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 장기밀매 사건 (2) (118/250)

118. 장기밀매 사건 (2)2022.03.28.

성원화재 보험조사팀. “한민준 씨 보험 서류가 오전에 접수됐어요. 보험을 판매한 곳은 송파구에 있는 GA대리점(General Agency,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법인)이었고요.” “그쪽 담당자는…… 혹시 그럼 장기매매 브로커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겁니까?” “확인해 봤는데…… 뭔가 수상쩍은 게 있었어요. 직접 한민준을 만난 것 같지 않았거든요.” 강준은 회의실에서 송지희의 사건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옆에 있던 김준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보탰다. “저희 쪽 보험사 말고도 다른 보험사 7곳에도 동시에 가입했는데…… 이상한 건 상해보험이 아니라 생명보험이라는 겁니다.” 순간 회의실에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럼, 신장 하나 적출하는 게 목적이 아니란 말이야……?” “상해보험에서는 수술 중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 사망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사례가 있는 거로 알아요. 수술 시에 사망할 수 있다는 걸 환자가 미리 알았기 때문에 상해의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거죠.” 송지희가 신장 한쪽을 잃는다고 해도 상해보험으로 가입하게 되면 보험금을 받는 조건이 까다로워지는 걸 설명했다. 장기밀매 일당은 한민준을 속여 그를 생명보험에 가입시켰고, 더 손쉬운 방법으로 보험금을 타내려 한 것이었다. “지희 씨, 보험금 수혜자는 강혜진인가요?” “네, 강혜진이 맞아요.” “……완전히 한 사람을 어디까지 벗겨 먹으려는 건지…….” “죽을 때까지요. 완전 악질이죠.” 며칠째 강혜진의 주변을 조사했던 송지희는 단호한 말투로 답했다. “박 차장님…… 차라리 한민준 씨를 직접 만나서 설득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계획했던 게 틀어져 버릴 수가 있어요. 장기밀매 일당이 한민준을 작업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다 정말 우리가 한민준을 놓치기라도 한다면요?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에요!” 송지희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녀는 진심으로 강혜진의 행각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거로 합시다. 김 대리가 한민준의 주변을 감시하는 거로 하고, 광역수사대에 공조를 요청해 잠복할 형사들을 지원 요청하죠.” “……네, ……알겠습니다.” 송지희는 김준혁을 돌아봤고, 김준혁은 염려 말라는 듯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둘은 도현우의 실종사건을 통해 끈끈한 동료애를 쌓은 듯했다. ‘설마…… 혹시 둘이 그렇고 그런 감정이 있는 건 아니겠지……? 사내 연애는 금지인데!’ 강준은 내심 걱정스러웠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본인도 최은정 팀장과 계약 연애 중이었기에 그런 걸 지적할 형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험험…… 참! 지희 씨, 김만석 씨는 어떻게 됐나요? 담당 의사는 만나 봤나요?” 특별수사과에서는 해외에서 장기이식을 하려는 사람들을 추적하고 있었고, 그중에 김만석이 수사망에 걸린 것이었다. 송지희는 그런 김만석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최근에 본인의 상태에 대해서 상세한 진단서를 떼어 달라고 했대요. 그간의 병원 치료 기록도 모두 복사해 갔고요.” “그럼 이식수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네요?” “네. 아마 이식은 한국에서는 하지 못할 거예요. 국내에서 공여자가 있었다면 벌써 수술했을 테니까요…….” 국내의 장기공여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거기에다 혈액형과 항체반응까지 맞으려면 실질적으로 신장 이식을 기다리는 건 기약이 없는 일이었다. “그럼 분명히 해외로 가는 항공권을 끊을 겁니다. 우리는 그때 개입하는 거로 하시죠. 그때까지 지희 씨는 다른 이식 환자에게 접근하는 장기매매 일당은 없는지 조사해 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강준은 회의를 마무리하며 손뼉을 쳤다. “자 다들 힘냅시다! 난 한민준의 보험계약 서류를 보낸 GA대리점 담당자를 만나 볼 테니, 새로운 정보가 있으면 각자 현장에서 서로 연락하자고요!” “네, 알겠습니다!” “오랜만의 외근이네요! 외근 수당은 나오는 겁니까?” 김준혁이 너스레를 떨었다. “보험조사관 일이 외근이 거의 다인데, 따로 수당이 나올 리가 있겠어? 