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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LCD 기술 탈취 (3) (113/250)

113. LCD 기술 탈취 (3)2022.03.23.

홍콩 빅토리아 병원. 김용식은 손목이 절단된 채 병원에 실려 왔다. 다량의 출혈로 인해 쇼크 상태였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잘린 손목은 찾지 못했기 때문에 김용식은 영영 불구가 되어 버렸다. 홍콩에 와 있던 이진철 경감을 비롯한 광역수사대 경제수사팀의 형사들이 모두 김용식의 병실 앞에 모여 있었다. 강준이 도착하자 이진철이 난처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중간에 위치 신호가 사라져서 김용식을 놓쳤습니다…… 면목이 없네요…….” “김용식은 안에 있나요?” “네, 들어가 보시죠…….” 김용식은 병실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었다. 자신의 처지가 어찌 된 건지 잘 알고 있는 김용식은 강준을 보고는 허탈하고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 “야! 박강준 내가 이렇게 된 꼬라지 보려고 찾아온 거냐?” “유감이다…….” 이번 유인작전의 위험은 서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김용식이 손목이 잘린 채 나타날 줄은 강준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 경감이 그러는데 약속은 지킨다더라……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어…… 손목 하나 날아가고 감형을 받았으니 이제 나도 내가 지은 죗값은 다한 거겠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진짜 유감이야…….” “말로만…… 쯧! 이제 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한다고! 근데 뭐? 겨우 유감?” 둘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강준은 손목 하나를 잃은 김용식에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용식은 이내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하긴…… 박강준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원망해 봤자 뭘 어떻게 하겠냐?” “정말 누가 그런 거냐?” “전대성 회장이 지시했겠지…… 내가 경찰에 붙어먹은 걸 눈치챈 거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홍콩까지 자기를 잡으러 온 경찰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준 거였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김용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배게 밑에 있던 메모지를 꺼내 강준에게 내밀었다. “……이거 뭐야?” “다산실업 컨테이너가 있는 보세창고 위치…….” “이걸 어떻게 안 거야?” “이래 봬도 나도 무역회사 했었잖냐…… 그래서 나도 궁금하더라고 LCD 부품을 빼돌려서 어디로 보냈나 하고…….” “잠깐만! 다산실업 석 대표는 홍콩항에서 본토로 내륙운송을 하면서 물량이 증발했다고 했었거든. 근데 어떻게 아직 보세창고에 있는 거지?” “항만에 오가는 화물차 기사를 수소문해 봤어. 구린 일을 하는 데는 구린 놈들이 붙는 법이거든. 아마 그 보세창고 관리인들도 전부 뇌물로 매수해 놨을 거다.” 어쩌면 다산실업의 부도를 막을 수도 있을지 몰랐다. “얼른 가 봐. 물건 다른 데로 빼돌리기 전에 찾아와야 할 거 아니야. 자기네들도 물건 팔아치울 곳을 알아보는 와중일 거다.” “석 대표 얘기로는 어차피 추적이 들어가니까 함부로 자기들 부품을 못 쓸 거라고 하던데?” “하하! 뭘 모르는 소리. 중국은 뭐든지 상상하는 거 이상이야. LCD 회사 하나 만들었다가 흔적도 없이 날리는 거는 아마 식은 죽 먹기 일 거다…….” 김용식의 말처럼 씬왕테크는 다산실업의 LCD 백라이트 유닛을 다른 모니터 제조업체에 팔아넘기려고 하는 계획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과정에 전대성 회장이 끼어 있는 게 분명했다. “김용식…… 좌우간 고맙다. 협조해 줘서…….” “……난 여기까지 했으면 된 거지? 이제 나 찾지 마라.” “얼른 회복하고 나중에 한국에서 또 보자.” “우리가 서로 또 볼 이유가 있을까?” 김용식이 쓴웃음을 지었다. 강준은 병실을 나가려다 뒤돌아서 물었다. “근데 한 가지만 묻자. 김용식, 넌 이제 앞으로 뭐 할 거냐?” “뭐 하긴…… 징역 살고 나와서 원래 하던 거 해야지.” “……중고차 매매?” “왜 그건 별로 돈이 안 돼 보이냐? 내가 그걸로 여태 돈세탁만 해 주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것도 잘만하면 밥 굶고 사는 일은 없는 업종이야.” 강준은 김용식이 이제는 정말 불법적인 일에서 손을 터는구나 싶었다. “치료 잘해라.” 강준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는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택시를 잡아타고 김용식이 알려준 보세창고로 향했다. * * * 홍콩항 인근 보세창고. “아니 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까 홍콩 세관의 허가장을 받아오라는데요…….” 강준이 보세창고의 관리소장에게 따졌지만, 그는 완강했다. 곁에 있던 이진철 경감의 경제수사팀들도 함께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광둥어를 하는 관리소장은 화주의 허락을 받아오라며 물량 출하를 막았다. 절차대로 하자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연될수록 물량을 보낸 다산실업의 입장만 불리해질 뿐이었다. ‘이놈은 분명 전대성 쪽과 한패다…….’ 강준은 팔짱을 끼고 버티는 관리소장의 팔목을 덥석 잡고는 그의 기억을 읽었다. [이게 현금보다 더 나을 거요…….] [오! 역시 흑룡회 사람들이라 다르긴 다르군!] 함박웃음을 짓는 관리소장이었다. 김용식의 말대로 관리소장에게 접촉한 자는 전대성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정근이었다. 그는 현금 뭉치 대신 마약 한 봉지를 건넸다. 시가로 수백만 홍콩달러에 해당하는 마약이었다. 관리소장의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자신을 말리고 있는 이진철을 발견했다. “박 차장님, 이런다고 해결이 되겠습니까? 흥분 가라앉히시고 참으시죠……!” 이진철과 경제수사팀의 형사들 역시 홍콩 세관을 운운하는 관리소장의 말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박 차장님, 제가 홍콩 경찰에 정식으로 협력을 요청해 보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어요…….” “여기 경찰이 움직여 준다고 해도 행정적인 절차를 거친다면 시일이 걸릴 겁니다. 