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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전대성의 최후 (1) (115/250)

115. 전대성의 최후 (1)2022.03.25.

연남시 시청. 최진태는 긴장한 기색으로 장인인 한승일의 호출을 받았다. 한바탕 호통이 있을 게 뻔했다. 해외 도피 중인 전대성에게 끌려다니다 공개적으로 망신까지 당했으니 말이었다. 얼마 전부터 박상도 의원과 장인인 한승일 시장의 사이에는 묘한 경쟁 관계가 있었다. 원래는 한승일이 박상도 의원의 계파로 정치에 입문한 것이지만, 이제는 슬슬 한승일도 자기 색을 드러낼 때였다. 그런 와중에 다산실업 인수 건으로 한승일 시장이 박상도 의원에게 흠집이 잡힌 거였다. 그 일을 주도한 최진태로서는 한 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 했다. “장 보좌관, 시장님 지금 기분이 좀 어떠셔?” “평소와 같으십니다. 최 대표님께서도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을 거 같네요.” “내가…… 뭘 긴장했다고…….” 최진태는 장 보좌관 앞에서 말을 얼버무렸지만, 정작 시장실에 들어가서는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장인어른…… 저 왔습니다…….” “앉아.” 조심스럽게 한승일의 표정을 살피는 최진태였다. 장 보좌관의 말대로 왠지 낌새가 평소와는 달랐다. “다산실업 건 말이야…… 박상도 의원도 그렇게 나오고 하니 우리가 굳이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 “맞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LCD 부품업체 인수해 봤자 뭐 하겠습니까? 돈도 안 되고 괜히 신경만 쓰이죠…….” 한승일은 전과는 말을 180도 바뀐 최진태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자네가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혹시 밍싱(明星)그룹이라고 들어봤나?” “……밍싱그룹이라면…… 혹시 씬왕테크랑 연관이 있는 곳인가요?” 최진태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회사명이었다. 하지만 한승일의 입에서 괜히 그런 이름이 나오는 건 아닐 터였다. “며칠 전에 그쪽에서 연락이 왔어. 자기네들이 SW에쿼티의 대주주라고 하더라고.” “네? SW에쿼티라면…… 전대성이 세운 페이퍼컴퍼니가 아닙니까?” “근데…… 자네 진짜 몰랐어? 내 앞에서까지 거짓말할 필요는 없잖아!” 눈을 부릅뜨고 되묻는 한승일이었다. 그는 정말 자신의 사위를 의심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일개 사채업자였던 전대성이 그 많은 자금을 끌어온 게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최진태는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대성의 뒤에 또 다른 누군가가 정체를 드러낸 것이었다. “전대성이 항상 말은 했었습니다…… 자기가 중화권 자본을 쥐고 있다고요…….” “전에 직접 확인은 안 해 봤었고?” “……네, 그게…….” “됐고, 이 사람 만나 봐.” 한승일 시장은 명함 하나를 툭 던졌다. [밍싱그룹 매니저 임정근] 매니저라는 애매한 직급으로 단출하게 이름만 ‘띡’하니 쓰인 명함이었다. “네, 제가 연락해서 만나 보겠습니다. 어쩌면 저희한테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무슨 소리! 오히려 발목을 잡힐 수도 있어. 그쪽에서 뭘 가진지는 자네도 모르잖나?” “그…… 그야 그렇죠.” 한승일은 몸을 숙이고는 최진태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밍싱그룹을 중국 태자당이 민다는 얘기가 있어.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 침을 꿀꺽 삼킨 최진태는 시장실에 들어올 때 느꼈던 긴장과는 또 다른 긴장을 느꼈다. 그건 압도적인 힘 앞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었다. * * * 홍콩섬 센트럴 지역. 강준은 홍콩 경찰과 본격적인 공조를 시작한 이진철 경감과 함께 고층 빌딩 한복판의 카페에 마주 앉아 있었다. “와! 아시아 지사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다더니 정말 빌딩들이 거대하네요.” “경감님, 그거 아십니까? 홍콩에 땅이 좁아서 이렇게 건물들을 다닥다닥 지은 게 아닙니다.” “그럼 왜 이렇게 좁게 지은 겁니까? 홍콩의 주거난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홍콩 정부에서 개발용 토지를 제한해서 팔아서 그렇다네요. 홍콩 정부는 그 토지 대금으로 세수를 확보하는 거고요.” 별다른 제조업이 없는 홍콩의 정부로서는 세수를 거둬들일 방안으로 개발용 토지의 수급 조절을 선택한 것이었다. “한꺼번에 풀어서 한국의 신도시처럼 쫙 풀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홍콩 정부가 민간 건설업자에게 비싸게 토지를 팔지 못하겠죠.” “박 차장님 말씀은 홍콩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있다는 거네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세금을 확보하려는 홍콩 정부의 뒤에는 밍싱그룹 같은 본토의 세력과 연결된 회사들이 있는 거고요.” 