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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LCD 기술 탈취 (4) (114/250)

114. LCD 기술 탈취 (4)2022.03.24.

호텔 방에서 깨어난 강준은 침대 맡에서 울리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저예요. 최은정. 푹 쉬었어요? “네, 충분히 쉬었습니다. 석정훈 대표는 만나 보셨나요?” ―……우리 예상대로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곳이 벌써 접근했더라고요 “그게 어디인데요?” ―성원건설이요…… 저의 작은 오빠 회사죠. 강준은 그 말을 듣고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씬왕테크의 김정근을 직접 보내왔기에 강준은 다산실업을 완전히 파산시킬 줄 알았다. 하지만 그전에 백기사로 최진태가 움직인 것이었다. “예상대로네요. 물밑에서 전대성 회장이 아직 최진태 쪽이랑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근데 성원건설은 LCD 사업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잖아요……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거 같아요. “아마 되팔려고 할 수도 있겠죠…… 석정훈 대표는 어쩐답니까?” ―팔려고 하는 거 같아요. 파산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터였다. “팀장님, 보험금 지급은 어떻게 결정이 났나요?” ―그건…… 약관에 없는 항목이라 지급은 어려울 거 같아요……. 최은정은 잠시 침묵 후에 말을 이었다. ―강준 씨, 너무 걱정은 말아요. 이쪽은 제가 해결한다고 했잖아요. 석정훈 대표가 회사를 팔지 않도록 해놓을게요. “어떻게 하시려고요?” ―다산실업 주식을 조금 매입하려고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강준 씨가 그랬잖아요. 다산실업이 LCD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기술기업이라고요……. “그…… 그건 사실이지만.” ―일종의 투자라고 해 두죠. 만약 손해를 보면 강준 씨가 책임지시고요. 농담처럼 말하는 최은정이었지만, 강준은 그녀가 정말 다산실업에 투자하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최은정은 그녀가 보유한 성원화재의 지분을 담보로 며칠 만에 거액의 현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최은정이 다산실업의 구원투수가 되려던 찰나에 문제가 다시 생겼다. 강준은 며칠 뒤 다시 최은정의 연락을 받았다. ―제가 한발 늦었네요. 석정훈 대표가 회사를 전부 성원건설에 팔기로 했나 봐요. 둘째 오빠가 회사를 완전히 넘기는 조건으로 제안을 했나 보더라고요. 강준은 생각해 두었던 마지막 방법을 쓰기로 했다. “팀장님, 제가 다시 한국에 들어가겠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진흙탕 싸움을 할 수밖에요.” ―진흙탕 싸움이라면……? “다산실업이 어려워진 건 순전히 씬왕테크가 배후에 있는 무역 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엄연히 말해 국내 기술 탈취를 위한 공작으로 봐도 무방하죠.” ―국내에서 여론을 만들어 보시려는 건가요? “아뇨. 그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최진태 대표를 후원하는 박상도 의원을 만나 볼 생각입니다.” ―아…… 과연 강준 씨를 만나 줄까요? “한번 부딪혀 봐야죠.” 강준은 전화를 끊고는 호텔에 있던 짐을 꾸렸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 * * 박상도 의원실. 한승일 시장의 보좌관인 장영상은 급히 여의도 의원회관을 찾았다. 어찌 된 일인지 산자부 장관이 직접 한승일 시장실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 [이번 인수합병은 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변에서 보는 눈들이 있으니까요.] [대관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 사위가 뭘 하건 저랑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요.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지금 방해하시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이건 국가적인 사안으로 확대될 수도 있단 말입니다…… 국내 디스플레이 시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한 시장님도 잘 알지 않습니까?] 한승일 시장은 전화를 끊고는 장 보좌관을 불렀다. [박 의원한테 한번 가 봐. 