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장기밀매 사건 (1)2022.03.27.
청바지에 체크 남방을 입고 크로스백을 멘 민준은 2호선 건대입구역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약속한 브로커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만나기로 한 브로커는 장기를 사고파는 브로커였다. 민준은 강남역의 한 화장실 벽면에서 장기를 산다는 문구를 발견했고, 직접 전화를 해 본 것이었다. ‘이 방법밖에는 없다…….’ 아직 대학생인 민준은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장기를 팔기로 했다. 왜냐면 여자친구가 거액의 빚을 졌기 때문이었다. 7천만 원의 빚!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돈이었지만 대학생인 민준이 그런 거금을 마련할 방법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물론 자신의 신장을 팔겠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민준 씨?” “네, 전데요…….” “저를 따라오시죠.” 벙거지를 쓴 남자는 제법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의 긴 계단을 내려갔다. 번화가를 거쳐 인적이 한산해지는 주택가에 들어설 때까지 남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민준은 숨을 헐떡이며 남자를 따라갔다. “어디까지 가시는 겁니까?” “거의 다 왔소.” 낡은 상가의 2층 사무실에서는 낯선 향신료 냄새가 났다. 훠궈를 파는 식당을 지나 남자는 계속 계단을 올라갔다. 덜컹! 삐거덕거리는 철제문을 연 남자는 좁은 사무실의 소파에 민준을 앉혔다. 그리고는 바짝 마주 앉아 수첩을 꺼내 들었다. “자 봅시다. 혈액형은 A형에 키는 175cm, 몸무게는 64kg. 팔려고 하는 건 신장! 맞죠?” “……네, 맞아요.” “신장은 한쪽이 5천입니다.” “네? 1억이 아니고요……?” 민준이 광고지에서 봤던 신장의 금액은 1억 원이었다. 금액 차이가 절반이나 나는 거였다. “그건 검사비랑 수술비, 현지에서의 입원비…… 뭐, 그런 전반적인 비용을 포괄한 거고…… 그런 실비를 제하고 딱 내드릴 수 있는 금액이 5천이라는 겁니다.” 남자는 팔짱을 끼면서 민준을 빤히 쳐다봤다. 금액에 있어서 협상의 여지는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남자가 민준은 유심히 살펴본 이유는 진짜 장기를 팔러 온 사람인지를 확인하려는 거였다. “왜요? 돈이 생각보다 부족해요?” “네…… 제가 필요한 금액이 있어서요…….” “그럼, 또 방법이 있죠.” 남자는 책상 서랍에서 문서 하나를 꺼내 민준에게 내밀었다. 그건 보험사들의 상해보험 가입서류였다. “이게 뭡니까?” “보험금을 타게 되면 나머지 금액들은 채울 수 있을 겁니다. 낙상사고를 당해 신장을 다쳐서 한쪽을 떼어 냈다는 병원 진단서만 제출하면 보험사 쪽에서는 상해 후유 장해로 보장금액의 30%를 지급하게 될 겁니다.” 남자의 유려한 말투는 상해보험을 한두 번 이용해 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이거 불법적인 거 아닌가요……?” “엄연히 따지면 역선택으로 보험 가입을 하는 거니 불법이죠. 하지만 신장을 팔겠다고 여기 온 민준 씨도 합법적인 건 아니잖아요?” 남자는 민준을 보며 씩 웃었지만, 그 미소는 상대를 비웃는 게 아니라 상대를 심리적으로 안심시켜 주는 친근함의 미소였다. “그…… 그건 그렇죠.” “저희가 거래하는 병원이 있습니다. 그쪽에서 수술도 할 거고, 병원진단서도 상해로 인한 신장 소실로 작성해 드릴 겁니다.” “……돈은 언제 받게 되는 겁니까?” “음, 여기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그 부분을 걱정하시는데, 돈은 수술 후에 바로 계좌로 입금이 됩니다. 저희도 그래야 뒤탈이 없겠죠? 그게 아니었으면 이 사업 계속 꾸려나갈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되묻는 남자였다. 민준은 생각해 보니 남자의 말이 그럴싸했다. 그리고 어차피 신장을 팔기로 마음을 먹은 거였다.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이라 할지라도 믿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보험료는 어떻게 하나요?” “아! 물론 그 부분도 아까 말씀드린 부대비용에 포함되니 저희가 부담해 드릴 겁니다.” “아…… 네, 그렇군요.” “보험 서류는 저희가 일괄적으로 처리해서 보험사에 접수하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보험사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계약된 보험상품을 확인하고 수익자도 확인하는 절차니까 있는 그대로 답변하시면 됩니다.” 