그사이에 다산실업의 채권 만기일이 다가올 거고요.” 관리소장은 두 팔을 허공으로 내저으며 자신은 적법한 절차를 지키고 있을 뿐이라며 흥분해 거친 광둥어를 내뱉었다. “일단 저 인간부터 치워야겠네요.” “네? 어떻게 말입니까?” “이 사무실 안에 마약이 있을 겁니다.” “네? 갑자기 마약이라니요…….” 이진철의 얼굴은 황당함을 넘어 어떻게 그걸 아느냐는 표정이었다. “제가 김용식한테 들은 바가 있습니다. 저기 천장을 한번 살펴보면 좋을 거 같네요.” 강준이 가리키는 곳은 관리소장 사무실의 천장이었다. 천장을 지탱하는 패널을 뜯어내고 살펴보자는 얘기였다. “어…… 우린 수색 영장도 없는데…….” “매번 합법적인 절차로만 움직일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긴 홍콩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건지고 갈 순 없습니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이진철이 부하 형사들에게 손짓했고, 형사들은 반발하는 관리소장을 제압하고는 재빨리 천장의 패널을 뜯어냈다. “뭐야! 당신들 뭐냐고!” 위급한 순간이 되자 영어가 튀어나오는 관리소장이었다. 그는 일부로 광둥어로만 얘기해 한국 경찰들의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거였다. “경감님! 이거 마약 맞는 거 같은데요!” 한 형사가 천장 위에서 마약 봉지를 발견해 흔들자 이진철이 강준을 돌아보며 놀란 눈을 떴다.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분명 뭔가 있다고 했죠?” “당장 이놈을 체포하겠습니다! 마약사범으로 현장 체포해서 홍콩 경찰에 넘겨주면 그들도 우리한테 협조 안 하고는 못 배길 겁니다.” “잠깐만요.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습니다.” 강준은 관리소장 쪽으로 다가갔다. “씬왕테크 김정근이라는 사람이 저거 준 거지?” “나…… 난 모른다!” 관리소장은 발뺌했다. 괜히 흑룡회를 건드렸다가 자신에게 올 보복이 두려운 것이었다. “그럼 한 가지만 더 묻자. 그 김정근이라는 놈이 저걸 찾으러 올까 안 올까?” “나야 모르지!” “……그래? 그럼 내가 직접 물어볼게!” 강준은 관리소장의 핸드폰을 빼앗아 이진철에게 넘겼다. “여기에 김정근의 전화번호가 있을 겁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죠.” “알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확인하고 홍콩 경찰에 넘겨야겠네요. 여기 경찰이 얼마나 썩었는지는 우리도 아직 모르니까요.”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진 관리소장은 이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진철의 말대로 그와 홍콩 경찰 간의 유착관계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관리소장의 말처럼 보세창고에 묶인 다산실업의 물건을 다시 출하시키는 일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한국으로 가는 데만 몇 주가 소모될 터였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LCD 알짜부품 회사를 날름 먹으려는 씬왕테크의 계략을 눈앞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이 경감님, 저는 한국 쪽과 연락해서 구제 대책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어쨌든 화물이 지연되고 있으니 적하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거 같거든요.” “하하! 박 차장님은 오히려 보험금 지급을 막아야 하는 상황 아닌가요?” 강준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면서 대답했다. “가끔은 꼭 필요한 곳에 보험금이 가게 하는 것도 보험조사관의 일입니다. 어쩌면 이번 다산실업의 파산을 막는 게 보험이라는 상품이 있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진철이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우리는 전대성 회장을 잡으러 온 건데…… 일이 좀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한 방에 쉽게 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김정근을 추적하다 보면 분명 전대성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전 일단 저놈부터 여기 구치소에 쳐넣고 오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죠!” 강준은 이진철과 경제수사팀 형사들이 자리를 뜨고 난 후 서울에 있는 최은정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다산실업의 물건은 찾았습니다.” ―정말요! 전대성 회장이 물건을 빼돌렸었나요? “아직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김용식이 말해 준 보세창고에서 다산실업의 컨테이너들이 방치된 걸 찾았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다산실업의 적하 보험금 지급이 가능할까요? 엄연히 물품 인도가 지연된 거니까요…….” ―그건 한번 논의해 봐야 할 거 같아요…… 물품 인도의 지연은 약관에 없는 항목이거든요. “약관이요…………?” ―적하 보험의 배상은 물품의 손상 시에만 해당해요. 다산실업의 LCD 백라이트 유닛은 손상됐다고 볼 수 없는 거고요. 최은정 팀장의 말은 에둘러 말한 것이지만, 보험금 지급이 불가하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논의라도 부탁드립니다.” ―강준 씨…… 제가 여기서 다산실업 석정훈 대표를 한번 만나볼게요. 최은정은 강준은 직급이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 얼마 전부터 둘은 계약 연애를 시작했다. 최은정이 병상의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강준에게 제안한 것이었지만, 강준도 싫지 않았다. 어쩌면 강준도 그녀에게 마음이 있는 건지도 몰랐다. “고맙습니다. 팀장님.” ―계약 연애라도 엄연히 애인이 신경 쓰는 일인데 저도 도와야죠. 어쨌든 여기는 제가 움직일 테니 강준 씨는 출장 간 일에 집중하세요. “네, 전대성 회장을 꼭 붙잡아서 가겠습니다.” 강준은 더 민망해지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며칠간 자지 못했던 잠 때문에 피로가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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