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약혼자 실종사건 (4)2022.03.19.
구치소 면회소에서 들어온 이두철은 강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너희 보험사 직원들 아니니? 나 사람은 죽이지 않았어! 자꾸 나 귀찮게 하지 말라!” 박 경사를 칼로 찌른 이두철의 부하 때문에 그는 살인미수의 교사범으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한껏 독기가 오른 상태였다. 딴에는 억울하다는 거였다. “너 이런 인간 생각나냐?” 강준은 이호준의 사진을 내밀었다. “뭐 하는 사람인데, 나한테 묻는 거니?” “너한테 환전하러 갔지. 뭐 하러 갔겠니.” “가만 보자…… 아! 그때 그 양반이네! 여자친구랑 같이 왔던 남자!” 그 말을 내뱉고는 본인이 흠칫 놀라 입을 다무는 이두철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 뭔가가 떠오른 듯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이 사람한테 돈 받아서 환전해 준 사람이 누구냐는 거야? 쉽게 말하면 이 돈의 행방에 대해 너는 알고 있으니까 얼른 불라는 거지.” “내…… 내가…… 왜 그래야 하니?” “그야, 너한테 보험사기로 혐의 하나가 가는 걸 피할 수 있으니까.” “그게 뭔 말이니? 너야말로 쉽게 말하라!” 이두철은 강준의 말을 못 알아듣는 척했다. 강준은 이두철의 기억을 읽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내 거둬들였다. 이번 사건은 철저히 김준혁에게 맡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김 대리, 이두철한테 뭐 물어볼 거 있어?” 김준혁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이두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사람들 당신한테 한 번만 환전하지 않았어. 아마 다시 와서 당신한테 이번에는 원화를 받아 갔을 거야. 맞지?” “아…… 씨, 난 모른다니까! 기억 안 난다고!” “왜냐면 이두철 당신을 만난 이후로 외제차를 샀더라고. 자동차 취득 신고는 돼 있는데, 무슨 돈으로 샀는지는 찾을 수가 없었지. 근데 말이야…… 너한테 돈 바꿔 간 사람이 메일함에서 ‘헬리콥터 작업 의뢰합니다.’라는 제목의 발신 메일이 있더라고.” 김준혁의 말을 듣고는 안색이 싹 변하는 이두철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어, 근데 그거 무서운 말이더라……Heart(심장). Liver(간), Cornea(각막), Pancreas(췌장), Tendon(힘줄), Retina(망막). 그걸 줄여서 헬리콥터(helicopter)라고 부르더군!” 장기밀매를 뜻하는 말이었다. 강준은 김준혁이 거기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에 내심 놀랐다. “난 모르는 일이라니까! 전부 다!” “그럼 장기밀매를 위한 돈이 오고 간 정황이 있으니 이두철 당신이 장기밀매 몸통이라고 봐야 하나?” “흐흐흐…… 네가 어떻게 뭘 할 건데? 뭘 할 수 있는데!” 보험사 직원에 불과한 강준과 김준혁을 조롱하는 그였다. “뭘 할 수는 없어도. 이걸 언론에 내보내면 꽤 재밌어질 거 같은데 말이야…… 한국에서 일어난 장기밀매사건, 그 배후에 거액을 만지는 환전상! 꽤 주목을 받게 되지 않겠어?” 그간 강준에게 범죄자를 다루는 방식을 옆에서 배운 김준혁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슬슬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는 이두철이었다. “장기밀매 그딴 거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때 그 사람들 돈이 간 데는 알고 있다.” “그게 어디야?” “서용호라고…… 나도 어디에서 활동하는지는 잘 몰라. 그냥 돈만 쏴 준 거니까.” 강준이 서용호의 정체에 대해 더 물어보려고 할 때, 김준혁이 먼저 질문했다. “본명이야……?” 어찌 보면 서용호의 실체를 밝히는데 제일 중요한 질문이었다. “중국 공민증에 이름은 그게 맞을 거야. 중국에서 은행 계좌를 만들라면 공민증이 있어야 하니까 말이지.” “신분증이 위조됐다면……?” “그건 나도 모르지! 환전해 주는 사람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니!” 