산자부 장관이 박 의원 후배니까 분명히 이번 일에 박상도 그 인간 입김이 들어갔을 테니까.] 그렇게 한 시장의 지시를 받은 장영상이 3층 박상도 의원실에 도착한 것이었다. 조민구 수석 보좌관이 그를 맞이했다. “아이고! 여의도까지 웬일이십니까?” “잘 지내셨죠? 불필요한 오해가 자꾸 생기는 거 같아서 한번 와 본 겁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연남시 구석에 박혀 있으니 알 수가 있었어야죠.” “갑자기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셨으니 밖에서 차나 한잔하시죠.” 조민구는 장영상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장영상은 안에 박상도 의원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영감님 안에 계신 거 같은데, 인사나 드리고 가겠습니다!” 능글거리며 박상도 의원의 방문으로 다가가는 장 보좌관을 보며 의원실의 비서진들은 긴장했다. 안에는 한승일 시장 측이 알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보험조사관 박강준! 장영상은 자신을 가로막는 조민구를 밀치고 박상도 의원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자네 뭔가?” 박상도 의원이 직접 장영상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장 보좌관의 시선은 박상도 의원과 면담하고 있는 강준에게 꽂혔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시장님께서 중요한 일로 말씀을 전해드리라고 하셔서 급하게 올라온 겁니다.” “흠흠……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거 안 보여? 나중에 다시 와.” 하지만 장영상은 보좌관인 자신의 역할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가끔은 무리한 제스처도 필요한 법이었다. “의원님, 성원건설 쪽 일을 저희와 연관 지어 압박하시는 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방해하시는 겁니다.” “내가 언제 그리 말했나?” “의원님께서 산자부 장관을 통해 압력을 넣으신 거 아닙니까?” “한승일이 그리 말하라고 시키던가?”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말하는 박상도 의원이었다. 뒤따라온 조민구 보좌관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장 보좌관의 팔꿈치를 붙잡았다. 그때 강준이 일어나 장 보좌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성원화재 보험조사관 박강준 차장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번 다산실업 일에 괜한 저희 시장님 연관시키지 마시죠.” “연관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원건설의 자금이 홍콩의 SW에쿼티의 계좌를 거쳐 한 시장님께 들어간 정황이 있으니까요…….” “그…… 그건! 말도 안 되는 음모입니다!” 강준은 그간 이진철 경감이 수사한 자료 일부분을 장 보좌관에게 내밀었다. 홍콩을 떠나오기 전 이진철로부터 받은 정보였다. “전대성 그 인간은 사기꾼이에요! 한때나마 저희 쪽 후원회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계속 연루시키는 건 정말 억지입니다……!” “박상도 의원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강준은 박상도 의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회전의자에 앉은 박상도는 눈을 질끈 감고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장 보좌관, 한 시장한테 가서…… 다산실업 인수 건에서 손 떼라고 전해. 사위한테 시키든 본인이 나서서 중재하든 하란 말이야! 지금 국가의 존망이 달린 LCD 기술이 유출되려고 하는데…… 꼭 그렇게 뒤로 홍콩 자본을 끌어들여서 장난질을 쳐야겠나?” 여당에서 대선주자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박상도였다. 한승일 시장이 자신의 계파이자 후원자이기도 했지만, 괜한 흠집을 만들면서까지 편을 들어줄 순 없었다. “의원님! SW에쿼티는 정말 저희 쪽과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게다가 다산실업은 부도 위기의 기업입니다. 그런 기업을 살리겠다는 건데 왜 사안을 꼭 그렇게만 곡해하십니까?” “그럼 산자부 쪽에 물어봐! 거기서 문제없다고 하면 없는 거지. 내가 뭘 어쩌겠어?” 박상도 의원은 산자부 쪽으로 책임을 돌렸다. 에둘러 얘기한 거지만, 이번 건은 자신을 봐서라도 넘기자는 얘기였다. “네…… 알겠습니다…….” 