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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약혼자 실종사건 (5) (110/250)

110. 약혼자 실종사건 (5)2022.03.20.

김은혜는 애초부터 이호준이 양아치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자신이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김은혜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이호준의 양아치 근성은 위기의 순간에 더 빛났다. “이호준, 김은혜가 시켜서 그런 거라고?” “마…… 맞아! 난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도현우인 척하라고 했던 것도 저 여자고!” “그럼 용산에서 여기 김 대리를 덮쳐서 하드디스크를 빼 오라고 시킨 것도 김은혜가 시켰다는 거야?” 멍청한 이호준은 코앞의 위기를 넘기려고 김은혜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운 거였지만, 강준이 추가적인 질문을 하자 자신이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머리를 감싸 쥐고는 괴로워했다. 복원된 영상이 든 하드디스크를 서용호 패거리를 이용해 가로채 온 건 순전히 이호준의 단독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멍청한 새끼……!” 김은혜는 그런 이호준의 모습에 치를 떨었다. “이거 엄연한 가택 침입인 거 알죠? 현우 씨 생명보험 때문에 오신 거 같은데…… 이미 전 제 변호사를 통해서 입장을 다 밝혔고, 더 밝힐 것도 없어요. 그러니 이만 나가 주시죠.” 김준혁이 분노를 애써 참는 듯한 목소리로 김은혜에게 되물었다. “도현우 씨…… 장기밀매상인 서용호한테 넘긴 거, 김은혜 당신 아이디어죠?” “누구요? 서용호요……? 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에요!” 강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김은혜의 팔을 붙잡고는 그녀의 기억을 읽어 들였다. [확실하게 처리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오호! 자기는 어쩜 이렇게 쌈박한 방법을 생각해 낸 거야?] [호준 씨가 만나 봐. 난 여자니까 자기가 만나서 의뢰를 어떻게 하는지도 물어보고, 돈은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도 물어봐.] [돈? 무슨 돈?] [장기를 파는 건데 당연히 돈을 받아야지! 호준 씨도 이제 머리를 좀 굴려 봐.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거 아니잖아!] 앙칼진 목소리로 다그치는 김은혜였다. 그녀가 건넨 명함에는 ‘성호신용정보’라는 상호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주소는 종로였다. 강준은 기억에서 빠져나와 김준혁을 바라봤다. “김 대리, 이만하면 됐어! 저 여자 말대로 경찰 불러서 다시 오자고.” “차장님. 근데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는 긴급 체포 이런 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린 경찰이 아니잖아. 체포권이 있는 게 아니야.” “그래서 제가 불렀습니다. 지금 허찬 경사님이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답니다.” “뭐? 허 경사를 직접 불렀다고?” “네.” 강준은 김준혁이 오피스텔의 문이 열렸을 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걸 기억해 냈다. 아마 그 틈을 이용해 허찬 경사에게 연락한 모양이었다. “여기를 오더라도 긴급체포할 만한 혐의가 없잖아? 이호준은 막 석방된 거고.” “박 차장님, 그간 새로운 혐의 하나가 더 추가됐거든요.” “그게 뭔데?” “제 하드디스크를 훔친 혐의요.” 밖의 복도에서 형사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김준혁의 말처럼 허찬 경사를 필두로 한 광역수사대 형사들이었다. 허찬 경사는 이호준의 오피스텔 호수를 정확히 찾아서 문을 벌컥 열었다. “김 대리님! 제가 너무 늦은 건 아니죠?” “시간 딱 맞춰서 오셨네요! 이호준 다시 체포하시면 됩니다. 아! 여기 김은혜도 공모한 거 같으니 조사 차원에서 체포해 주시고요.” 형사들이 들이닥치자 김은혜는 원래의 침착함을 잃고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이거 불법인 거 알지? 나 이거 언론에 알릴 거야! 얼마나 대한민국 경찰이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는지 말이야!” 