벌컥 목소리를 높이는 이두철이었다. “박 차장님 더 물어봐야 소용이 없을 거 같은데요?” “이두철! 뭐 더 할 말 없어?” 김준혁의 말처럼 닦달해 봐야 더 나올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눈치를 보던 이두철이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조롱하듯 입을 열었다. “……내 선에서 아는 건…… 다 말했소……. 근데 서용호 그 인간이 내가 알기로는 보통내기가 아니야. 당신들 같은 샌님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지. 김 대리 면회는 이걸로 끝내자고.” 구치소를 빠져나온 강준은 김준혁이 이두철의 심리전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랬다. “김 대리, 장기밀매 세력이 연관된 거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이호준을 조사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불법인 걸 알지만…… 이호준의 메일을 들여다봤거든요.” “그럼 정말 이호준이 도현우를 장기 밀매단에 팔아넘긴 거야?” “저도 혹시나 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강준은 생각보다 도현우 실종사건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김준혁이 흔들리지 않는 모습에 한편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일단 서용호부터 찾아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허 경사님께도 정보 공유하겠습니다!” “그래! 장기밀매범으로 이호준을 다시 구속할 수 있을 거다. 참! 그리고 김은혜의 행방도 찾아야지. 어쨌든 아직 주범은 김은혜니까!” “아마 이호준의 거주지인 양재동 오피스텔에 있을 겁니다! 차장님, 만나 보시겠습니까?” “어, 당사자부터 만나 봐야지. 본인이 죄가 없다면 우릴 피할 이유도 없지 않겠어?” 김준혁은 강준의 말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김은혜는 그 시각, 구치소에서 나온 이호준과 만나 심각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점점 좁혀오는 수사망이 둘을 더 히스테릭하게 했다. “호준 씨! 경찰에서 말한 거 하나도 빼먹지 말고 나한테 말해 봐!” “아이 시발! 내가 왜 너한테 그래야 하는데?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김은혜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이호준의 팔뚝에는 문신으로 새겨진 잉어 한 마리가 살아서 움직이는 듯 꿈틀대고 있었다. 하지만 김은혜도 그 눈빛에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더 앙칼진 목소리로 이호준을 몰아세웠다. “내가 누누이 그랬잖아! 우리 2년만 쥐 죽은 듯이 지내면 보험금 탈 수 있다고! 근데 이게 뭐야? 그깟 명품 시계가 탐나서 현우 씨 집에를 가? 호준 씨! 미쳤어?” 명품 시계를 찾기 위해 도현우의 집을 뒤진 건 전적으로 이호준의 단독 행동이었다. 김은혜는 보험사에서 보험사기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조심하던 찰나였던 것이었다. “아…… 씨! 그 얘기는 그만해! 나도 열 받아 죽겠으니까!” “경찰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니까!”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야?” 이호준은 열이 뻗쳤는지 씩씩대며 캔맥주를 들이켰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곧 사고라도 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일단 버닝 바 정리하자. 그리고 그걸로 해외에 나가 있는 거야. 경찰에서 우리를 소환하더라도 안 나가면 그만이잖아. 궐석재판을 해도 증거가 없는데 뭘 어쩔 거야?” “궐석재판…… 그게 뭐야? 쉽게 말해 봐.” “당사자들 없이 재판하는 거지. 경찰에서 우리를 보험사기로 몰게 되더라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잖아?” 이호준을 바라보는 김은혜의 눈빛이 의미심장했다. 