김 대리가 잠복을 야간까지 하게 되면 야간 수당은 챙겨 주지! 그거면 됐지?” “네, 그 말을 들으니 기운이 나네요. 강혜진의 주변을 제가 탈탈 털어오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는 김준혁이었다. 강준은 슬슬 특별수사과에 일손이 부족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조직개편을 하고서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특별수사과으로 나름의 배려를 받는 상황에서 인력 충원까지 요구하기엔 민망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팀인데…… 4명은 돼야 하지 않나?” 강준은 겉옷을 들고 사무실을 나가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을 김준혁이 들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맞은편의 송지희를 바라봤다. 다들 내심으로는 팀원 충원을 절실히 원해 온 모양이었다. * * * 송파역 리치라이프 사무실. 노준석 과장은 아침부터 대표에게 불려가 실적 스트레스를 받았다. 꿈에 그리던 연봉 1억을 받으며 이직했지만, 탄탄하기만 할 줄 알았던 앞날은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월 영업실적 300만 원! 그걸 채우지 못하면 약속된 연봉을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직하면서 받았던 수천만 원의 계약금을 토해 내야 할지도 몰랐다. 노준석 과장은 답답한 표정으로 모니터 화면 속에 엑셀로 정리된 고객리스트를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규계약이 나올 구멍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노준석은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김 사장님! 저 노준석입니다! 잘 지내셨죠?” ―저번에 처리해 주신 보험금은 잘 받았습니다. 언제 한번 식사라도 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마시고 말 나온 김에 오늘 점심때 뵙는 거 어떻겠습니까?” ―나야 상관없죠. 근데 그전에 내용부터 살짝 들어봅시다. 상대는 능구렁이 영감이었다. 노준석은 영감이 불법으로 조성한 자금을 비과세 보험상품에 가입시켜 세무 당국의 추적을 피하게 해 줬다. 그 과정에서 노준석은 보험왕 타이틀을 얻었고, 그 타이틀을 배경으로 리치라이프로 이직한 것이었다. “사장님, 제가 이번에 회사를 옮기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노 과장님 적응은 잘하고 있죠? “물론입니다! 근데…… 와서 보니까 지금 가지고 계신 상품보다 더 괜찮은 상품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여유자금이 더 있으시면 이번 기회에 지난번처럼 묻어두시는 게 어떨까 해서요…….” ―일시납으로 가능하고요? “물론입니다. 그런 상품만 제가 추렸으니까요. 게다가 만기 이자도 제법 괜찮습니다. 하하!” 통화음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가 실은 지방에서 일을 벌이고 있는 게 있는데 그거부터 처리하고 우리 따로 만납시다. 들어보니 한두 시간 안에 될 일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사장님, 서울에는 언제쯤 올라오십니까?” ―아마, 다음 달 초는 돼야 할 거 같네요. 그때 괜찮죠? 노준석은 차마 월 영업실적을 채우기 위해 만나자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럼요! 괜찮습니다. 그럼, 일 잘 보시고 다음 달 초에 얼굴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노준석은 등에 식은땀이 났다. 더는 실적을 채울 구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선택을 해야 했다. 엑셀의 고객리스트에도 없는 연락처는 노준석의 책상 서랍 안쪽에 숨겨져 있던 명함이었다. 장기이식 전문 브로커 010―3348―79XX 노준석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사무실 바깥의 계단으로 나가서 통화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계단에 걸터앉은 노준석은 담배를 두 대나 피우고는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통화음이 정확히 열 번이 울렸을 때, 상대가 받았다. “……저 노준석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 저번에 보험 서류는 잘 접수가 됐는데요…….” ―그런데요? 상대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건조했다. “혹시 다른 건이 없나 해서요…….” ―얼마나 해 주실 수 있는데요? “뭐 지난번처럼 한 계약자에 대여섯 개씩은 힘들고…… 두세 개 정도는 가능할 거 같은데요.”