강준은 김은혜의 얼굴에 싸대기를 날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가만 보니 김준혁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강준은 허찬 경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혐의 입증이 가능할까요?” “그럼요! 김준혁 대리님이 하드디스크가 든 백팩에 위치추적기를 넣어 놨더라고요. 그래서 방금 거기를 털고 오는 길입니다. 성호신용정보라고 그럴듯한 간판을 걸어놓고 자식들이 뭔 구린 짓거리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강준은 김은혜의 기억에서 읽었던 서용호의 근거지 성호신용정보를 떠올렸다. 자신의 도움 없이도 김준혁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서용호를 턴 것이었다. “거기에 서용호라는 인물은 없었나요?” “그게 다들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들이라 신분을 확인해 봐야 합니다!” “그놈들이 아마 장기밀매범들일 겁니다. 도현우 씨를 작업한 것도 그놈들 짓이겠죠.” 강준의 말에 허찬 경사는 깜짝 놀란 눈으로 김준혁을 바라봤다. 김준혁은 자신도 몰랐다고 말하려 했지만, 강준이 그걸 막고는 대신 대답했다. “김 대리가 장기밀매범을 잡았네요! 허 경사님께서 후속 수사를 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린 성원화재 보험조사팀은 김은혜와 이호준이 저지른 보험 살인사건에 대해 형사 고소하도록 하겠습니다!” “박 차장님 말씀대로 그놈들이 장기밀매 조직이라면 전 큰 건을 하나 잡은 거나 다름없네요! 하하! 김준혁 대리님 우리 나중에 소주나 한잔합니다!” 허찬 경사는 김준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형사들과 함께 김은혜와 이호준에게 수갑을 채웠다. * * * 일주일 후, TV에서는 약혼자를 장기밀매범에게 넘긴 김은혜의 사건이 대서 특필됐다. 언론에서는 이호준을 내연남으로 보도했지만, 그건 엄연히 말해서 오보였다. 이호준은 철저히 김은혜와 범죄수익을 나누는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공범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과는 별개로 언론은 김은혜의 사건을 확대 재생산했다. 더불어 김준혁이 언론에 직접 인터뷰를 함으로써 사내에서 입지가 확 올라갔다. “김 대리 어때? 언론에 인터뷰하는 거 쉽지 않지?” “네, 많이 떨리네요. 전 진짜 그런 건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습니다.” “하하! 그럼 누구는 언론에 노출되는 게 적성에 맞겠어?” 강준은 팀 회식을 빙자한 술자리를 만들었다. 홍콩으로 출장을 가기 하루 전이었다. “차장님…… 서용호를 못 잡은 게 마음에 걸리네요. 어찌 보면 도현우를 직접 죽인 건 서용호가 아닙니까?” 김준혁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김은혜와 이호준, 그리고 한국에 있던 장기밀매 일당은 모조리 검거됐지만, 이미 중국에 있던 서용호까지는 검거하지 못했다. “경찰에서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내려놨으니 조만간 무슨 소식이 들리겠지…… 경찰을 믿어 보자고!” “글쎄요, 전 서용호가 쉽게 붙잡힐 거 같지 않은데요?” 가만히 듣고 있던 송지희도 한마디 거들었다. “피해자인 도현우는 시신도 찾지 못했어요…… 수사가 이대로 마무리된다면 실망스러울 것 같아요.” 강준은 그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보험조사관으로서 임무는 거기까지였다. “김준혁! 서용호 붙잡고 싶어?” 오랜만에 김준혁을 이름으로 불러 보는 강준이었다. “네, 붙잡고 싶습니다.” “왜? 정의감에 그러는 거야?” “어설픈 정의감에 그러는 게 아니라…… 도현우 씨 가족들에게 미안해서요. 우리가 아니면 서용호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도 없어요. 그렇게 되면 서용호는 또다시 비슷한 장기밀매 사건을 일으킬 거고요.” “좋아! 그럼 이 일은 우리 특별수사과의 사건으로 계속 파 보자!” 강준의 말에 나머지 둘의 안색이 바뀌었다. 우울한 분위기가 어느새 걷히고 의욕 넘치는 팀원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역시 박 차장님은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이제 저희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실은 해외에 있는 서용호를 잡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가 한국에 언제 들어오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하냐? 