강준의 말에 이진철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되물었다. “박 차장님 말씀은…… 전대성 회장의 뒤에는 흑룡회가 아니라 더 거대한 세력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김준혁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SW에쿼티의 대주주는 밍싱(明星)그룹이었다. 심천을 기반으로 단기간에 급속히 성장한 밍싱그룹! 그 밍싱그룹의 대표는 샤오빙(肖斌)이었다. “저기 밍싱그룹에 대해서 말해 줄 사람이 오고 있네요.” “약속하신 분이 저분입니까?” 강준과 이진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사람은 짧은 머리에 검정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중년 남자였다. “대니얼 박?” “반갑습니다. 한국의 보험조사관 대니얼 박입니다.” 강준은 중년 남자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기억을 읽었다. 기억은 당일 아침 그의 사무실에서의 장면이었다. [이거 도대체 누가 보낸 거야!] 출근 직후인 듯했다. 소포로 온 종이상자에는 죽은 비둘기가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다. [아침에 관리인이 가져온 겁니다! 당장 내려가서 물어보겠습니다!] 지미 리는 한국에서 온 보험조사관 강준과 그날 정오에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분명 그 만남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지미 리는 핑과일보의 사장이었다. 강준은 그런 그에게 밍싱그룹에 관한 제보를 미끼로 만남을 요청했던 것이었다. 지미 리는 내선전화로 편집장을 찾았다. [헨리! 밍싱그룹 샤오빙에 대한 자료 좀 가져와! 흑룡회와 연루된 사안들부터 말이야……!] 그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강준은 그가 아침에 겪었던 협박 때문에 자신을 더 경계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강준의 예상은 빗나갔다. 지미 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굳이 피하지 않는 저돌적인 스타일의 인물이었다. ‘역시 핑과일보의 지미 리답군…….’ 강준은 회귀 전 지미 리가 홍콩 민주화운동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홍콩에 도착해 핑과일보에 제보를 한 것이었다.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핑과일보의 지미 리요. 밍싱그룹에 대해 알고 싶다고요?” “네. 얼마 전 한국에서 문제를 일으킨 전대성이라는 작자의 배후에 밍싱그룹이 있는 거 같더라고요.” “일단 자리를 옮깁시다…….” 지미 리는 강준과 이진철을 근처 빌딩의 높은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별실이 있어서 근처에서 누가 대화를 엿듣기 힘든 곳이었다. “자, 이제 말해봅시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빈 컨테이너로 수출을 위장한 적하 보험사기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기 사기꾼들이 많이들 하는 수법이죠.” “그 보험사기 배후에 밍싱그룹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요?” 강준의 옆에 있던 이진철이 사진 몇 장을 내밀었다. 그 사진에는 실명이 임정근으로 알려진 밍싱그룹 일원과 한국보험 최진태 대표가 만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밍싱그룹 임정근이라는 사람입니다. 혹시 알아보시겠습니까?” 지미 리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사진을 자세히 살펴봤다. “……이 인간 흑룡회 간부인데…… 밍싱그룹 명함을 가지고 한국에서 뭘 하는 겁니까?” “한국의 LCD 기술기업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물론 실패했지만요…… 그래서 중간다리를 해 주던 사람을 제치고 직접 진출한 겁니다.” 지미 리는 사진을 테이블 위로 다시 툭 던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게 한국에서는 큰 화제가 될지는 몰라도 겨우 작은 회사 하나 집어삼키려는 거로는 저의 관심을 끌기가 힘들겠네요.” “임정근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 한국의 정치인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요……?” 순간 지미 리의 눈빛이 변했다. “어디까지 알고 온 겁니까? 