민준은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8개에 해당하는 보험사 상해보험 가입서류를 작성했다. 그 서류 중에는 성원화재의 상해보험 서류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 됐나요?” “어디 보자…… 네, 이거면 충분하네요. 참! 그리고 신분증도 주시죠. 보험대리점을 통해 접수하니 신분증 사본이 필요하거든요.” 민준은 아무런 의심 없이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 * * 강남역 10번 출구. 번화가를 가로지른 민준은 여자친구인 혜진이 운영하는 바에 도착했다. 그녀가 아는 언니와 함께 운영한다는 바는 건물의 5층이었다. “어머! 오빠 왔어?” 몸에 딱 달라붙은 원피스를 입은 혜진은 민준을 발견하고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별일 없었지? 그놈들은 또 왔어?” “아니, 다행히 오늘은 안 왔어…… 뭐래? 얼마나 줄 수 있대?” “5천. 근데 상해보험에 가입하면 보험료로 나머지 금액은 채울 수 있어!” “와! 정말? 진짜 다행이다…… 오빠가 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는데…… 돈이라도 최대한 많이 뽑아야지…….” 혜진은 민준의 손을 잡고는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민준은 바짝 다가온 그녀의 가슴이 자신의 몸에 밀착되는 걸 느꼈다. “혜진아, 오늘 일 몇 시까지 해?” “오늘은 매출도 떨어지고 해서 새벽까지 해야 할 거 같아…… 단골손님들도 예약하셔서…… 그러지 말고 오빠 자취방에 가 있어. 나 일 끝나고서 늦게라도 갈게.” 혜진의 말에 민준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그래! 나도 과제 해야 할 것도 있었는데 잘됐네. 나 안 자고 기다릴 테니까. 오면서 연락해.” “알겠어. 내 전화 꼭 받고!” 민준은 혜진에게 키스하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혜진은 고개를 돌렸다. “나 화장했잖아…… 밤에 해 줄게…….” “아! 미안! 내가 깜빡했네. 우리 이번 일 해결되면 어디 가서 같이 카페라도 차리자. 다시 시작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안 그래?” “맞아. 난 오빠만 믿을게…….” 그런 둘을 바 테이블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던 미영은 혀를 끌끌 차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연기 하나는 끝내주네…….” 민준이 바에서 나가고 나자 혜진은 싹 달라진 표정으로 미영에게 다가왔다. “질척거리는 새끼…… 겨우 돌려 보냈네…….” “뭐래? 돈은 된대?” “어. 한번 해 보겠대.” “정말? 딱 봐도 별로 돈도 없게 생겼는데 어디서 돈을 구한다는 거야?” 혜진은 태연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놨다. “나도 몰랐는데…… 집에는 돈이 좀 있나 봐. 그래서 나랑 같이 유학 간다고 집에다 뻥치고 해 오려나 봐.” “너도 참 대단하다…… 대단해…… 마른오징어도 짜면 나온다더니…… 저런 대학생 조무래기들한테도 공사 쳐서 잘 빼먹네.” 미영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지만, 자신이 상관할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어차피 있는 놈들 빼먹는 거니 좀 나눠 가진다고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 바닥이 생리가 다 그런 거지 뭐…….’ 둘의 대화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바 테이블의 끝에 있던 남자가 손을 들었다. “여기 땅콩 좀 더 주시겠어요!” “네, 잠시만요…….” 미영은 땅콩을 접시에 담으면서 혜진에게 불평을 늘어놨다. “아까부터 맥주 두 병 시켜놓고 몇 시간째다. 정말 진상이지…… 진상!” 바 주인인 미영의 불평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남자는 보험조사관 박강준이었고, 그의 옆에 앉은 여자는 장기밀매 보험사기 사건을 맡은 송지희였다. * * * 연남 중앙병원 혈액투석실. 힘겹게 링겔대를 끌고 오는 남자는 얼굴이 검게 변해 있었다. 만성 신부전으로 수분 노폐물의 배설이 원활하지 않아 얼굴이 어둡게 변한 것이었다. “김만석 씨! 이쪽으로 오세요.” 매주 하는 일이었지만, 혈액 투석은 김만석에게 고통스러웠다. 서너 시간 동안 기계를 통해 체내의 혈액을 몽땅 정화시키는 일이었다. 혈액 투석을 시작한 이후에 김만석은 한 번도 음식을 맛있게 즐기지 못했고, 매사에 쉽게 피곤하고 귀찮아졌다. 그만큼 그의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정신은 피폐해져 갔다. 