사건 조사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지!” “에이, 차장님…… 내일 출장 가신다고 이렇게 던져만 두시고 가실 거예요?” 송지희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진담이야. 이번에 둘이 힘을 합쳐서 김은혜랑 이호준 잡았잖냐? 서용호라고 다를 게 뭐가 있겠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지.” 실망한 눈빛의 송지희가 고기를 한 점 입 안으로 욱여넣으며 말을 이었다. “오케이! 박 차장님이 사건을 계속 이어가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만족할게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해 볼게요!” 송지희는 맞은편의 김준혁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 송지희에게 김준혁이 주먹을 내밀었다. 주먹인사를 나눈 둘은 강준을 빼놓고 소주잔을 부딪쳤다. “이놈들이 나를 빼놓고 ‘짠’하는 거야?” “수사 동료끼리 의기투합해야죠. 박 차장님은 출장 건으로 당분간 바쁘시지 않습니까? 저희가 결과물 나오면 그때 알려드리겠습니다!” 김준혁의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그럼 내가 한 가지 조사 방향을 알려 주지!” 강준의 말에 둘의 눈빛이 다시 반짝였다. “서용호는 장기밀매범이야. 중국 본토에서도 장기를 구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한국에 와서 위험을 감수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걸까?” 회귀 전 강준은 직접 장기밀매사건을 수사해 본 경험은 없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 들었던 정보가 있었다. “범죄를 일으키고 중국으로 도망치면 수사망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 것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국경을 넘어서 그 짓거리를 한다고?” 강준의 얘기를 듣던 김준혁이 끼어들었다. “비용이 증가하는 걸 감수하고서 얻어야 할 게 있는 건가요?” “맞아. 그게 뭘까?” “한국인의 장기!!” “한국인의 신체!!” 둘은 동시에 대답했다. “맞았어. 한국인의 장기를 원하는 건 한국인 고객들이야. 결국 장기 이식을 원하는 한국인 환자들 가운데 중국으로 출국하는 사람들을 찾아보면 뭔가 실마리가 나올지도 몰라.” “그럼 병원부터 조사해야겠네요.” “그렇지! 이건 송지희 씨가 맡아서 조사해 보는 건 어때?” 편한 말투로 말하다 갑자기 씨를 붙여서 말하는 강준이었다. 그가 진담으로 말한다는 증거였다. 송지희가 김준혁의 눈치를 봤다. 동료로 지내왔지만 그래도 이제는 직급에 차이가 있는 둘이었다. 하지만 김준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전 적극 찬성입니다! 지희 씨가 전반적인 조사업무를 진행해 주시죠. 제가 서포트하겠습니다!” 강준은 데리고 있던 부하직원의 진급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위치가 되었다. 아무리 이정훈 본부장이 우호적으로 돌아섰다고 해도 강준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송지희까지 진급시킨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일 터였다. ‘결국 실적을 직접 올리게 할 수밖에 없지!’ 전직 간호사였던 송지희가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사건을 해결한다면 진급에 태클을 걸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자자! 그럼 우리 다 같이 ‘짠’하자고! 이번에는 나도 같이 ‘짠’해도 되겠지?” “그럼요. 저희는 언제나 박 차장님의 팬입니다.” “박 차장님 사랑합니다!” 좀 전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로 어느새 아부를 떠는 둘이었다. 강준은 둘을 돌아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 녀석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사회생활을 잘했지?’ “성원화재 SIU 특별조사팀 화이팅!” “화이팅!” “아자!!” 어느새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출장 전날이었지만 밤새도록 마실 생각이었다. 물론 나머지 둘이 집에 안 가고 버틴다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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