밍싱그룹이 단순히 흑룡회 놈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다른 건 몰라도 한국에 관심이 많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하! 한국은 비자금을 세탁하기도 좋고, 덩달아 투자할 만한 곳도 많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한국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람들을 만들어 두려고 하는 겁니다.” “그들 정체가 뭡니까?” 지미 리는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괴고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본토의 젊은 정치 그룹입니다. 태자당 그룹의 일원이기도 하죠.” “태자당 그룹이라면 공산당 원로의 자제들이 중심이 된 정치 그룹을 말하는 겁니까?” “자기네 그룹을 만들어 힘을 키우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흑룡회와 손을 잡고 밍싱그룹을 만든 겁니다. 자기네들의 비자금 원천을 만든 거죠…….” 밍싱그룹의 배후는 강준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밍싱그룹이 SW에쿼티라는 페이퍼컴퍼니의 대주주더라고요…… 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한국의 여러 회사에 투자를 해 왔었고요.” “음…… 페이퍼컴퍼니라…… 뒤가 구린 놈들이 홍콩에서 많이들 하는 짓이죠.” 지미 리의 눈빛이 반짝였다. 강준과 펑과일보의 지미 리는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셈이었다. “문제는 그 페이퍼컴퍼니인 SW에쿼티의 대표가 한국에서 지명수배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보험사기와 불법 자금세탁 그리고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요.” “이제야 슬슬 관심이 가기 시작하네요.” 핑과일보의 사장인 지미 리는 광대를 끌어올리며 씩 웃었다. 아침에 봤던 불길한 협박 소포 따위는 머릿속에서 잊은 듯했다. “한국 경찰에 지명수배 중인 SW에쿼티의 대표가 바로 여기 홍콩에 있습니다.” “네? 홍콩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흑룡회와 함께 말입니까?” “침사추이 경찰서에 있습니다.” “이미 체포가 됐군요.” “네, 홍콩 경찰에서는 애써 그 사실을 밝히기를 원치 않을 겁니다. 핑과일보에서 그걸 다뤄 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일단 그 사람부터 만나 보죠. 사실관계부터 따져 봐야 하는 거니까요!” 강준은 옆자리에 있던 이진철 경감을 돌아봤다. 아직 조사를 덜 끝마친 전대성을 지미 리와 만나게 해 주는 건 온전히 그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다. * * * 침사추이(젠사쥐) 경찰서 구치소. 전대성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면회실에 들어왔다. 지미 리는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가 어떤 인물인지 보고 싶다고 했다. “전 회장님, 여기서 지내는 거 힘들지는 않으세요?” “……그거 걱정해 주러 여기까지 온 건가? 옆에 있는 사람은 또 누구고?” “적하 보험사기의 배후에 전 회장님이 있으시더라고요. 김용식을 시켜서 허위 수출을 일으키게 했죠?” 한참을 대꾸하지 않는 전대성이었다. “한국으로 송환되실 겁니다.” “푸하하! 내가 송환된다고? 과연 그럴까……? 나 전대성이야! 내가 입 열면 한국에 있는 검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강준은 한 번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설마 지금 전 회장님이 가진 장부가 회장님을 지켜줄 거라고 착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강준의 조롱에 전대성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어차피 뇌물 장부는 검찰 손에 있는 겁니다. 그들이 몰라서 수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묻어두려는 거겠죠. 전 회장님이 굳이 그걸 들쑤신다면 검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됐고, 나 더는 할 말 없으니까 돌아가.” 차갑게 말하고 일어서려는 전대성이었다. “한 가지 알아 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밍싱그룹 쪽에서 한승일 시장을 직접 만났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전 회장님은 닭 쫓던 개가 되는 거 아닌가요?” 강준의 말에 표정이 급격히 굳는 전대성이었다. 그를 지탱하고 있던 뭔가가 ‘툭’ 하고 잘려 나간 격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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