그리고 애꿎게도 그의 그런 예민함은 곁을 지키는 부인에게로 향했다. “당신 나 죽는 거 기다리는 거 아니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렇잖아! 포천에 있는 그 땅! 이제 그거 다 당신 거가 되는 거잖아!” “진짜…… 이 인간이!” 부인도 참지 못하고 김만석의 등짝을 때렸다. 그렇게 맞고 나서야 김만석은 입 밖으로 내뱉던 독한 말들을 그만둘 수 있었다. 어쩌면 김만석은 누군가 자신을 말려주기를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혈액 투석을 마친 김만석은 부인에게 링겔대를 맡기고는 힘없는 걸음걸이로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여보 나 힘없어서 더는 못 걷겠어. 가서 휠체어 좀 가져와…….” “왜? 힘들어?” “아! 보면 몰라!” “아이고 승질은…… 그럼, 이거 잡고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부인이 링겔대를 넘겨주고 사라졌을 때, 김만석은 자신의 처지가 왜 이렇게 됐는지 한탄스러웠다. 평생 모은 재산으로 이제는 좀 여유롭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평소에 못 해 줬던 부인과도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이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더군다나 평생 투석을 해야 한다니…… 김만석은 절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김만석 씨?”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에게 한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그 남자는 대학생 민준에게 보험계약서를 받았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었다. “누구쇼?”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남자가 내민 명함에는 ‘장기이식 전문 브로커’라는 문구와 함께 핸드폰 번호가 하나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그는 장기밀매업자 서용호였다. “이게 뭐요?”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중국 길림성에서 장기이식과 관련된 브로커 일을 하고 있습니다. 브로커라는 어감이 좀 그렇지만, 장기이식 쪽이 워낙 법적인 테두리에서 민감한 구석이 있어서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죠.” 서용호의 말에 김만석은 그를 아래위로 살폈다. 이유 모를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본인의 처지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보고 장기이식을 받으라는 겁니까?” “아까 혈액투석실에서 나오는 모습 봤습니다. 사실 장기이식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이고 간단한 게 신장 이식입니다. 부작용도 가장 덜하고요…….” “그건 그렇죠. 본론부터 말하쇼. 이식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가격은 안 물어보십니까?” 서용호는 김만석이 그렇게 나올 줄 예상했었다. 왜냐면 혈액투석실에 드나드는 사람 가운데 미리 자산가를 골라서 접근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확실하면 돈이야 마련하면 되는 것이지…… 근데, 믿을 수 있는 데인가 그게 항상 문제거든.” 일평생 사업을 해 왔던 김만석이었다. 구석에 몰린 순간에도 뭘 우선순위로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지금까지 해 온 수술 건이 천 건이 넘습니다. 그중에서 신장 이식 건이 절반 가까이 되고요.” 서용호는 예의 그 친숙한 미소를 지으면서 김만석에게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는 귓속말을 남겼다. “아시다시피 이 사업이 한국에서는 법적 테두리 바깥에 있습니다. 혹시 생각이 있으시다면 자리를 옮겨서 제가 자세히 설명해드릴 수 있는데 어떠신가요?” 마침 휠체어를 가지러 왔던 부인이 그 둘에게 다가왔다. “……누구……?” “여보, 이 사람이랑 얘기 좀 해야 할 거 같으니까. 일단 그 휠체어는 원래 자리에 갖다 두고 와.” “아니, 아까는 힘이 없다면서요?” “다시 힘이 솟았어!” 김만석은 손을 휘휘 저으며 부인을 돌려보내려 했다. 그리고 서용호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이식 환자 한 명을 확보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