 싶은 생각은 애초부터 전혀 없었다. ‘서용호 그놈 면상을 내가 직접 봐야겠다!’ * * * 노준석이 다시 찾아간 훠궈 식당에는 점심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았다. 마치 저녁 장사를 한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 주방장이 밖에까지 나와 담배를 피워 대고 있었다. 강준은 허찬 경사를 비롯한 또 다른 형사 둘과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 식사 되죠?” 허찬 경사의 말에 식당 종업원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뭐 드시겠습니까?” “뭐가 있는데요?” “여기는 훠궈집이라…… 지금 드실 만한 건 양꼬치밖에 없슴다.” “그럼 그거라도 주시죠.” “뭘 말입니까?” “훠궈요! 훠궈!” 종업원이 음식을 준비하러 간 사이에 강준과 형사들은 2층으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을 살폈다. 노준석에 따르면 분명히 2층 사무실 안에는 서용호가 있어야 했다. “박 차장님, 식당 종업원들이 다 같은 한패라면 제법 숫자가 많은데요?” “어차피 계단만 막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혹시 2층에 다른 입구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요…….” “그럼, 놈들이 눈치 못 챘을 때 시작하시죠!” 허찬 경사가 ‘드르륵’ 소리를 내며 의자를 빼자 다른 형사들도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났다. “잠깐! 잠깐만요!” “왜요?” “밥은 먹고 합시다! 이왕 왔는데 배는 채우고 해야죠!” “박 차장님…… 지금 농담하십니까?”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허찬이었다. 그의 무서운 표정에 강준도 순간 오금이 저렸다. 하지만 강준의 턱이 가리킨 방향에서는 낯익은 여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한민준을 장기밀매범에게 팔아 버리려 한 강혜진이었다. 눈치가 빠른 허찬은 다시 몸을 수그리고는 강혜진이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걸 주시했다. “……뭡니까? 누군데요?” “……공사친 애인을 여기에 팔아 버리려는 여자죠…….” 강준의 낮은 목소리를 들은 허찬 경사와 나머지 형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잘됐네요. 일타쌍피! 제가 추적하고 있는 인물이었거든요. 장기밀매범을 만나러 직접 여기까지 왔으니 추궁하면 자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별다른 이유를 댈 수가 없을 테니까요…….” 그때 훠궈 그릇을 내온 종업원이 테이블로 다가왔고, 허찬은 망설임 없이 종업원 남자의 팔을 뒤로 꺾었다. “저기 2층에 출입구가 저거 하나야?” “……이거 놓으시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묻는 말에나 답해! 출입구가 저거 하나냐고!” “맞슴다! 맞아요……!” 목을 잡힌 종업원이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이 새끼가! 어디서 큰 소리를 내고 지랄이야! 지랄이!” 허찬은 형사들과 함께 2층을 덮쳤다. 강준도 질세라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서용호, 그리고 강혜진과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오셨나요?” 섬뜩할 정도로 침착한 목소리였다. “어떻게 왔긴! 우리가 바로 대한민국 경찰이다! 장기밀매범 새끼야! 둘 다 꼼짝 마!” 허찬의 일갈에 강혜진이 당황한 듯 변명했다. “전 그냥 상담하러 온 거예요!” “무슨 상담? 남자친구 장기 팔러?” 허찬의 말에 강혜진의 얼굴에서 절망이 드러났다. 자신이 꼼꼼히 계획했던 일이 와르르 무너져내린 것이었다.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강혜진이 말을 더듬거리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걸 눈치챈 서용호가 낄낄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거 어쩌나요? 저랑 상담하려면 다음에 오셔야겠는데…… 아! 방금 경찰이라고 하셨지? 경찰이면 영장을 가져와야죠. 가져왔어요? 영장?” 퍼어억! 퍽! 퍽! 허찬 경사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이 먼저 나갔다. 다른 형사들이나 강준도 그걸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죽어 이 새끼야! 밑에서 어떤 놈들이 온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먼저 너를 곤죽을 만들어 주마!” 서용호는 잭나이프를 공중으로 휘두르며 저항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허 경사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어디서 이런 거로 장난을 쳐!” 서용호는 완전히 제압되어 수갑이 채워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계단을 막고 있던 형사들이 점점 밀렸다. 주변에서 놈들이 모여들었던 거였다. “이런! 시발놈들이!” 형사 한 명이 곤봉을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이내 계단 출입구가 뚫렸고, 십여 명에 달하는 놈들이 우르르 2층으로 밀려들었다. 그 이후엔 서로가 엉키는 개싸움이었다. 놈들이 흉기라도 들었으면 형사들이 크게 다치는 상황이었지만, 그놈들도 경찰을 해칠 목적은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서용호를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한참을 투덕거린 허찬 경사는 식당 아래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는 서용호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를 에워싼 놈들이 두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발! 제발 좀 비키라니까!” 퍽! 퍼퍽! 퍽! 퍼퍽! 떼거지로 몰려든 놈들은 서용호가 사라지고 나자 하나둘씩 도망치고 형사들과 강준이 붙잡은 네 놈만 붙들려있었다. “허 경사님…… 저 뒤에!” 그 순간 몰래 빠져나가려는 강혜진을 발견한 강준이었다. 허찬 경사는 재빨리 강혜진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잡았다. “어딜 도망가! 쥐새끼같이!” “내가 무슨 죄가 있는데요? 전 정말 그냥 장기이식 상담하러 왔다니까요!” “남자친구 장기 팔려고 했잖아!” “그랬다고 쳐요! 그래서 제 남자친구 장기를 제가 팔았어요? 아니잖아요? 근데 무슨 근거로 나를 잡아간다는 거죠?” 오히려 뻔뻔하게 나오는 강혜진이었다. 강준이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한민준 씨 생명보험의 수혜자를 본인으로 해 놨더라고요? 그걸 한민준 씨가 알아요?” “……그 ……그건…….” “강혜진 씨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체포합니다. 허 경사님 이 여자도 같이 차에 태우시죠!” 허찬 경사가 대답 대신 오른손을 들어 올려 거수경례를 했다. * * * 광역수사대 조사실. 연락을 받고 온 한민준이 김준혁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한민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혜진에게 다가갔다. “혜진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여기 경찰서야!” “오빠, 이거 다 오해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좀 얘기해 봐. 너 빚이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라며!” 강혜진은 고개를 돌리며 한민준을 외면했다. “……아, 정말 짜증 나네…….” 공사 친 게 들켰다고 생각하자 슬슬 본색을 드러내는 강혜진이었다. 그런 강혜진에게 김준혁이 다가갔다. “강혜진 씨, 저한테도 빚이 1억이라면서요?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계시고요?” “누구세요? 나한테 왜 이러시는데요……?” 뻔뻔하게 김준혁을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강혜진이었다. 하지만 김준혁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녹음기를 꺼내 틀었다. 녹음기에서는 강혜진이 일하는 바에서 김준혁에게 했던 신세 한탄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매번 공사 칠 때마다 써먹던 레퍼토리였다. “한민준 씨, 이래도 제 말을 못 믿으시겠어요? 이 여자 말 믿고 장춘으로 넘어갔다가는 신장 하나가 아니라 당신 몸 전체가 통나무가 될 뻔했다고요!” 한민준의 입술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겪었던 가장 쓰린 배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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