장영상 보좌관은 강준을 한번 쏘아보고는 뒤돌아 나왔다. 그의 어깨가 한껏 무거워져 있었다. 한승일 시장이 노발대발할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 * * 인천 남동공단 다산실업. “박 차장님, 만약 그때 성원건설 쪽에 매각 협상을 진행했으면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최진태가 내민 인수계약서에는 기술이전에 대한 조건이 걸려 있었다. 그 조건이 이행되지 않았을 시에는 인수대금을 반환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말이었다. “성원건설 뒤에는 씬왕테크가 있었습니다. 결국, 쓰리 쿠션으로 회사를 먹으려는 수작이었죠. 아마 기술이전이 다 끝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태클을 걸어 인수대금을 다 지급하지 않았을 겁니다.” 강준의 말에 석정훈 대표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옆에는 씬왕테크에서 달콤한 제안을 받았던 장 반장이 민망한 듯 앉아 있었다. “다행히 최은정 이사님께서 투자를 해 주셔서 급한 불은 껐습니다. 다음 달 생산에도 문제가 없고요.” “은행에서는 채권 연장을 해 준다고 하나요?” “일부 상환을 조건으로 1년 더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이율도 이전하고 같고요.” “다행이네요. 이제 석 대표님은 다른 데 눈 돌리지 마시고 기술개발에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그러게요…… 지난번에는 제가 너무 욕심을 냈어요. 뭐든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인데…….” 옆에 있던 장 반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김도식 그놈은 끝끝내 씬왕테크 쪽으로 간답디다!” “자기가 벌인 일이니 어쩔 수가 없는 거겠죠.” 석정훈 대표는 둘의 대화에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도식이 그놈은 제가 회사 세울 때부터 함께 했던 후배입니다. 같이 회사를 키워 왔다고 생각했는데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죠…… 결국, 그게 다 제대로 대우를 못 해 준 제 탓이죠…….” 자책하는 석정훈이었다. “석 대표! 기운 차려! 나도 미안한 게 있는 사람이지만 앞으로 같이 잘해 보자고…….” “고맙습니다. 장 반장님…….” 석정훈 대표는 머쓱한 듯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홍콩에 있는 저희 물건들은 언제쯤 돌려받을 수 있는 겁니까?” “이제 산자부 쪽에서도 관심을 두는 사안이니까 아마 외교 채널을 통해서도 홍콩 정부에 압력이 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네들도 물건을 더는 억류하고 있지 못할 거고요.” 강준의 말에 화색이 도는 석정훈 대표였다. “박 차장님, 어쨌든 저희 다산실업은 덕분에 위기를 넘겼습니다. 고맙다는 말씀 전하고 싶네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보험금 지급을 못 해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에 대비해 수출 계약에 대한 기업보험 상품을 만들 생각입니다.” “유용하다고 봅니다! 세상은 넓고 사기꾼은 많더라고요! 하하!” 석정훈 대표는 강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큰 난관이 있을지도 몰랐다. 왜냐면 중국의 LCD 저가 공세가 이어질 터였기 때문이었다. “석 대표님, 앞으로는 중국 기업들이 바짝 추격할 겁니다. 기술적인 우위가 없다면 생존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네, 저도 이번에 느꼈습니다. 그놈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접근하는지 말입니다…… 결국 LCD 완제품도 중국으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일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정말 갈 길이 멉니다!” 다산실업을 빠져나온 강준은 을지로로 차를 몰았다. ‘이걸로 이번 건은 해결이 된 건가……?’ 강준이 상념에 잠겨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홍콩에 있는 이진철의 전화였다. 강준은 핸즈프리로 전화를 연결했다. “경감님! 어떻게 됐습니까?” ―전대성 회장을 잡았습니다! 방금 홍콩 경찰서 구치소에 처넣고 오는 길입니다! 홍콩 출장의 최종 목적이었던 전대성이 체포된 것이었다. 강준은 이제 그를 직접 대면해 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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