그들은 서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둘 다 도현우를 떠올리고 있었다. “호준 씨, 설마 현우 씨 얘기 꺼낸 건 아니지……?” “당연하지, 우리만 입 싹 닫고 있으면 절대 모르는 거잖아. 안 그래?” 둘은 서용호 일당에 도현우를 장기밀매로 팔아 버린 걸 절대 안 걸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김준혁이 환전상 이두철을 통해 서용호의 존재를 알았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은혜야…… 나 지금은 좀 곤란하다.” “뭐가 곤란해?” “버닝 바 말이야…… 그거 당장 정리하기는 힘들다고…….” “왜? 뭐가 문제인데?” “아니…… 내가 영식이 형한테 버닝 바 투자금 조로 좀 받은 게 있거든.” 그 말을 듣는 김은혜의 얼굴이 절망스러운 낯빛으로 변했다. “또 뭐에다가 돈 썼어? 도박했어?” “도박은 무슨 도박! 그냥 사업 하나 하려던 게 있는데…… 그게 좀 꼬여서…….” 항상 하던 변명이었다. 이호준이 일을 벌이고 잘 안 되면 수습하던 게 김은혜였다. 하지만 김은혜는 인제 와서 이호준을 버릴 수도 없었다. 이호준이 자신의 과거를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다……!” “됐고! 버닝 바는 그냥 버리고 가면 되겠네! 어차피 정리해도 돈도 안 남을 거 아니야?” “차라리 우리 한 건 더 하는 건 어때? 지난번에는 5천밖에 못 받았지만, 이번에는 억으로 올리는 거지.” 장기밀매를 한 번 더 하자는 얘기였다. “그게…… 가능해?” “그럼! 서용호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는 젊은 여자가 필요하다네? 20대 젊은 여자면 좋은데 30대도 간만 튼튼하면 괜찮다고 그러더라고요…….” “목표는? 누굴 목표로 삼을 거냐고?” “에이…… 우리 버닝 바에 일하는 애들 많잖아! 눈에 밟히는 게 20대 여자인데 뭘 그리 걱정해?” 버닝 바를 운영하는 이호준에게는 애초부터 또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김은혜는 그 얘기를 듣자 계획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은?” “뭐? ……그다음 뭘?” “한 건 더 하고서 그다음엔 우리 어떻게 할 거냐고! 계속 경찰 피해 다니면서 살 거야!” “시발! 그걸 왜 나한테 묻고 지랄이야!” 폭발하는 이호준은 앞에 놓인 맥주캔을 집어 던졌다. 깡! 데구루루! 캔에 남은 맥주가 거실 바닥에 쏟아졌다. “사람 참 안 바뀐다. 그렇지? 성질머리 여전해?” 김은혜는 더 이상 이호준을 신뢰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놈에게 꼬인 자신이 미울 정도였다. 하지만 도현우의 보험사기를 기획하고 실행한 건 김은혜였다. 인터넷을 통해 장기밀매범인 서용호를 알아본 것도 김은혜였다. 그녀는 돈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이었다. 띵똥! 띵똥! 둘이 무섭게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 현관문의 벨이 울렸다. 그리고 외부의 위협은 둘을 일시적으로 협력하게끔 했다. “뭐야? 지금 시간에 올 사람 있어?” “아니, 없지. 여기 알고 있는 사람도 몇 없을걸?” “나가봐.” 이호준은 손에 소주병을 쥐고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누구세요?” “서용호 씨 심부름 왔습니다.” 서용호라는 말에 이호준이 깜짝 놀라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밖에 서 있는 건 강준과 김준혁이었다. 이호준은 급히 문을 다시 닫으려 했지만, 발을 먼저 집어넣은 강준에 의해 오히려 문이 활짝 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은혜의 표정이 새파랗게 변했다. 김준혁의 얼굴을 알고 있던 김은혜는 자신이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 새끼들아!” 뒤늦게 이호준이 소주병을 휘둘렀지만, 강준에게 손목을 제압당한 이호준은 금세 팔이 뒤로 꺾인 채 벽에 처박혔다. “야! 이호준! 도현우 씨 어딨어? 서용호한테 물어보면 되나? 어?” “아…… 알았어! 난 모르는 일이야! 저 여자가 시키는 대로 한 것밖에 없다고!” 궁지에 몰린 이호준이 김은혜에게 책임을 돌렸다. 얄팍한 둘의 관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