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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전대성의 최후 (2) (116/250)

116. 전대성의 최후 (2)2022.03.26.

―한국의 정치, 재벌들과 결탁한 밍싱그룹! 그들의 은밀한 거래 뒤에는 태자당이 있다! 컬러판으로 인쇄된 핑과일보는 홍콩 전역의 가판대에 깔렸다. 태자당이라는 호기심을 끌어내는 자극적인 문구에 홍콩 언론도 들썩였다. 강준은 지미 리로부터 전화를 받았지만, 그건 특종 기사를 자축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앞으로 홍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주의하라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그리고 이상징후는 홍콩 경찰로부터 시작됐다. 이진철 경감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송환이 어려울 거 같다고요?” ―네, 어제까지만 해도 협조적이었는데, 갑자기 추가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며 구금을 연장하기로 했답니다. “오히려 언론 보도가 전대성의 송환에 걸림돌이 됐군요…….” ―결과적으로는 그런 셈이지만…… 이제 밍싱그룹이 수면 위로 나왔으니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한 셈이긴 하죠. 강준이 회귀한 이후 줄곧 쫓아왔던 전대성의 행방이었다. 여기서 끝낼 수는 없었다. “전대성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전대성이 박 차장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어쩌시겠어요?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죠.” 강준은 밖을 살폈다. 추적추적 여름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마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비가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강준은 숙소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침사추이 폴리스 스테이션!” * * * 잠깐 졸았던 것일까? 강준이 탄 택시는 침사추이 방향이 아니라 언덕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뭐가 잘못된 거군…… 지미 리의 말이 이렇게 바로 들어맞다니!’ 강준은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건 되도록 빨리 택시에서 뛰쳐 내리는 거였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문을 전부 잠그고 있었고,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고 앞만 바라볼 따름이었다. 쏴아아아! 폭우가 쏟아지는 창밖에서는 가파른 언덕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었다. ‘판단은 내렸으면 행동은 신속하게!’ 강준은 망설임 없이 기사의 목울대를 가격했다. “커……커헉! 뭐야!” “차 세워!” “……젠장 ……얌전히 있어!” 기사는 어느새 총구를 강준의 머리에 겨냥했다. “나 전직 경찰이야! 이렇게 위험한 총으로 장난질하면 큰일 난다!” 강준은 재빨리 남자의 손목을 제지했고, 차는 언덕 오르막의 산사태 방지벽에 부딪히며 정차했다. 이미 기사의 권총은 어느새 강준의 손안에 있었다. “사…… 살려 줘……!” 기사의 영어 발음은 어눌했다. 아무래도 홍콩인이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중국인임이 분명했다. “누가 시킨 거야? 흑룡회냐?” “……그걸 말하면 나는 죽는다…….” 강준은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기 전에 그의 목덜미를 붙잡고는 그의 기억을 읽었다. 기억 속에 기사는 낯선 광둥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강준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었다. 기사에게 무언가를 지시한 자는 이진철이 제공한 사진에서 봤던 밍싱그룹의 한국 대리인 임정근이었다. “내려……!” 강준은 언덕길에 내린 기사를 차 트렁크에 가두고는 차를 침사추이 방향으로 몰았다. 홍콩 경찰에게 주는 일종의 선물이었지만, 그들이 흑룡회의 일원인 운전기사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알 수 없었다. * * * 침사추이 구치소 면회실. 다시 만난 면회실의 전대성은 전과는 180도 달랐다. 그의 얼굴에선 초조함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당신 말대로 됐네. 홍콩 경찰이 당신이 한국으로 송환되는 걸 막아 줬으니 말이야…….” 잠깐 망설이던 전대성은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입을 열었다. “시발…… 서용호, 그 인간이 날 찾아왔어.” “서용호? 그게 누군데?” “흑룡회…… 통나무 장사꾼…….” “뭐? 장기밀매범을 얘기하는 거야?” “그래 맞아…… 박강준! 너 능력 있는 새끼잖아! 나 한국으로 좀 송환해 줘! 제발 부탁이야! 검찰에 내가 다 협조한다고 전해 줘!” 처음 접해보는 필사적인 모습의 전대성이었다. “무슨 말이야? 천천히 얘기해 봐…….” “너도 알다시피 SW에쿼티의 뒤에는 밍싱그룹이 있어…… 그 밍싱그룹이 한국의 재계에 침투하려고 하거든. 그 역할을 내가 맡은 거고…… 근데 최진태가 날 배신했어. 직접 붙어 버린 거지…… 개새끼!” “당신은 결국 버려진 거고?” “……대충 뭐 그렇다고 하자.” 전대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두려움과 회한. 그것이 그의 현재 모습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박강준, 넌 나를 잡으면 큰 사건 하나를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지금까지는…… 네가 최진태와 함께 성원그룹을 먹으려고 했으니까. 그리고…… 연남시의 갖가지 비리들도 네놈이 운영했던 라성캐피탈로부터 시작된 거였으니까.” 강준은 회귀 전 본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며 전대성을 몰아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대성은 구석에 몰린 와중에도 입꼬리를 올리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니었다고 해도 누군가는 성원그룹을 먹으려고 했을 거고, 네놈이 말하는 연남시의 이권도 누군가가 차지했을 거다. 그 누구 과연 깨끗한 놈이었을까?” “당신은 본인은 잘했다는 거네! 송종철 사장을 죽인 거…… 그것도 네놈 짓이잖아!” 언제 얘기를 하냐는 듯 전대성은 피식 웃었다. 그에게는 송종철을 죽인 일도, 김용식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운 것도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는 사소한 일들이었을 뿐이었다. “난 그냥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을 뿐이야……. 