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 “네, 그러시죠. 제가 조금 이따 그리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노준석이 힘없는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 그를 데스크의 여직원이 불러 세웠다. “노 과장님, 성원화재에서 보험조사관이 오셨는데요…….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데스크의 여직원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을 전했다. 노준석은 조금 전 통화한 장기밀매업자가 성원화재에 가입시킨 보험상품이 떠올라 등골이 서늘했다. 마치 뭔가를 알고 찾아온 듯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럴 땔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통상적인 일이지 뭘……. 차는 내줬어?” “아니요. 아직요…….” “됐어. 내가 준비해서 갈게.” 노준석은 탕비실에서 드립으로 내려진 커피 두 잔을 종이컵에 담아 천천히 미팅룸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슬며시 유리 벽 너머를 살펴 자신을 찾아온 보험조사관이 누군지를 확인했다. ‘젠장…… 저 인간이 소문으로만 듣던 박강준인가…….’ 노준석이 애써 태연한 얼굴로 미팅룸 문을 열자 강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원화재 박강준 차장입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성원화재라면…… 지난번에 한 번 나오신 거로 아는데…….” “다시 확인할 사항들이 있어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한민준 씨 보험계약에 의문이 드는 점이 있더라고요.” 강준의 말에 속으로 잔뜩 긴장한 노준석이었다. “일단 커피 한잔 드시고 하시죠.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물어보셔도 됩니다. 하하!” 노준석이 내민 커피잔을 강준은 일부러 슬쩍 놓쳤다. 커피가 테이블에 쏟아지며 노준석의 셔츠에 튀었다. “죄송합니다! 옷이 젖었네요!” “괘…… 괜찮습니다…….” 송지희에게만 맡겨 두기엔 이번 장기밀매 사건의 위험은 너무 컸다. 강준은 티슈를 뽑아 노준석의 셔츠를 닦아 주며 자연스럽게 그의 기억을 읽었다. 기억 속에서 노준석은 종종걸음으로 건대입구역에서 내려 인적이 드문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사거리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훠궈 식당의 간판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식당 안쪽의 계단을 통해 올라간 사무실에서 노준석은 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서 보험계약 서류를 뭉텅이로 전달받았다. 노준석은 서류를 그 자리에서 확인했다. 보험계약자는 한준석, 그리고 보험금 수령인은 강혜진이었다.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안주머니에 있던 출력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 사진은 이진철의 광역수사대에서 제공한 서용호의 실물 사진이었다. 강준은 기억 속의 인물과 서용호의 사진을 비교했다. 둘은 동일 인물이었다. “혹시 좀 이따 만나러 가시는 분이 바로 이분이신가요?” 강준이 손에 있던 사진을 노준석에게 보여 줬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진을 확인한 노준석은 더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는지 말을 더듬거리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잘됐네요. 저도 마침 배가 고픈 참이었는데, 같이 훠궈나 드시러 가실까요?” 훠궈 식당까지 언급하는 강준을 보며 노준석은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 입 밖으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뭐 하세요? 셋이 만나서 할 말이 있을 거 같은데…….” “저…… 박강준 차장님……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그게…… 그러니까…….” “무슨 오해요? 장기밀매범이 생명보험 상품을 만들어오면 대충 눈치채시지 않았나요? 무슨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요. 왜요? 본인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서 누가 죽건 말건 신경 안 쓰셨다는 건가요!” 강준은 당황하는 노준석을 향해 일갈했다. 그리고 궁지에 몰린 노준석은 그 광경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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