열심히 산 죄밖에 없다고!” 전대성이 울분을 토하듯 소리쳤고, 그 소리에 구치소의 교도관들이 전대성을 끌고 면회실을 나갔다. 그게 강준이 본 전대성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 면회실의 바깥에는 이진철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국에 송환되기를 요구하더라고요…… 여기서 흑룡회의 보복을 당할 게 걱정이 되나 봅니다.” “그게 아니라 중국 본토로 끌려가는 게 걱정돼서 그런 걸 겁니다.” “본토요……?” 이진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저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씬왕테크의 본사가 심천에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본토의 중국 공안들이 홍콩 경찰들에게 전대성의 신병을 인계받으려고 하더라고요.” “전대성이 서용호라는 사람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혹시 최근에 면회 목록에 있었나요?” “아! 혹시 서용호라면……?” “네, 맞습니다. 환전상 이두철이 송금했던 그 장기밀매범이요.” 이진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럼, 이거 전대성이 흑룡회한테 버려지는 걸 너머서 본인 장기 털릴 거를 걱정하는 거였군요.” “그간 해온 악행을 보면 제법 어울리는 결말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대성에 대한 심판은 사법적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럼 전 윗선에 이 사실을 보고하겠습니다! 어쨌든 전대성을 한국으로 송환하고 봐야겠네요.” “네! 본토로 소환되는 건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그때, 강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핑과일보의 지미 리였다. “네, 대표님……!” ―소동이 있었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벌써 그걸 어떻게 아셨나요?” ―공안이 움직였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당장 홍콩을 떠나세요! 그러지 않았다가는 정말 위험해 질 겁니다. “함께 온 한국의 경찰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내버려 두고 저 혼자만 피하라고요?” ―대니얼 박을 건드리는 이유는 당신이 경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안도 타국의 경찰을 건드리긴 쉽지 않아요. 외교적인 부담이 생기니까요! 그러니……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당장 떠나요! 전화를 끊은 강준은 선택해야 했다. ‘나한테 문제가 생긴다면 경제수사팀의 수사에 오히려 짐만 될지 모른다…….’ 강준은 보험조사관으로서도 더는 자신이 해야 할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지미 리의 조언대로 홍콩을 떠나야 했다. * * * 2009년 9월 을지로 본사 사무실. ―성원그룹의 차남이었던 최진태 한국보험 대표가 모 그룹에서 독립해 리안그룹을 출범시켰습니다. 최진태 대표가 그간 경영권을 가지고 지배하고 있던 한국보험과 성원건설, 성원호텔 등의 계열사들은 앞으로 리안그룹 산하 계열사로 재편될 예정입니다. 강준은 갓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모두가 알고 있었던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제 최진태는 부친이 세운 성원그룹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박 차장님, 제 메일 확인해 보셨나요?” 간밤에 송지희가 보낸 메일은 한국에서 치료차 중국으로 들어간 환자들의 자료였다. 송지희는 그들 중 이두철을 통해 환전을 시도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추적했다. “진짜 고생 많았습니다. 몇몇 환자들은 지희 씨가 직접 찾아가 보셨더라고요.” “아무래도 장기 이식 정황이 분명한데 아니라고 우기니까요…….” “담당 의사들은 뭐라고 합니까?” “의사들도 의심하고는 있지만, 본인들이 나서서 환자를 공격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생사를 오가는 절박한 상황인 환자들이었다. 그들이 브로커를 통해 장기밀매를 했다고 해서 무작정 비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작아지는 법이니까…….’ “중국 현지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기록으로 보험금을 청구하고…… 불법으로 장기를 이식하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용납은 안 되네요.” “그럼 우리 특별수사과 사건으로 정식으로 조사를 시작해도 되나요?” “그래요. 한번 해 봅시다!” 강준은 송지희가 한편으로는 대견했다. 직접 현장을 뛰면서 자료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장기매매범 일당을 잡는 건데 겁은 안 나요?” “필리핀에서 납치까지 당했었는데…… 그까짓 게 겁날 리가 있나요?” “그럼…… 이번 사건은 지희 씨가 단독으로 해결해 보는 게 어때요? 물론 저와 김준혁이 뒤에서 받쳐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제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강준은 송지희에게 머신에서 내린 커피를 건넸다. “상대는 서용호라는 인물입니다. 전대성을 처리했을 정도로 그 바닥에서는 거물급이란 얘기죠…….” 얼마 전 이진철 경감이 전해 온 소식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심천으로 송환되었던 전대성이 현지 공안의 조사 중에 의문사했다는 것이었다. 말이 의문사였지 그건 살인이나 다름없었다. 전대성은 중국 본토로 송환되기 전 강준에게 통나무 장사꾼 서용호를 언급했고, 그의 우려대로 살해당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전대성 회장이 장기를 털리고 죽은 거라면 정말 끔찍한 죽음이네요…….” “시신이 화장되어 왔으니 사인이 심장발작이라고 해도 믿을 수밖에요…… 하지만 분명히 서용호라는 이름을 본인 입으로 말했었습니다. 구치소 안에서도 눈치챌 만한 뭔가가 있었다는 거겠죠.” 전대성은 분명 살해당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함께 ……그가 남긴 장부도 그가 세웠던 유령 회사도 모두 수면 밑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강준은 전대성이 남긴 흔적에서 다른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 누군가가 장부에 적힌 검사들이든 아니면 유착관계를 맺었던 한승일과 최진태든, 그게 아니라면 태자당의 배후인 밍싱그룹이라 할지라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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